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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베드로전서 5 : 1~7🍑본이 되는 지도자, 본을 따르는 제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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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
지금까지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 즉 사환(2:18), 아내들(3:1), 남편들(3:7), 모든 사람들(3:8)에 대한 권면이었으나 본절은 장로들에 대한 권면이다. '장로'(*, 프레스뷔테루스)는 구약 시대부터 시작된 호칭이다(출 3:16,18; 24:9; 민 11:16; 수 20:4). 구약 시대에는 주로 나이가 많은 연장자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적으로 직분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장로 제도를 사용하였으며(행11:30; 21:18)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 여행을 하면서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다(행14:23). 따라서 이 제도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여러 지역으로 번져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장로'는 '감독'(*, 에피스코포스) 과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딤전 3:1; 딛 1:7). 그러나 감독은 직분적인 측면의 성격이 강하며, 장로는 신분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와 같은 장로는 교회에서 전반적인 것을 관리하는 영적 지도자로서 교인들을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였다(히 13:7;약 5:14, Blum, Stibbs, Selwyn). 한편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권면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함께 장로 된 자요 - 이것은 베드로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동역자임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이는 결코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며 자신도 '장로'로 같은 '장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함을 시사한다(Brown).
(2)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한 증인이요(행 5:32; 10:39), 그것을 증거할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임을 의미한다(요 21:15 - 18; 행 1:8).
(3)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 '나타날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보여 주실 영광이며(4:13) 동시에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누릴 영광이다(롬 8:17, 18). 혹자는 본절의 영광이 변화산상에서 베드로가 목격한 영광을 지칭한다고 하나(Stibbs) 그것보다는 장차 임할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
베드로는 요 21:15 - 17에서 예수께서 자신에게 부탁했던 말을 다른 목자들 즉 장로들에게 권면한다. 본래 '양'은 그리스도의 것이며(요 10:14; 21:15), 하나님의 것이다(행 20:28). 그런데 목자장이 되시는그리스도께서 양 무리를 돌보는 직임(職任)을 사람들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양 무리'를 돌보고 양육하는 직임을 다하라고 장로들에게 권면한다. 장로들은 이 때 두 가지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1)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
'부득이함으로'의 헬라어 '아낭카스토스'(*)는 '자원함으로'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억지로'를 의미한다. 일부 영역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 빠져 있는데(KJV) 그러면 뒤에 나오는 '자원함'을 설명할 수 없다. 장로들은 주어진 직임을 행할때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고 성령께서 주신 마음으로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심으로 행해야 한다(행 20:28).
(2)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
본절은 당시의 장로직에 일정한 보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딤전 5:17, 18). '더러운 이'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는 행위이며(Kelly), '즐거운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뒤모스'(*)는 헌신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을 가리킨다. 장로들은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거나 돈을 목적으로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장로가 직임을 감당할 때 취해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한 언급이다. '맡기운 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론'(*)은 본래 '제비 뽑기'란 의미의 '클레로스'(*)에서 나온 단어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들어갔을 때 제비 뽑기를 하여 땅을 할당 받았던 것에서 유래한다(수 18:10). 그래서 '클레론'은 '분배', '몫', '할당'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막 15:24; 행 1:26), 본문에서는 레위인에게 할당한 기업처럼 신성한 은혜에 의한 '몫'이다(민 3:12). 한편 '주장하는 자세'는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 무리는 하나님의 것이고, 장로 직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장로들은 지배를 하거나 다스리는 자세로 양 무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한 마음과 신성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서 양을 양육하고 돌봐야 한다.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
신약성경에서 단 한번 나오는 '목자장'(*, 아르키포이메노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는 '목자'로 불리어졌으나(2:25) 본절에서는 장로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목자장'으로 사용되었다(Deissmann). 모든 양들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는 '큰 목자'요(히 13:20) '선한 목자'(요 10:11, 14)이시며 베드로를 포함한 장로들은 목자장이신 예수의 '대리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대리 목자들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서 적합한 보상을 해주실 권리가 있다. 그것의 상급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이다. '시들지 아니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마란티논'(*)은 '아마란티노스'라는 절대로 시들지 않는 꽃 이름에서 나온 단어로 '쇠하지 않음'을 상징하며(Robertson)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가리킨다. 직임을 잘 감당하는 장로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합당한 상급으로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롬 8:17, 18; 요일 3:2).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
