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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베드로후서 2 : 1~11🍑거짓 교사에게 임할 심판과 멸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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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베드로후서 2 : 1~11🍑거짓 교사에게 임할 심판과 멸망

credo15229850 2024. 6. 13. 10:37

https://tripol.tistory.com/1447

 

헬라어 베드로후서 2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에게논토 데 카이 프슈도프로페타이 엔 토 라오 호스 카이 엔 휘민 에손타이 프슈도디다스칼로이 호이티네스 파레이샄수신 하이레세이스 아폴레이아스 카이 톤 아고라산타 아우투스 데스포텐

tripol.tistory.com

 

 

 

 

 

 

폰으로 편집한 주석도 함께 올려요~

 











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

'호색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반복되는 성적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방 종교들이 갖는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거짓 교사들은 이방 종교에서 우상 숭배를 하며 성적 방탕에 빠지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미혹하여 집단적으로 타락한다.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

'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호도스'(*)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말로(행 9:2;19:9,23;24:14,22) '진리의 도'는 교리가 아니라 윤리적인 삶의 양태를 나타낸다(Grundmann, Bauckhan, Blum). 거짓 교사들의 부도덕하고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롬3:23,24;딤전 6:1). 








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

'지은'의 헬라어 '플라스토이스'(*)는 신약성경에서 본문에서만 언급되는 표현으로 '목적 성취를 위해 조작한다'는 의미이다(Bigg, Mayor).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교리나 논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미혹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욕구와 이익을 채우려 한다(딛 1:11;딤전 6:6;유 1:16)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

'심판'과 '멸망'은 하나님을 거스리고 자신의 배만 위해서 사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내려질 심판의 명확성을 시사한다(Lenski). 또한 '지체하지 아니하며'와 '자지 아니하느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깨어 계시사 거짓 교사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거짓 교사들의 죄악된 행위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키실 것이다.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본절부터 10절까지는 의롭고 공평한 심판에 대한 예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것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수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호 데오스...우크 에페이사토'(*)는 가정문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시행되었음을 뜻한다. '범죄한 천사'는 아담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들을 가리킨다(창 6:1-4;유 1:6;계 12:7;20:1-3).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

'지옥'의 헬라어 '타르타로사스'(*)는 헬라 신화에서는 반역하는 신들이 형벌을 받는 곳이었으나 베드로는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특정한 장소로 언급한다(유 1:6;에녹서 10:4;54:4,5). 한편 '어두운 구덩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푸(*)는 문자적으로 '흑암의 쇠사슬' 혹은 '어두움의 결박'(유1:6)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 결박당한 모습을 나타낸다(Green,Cranfield, Lensk, Gibson).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최후 심판을 기다리면서 고통 중에 기다린다는 종말 사상은 구약성경과(사 24:21, 22) 다른 사도들에 의해 이미 언급되었다(요 16:13;고전6:3;계 20:7-10).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지옥에 결박하여 두시고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은 물론 6,7절에도 '카이'(*, '그리고')가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실례가 계속됨을 나타낸다(유 1:5-7, Cranfield,Lenski).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심판을 의미하나(Bauckham), 문맥상 노아 시대의 악인에 대한 심판을 시사한다. 베드로는 노아시대의 홍수를 언급함으로 하나님께서 현재나 미래의 악한 것들을 남김없이 심판하실 것임을 강조한다.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

'의를 전파하는'은 바울이 말하는 법정적 개념에서의 의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나타낸다(1:1). 한편 '노아와 그 일곱 식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그도온 노에'(*)이다. '오그도온'은 문자적으로 '여덟째'를 가리키는 것으로 노아가 여덟번째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아와 그 아내, 세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여덟 식구를 나타낸다. 실제로 노아는 여덟번째가 아닌 첫번째로 방주에 들어갔다(창 6:9;8:18, Bauckham, Lenski). 베드로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구원받은 수가 적음과 심판의 명확성을 나타내고자 한다(Gibson, Bauckham, Reicke).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모 아세본'(*)은 무관사 여격으로 노아 식구를 제외한 당시의 모든 세상이 죄로 가득 차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노아당시 죄악의 보편성(普遍性)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낸다(Green).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

