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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9 : 11~21🍑새로운 사명으로 일어서는 하나님의 사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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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9 : 11~21🍑새로운 사명으로 일어서는 하나님의 사람

credo15229850 2024. 5. 21. 11:25

https://tripol.tistory.com/458

 

히브리어 열왕기상 19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약게드 아흐압 레이제벨 엩 콜 아쉘 아사 엘리야후 웨엩 콜 아쉘 하라그 엩 콜 한네비임 베하렙 개역개정,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

tripol.tistory.com

열왕기상 9: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

본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공동 번역의 경우 이를 "야훼(여호와)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문장의 전후 관계상 "여호와의 앞에서"는 나가서 산 위에 서는 행동 전체를 받는다. 즉 엘리야가 산 위에 서는 행동이 곧 여호와 앞에 서는 행동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은 과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셨듯이(출 33:17-23) 이번에는 엘리야에게도 당신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엘리야의 주목(主目)을 촉구하는 말임에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한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출 33:19). 즉 이는 여호와께서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한 방편인 것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점은 '지나가다'는 뜻의 '아바르'(*)는 움직임의 개념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고정된 사물을 관찰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관찰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바람은 그 움직임을 볼수 있으되 형상을 볼 수는 없는 것과도 같다(요 3:8).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을 알리시는 방식에서도 인간의 수중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선포하신다.

 

 강한 바람...지진 -

비단 이것들 뿐 아니라 다음절에 나오는 '불' 등은 여호와께서 현현(顯現)하실때 일반적으로 수반되는 현상이다(출 19:16-20). 그러나 정작 본절에선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셨다. 그러기에 바람, 지진, 불 따위는 표적을 구하는 종교가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굉장한 증거임에 틀림없었지만 선지자 엘리야의 마음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엘리야의 마음을 압도한 것은 그러한 현상들 다음에 들려온 '세미한 소리'(12절)였다. 즉 이것이야말로 엘리야에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분명한 증거였다.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을 통해 들려 주시는 그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시 119:105).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세미(細微)한 소리 -

'세미한'에 해당하는 '데마마 다카'(*)는 '고요하다'(*, 다맘)와 '곱다'(*, 다크)의 결합어이다. 즉 섬세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 둘이 동원되어 이는 대단히 미세함을 강조하고 있다. 더군다나 강한 바람과 지진, 불이 있은 후의 '세미함'이란 뚜렷한 대조를 보여 준다. 한편 '소리'(*,콜)는 신약에서의 '포네'(*)와 마찬가지로 '음성'이라 함이 더욱 적절하다(계1:10;4:1 등). 그런데 '하나님의 소리'로서 사용되는 경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뜻한다. 그리고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란 외적인 것이기보다 성령에 의해 듣는 자의 의식에 각인(刻印)되는 내적 감화(感化)이다(고전 2:10-14).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영적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Pope).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겉옷으로 엎굴을 가리우고 -

이것은 엘리야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음을 식별하고 취하는 행동이다. 즉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경우 살 수 없기 때문에 엘리야는 겉옷으로나마 자신의 얼굴을 가리운 것이다. 출 33:20 주석 참조. 한편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지나가심을 경험할 때는 여호와께서 친히 손으로 모세를 가리우셨다(출 33:22, 23).

 

 

 

 

 

 

 

 

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하나님의 물으심에 대한 엘리야의 답변은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두려움과 절망의 심경을 역력히 반영하고 있다. 즉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엄과 임재를 체험하고서도(11,12절) 여전히 부정적인 심경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야를 위로하며 앞으로의 구체적 사명에 대하여 일러주셨다(15-18절). 그러자 비로소 엘리야는 용기를 회복하고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는데(19-21절) 인간은 연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시다는 사례를 보여 주는 한 표본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15.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네 길을 돌이켜 -

이 말은 단순히 왔던 경로를 되밟아 돌아가라는 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실제로 엘리야가 명령받은 행로는 다메섹으로 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돌이키라'는 말은 보다 내적인 태도와 의식의 전환을 지시하는데 그의미가 있다. 즉 이는 실망과 낙담을 안고 왔던 길을 새로운 사명과 과제를 받아 들고 돌아가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인생에 할 일이 남아있다는 의식이야말로 낙담과 무의미를 극복케 하는 첩경이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