본절에서는 '장로'를 1절에서 처럼 굳이 '직분자'로 해석하거나, '젊은 자'(*, 네오테로이)를 '성직자'나 '집사'들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네오테로이'가 성경에서 직분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장로'는 단순히 '연장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Kelly, stibbs, Blum). 젊은 사람들이 연장자에게 순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땅한 질서이다. 한편 '허리를 동이라'의 헬라어 '엥콤보사스데'(*)는 '옷 입다'라는 의미로 노예들이 주인을 시중들기 위하여 앞치마를 두르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께서 수건으로 앞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상기시키는 권면으로(요 13:14 - 17)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
본절은 잠 3:34(LXX) 의 인용으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젊은 자들이 장로들에게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대적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탓세타이'(*)는 군대를 배치시킬 때 사용하는 군사 용어였다(Caffin).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교만하여 자기의 능력만을 믿는 자들을 대적하셔서 파멸시키신다. 반면에 겸손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허락하신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구약 시대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에 종종 사용되었던 표현이다(출 3:19; 6:1; 13:3; 신 9:26; 렘 21:5). 베드로는 '겸손'과 '높임'을 대조시켜서 현재에 받는 어려운 고난을 통해 겸손할 때 장차 그리스도의 때 곧 재림의 때가 되면 거룩한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영광으로 바뀌게 될 것을 권면한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
본절은 시55:23(LXX)의 인용이다. '염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림난'(*)은'나누다'라는 의미의 '메림나'(*) 에서 유래한 단어로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 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 등을 의미한다(마6:25 - 34).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염려를 다 그리스도께 맡겨야 한다. '맡겨 버리라'의 헬라어 '에피립산테스'(*)는 '던져버리다'라는 의미로 부정 과거 분사형이나 본절에서는 새로운 명령형 형태를 취하지 않고 6절의 명령법과 연결되어 강조되고 있다(Kelly). 이것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자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항상 보호하시는 손에 염려를 맡겨야함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권고하시기 때문이다. '권고하심이니라'의 헬라어 '멜레이'(*)는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의미로 '염려가 그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걱정과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맡겨야 하며 그때만이 평강을 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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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인도, (나타날)영광, 돌보시는,
은혜, 소유, 영원한 상급,
선한 목자; 그리스도, 질서,
심판, 구원, 거룩하신, 재림,
포기하지 않으시는, 보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지도자, 양육, 동역자,
증인, 그리스도를 증거할
책임, 겸손, 순복,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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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주신 마음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심으로 주어진 일을
감당하기. 직분을 포함해서
현재 있는 위치나 자리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일이라고 생각하며
주께 하듯 하는 헌신의
자세로 임해야 겠다.
겸손한 마음과 신성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이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노력하기.하나님을 의뢰하여
겸손히 주님만을 의지하자.
염려를 주님의 손에 맡겨
그리스도의 평강을 소유하는
은혜를 받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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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섬김과 순종의 본을 받아 주를 위해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vt7oEgcIsA
최선의 방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11:10)
아직 받지 않았으면 구하십시오.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라고 원하며 간절히 마음을 태우지만 극한 상황이 되기까지는 구하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만이 우리로 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영적 궁핍을 느끼는 가운데 구해 본 적이 있습니까? “누구든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약 1:5) 그러나 구하기 전에 당신이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단지 당신이 원한다고 해서 “영적 실체”를 즉시 체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영적인 것이 실제로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는 것입니다 (눅 11:13).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이루신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실제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이 뜻이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 5:45). 그러나 구하는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받는다는 의미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관계 속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이에 당신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도덕적으로 감사하며 영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당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는 당신이 영적 실체를 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때 당신의 논리로 영적인 눈을 가리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간단한 복음만 가르치시오. 우리가 거룩해야 한다고 말하지 마시오. 거룩을 말하면 비참할 정도로 우리가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느끼기 때문이오. 지독하게 가난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오.” 그러나 “구하라”는 의미는 구걸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그 빈곤을 인정하고 구걸합니다. 영적으로도 그러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구하면 결코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궁핍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서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다른 이유로 구걸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비참할 정도의 가난 때문에 구걸할 뿐입니다. 그는 구걸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거지가 된 자는 복이 있습니다.(마 5:3)
6월9일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할일은 Then What’s Next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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