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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4 : 8~17🍑세심한 배려와 환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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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하루는 -
문자적으로는 '그 날', 즉 '그때에'(Keil & Delitzsch), 혹은 '그 날이었다'(Word Biblcal Commentary)란 의미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11절과 18절에서 처럼 어떤 사건이 발생한 '특정한 날'을 가리킨다.
수넴에 이르렀더니 -
수넴은 오늘날 술람이라는 곳과 동일한 곳으로서 므깃도 남방약 11.2km 지점에 위치하며 이스르엘 평야에서 바라보이는 모세 산(창 12:6)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곳은 이스르엘 북쪽 약 7km 정도에 위치한 곳으로 수 19:18을 보면 잇사갈 지파의 영토였음을 알 수있다. 그리고 사울과 블레셋이 전투한 길보아도 바로 수넴 부근이었다(삼상 28:4). 한편 성경에 기록된 수넴 여인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아비삭(왕상 1:3)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본절의 '귀한 여인'이다.
귀한 여인 -
여기서 '귀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게돌라'(*)로서 '위대한', '존귀한', '키 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키 큰'리라는 의미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식물 등에 사용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 성경은 '부한'(well-to-do, substantial) 또는 '위대한'(great)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이 말을 '부요한'으로 해석하여(Keil) 이 여인을 '남편 덕택에 부자가 된 여인'으로 보고 있다(G. Rawlinson). 한편 랍비들의 유전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여인은 아비삭의 누이 동생으로서 선견자 잇도의 아내였다고 한다(대하 9:29). 그리고 그녀는 백세가 넘도록 살았다고 한다(Ginszberg, Legends of the jews,4:242-244).
9.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
엘리사는 자주 갈멜(2:25)에서부터 이곳을 지나 갈릴리에 있는 성읍들까지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열왕기하에 기록된 엘리사 선지자의 대부분의 활동이 갈멜의 남쪽 지역이었는데 수넴 또한 그의 주요한 활동지였다. 이와 같이 엘리사는 아마도 사무엘 선지자처럼 백성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정기적인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
계속해서 엘리사를 대접해오던 수넴 여인은 그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오랫동안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상대방의 허물을 보기 십상이지만 엘리사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세인(世人), 즉 이 여인으로부터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에 존재해 있던 자칭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세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거짓 선지자들(Lange, Pulpit Commentary)과 좋은 대조가 된다. 한편 본절에는 수넴 여인의 영적인 분별력과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열심이 묘사되어 있다. (1)영적인 분별력:그녀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카도쉬':'구별된', '분리된') 자임을 확신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맞은 편에 서있는 세 사람을 하나님의 사자로 알고 영접하여 극진히 대접한 것과 유사하다(창 18:1-8). 이와 같이 성도들은 영적 분별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롬 12:2;사 11:3;고전 2:14). (2) 하나님에 대한 열심: 그 여인은 외간(外間) 남자를 자기 집에서 유할 수 있도록 자기 남편을 설득했다. 이것은 그녀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은 사실을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내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신 6:5;시 119:2;잠 3:5). 이러한 여인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축복하셨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마 10:42;18:5).
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수넴 여인의 열정과 헌신된 봉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설득으로 그녀의 남편이 다락에 덧붙여 지은 작은 방이(G. Rawlinson) 엘리사에게 안락한 휴식처로 제공되었다(11절). 이와같은 수넴 여인의 봉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돕는 또 하나의 사역이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일진대, 수넴 여인의 봉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진정한 신앙의 열매였다(마 25:40;눅 16:10). 한편 본절에 언급된 작은 방은 '집의 평평한 지붕 위에 지어진 방'(Thenius), 혹은 '다락에 덧붙인 작은 방'을 말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그 방으로 드나드는 통로는 바깥 벽면에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그 집 본체와는 전혀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침상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촛대를 갖추어 놓아 침실로서만이 아니라 휴식과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하루는...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
8절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하루는'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사건이 발생한 특정한 시간'을 가리킨다. 그리고 당시에 발생한 사건과 엘리사가 누워 있던 그 방과의 연관성이 본절에 암시되어 있다.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성경에 등장한 것은 여기가 처음이다. 그리고 게하시의 출신이나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또한 그가왜 엘리사의 종으로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한편 '사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는 2:23에서 '젊은 아이들'로 번역된 것으로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민 22:22;삼상 9:3;삼하 9:9등). 그러나 '나아르'는 '노예'와 같이 개인적인 자유를 완전히 상실한 종이 아니라 주로 주인의 시중을 들거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는 종을 가리킨다. 또한 이들은 자유롭게 가정 생활도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삼상 9:9,10).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
혹자는 이 여인이 엘리사 앞이 아니라 게하시 앞에 섰다고 한다(Thenius). 그러나 이것은 선지자로서의 권위나 위엄을 상대방에게 내세우기 위함도 아니며 여인과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서 그런 것도 아니다(16절).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덕(德)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즉 엘리사는 그녀의 은혜에 대해 보답을 하려함과 동시에 그 여인을 당황케 하거나 곤란한 처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게하시를 가운데에 놓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Wycliffe).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
여기에서 '주밀하다'란 말은 히브리어 '하라데트'(*)인데 이 말은 '두려워하다', '조심스럽다' 라는 의미를 지닌 '하라드'(*)에서 온 용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밀하다'는 의미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행동이 조심스럽고 치밀함'을 가리킨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
이 말은 곧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혹은 '당신을 위해서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의미이다(Pulpit Commentary).이는 수넴 여인을 향한 엘리사의 정감있는 요청일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의 은혜에 보답을 하려는 의중을 말한 것이다.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
