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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베드로전서 4 : 12~19🍑그리스도인의 불 시험, 주님 고난에 참여하는 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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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사랑하는 자들아 -
베드로는 본절부터 다시 핍박 받는 자들에 대한 권면을 한다. 본문은 수신자를 향한 베드로의 애정어린 마음을 나타내며(2:11) 동시에 새로운 권면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불시험'으로 묘사된다. '시련하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페이라스몬'(*)은 진위(眞僞)를 가리는 것으로 유혹이 아니라 시험(test)을 의미한다. 이 '시련'은 본절에서 '불 시험'과 동일시되고 있다. '불 시험'의 헬라어 '테 엔 휘민 퓌로세이'(*)는 문자적으로 '너희 중에 타고 있는 불'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고통스럽게 타는 불'로서 소돔성을 파괴시킬 때의 불로 묘사되며(Josephus) 또한 종말에 '바벨론 성'을 멸망시킬 불로 나타나기도 한다(계 18:9, 18). '퓌로세이'는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불같이 뜨거울 것을 상징한다(시 66:10; 잠27:21; 계 3:18, Stibbs, Blum). 이러한 시련을 끝까지 믿음으로써 견디는 자는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한편 '오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메 네'(*)는 현재분사로 베드로나 수신자가 이미 경험했고 또한 현재에도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장차 계속 다가올 시험임을 시사한다.
이상한 일 당하는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이상히 여기지'의 헬라어 '크세니제스데'(*)는 실제적인 박해에 의해서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을 의미한다(Beare).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앞에 다가오는 시련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그 시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그 고난의 동참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쁨과 영광에 참예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Stibbs, Blum).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고난을 당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여러 가지 핍박과 치욕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겪을 때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즐거워하라'의 헬라어 '카이레테'(*)는 현재분사로 그 즐거움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후에 주어질 영광의 승리를 바라보며 항상 어떤 조건하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때에 너희로 줄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
본절은 '히나'(*,'...위하여')로 시작하는 절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즐거워하는 목적이며 마지막 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한다. 현재에 당한 고난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할정도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날의 영광을 생각하면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한 것이다.'기뻐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갈리오메노이'(*)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로(Lenski)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극명한 대조를 통해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씬 큰 것임을 암시한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엔 오노마티 크리스투)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주님이 하셨던 표현이며(마 5:11) 초대 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박해가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거의 전문적인 표현 방식으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마 10:22; 요 15:21; 행 9:16; 15:26; 21:13; 계 2:3; 3:8, Kelly). 한편 '욕을 받으면'은 믿지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이나 능욕을 받는 것으로 본서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다(4절; 2:12, 15; 3:16). 이것은 70인역에서 악인들이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비방했던 것에 대해 많이 사용했으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받은 모욕을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되었다(마 27:40 - 44; 롬 15:3; 히 13:13).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고 욕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에서 당하신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후대 영광에 참여할 복된 것이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당하는 자들이 복 있는 이유이다. 본절에서 '영광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동일시되어 '성령'을 나타낸다. '영광의 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테스 독세스'(*)는 문자적으로 '그 영광의 그'이다. 이 표현은 쉐키나(S-hekinah)를 묘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영광을 가리킨다(출 16:7; 24:16; 29:43; 40:34; 민 14:10; 왕상 8:10, 11; 사 6:1 ; 겔 1:28,Cranfield, selwyn). '하나님의 영' 곧 '영광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핍박받는 사람들에게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게 되며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소유됨을 시사한다(Stibbs). '계심이라'의 헬라어 '아나파우에타이'(*)는 '쉬게 하다', '자리잡다'라는 의미로 성령의 임재를 시사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임재해 계셨으며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행 7:55, Bigg).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고난이 동참할 때 하나님의 두드러진 속성인 영광을 보게 된다(행 7:55).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것이어야 하며 세상에서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악행으로 받는 고난은 결코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니며 그 악행 자체는 형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별개의 것이다. 여기서 '...로'(*, 호스)는 앞의 세 가지 범죄와 다음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 사이를 분리하여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를 강조하고 있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는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이나(Deismann), '금지된 일하는 자'(Bigg) 혹은 '밀고자'(NIV)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들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로 인해 고난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받은즉 -
'그리스도인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 즉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다(13절).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지만(행 11:26; 26:28) 그 말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제자', '형제', '성도'라는 호칭이 사용되다가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당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아그립바는 그리스도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여(행 26:28) 초기에는 주로 신자들을 박해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Goppelt). 따라서 신약성경 기록 당시에는 보편적인 단어가 아니었으나 그후 A.D. 64 년 경까지 로마에서 신자사이에 이 말의 적합성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보편적으로 사용하였다(Tacitus, 행 11:19 - 26 주제 강해 '그리스도인' 참조).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본절은 베드로 자신의 수치인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건을 암시한다(막 14:66 - 72, Blum). 베드로는 처음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나(막 14:68) 이제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있다. '그 이름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엔 토 오노마티투토'(*)는 후기 사본에서 '이런 이유 때문에'(*, 엔 토 메레이 투토)로 기록 되어 있다(K,L,P). 그래서 흑자는 이 구문을 '그리스도인의 자격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라는 의미로서 신분 의식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Selwyn, kelly). 그러나 '그 이름으로'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라는 의미이다(Blum, Stibbs). 왜냐하면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기 때문이다(14절).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
