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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3 : 13~27🍑말씀대로 이루어진 초자연적 기적과 승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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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내가 섬기는 -
히브리어 '아마드티 레파나우'(*)를 번역한 말로서 '내가...의 얼굴을 향해 서다'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 드리며 봉사하던 사실에서 연유한 용어로서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자 대사(大使)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왕상 17:1;18:15).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 참으로 여호사밧이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선지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워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선행이 있기 때문에(대하 17:3-9) 그것을 주께서 기억하고 계셔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도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길르앗 라못에서 악한 왕 아합을 도운 일이나(대하 19:2), 오빌로 가는 배들을 건조하기 위해 아하시야와 결탁한 일(대하 20:36;왕상 22:48), 그리고 본장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모압 원정에 참예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동맹하는 일 등은 결코 선한 일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행한 여호사밧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대하 19:1-3). 한편 엘리사의 이러한 태도는 12절 말씀과 더불어 파숫꾼이 행해야 하는 바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모든 사역자에게 있어서 귀감이 된다(겔 2:7).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거문고 탈 자 -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제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자'로 옮기는 것이 적합하다. 이러한 번역상의 어려움은 이 말을 '수금 뜯는 사람'(공동 번역), '악사'(KJV, RSV), '하프 연주가'(NIV)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 역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본절에서 거문고 소리를 통해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시킨 사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엘리사가 여호람으로 인해 흥분했던 자신의 마음을 진정 시키며 신적 감응을 잘 받기 위한 상태인 무아경에 잠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 Rawilnson, PulpitCommetary, Keil & Delitzsch). 둘째는 고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에서도(The Interpreter's Bible, Vol. , p. 200) 예언을 할 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악기를 사용했는데(Bleek), 엘리사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B hr). 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로는 사울을 위해 다윗이 수금을 탔을때 악신이 떠나갔던 일(삼상16:23)과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블레셋 성읍으로 들어갈 때 비파와 소고와 수금을 앞세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였던 사건(삼상10:5)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리고 후자와 같은 해석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더욱이 거문고를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선지자 엘리사 뿐만 아니라 세 왕과 곤경에 시달린 병사들의 시선이 한 데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용이하였을 것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신적 감응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되었다(삼상 10:5;대상25:1-3). 거문고의 소리는 선지자들의 동요를 잠잠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엘리사는 전형적인 '예언자의 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엘리사는 그의 선생 엘리야와 다르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돌발적이고 직접적인 예언을 했으며, 금욕적이며 독자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6.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골짜기 -
본절의 골짜기는 모압 남쪽에 있는 제렛(Zered), 즉 지금의 와디 엘 헤사(Wadi el Hesa)라고 하는데(Wycliffe) 그곳은 붉은 사석(沙石)이 깔려 있어서 때로는온 골짜기가 붉게 보인다고 한다.
개천 -
히브리어 '게빔'(*)을 번역한 말로 이는 '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로 물이 흘러 내려 이 웅덩이들에 가득 고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일은 있는 것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롬 4:17) 하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바람도...비도 보지 못하되...물이 가득하여 -
근동 지역에서 비는 대개 바람과 함께 동반한다. 더욱이 본절의 바람이란 강한 폭풍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바람도, 비도 없이 골짜기의 물을 채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수행하는 전쟁은 오직 배후에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이 임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의 영적인 투쟁 역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엡 6:10-20). 한편 본절의 육축은 군대의 식량용 동물을, 짐승은 사람 및 군수품 운반용을 말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그리고 16, 17절과 18절에서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 (2)바람이나 비를 보지 않고도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리라는 것, (3)모압 원정이 성공을 하게 된다는 것(18,19절)등이다. 실로 첫째, 둘째 예언은 다음날 아침 소제를 드릴 때에 성취되었다(20절). 이때에 가득한 물은 에돔 동편 산악지대에 내린 비로써 이스라엘 진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Keil). 셋째 예언은 모압의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군이 반격할 때에 이루어졌다(24, 25절).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먼 곳의 기상 조건과 지형 조건을 다 아실뿐만 아니라 이를 초월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이다.