이러한 엘리사의 질문은 그가 궁정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존재인지를 짐작케 한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6:9-12,21-23;8:4-6에서 엘리사가 왕궁으로부터 받은 총애와 존경을 실필 수 있다. 한편, 본절에서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는 엘리사의 말은 '남편에게 무슨 군대의 직책이나 직위를 주기 원하느냐?'(Matthew Henry, Vol. , p. 727)는 의미보다는 '내가 너를 위하여 중재할 어떤 일이 있느냐?'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Keil & Delitzsch). 왜냐하면 남편이 부자였기 때문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엘리사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
엘리사는 여인의 정성된 섬김에 보답하기 위하여 그녀에게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본절에 나타난 여인의 대답 속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1) 궁중에 있는 왕에게나 권력을 가진 군대장관에게 구할 아무런 불평 불만도 없다는 것과 함께 (2)자신이 엘리사를 대접한 것은 무슨 보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봉사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여인의 순수한 봉사 정신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큰 본이 될 것이다(벧전 4:10).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회에서 봉사하고, 물질적인 축복을 바라고 헌금하며 구제사업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행 5:4).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고 선포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물론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아무런 사심(私心)없이 사랑을 가지고 봉사를 해야한다(고전 13:5).
14.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
여인이 자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 어떤 불만을 표했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오히려 게하시가 여인의 갸륵한 마음을 읽고 그녀의 소원을 엘리사에게 얘기해 준 것이다.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 자식이 없는 것은 모욕과 수치로 생각되었다(창 30:6;삼상 1:6,7;눅 1:25). 이러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은 것은 여인이 행한 봉사의 진실성을 더욱 부각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게하시가 여인의 소망을 엘리사에게 대신 말할 때는 그곳에 수넴 여인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5절). 한편 '남편은 늙었나이다'라는 본절의 말은 남편이 자식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완곡히 표현한 것이다(창18:12).
15.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문에 서니라 -
엘리사의 부르심에 즉시 온 여인은 그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까지만 다가 선 것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16.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늙어서 아들을 얻은 것과 같이 수넴 여인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베풀어 진 것이다(창 18:10). 이는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섭리하시며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Keil &Delitzsch, Vol. , p.311).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
문자적으로는 '속임수의 헛된 소망을 나에게 일으키지 마옵소서'(Lange) 혹은 '나를 어떤 거짓 소망으로든지 흥분시키지 마옵소서'(Keil & Delitzsch)라는 의미로 선지자의 말을 도리어 헛된 꿈만 부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돐이 돌아 오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본문의 문자적인 뜻은 '생명이 탄생하는 계절에'이다(창 17:21;18:10,14). 즉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을 가리키는 말이다(T. R.Hobbs). 16절에서 엘리사가 말한 그 때가 돌아 오자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한편, '아들'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벤'(*)으로서 '세우다'라는 '바나'(*)에서 온 말이다. 이는 아들을 통해 가계(家系)를 이을 뿐만 아니라 집안을 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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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축복, 거룩한, 영, 참된,
사랑, 열매, 자유, 은혜,
보호, 도움, 진실, 섭리,
인도, 소망, 생명, 소생,
예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보살피는, 열심, 분별력,
봉사, 신앙, 헌신, 사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종, 덕을 세우는, 존경,
총애, 순수한, 경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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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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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하나님께서 여인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신 것처럼 오늘날 모두에게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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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지금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 후서 6:1)
당신이 과거에 받은 은혜는 오늘을 위해서는 아무런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언제든지 은혜가 필요할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인내의 시험이 오는 곳은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고후 6:4)이 있을 때 옵니다. 이러한 때 당신은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아, 이번에는 놓쳤네요.” 문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 받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일의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는 활동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참자”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기도하십시오. 필요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십시오. 기도는 가장 실제적입니다. 기도는 헌신한 후의 반사 작용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오는 것을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고후 6:5) – 이러한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면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기적 같은 깜짝 놀랄 존재가 될 것입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은혜를 얻으십시오. 영적인 세계의 단어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단어는 “지금”입니다. 환경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어떠한 입장에 서 있든 상관없이,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길어내고 있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 중의 하나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상처가 아니라 주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고후 6:10) – 뭐든 쌓아두지 마십시오.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쏟고 항상 가난하게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때문에 정치적이거나 소심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다 쏟아붓는 것이 승리하는 궁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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