'하나님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고전 3:16; 딤전 3:15; 벧전 2:5). 왜냐하면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예언에 하나님의 심판이 성소에서 시작된다고 했기 때문이다(렘 25:29; 겔 9:6; 말 3:1-6 ).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으로 인하여 이미 심판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마 24:8, 9) 이 심판은 멸망당할 심판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본절은 종말의 모습이 먼저 그리스도인에게 임해서 성결케 하고 다음에 확대될 것이라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1:7; 슥 13:7-9; 말 3:1-5, Stibbs,Blum).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
그리스도인들도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하물며 악인들은 어떠하겠는가? 이 심판 앞에서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베드로는 앞서 언급한 '하나님 집'과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하나님 집도 심판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더 크고 분명한 심판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세상에 선포된 그리스도인의 메시지'로(막 1:15; 롬 1:1; 살전 2:2, 8, 9, Michaels), 이런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살후 1: 5-10).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
본절은 잠11:31(LXX)의 인용이다. '의인'은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며 어려운 불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한다(12절). 그러므로 경건한 자들이 얻는 구원도 '겨우' 얻는 것이다. 혹자는 '겨우'(*,몰리스)를 '고통'이라고 하나(Scott) 여기서는 '간신히', '겨우'라는 말이 합당하다. 의인인 그리스도인도 심판을 통해서 겨우 구원을 얻는다. 의인들도 그러할진대 경건치 않은 자들은 당연히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고 멸망당할 것이다. 베드로가 본절에서 의인의, 구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방탕한 길에 빠지지 않고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Calvin).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찾아오는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며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그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1:6; 5:6).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고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박해하는 핍박자들에게 악으로 갚을 수 없다. 그래서 베드로는 도리어 선을 행하므로 갚아야 하며, 확신을 가지고 고난 가운데에도 자신의 영혼을 보호해 주실 것을 부탁해야 한다(Stibbs). '부탁할지어다'의 헬라어 '파라티데스도산'(*)은 '예금하다', '맡기다'의 '파라티데미'(*)에서 유래된 말로서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의탁하는 것'을 뜻한다. '파라티데스도산'의 대표적인 예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과(눅 23:46) 스데반의 의탁이다(행 7:59). 한편 '조물주'(*, 크티스테)는 외경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신약성경에는 이곳에만 나온다. 이러한 표현은 능히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시사한다(Bi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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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구원, 영광, 기쁨, 승리,
복, 성령, 임재, 성결,
심판, 복음, 지켜시고
돌봐주심, 뜻, 보호,
지배, 다스리는, 능력,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권면, 믿음,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순종, 경각심, 성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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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불 같은 시련을 끝까지
믿음으로써 견디어
구원을 얻게 된다.
고난과 시험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후에 주어질 영광의
승리를 바라보며 항상
어떤 조건하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씬 큰
것.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고난이 동참할 때
하나님의 두드러진 속성인
영광을 보게 된다.
도리어 선을 행하므로 갚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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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시대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는데 베드로는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찾아오는 많은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오는 것으로,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데, 그 고난 가운데서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고난의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인내할 수 있는 한계가 찾아오곤 하지만 결국 살 길을 여시고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고난의 때에도 주님을 향한 기쁨과 선을 행하는 순종의 삶,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mzody_OJl0
그다음에 할 일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한복음 13:17)
만일 당신이 세상의 항구에 매인 밧줄을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폭풍으로 그 줄을 끊으시고 당신을 바다로 내보내실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의 배를 하나님께 매달고 하나님의 목적이 담긴 커다란 파도를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눈이 활짝 뜨일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다면 항구의 술집에 거하면서 그곳을 떠날 생각도 없이 미끄러운 술과 쾌락을 즐겨서는 안 됩니다. 당장 항구의 술집을 나와 하나님의 위대한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에 대하여 알게 되고 영적 분변력을 갖게 됩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 당장 순종하십시오. 순종하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영적으로 막혀 버렸는지 점검하십시오. 그곳은 바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필요한 것 같지 않아 순종하지 않은 지점일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영적 지각도 없어지고 분변력도 사라진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자신을 충만케 해야 하는 위기의 때에 오히려 영적으로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순종해야 하는 순간에 순종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요.
순종의 모조품은 열심입니다. 자기 멋대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러한 열심이 종종 영적 분변을 대신하곤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2절에 언급된 영적 사명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변함으로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그 어떤 위대한 열심보다 훨씬 귀한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 하나님께서 당신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가실 때 자꾸 과거 당신의 모습을 돌아보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알리라.”(요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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