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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20 : 1~12🍑위기에 처한 나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지도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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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20 : 1~12🍑위기에 처한 나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지도자

credo15229850 2024. 5. 22. 11:04

https://tripol.tistory.com/459

 

히브리어 열왕기상 20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우벤 하다드 메렠 아람 카바츠 엩 콜 헤로 우쉐로쉼 우쉬나임 메렠 잍토 웨수스 와라켑 와야알 와야찰 알 쇼메론 와일라헴 바흐 개역개정,1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tripol.tistory.com

 

Quand venez-vous ? vous you는 vense when Quand 오다?~새로운 단어를 익혔다! 까먹지 않기~

 

열왕기상 20:1.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 이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아람 왕 벤하닷 -

본절의 벤하닷(Benhadad)은 일찍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Baasha)와 동맹을 맺은 바 있던 벤하닷 1세(B.C. 900-860)의 아들이다). 그런데 벤하닷 1세는 지중해 무역로 확보를 위해 오므리(아합의 아버지)와도 전쟁을 벌여 이스라엘 국경의 여러 성읍을 탈취해 갔다. 그러나 본장에서 벤하닷 2세(B.C. 860-841)가 아합을 위협하는 까닭은 이스라엘 침략에 목적이 있기보다는 실제로 앗수르와의 전투에 이스라엘을 끌어내어 연합군이 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으로 추측된다(Bowman). 이 무렵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Sharmaneser ,B.C.859-824)는 서서히 벤하닷의 아람(시리아)을 위협해 오고 있었다.

 

 왕 삼십이 인 -

당시 아람(Aram)은 여러 개의 소규모 지역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다메섹(Damascus) 왕 벤하닷이 주도권을 잡자 타지역의 왕들에 대한 군주-봉신 관계가 형성되었다. 본절의 32명의 왕들은 바로 벤하닷에게 조공과 병역을 바치는 아람의 소왕들이다. 한편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0:6 주석을 참조하라.

 

 

 

 

 

 

 

2 .사자들을 성중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니

 

 벤하닷은 이르노니 -

원문은 '벤하닷은 말하다!'(*, 아마르 벤하닷)와 같이 대단히 거만한 말투이다. 즉 여기서 '아마르'(*)는 '명령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수 11:9;대하 29:24;에 9:25). 이는 곧 왕이 신하에게나 걸 법한 말투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에게 이와갈이 말을 걸었다는 것은 충동과 도발의 의도를 지닌 것임이 분명하다.

 






 

 

 

 

3.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네 은금은 내 것이요..내 것이니라 -

이와 같은 벤하닷의 자극적인 언사(言辭)는 아합의 자존심을 상처입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를 뚜렷이 내보인다. 심지어 아합의 아내들까지 자신의 소유로 주장하는 데서 이스라엘의 왕권을 자신의 발 아래로 완전 복속시키려는 벤하닷의 탐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삼하 16:21, 22;왕상 2:22). 이제 이를 좀더 세분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은금의 요구는 실질적인 국력의 약화로 인해 이스라엘이 벤하닷에게 완전히 굴복하게 하려는 조처이다. (2)처(妻)의 요구는 이스라엘 왕권의 독자성과 존엄성 상실을 겨냥한 처사이다. 2:17 주석참조. (3)자녀들의 요구는 일종의 인질, 볼모를 요구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상과 같은 벤하닷의 요구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략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4.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내 주 왕이여 -

이 호칭은 일반적으로 신하가 왕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이다(삼상24:8;26:17). 아합은 벤하닷의 막강한 위세에 눌린 나머지 그에게 신하의 예(禮)를 표한 셈이다.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

이말은 아합의 잠정적 항복이다. 즉 눈앞의 위기국면을 넘기기 위한 전술적 항복일 뿐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점은 벤하닷이 자기의 요구를 실제로 관철하려 들자 아합이 분노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7절).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아합은 대단히 유약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는 당시 아람의 막강한 위세에 겁을 먹고 어떻게 해서든 화친하려고 생각했던것 같다.

 

 

 

 

 

 

 

 

 

5. 사자가 다시 와서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처들과 자녀들을 내게 붙이라 하였거니와

 

 이미...내게 붙이라 하였거니와 -

'불이다'에 해당하는 '나탄'(*)은 요구하는 것을 '내주다'는 뜻이다. 따라서 2, 3절의 벤하닷의 언동(言動)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단호한 실제적 요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 대해 아합은 단호한 거절도 실제적인 수락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답변을 했던 것 같다.



 

 

 

 

 

 

 

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복을 네게 보내리니 저희가 네 집과 네 신복의 집을 수탐하여 무릇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수탐(搜探)하여 -

이에 해당하는 '하파스'(*)는 '찾다'(search for)는 뜻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약탈물을 뒤져 찾아낸다든지 도망자롤 찾아내려는 등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말이다(창 44:12;삼상 23:23;왕하 10:23). 한편 '수탐(搜探)이란 역어(譯語)는 '수사하고 탐지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원어에 걸맞는 표현이라 하겠다.