베드로는 계속해서 창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예를 들어 불심판에 대해 언급한다(3:6,7;유 1:7). '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레이스'(*, '도시들')는 단지 '성'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유황과 불로 심판하셨음을 나타낸다(창 19:24-28;유 1:7). 한편 '멸망하기로 정하여'라는 어구는 오직 70인역에만 언급되는 것으로(LXX 창 19:29) 후세에 불의한 자들을 위해 미리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Blum). 소돔과 고모라 성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여 주변이 온통 재로 덮인 것과 같이 실제로 온 성이 재로 덮였다.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

'경건치 아니할 자들'은 '경건치 않는 일을 행하는 자들' 곧 '배도자나 거짓 교사들'과 같은 자들을 가리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패역한 거짓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본이었다. '본'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 대한 그의 진노가 모든 세대에 알려지기를 원하셨음을 암시한다. 








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무법한 자'의 헬라어 '아데스몬'(*)은 부정 접두어 '아'(*)와 '본성' 혹은 '자연적 양심의 법'을 의미하는 '데스모스'(*)의 합성어로 인간의 본성적인 양심의 법조차 무시하는 부도덕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음란한 행실'은 변태적 성욕으로 인한 반복되는 호색적 행위를 가리킨다(2절;창 19:4-11;벧전 4:3, Lenski,Robertson). 한편 구약성경에서 '롯'은 세상적인 죄악에 빠져 있었던 인물로 언급된다(창 13:10-14;19:6,8,16,33-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롯을 '의로운 자'로 언급하는 것은 외경의 전승을 따른 것으로(지혜서 10:6, Blum, Green, Bauckhan) 아브라함에 비해(창 13:1-13) 의롭다는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 비해 의로웠음을 의미한다. 또한 롯을 의인이라고 부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의 호색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의 죄악에 빠져들지 않고 심령에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 구원을 받았다. 베드로는 롯의 구원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며 수신자들로 하여금 낙심치 않고 이단들에 대해 인내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Green, Reicke). 




 






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헬라어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있어 롯이 불심판에서 구원받은 원인을 상술한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

'상하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사니젠'(*)은 '바사니조'(*, '괴롭히다', '고통을 당하다')의 미완료 능동태로 지속적으로 내적 고통을 당함을 나타낸다(마 8:6,29;계 9:5, Robertson, Gibson,Bauckhan, Calvin). 롯은 날마다 죄악된 생활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 성의 백성들을 대하면서 스스로의 내적 고민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Bigg). 이것은 롯의 의로움을 나타내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불법한 자들 가운데 거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여 고통하는 롯의 모습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신 것이다(창 19:4-11;전 7:20).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

본절은 4절에서 시작된 심판과 구원의 실례에 대한 결론이다.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무'(*)는 죄악의 상태에 빠지는 유혹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의로운 자가 당하는 시련을 의미한다(눅8:13;행 20:19;벧전 1:6, Chaine, Kuhn). 당시의 사람들이 죄의 유혹과 대항해 싸웠으니(Bauckham)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는 경건한 자를 시련속에서 연단하시며 보존하신다(고전 3:13;10:13, Green, Clark).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

'형벌 아래 두어'의 헬라어 '콜라조메누스'(*)는 '콜라조'(*, '형벌을 내리다')의 현재 수동태 분사로 (행 4:21) 형벌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Bigg,Green, Lenski, Robertson). 이것은 사악한 자들이 현재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비적 심판을 받고 있으며 최종적(最終的)인 심판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계20:11-15, Bauckham, Calvin, Blum, Spitta, Mayer, Kelly, Boobyer). 베드로는 본절에서 구원과 심판을 분명하게 대조하여 의인에 대한 구원과 사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한다(Cranfield, Bauckham). 