하사엘(Hazael)자는 본래 아람 왕 벤하닷(Benhadad)의 군대장관이다. 그러나 그는 벤하닷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이후 줄곧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괴롭혔다(왕하 8:13-29;13:1-3).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하사엘을 이스라엘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실 계획을 알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문제는 엘리야가 언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었는가이다. 실상 16절까지에서 언급되는 하사엘, 예후, 엘리사 중 그 누구도 엘리야의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왕하8:12-15;9:1-10). 그러나 이 난점은 '기름부음'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폭넓게 해석할 때 해결된다. 즉 여기서 '기름 붓다'라는 말은 꼭 문자적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어떤 사명을 부여하는 것(시105:15;사 45:1)이나 따로 구별하는 것(출 30:26)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견해이다.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님시의 아들 예후 -

사실 예후(jehu)는 님시의 손자이고 여호사밧의 아들이다(왕하9:2). 본절과 같은 오역(誤譯)은 히브리어의 '아들'(*, 벤)이 '자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서 온 실수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님시의 자손 예후'가 옳다. 한편 본래 이스라엘 군대장관 중 하나였던 예후는 훗날 라못 길르앗 출정시 반란을 일으켜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다(왕하 9:1-10"17), 이때 예후는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으로 아합 가문을 진멸(盡滅)하였으니 이로써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은 성취되었다.

 

 아벨므홀라 -

이 지명의 뜻은 '춤추는 초장'이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벧산 남쪽 16km 지점의 한 유적지를 아벨므홀라(Abel-meholah)로 추정하고 있다. 삿7:22주석 참조.

 

 엘리사 -

'엘리사'(*)란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농부긴 해도 상당한 재산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열 두 겨리 소를 부릴 수 있었던 그는 엘리야의 부름에 즉각 호응하여 예언자가 되었다(19-21절). 그리하여 엘리야가 승천한 이후(왕하 2장) 엘리사는 약50년간(B.C. 848-797년경) 북왕국에서 활약하게 된다. 한편 학자들은 엘리야->엘리사의 계승이 모세->여호수아의 계승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본다(Stek). 특히 한 사역이 대를 이어 성취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본절에 보이는 하사엘-예후-엘리사의 연결은 일견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이해 관계가 다르고 입장이 상충되는 세사람이 마치 같은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처럼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로 대립하는 국가의 왕들인 하사엘과 예후가 의식적으로 같은 목적을 품고 활동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북왕국에 재난과 죽음을 가져다 준 인물들이다. 15, 16절 주석 참조. 따라서 그러한 그들의 활동이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과 연결될때, 본절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 한편 본절에서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는 표현은 앞서 '기름부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자적으로 취할 바가 못된다. 15절 주석 참조. 즉 이는 엘리사가 직접 죽인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사역이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에 많은 심판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칠천 인을 남기리니 -

'남기리니'에 해당하는 '솨알'(*)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말이다. 원래 신정 국가(神政國家)인 이스라엘의 정치적 운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신앙에 좌우되기 마련이다(출 19:5,6). 따라서 극도로 타락하고 혼미한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을 불러 올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그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미래를 지속케 할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 놓으신다. 이때 남은 자들(remnants)은 하나님의 주권적 택정(擇定)하심 안에서 유지되고 보존된다는 은총적 의미가 있다. 즉 이경우 심판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자를 남기셔서 역사를 지속케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Stark, Jenni). 한편 본절에서 '칠천 인'은 실제의 수가 아니라 상징적인 수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Keil등). 즉 이는 완전수인 7의 배수로서 미래의 역사를 담당하기에 충분한 숫자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열 두 겨리 소 -

한 '겨리'(*, 체메드)는 한 명에를 나란히 말하기도 하고, 그 한 쌍의 소가 하루 종일 갈만한 토지 단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자의 뜻을 취할 경우 엘리사는 24마리의 소를 앞세워 밭을 간 셈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른 일꾼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편 토지 단위로서의 한 겨리는 8분의 5에이커, 즉 약 2,520m2에 해당한다고 한다(Sellers).

 

 열 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

이 말 역시 열 둘째 쌍의 소를 부린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열 둘째 밭을 맡아 간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20절 초반을 참고 할 때 열 두번째 쌍의 소를 맡아 부렸다는 뜻이 옳다.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

보통 겉옷은 그 사람의 직무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엘리야의 경우 그의 외모와 함께 특이한 복장은 항간(巷間)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엘리야가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져준 것은 자신의 직무를 대신하라는 매우 상징적이고 효과적인 전달 방식이다(Hammond, Keil & Delitzsch). 그러기에 엘리사 역시 이 동작에 담긴 의미를 즉각 알아 차렸다(20, 21절).