18.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
좋은 나무를 베라는 명령은 과실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한 신 20:19,20에서의 규례와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 카일(Keil)은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여 으례껏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신명기에서와 같은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과실수 벌목 금지에 대한 명령을 여기에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율법은 당시, 아직까지 가나안 땅의 첫소산을 거두기 이전이므로 병사들의 양식을 위한 필요성에 의해 명령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T. R. Hobbs). 한편 침범한 적의 땅에서 과목(果木)을 베어버리는 일은 당시 전쟁 후에 행해지는 보편적인 일인데, 특히 앗수르나 애굽에 의해 이런 일이 널리 행해졌었다(Pulpit Commentary).
모든 샘을 메우고 -
샘이나 우물을 메우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의 전쟁시에는 으례껏 보복조치로 행해졌다(창 26:18), 흔히 마을이 샘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던 당시에 '샘을 메운다'는 사실은 그 마을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샘은 히브리어 '아인'(*)의 번역으로서 연못이나 우물과는 달리 산에서부터 천연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샘물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샘은 생활 용수의 근원이되었다.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좋은 땅 모두를 비탄에 잠기게 하라'는 말인데 이 문맥은 70인역(LXX)에서 농사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 '밭에 돌을 던지다'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헐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케이브'(*)로서 때때로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고통을 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Word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것은 땅을 황폐케 한다는 뜻의 시적인 표현으로서 땅에 대한 의인화인데(Keil & Delitzsch) 렘 23:10과 욜 1:10등에서 유사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요단 강 주변에서 개간할 때는 돌이 많기 때문에 돌을 한 쪽으로 치워놓는다. 그래서 땅을 망칠 때는 다시 밭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를 헤쳐 놓으면 되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nary).
20.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
'소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로소제뿐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이 다른 역본들에 의해서는 '제사'(공동 번역), '제물'(RSV, NIV, Living Bible)로 번역되었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씩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대하 8:13). 이렇게 규칙적으로 제사를 드리던 습관이 포로 시대나 신약 시대에는 기도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단 6:10;행3:1).그래서 예수께서도 주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막 1:35). 한편 아침 제사 드리는 시간과 에돔 서편에서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기 시작한 시간이 일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Keil).
21.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
연합군의 공격에 대한 모압의 방어 준비는 대단히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최소한의 어린 병사들까지 온 군대가 소집되었다. 혹자는 이때에 입은 갑옷이 정규 복장이 아니라 간편한 복장인데 이 전쟁에 어린 병사들까지도 참여했다고 한다(T. R. Hobbs).
그 경계에 섰더라 -
모압은 연합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그 군대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를 방어하게 하려고 모압의 최전방, 즉 와디 엘 아시의 북쪽에 진영을 정비했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찌기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
북쪽 600m 높이의 절벽 위에 진을 치고 있는 모압 사람들은 해 뜰 무렵 동쪽 골짜기, 연합군의 진지 근처가 벌겋게 반사됨을 보았다. 이처럼 물이 붉은 피와 같이 보인 것은 아침에 떠오른 해의 강렬한 붉은 색조가 물에 비췸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편 에발드(Ewald)에 의하면 비가 내릴때 에돔 땅의 붉은색 흙덩이들이 빗물에 실려온 것이 햇빛에 반사된 때문이라고 하며, 카일(Keil)은 이 현상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엘리사의 명령에 의해서 판 구덩이의 흙이 붉은 색을 띠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하여 모압군들은 속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바에 대한(17,18절) 성취로서 여호와의 이적적인 방법의 결과였다(Lange).