 

 네 눈이 기뻐하는 것 -

여기서 '네 눈이'(*,에이네이카)는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방향을 말한다. 그리고 '기뻐하는'(*, 마흐마드)은 사랑스러운아내에 대하여 기뻐하듯 확실히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네눈이 기뻐하는 것'이란 아합이 특별히 귀중히 여기어 아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즉 여기에는 비단 물건 뿐 아니라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런데도 공동 번역은 이를 '값진 물건'으로 번역하였으니 본절의 의미를 충분히 보여 주지 못하는 감이 있다.



 

 

 

 

 

 

 

7. 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잔해하려고 구하는 줄을 자세히 알라 저가 나의 처들과 자녀들과 은금을 취하려고 사람을 내게 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장로 -

'장로'(*, 자켄)들이란 원래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는 권위자요 대표자들로서 왕정 시대에는 왕의 신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가 임명하는 관원과는 달리 지역 자체에서 이미 존재가 뚜렷한 사람들로서 단지 왕정 체제의 질서내에 편입되어있을 뿐이다. 이들은 일반 행정 뿐 아니라 전쟁시에도 현명한 충고와 조언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Davies). 그런데 이들의 동의와 지지가 왕에게 그토륵 중요했던 것은 왕정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노동력과 군사력을 바로 이 지역민들로부터 얻어내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아합이 설령 일전(一戰)을 불사(不辭)할 결심을 해도 장로들의 동의가 없이는 전투력에 차질을 빚고 마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장로직의 유래 및 그 역할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21:1-9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을 참조하라.

 

 이 사람이...알라 -

'이 사람'에 해당하는 '제'(*)는 경멸과 조소가 담긴 비칭(卑稱)이다. 즉 이 말은 '이 자' 혹은 '이 작자' 정도의 어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본절은 '이 자가 추구하는 악을 보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때 '보다"(*, 라아)는 말은 단순한 응시가 아닌 '주목하여 살피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자세히 알라'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합이 장로들의 의분을 자아내어 자신의 전의(戰意)에 호응토록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가...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

혹자는 군주가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고백을 했겠는가 의심한다(Hammond). 그러나 이 말의 의도가 장로들로 하여금 분노케 하여 전의를 다지려는 것임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본절은 '너희들의 왕이 힘이 없어 그토록 수모를 당해야했다'는 이면(裏面)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8.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고하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

이 말은 장로와 백성의 대표들로 이루어진 협의체와 같은 기구를 가리킨다. 즉 이는 국가의 중대사를 협의하기 위하여 모인 일종의 범국민적 비상 시국 대책 위원회를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이는 '성회'(聖會)로도 번역될수 있는 이스라엘의 '총회'(總會)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민 16:2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지도 마옵소서 -

장로들과 백성들의 한결같은 의견을 집약하고 있는 본구절 속에는 아합 왕의 소아적(小我的)이고도 경솔한 처신에 대한 책망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상 아합의 굴욕적 태도로 인하여 아람 왕 벤하닷의 기세는 한층 거만해졌으며,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긍지는 땅 아래로 실추되고 말았던 것이다(4-6절). 따라서 백성들 중 대다수는 가만히 앉아서 아람의 약탈을 지켜보기 보다는 차라리 싸우다 죽는 편을 원하였던 것같다. 특히 그들 중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한 무리들은 성지 유린을 막기 위해 강경 대응책을 적극 지지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9.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고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수 없나이다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고하니라

 

 내 주 왕께 고하기를 -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아합이 벤하닷을 가리켜 '내 주 왕'이라 칭하는 것은 여전히 굴욕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4절 주석 참조. 그러나 이러한 아합의 처세는 다분히 외교적 실리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즉 아합은 표면적으로는 비록 굴욕적으로 보이더라도 최대한의 양보를 통해 승산없는(적어도 아합이 보기에) 전쟁을 피하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 복속(服屬)을 겨냥하고 온 벤하닷은 처음부터 속셈이 달랐다. 즉 그는 이스라엘의 외교적 굴복이 아닌 실제의 굴복을 목표한 것이다. 3절 주석 참조.

 

 처음에...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

이 말에서 벤하닷의 첫번째 요구와 두번째 요구가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벤하닷의 첫번째 요구는 전쟁에 패한 왕으로서의 배상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3절). 그러나 두번째 요구는 아합의 궁전은 물론 그의 온 백성들의 집까지도 뒤져 약탈하겠다는 알종의 수도(首都) 점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6절). 그러므로 아합의 대답은 최대한 협상일의 폭은 첫번째 요구까지이며 그 이상의 요구에 대해서는 들어 줄 수 없다는 내용인 셈이다. 그런데 7,8절을 참고해 보면 장로와 백성들은 벤하닷의 첫번째 요구에 이미 분노를 느끼고는 단호한 거절의 의지를 표명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아합은 백성들의 의지를 확인한 후에도 지극히 유약하고 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본문에서 이세벨의 강렬한 성격과 함께 이스라엘의 신앙 타락의 한 원인으로 암시되기로 한다. 19:1, 2 주석 참조.