 

 

 

 

 

 

 

 

20.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저가 소를 버리고...달려가서 -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소명자들의 비교적 공통된 특징이다(마 4:18-22; 눅 5:27-29). 아마도 엘리사는 민족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깊이 탄식해 왔던 인물로서 평소부터 엘리야의 활약에 마음깊이 동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그는 엘리야의 부름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

'입맞춤'은 이스라엘인들의 일상적 인사법이다. 창 33:1-11 강해, '구약 시대의 인사법' 참조. 한편 본절에서의 엘리사의 청원은 눅 9:59의 경우와는 다르다. 즉 눅 9:59에 나오는 사람은, 부친의 생존 기간 동안은 예수를 따를 수 없다는 식의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반면에 엘리사는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응당 드려야 할 인사를 드리려 한 것이다.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

혹자는 이 말을 약간 힐난조의 말로 본다(Rawlinson, Wordsworth). 그러나 앞뒤 문맥으로 볼 때 이 말은 긍정의 뜻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는 '안 될 이유가 뭐 있겠느냐'는 뜻이다. 사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행한 것은 선지자적 직무에의 초대이다. 그런데 이 초대는 곧 부모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에게 입맞추고 오겠다는 엘리사의 요청은 어떤 주저함도 아니다. 도리어 이는 부모와의 영원한 이별을 감지하고 그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단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엘리야 역시 기꺼운 수락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Lange).



 

 

 

 

 

 

 

 

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더라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

이 경우는 당연히 '한 쌍의 소'를 도축(屠畜)하였다는 뜻이다. 19절 주석 참조.

 

 소의 기구(器具)를 불살라 -

이제까지 농부였던 엘리사가 농기를 불사른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결단의 상징적 표시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의식(儀式)이라 할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엘리사가 구태여 농기구를 불사를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먹게 하고 -

여기서 '백성'이란 당시 엘리사와 함께 밭을 갈았던 일꾼들 뿐 아니라 그의 친척과 친구, 이읏 모두를 의미한다. 즉 엘리사는 이제 이들과 헤어지는 마당에서 마지막 석별(惜別)의 잔치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Pulpit Xommentary).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

열왕기에서는 엘리야->여호수아의 계승과 대비하려는 의도가 있다 한다(Stek). 그렇다면 본절은 바로 그에 해당하는 요소라 하겠다. 즉 여호수야가 모세의 수종을 든 것처럼 엘리사도 엘리야의 수종을 든 것이다.(출24:13;수 1:1). 한편 왕하 3:11에 의하면, 엘리사를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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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현현顯現/자신을 
알리시는, 깨닫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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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 임재, 위로, 용기,
회복, 강하신, 징계, 
계획, 구원, 심판, 예언,
운명, 미래, 주권적 
하심, 유지/보존, 은총,
신실하신, 역사, 지속, 
자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 결단, 사역, 
순종(즉각 응답),
신앙, 신정 국가, 남은
자들, 죄에 빠진 이들에
대한 탄식(나라,민족,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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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주님의 자녀임을
의식하여 낙담과 
무의미를 극복하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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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에 이어 엘리야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말씀을 성취하시고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미리 예정하시고 준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여 동행했던 엘리야처럼 주님과 친밀한 대화를 하게 되기를 기도하며 인내와 헌신의 시간들, 맡겨진 사명과 사역을 힘써 감당하여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사..하면 겨울왕국의 엘사가 생각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L9QYacv_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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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신성한 논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아마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말씀일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나 우리는 정확하게 정반대로 주장합니다. 심지어 가장 영적인 사람들마저도 – “그러나 내가 살아야 해, 내가 돈이 많아야 하지. 옷도 필요하고 먹고살 것이 필요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순서를 반대로 만드십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당신의 삶에 최대 관심사로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로 인하여 염려에 빠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 염려하지 말라.”(마 6:25) 주님의 관점에서 보실 때 사람들이 삶의 수단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생각이 없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들의 삶에서 가장 주된 관심사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외에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가 너희들의 삶을 주관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집중하라.”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부주의함으로 인하여 고생을 합니다. 입는 것에 대하여 부주의합니다. 그들은 마치 돌봐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일들에 대하여 부주의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들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의미가 아니라 삶의 최대 관심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첫째로 두라는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다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실현될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든 훈련 중의 하나입니다.

5월 21일 믿음의 영적 논리 Having God’s “Unreasonable” Faith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399

 

5월 21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믿음의 신성한 논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아마 인간의 귀로 들을 수

m.cafe.daum.net

 

 

 

https://i.pinimg.com/564x/d5/04/f0/d504f091668c7c658b0faaa9ff17c5db.jpg

 

똑똑하고 반짝반짝(이쁘거나 멋지다는 뜻의~)도서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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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들어가유~등에 튼튼한 날개가 있어서 잘 들지요~🤍

https://i.pinimg.com/564x/2b/e4/36/2be436051ce222255bc5a5581bb0bc4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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