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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 : 9~18🍑완고함이 가져온 비극, 겸손함으로 구한 생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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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 : 9~18🍑완고함이 가져온 비극, 겸손함으로 구한 생명

credo15229850 2024. 6. 20. 10:27

https://tripol.tistory.com/462

 

히브리어 열왕기하 1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이페솨 모압 베이스라엘 아하레 모트 아흐압 개역개정,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새번역,1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반역하였다. 우리말성경,1 아합

tripol.tistory.com

 

 

12. 엘리야가 저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찌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인을 살랐더라 


보다 완강해진 왕의 거만한 태도에 비해 엘리야 선지자의 태도는 어떠한가? 엘리야는 처음과 동일하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선지자의 권위를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본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엘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을 잘 지켰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과거 모세가 크게 한번 실수하므로서(민 20:11)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엘리야는 더욱더 거만해진 두번째 오십부장의 불손함을 잘 견딤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함과 일관된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은 현대의 사역자들에게도 요청되는 필수적인 기본 덕목이다.








13. 왕이 세번째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보낸지라 세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앞의 두 오십부장(9,11절)과 다른 세번째 오십부장의 겸손한 태도이다. 특히 이는 두번째 오십부장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두번째 오십부장은 전임자가 징벌을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산 아래에서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큰 소리쳤었다. 그러나 세번째 오십부장은 두 전임자를 교훈삼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엘리야에게 공손한 태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

여기서 '귀히 보소서'란 말은 히브리어 '티카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귀하게 여기다', '존중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카르'(*)의 미완료 변형으로서 어떻게든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다. 그런데 세번째 오십 부장의 이러한 간구와 겸손함은 아하시야왕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아하시야는 두 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9-12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또다시 엘리야를 체포하러 세번째 군사들을 파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선 아하시야의 명령과 상관없이 엘리야의 발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Matthew Henry'sCommintary, Vol. p. 709).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 오십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불이...살랐거니와 -

본절은 세번째 오십부장이 두 전임자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을 자신의 교훈으로 삼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징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 완악해져가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기 마련이다(15절;시 149:4).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저와 함께 내려와서 왕에게 이르러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

3절에서 언급되었던 '여호와의 사자'가 본절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바로 지금까지 엘리야를 보호하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그의 권위를 지탱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

여기서 '저'가 가리키는 사람은 아하시야 왕이다. 그리고 '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파나이우'(*)로서 '그의 면전에'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의 사자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하시야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권고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두 번의 징벌을 내리시고 난 후 지금에 와서야 엘리야를 아하시야 앞에 보내시는 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제는 아하시야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 방해가 되는 외적인 장애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백성들이나 신하들이 모두 분명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즉, 두차례에 걸친 심판으로 인해(9-12절) 이제는 백성들이나 신하들 가운데 세번째 오십부장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을 행하심에 있어서 단지 징벌만을 하지 않으신다. 그 심판 속에는 후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백성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16.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찌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본절은 3,4절의 반복일 뿐만 아니라 왕의 사자들에 의해 왕에게 전달된 동일한 말이다(6절). 그러나 이제 아하시야 왕 앞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직접 선포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다. 즉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포악한 아하시야 왕을 향해서 그의 불신앙을 선포함으로써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변경함이 없이 담대히 외쳤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참된 용기와 담대함을 발견하게 된다(고후 5:6).





 

 

 


17. 왕이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 이년이었더라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

여기서 '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치사 '케'(*)로서 '...와 동일하게', '...처럼'이라는 뜻이다. 즉 이는 엘리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열왕기서에 기술된 역사의 전반을 살펴볼 때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의 권위를 보증해 주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왕상14:18; 22:13;왕하 2:22; 10:17; 24:2).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