 

 

 

 

 

 

 

 

10. 벤하닷이 다시 저에게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좇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사마리아의...족할 것 같으면 -

아합왕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격노한 벤하닷은 고대 근동 특유의 과장적 표현을 통해 더욱 거센 위협을 가하였다. 즉 본절에 담긴 의미는 두 가지인 바 아람군의 무차별 살상과 공략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 성은 철저히 잿더미로 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아람군의 수효가 하도 엄청나기 때문에 초토화된 사마리아 성의 모든 부스러기들로도 아람군들의 주먹조차 채울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11.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갑옷 입는 자... 자랑치 못할 것이라 -

여기서 '갑옷 입은 자'란 이제 막 싸움의 채비를 차리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갑옷 벗는 자'란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제 전투복을 벗는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아직 싸워 보지도 않고 결과를 장담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이는 한번 싸워 보지도 않고서 이미 승리를 거둔 둣이 교만방자하게 군 벤하닷을 비꼬는 풍자적(諷刺的) 표현이다. 이는 곧 우리 속담에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런데 Living Bible은 영어 속담을 인용하여 본절을 '알이 부화되기도 전에 병아리 수효를 세지 말라'(Dont't count your chickensbefore they hatch!)로 번역하였다. 아무튼 본절과 관련해서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벗어버린 채 돌과 물매만 갖고서 갑옷 입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소년 다윗을 상기할 수 있다(삼상 17:39-49).

 

 

 

 

 

 

 

 

 

 

 

12.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신복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을 베풀라 하매 곧 성을 향하여 진을 베푸니라

 

 장막 -

'장막'(*, 수코트)은 '오두막'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고대 근동의사막에서 왕과 장수들을 위해 설치하는 병영내의 가건물을 가리킨다.

 

 마시다가 -

이에 해당하는 '쇼테'(*)는 곧 '술을 마시다가'란 뜻이다. 이는 우리말에서도 '마신다'는 말만 가지고 음주를 완곡(婉曲)하게 묘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전쟁터에 와서까지도 한가롭게 술을 마시는 벤하닷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군을 깔보았는지 여실히 증거해 준다.

 

 진(陳)을 베풀라 -

원문에는 흔히 '진'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마하네'(*)나 '타하나'(*) 같은 명사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마치 '위치로!'하는 군대식 명령이 곧 군대로 하여금 맡은 바 위치에 포진(布陳)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절 역시 '베풀다'는 말 속에 이미 그 같은 의미가 층분히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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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성품/속성:
군주, 기뻐하는, 충고/조언,
현명한, 주목하시는, 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의를 다지기, 경외,
경건, 의지, 
🔵
유약하고 타협적인 
자세를 내려놓고 
때에 맞는 거룩한 
분노를 품을 수 있기를..!
이기기 어려운 전쟁 같은
문제 앞에서 굴복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아직 싸워
보지 않고 결과를 장담하지
않는 마음과 만군의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윗처럼 
주님 안에서 담대함으로 
나아가야 겠다.🩸✝️
🌱🌿🌳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휘둘려서 말이 자꾸 바뀌는 아합의 모습을 보며 사람에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는 제 모습이 보여서 회개와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세상의 불의에 대항하는 주님의 거룩과 긍휼을 구하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27bvAVg5ls

💖🎶

 

 

 

 

이제 설명이 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 17:21)
 
당신이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면 요한복음 17장을 읽으십시오. 이 기도는 정확하게 당신이 왜 지금 있는 곳에 있는지를 설명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께서 아버지와 하나인 것 같이 당신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도록 돕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삶에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제자가 된 이후로는 과거처럼 자기 멋대로 독립하여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셔야 하는 단 하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소서.” 이 기도의 내용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가 될 만큼 가까운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 이 어려움, 이러한 실패를 네가 이기길 원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일을 주님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이러한 아픔들은 우리를 더 상냥한 사람, 더 나은 사람, 더 속 깊은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혹은 반대로 우리를 더 까다롭고 남을 비방하고 헐뜯으며 자신의 고집만을 더 주장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발생하는 일들은 우리를 성자로도 만들 수 있고 악마로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철저하게 우리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면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 위로는 우리 아버지께서 그분의 지혜에 따라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앎으로 오는 위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알면 우리는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그 무엇보다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 됨 같이 우리도 주님과 완전하게 하나 되길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러한 하나 됨과 너무 멀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될 때까지 절대로 우리를 홀로 두고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5월 22일 고난에 대한 해설 The Explanation For Our Difficulties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400

 

5월 22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이제 설명이 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 17:21)   당신이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면 요한복

m.caf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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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겼넹🧸🤍무한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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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니까 멋찐 별이 잘 보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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