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

'육체를 따라'의 헬라어 '오피소 사르코스'(*)는 관사가 붙지 않았으므로 '육체가 갖는 속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신령한 속성을 따르지 않고 윤리적 죄악을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Lenski, Blum).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

'주관하는 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Bigg, Weiss, Wiesinger, Lensi). (2)혹자는 악한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ngel, Schott). (3)혹자는 제도화된 교회의 장로들이 갖는 권위 즉 '교권'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Zahn). (4)혹자는 '정치 권력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lvin,Clark,Hofmann). 이러한 견해 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주관하는 이'의 헬라어 '퀴리오테토스'(*)는 무관사로서 '주권의 속성'을 나타내어(골 1:16;엡 21) 온 우주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신다.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

'담대하고'는 '당돌함'을 의미하며(Lenski, Robertson) '고집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우다데이스'(*)는 '아우토스'(*, '스스로')와 '헤도마이'(*, '즐겁게 하다')의 합성어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거만한 행동을 가리킨다. 한편 '영광있는 자'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제국적이고 행정적인 세력이라고 주장한다(Calvin). (2)혹자는 교회 통치자들이라고 주장한다(Bigg). (3)혹자는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Spitta, Kuhl, Alford, Blum, Green).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유 1:8). 거짓 교사들은 당돌하고 교만하여서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무시하고 업신여겼다.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개역성경에는 비교 접속사 '호푸'(*, '이에 반하여')가 생략되어 있다. '호푸'는 앞절의 거짓 선생들의 행위와 천사들의 행위를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고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

본문은 더 큰 힘과 능력을 소유하였으나 송사하지 않은 천사들과 힘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을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을 강하게 드러낸다(유 1:9;계 12:9, Alford, Chase, Gibson). 한편 본문의 '천사들'은 '미가엘'을 가리킨다(Cranfield, Bauckham). 이들은 다른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보다 강하다(계 12:9). 이렇게 강한 미가엘조차도 자신이 직접 훼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모든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린다(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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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계시, 뜻, 권위, 성령, 
감동, 구원, 구속, 
진리의 도, 심판, 징계,
판단하시는, 의와 공평,
확실하신, 시행하시는,
진노하심, 경고, 
무조건적 은혜, 예비하시는,
연단, 보존, 온 우주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계, 사역, 윤리적인 삶,
경건, 인내, 천사들,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하나님께서 롯이 죄악에 
빠진 개인/공동으로 인해 
심령이 상한 것을
의로 여기시고 그를
구원하셨다. 죄의 유혹으로부터
대항하여 싸우는 경건한 자를
시련 속에서 연단하시고
보존하시는 은혜를 주신다.🩸✝️
🌱🌿🌳
거짓 교사들과 불의에 빠진 사람들로 인해 낙심하기 보다 공의와 긍휼로 참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깨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KlQrymopk

💖🎶

 

 

 

 

그곳으로 가까이

 

“나를 따라 오라” (마가복음 1:17)

 

선택한 애착이 죽고 성도가 삶을 포기하는 곳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기질입니다. 우리의 기질과 자연스러운 애착이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처음에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애착이 무엇이든 주님은 그것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재능들은 당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유일한 단 한 가지는 당신 자신에 대한 권리입니다 (롬 12:1).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주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거룩한 실험을 하실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그 실험은 언제나 성공합니다.

 

성도의 한가지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철저히 내려놓음으로써 그곳에서 솟아나는 영적인 샘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항상 원천적인 생명으로부터 놀라운 샘물이 흘러넘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사시사철 내내 신선하게 솟아나는 우물물이 되십니다. 성도는 모든 환경 및 사건을 연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결과적으로 아무 불평이 없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께 무조건 다 내려놓을 뿐입니다. 당신의 체험으로부터 그 어떤 원칙도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천이 되심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만이 원천이 되게 하십시오.

 

만일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예수님께서 “오라” 하실 때 오면, 그분께서 당신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그리스도의 “오라”는 메아리를 계속 만들어가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는 영혼들에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나아갔습니까? 지금 나아가겠습니까?

 

https://reformedkjy.tistory.com/9635 

 

6월 13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그곳으로 가까이[Getting There (3)]" by 오스왈드 챔버스

그곳으로 가까이 “나를 따라 오라” (마가복음 1:17) 선택한 애착이 죽고 성도가 삶을 포기하는 곳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기질입니다. 우리의 기질과 자연스러

reformedkj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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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멋진 나으리 여기보셔요~나으리는 하늘의 꽃동산과 흡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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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알파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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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잘생겨서 풀밭 풀식이 풀요정들에게 붙잡혔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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