70인역(LXX)과 수리아역(Peshitta)과 라틴어 역본(Vulgate)에는 '여호람'(Jehoram)이란 말 뒤에 '그의 형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그리고 공동 번역, Living Bible, RSV 등도 이것을 옳은 것으로 보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맛소라 히브리 본문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맛소라 본문이 그렇게 한 것은 '여호람'이 '아하시야'의 형제라는 사실을 당대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70인역(LXX)등이 '그의 형제'라는 단어를 삽입해 주므로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겐 많은 유익이 되고 있다. 즉, 이는 당시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과 여호람이 그의 형제라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 주는 주석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 왕...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

본절과 달리 3:1에서는 유다 왕 여호사밧(Jehoshaphat)의 제 18년에 이스라엘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반면 8:16에는 유다 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해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 5년이었다고 되어 있다. 즉 한 곳에서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유다 왕 여호람보다 약 4년 먼저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약 1년 늦게 왕위에 올랐다고 서로 모순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서로 엇갈리는 연대 기록은 성경 기자들의 기록상의 오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 원인은 근복적으로 이스라엘의 섭정 제도(regency)에 있다. 즉 성경의 연대 기록은 어떤 왕의 섭정 개시 년도부터 계산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정식으로 등극한 해부터 계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아하시야의 형제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연대를 계산함에 있어서도 본절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섭정을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반면, 8:16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정식 등극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Keil & DelitzschCommentary, Vol. , pp. 288f).










18.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성경에는 아하시야의 사적이 엘리야와 관련해서 죄를 범했다는 본장의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건이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었고 본서가 기록될 당시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여타 사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성경의 기록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심히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대하 20:35).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 -

이 책(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Israel)은 신구약 성경 66권 중의 한 권인 역대기(歷代記)가 아니다. 대신 이는 본서 저자가 활용한 자료들 중의 하나인 이스라엘 왕들의 국정 일지(國政日誌)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 14:19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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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능력의, 사자, 심판, 명령,
신적 권위, 긍휼, 권능,
구원, 보호하고 지탱하시는, 
귀한 교훈의, 말씀을 모두
성취하시는, 보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고, 하나님의 사람/종,
조용하고 냉정하게, 순종,
존중, 증명, 경고, 회개, 
겸손, 일관된 자세, 공손,
경외, 깨달음, 용기,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용기와
담대함을 가져야 겠다.🩸✝️
🌱🌿🌳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한 고집이나 죄가 있다면 깨닫고 속히 회개하여 성령과 말씀 안에서 마음이 새로워지고 엘리야 선지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을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ZrUkGEY6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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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아직 결정하지 않으셨나요?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기 42:10)

 

자기감정에 도취한 기도, 자기중심적인 병적인 기도, 혹은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는 기도는 성경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은 속죄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하시면 저는 제 마음을 정결케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시면 바르게 걷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울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절대적인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일 만큼 낮아져 있습니까? 모든 요청을 내려놓고 모든 노력을 멈추십시오. 나 자신을 주의 손에 완전하게 맡기십시오. 그 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제사장적인 중보 기도 사역에 전념하십시오. 안타깝게도 속죄에 대한 불신앙 때문에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이미 다 완성된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그 일을 또 하라고 기도하는 것은 주를 향한 모독입니다.

 

아직 백배의 결실을 얻지 못하였다면(마 19:29),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깨달음이 없다면 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역에 임하십시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구원을 받은 자로서 당신이 꼭 해야 할 참된 일이 있다면 중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떤 상황에 두시든지 즉시 기도하기 시작하십시오. 주님의 속죄가 당신에게 임하였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그 속죄가 실현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지금 당신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지금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https://reformedkjy.tistory.com/9652

 

6월 20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언제'인지 아직 결정하지 않으셨나요? Have You Come To “When” Yet?] by

‘언제’인지 아직 결정하지 않으셨나요?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기 42:10) 자기감정에 도취한 기도, 자기중심적인 병적인 기도,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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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파도로 흔들리는 심령을 다 잡고 용기있게 전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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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므는 미미라는 의미로~아름다울 미가 두배라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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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반짝이는 별의 수를 세는 것보다 빛나는 한 사람의 가능성을 위해 기도하고 바라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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