23.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
이와 같이 모압이 물을 피로 잘못 알고 착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즉, 유다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모압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은 틈만 있으면 반란을 꾀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압은 이스라엘 진중에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식수 부족으로 서로 분쟁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해서 침공하는 이스라엘 동맹군에 대한 증오와 아울러 이것이 약탈의 좋은 기회라고 조급히 판단했기 때문에(Wycliffe) 서둘러 진격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착각하게 하여 함정에 빠지게도 하신다(에 5:11,12).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라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모압 땅이 황폐케 된 것은 엘리사가 예언한 그대로였다(18,19절). 그런데 이런 파괴는 그 당시에 전쟁의 승자가 취하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초토화 전법'(scorchedearth)과 같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길하레셋(Kir Haresheth)이 모압 비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사해 남단에 위치한 지금의 '엘케락'(El Kerak)과 동일한 성으로 보고 있다(Hobbs). 이곳은 홍해를 잇는 중요한 관문으로서 모압 남방의 최후 보루이며 군사상 전략적 요새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의 십자군 전쟁때 십자군들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영웅적인 싸움을 반복했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길헤레스'(렘 48:31,36), '모압 길'(사 15:1) 등은 모두 이 고장을 말한다.
물맷군 -
히브리어 '켈라임'(*)을 번역한 말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물맷꾼(Lange)뿐만 아니라 석궁이나 그와 비슷한 공격용 기계를 작동시켰던 사람까지도 의미한다고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
본절에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는데 왜 모압 왕이 이스라엘의 동맹국인(12절)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했느냐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에돔 왕은 이스라엘 및 유다와 마지 못해 동맹을 맺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압왕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므로(대하 20:10,22) 모압 왕이 에돔 왕의 우호적 입장을 기대했을 것이다(Keil,Skinner). (2)'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Kittel). 그러나 이 학설은 왜 모압왕이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 향했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3) '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아람 왕에게로'라는 견해도 있다. 즉, '에돔'과 '아람'이 자음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하지만 '에돔'에는 반자음 '와우'가 첨가되어 있다. 따라서 필사자들이 잘못을 범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4) 에돔을 연합군의 배반자로 보고 모압이 그 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G. Rawlinson). 그러나 이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에돔 왕이 배반했을 경우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모압의 성읍이 완전하게 공략되었으며(25절), 모압 왕이 필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및 에돔 동맹군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한 점(26절)을 미루어 보아이 전쟁은 엘리사의 예언대로(18,19절) 동맹군의 대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10, 13절).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롬 8:25;고전 9:12;골 1:11;딤후 2:12;약 1:12).
27.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맏아들을 취하여...번제를 드린지라 -
정예병 칠백 군사를 거느리고 에돔을 향해 가려고 했으나 실패한 모압 왕은 자신의 왕위를 이를 맏아들을 취하여 모압 신 그모스에게 번제물로 드렸다. 이는 이방인들이 역경이나 환란을 자신들의 신이 노함에 의한 결과로 이해했기 때문인데 모압 왕이 장자를 번제로 드린 것은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방법이었다(Wycliffe). 한편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는 이방인의 이러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며 정죄받을 행위였다(레18:21;20:1-5).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우상 숭배의 특징은 인간의 감정을 격분케 한다. 그래서 모압 병사들은 왕이 자기 맏아들을 그들의 신에게 번제물로 바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하여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공격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압군의 결사적인 모습에 겁에 질린 이스라엘군은 포위망을 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Pulpit Commentary)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하나님의 분노로 이해한다. 즉 "크게 통분함"이란 '큰 진노'라는 뜻으로 그모스 신의 격렬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닥쳐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여호와가 있는 것 같이 모압에는 그모스 신이 있다는 것이 당시 모압의 일반적인 신앙이었는데 모압 땅에서의 이러한 광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사기가 크게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신적 공포감에서 철수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미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심으로 심판을 내리셨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이때에 이스라엘이 패전한 기록은 모압 왕 메사의 비문의 기록과 서로 통하는 바 많으며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불리해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은 확실하나 열왕기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 침묵하였다고 한다(Lange). 또다른 학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의 수도를 포위한 연고로 모압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제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 재앙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심히 놀라 철수했다고 한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
연합군은 무력으로 더이상의 공격이나 정복을 포기하고 즉 모압을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철수했던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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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책망, 진실, 기억하시는,
구원, 예언, 동요를 잠잠케,
말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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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는, 초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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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초자연적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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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분노, 선지자, 종,
대사, 예배, 봉사,
가르치는 일, 선행, 규칙적인
기도와 예배/순종의 제사, 인내,
기다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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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과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죄로부터 멀리하도록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는 일(기도와 예배 등)을 꾸준히 실천하는 매일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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