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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4 : 38~44🍑굶주린 자들을 먹이신 은혜의 기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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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
이 이야기는 수넴 여인의 이적 사건과 계속 연대기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은 아니지만 그 후 어느 때인 것 같다(Lange). 본 사건의 장소인 길갈에는 선지 학교들이 있었는데 엘리사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정기적인 순회 즉 연차 순시를 위한 것이었다(Keil, Wycliffe). 한편 이 곳 길갈의 지리적인 위치에 관해서는 2:1의 주석을 참고하라.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
이 곳의 흉년에 대해서는 8:1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흉년과 엘리사 선지자의 길갈 방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본문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길갈에서 상당 기간 머물면서 생도들을 돌보게 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될 것이다. 한편 팔레스틴 지방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덜 와도 쉽게 흉년이 드는 곳이다.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것과는 달리 구약에서는 이와 같이 선지자의 생도들이 선지자 앞에 모여 어떤 집회를 가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T.R.Hobbs). 그러나 여기서 생도들은 엘리사 선지자 앞에 모여 그의 말을 경청했던 것 같다(겔 8:1;14:1슥3:8). 한편 혹자는 본문의 이 구절을 '선지자의 생도들이 그와 함께 거주했더라'고 번역하는데(Vulgate, Luther, Horsley) 이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K. W.B hr) 왜냐하면 본절은 엘리사가 선지 학교를 방문하는 동안 생도들을 교육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야등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
국을 끓이기 위해 한 사람이 채소를 구하러 들에 나갔다가 야등 덩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야등 덩굴의 열매는 식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생도들이 이를 갖고 음식으로 먹으려고 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가뭄이 얼마나 혹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 '야등 덩굴'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두가지가 있다. 첫째 견해는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이 번역하고 있는대로 이것은 콜로신드(Colocynth)라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이 콜로신드는 외과에 속하며 둥글고 황갈색을 띤 오렌지 만한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그 열매는 매우 쓸 뿐만 아니라 먹으면 복통과 신경통을 일으킨다(TheInterpreter's Bible). 한편 두번째의 다른 견해는 어원적(語原的)인 근거를 가진 것으로서 이것이 도토리와 비슷한 열매인 '들 외'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생 덩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쿠오트'(*)인데 이 단어의 어근 '파카'(*)는 '깨뜨리다', '쪼개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켄(Oken)에 의하면 이 '들외'는 약 2.54cm 정도의 초록색 다육질로 된 껍질을 가지고 있어서 완전히 익었을 때는 가볍게 누르기만 해도 큰 소리를 내며 쪼개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식물이 뿜어 내는 즙이 대단히 쓰다는 것이다(Gesenius, Winer). 이러한 의견들에 대해 카일(Keil)은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보고 있는데 이유인 즉 본절에 나타난 '들 외'는 야생포도가 아니라 오렌지와 같이 둥글고 누런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Keil &Delitzsch, Vol. , p. 314-315).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
생도들은 이 식물의 지독한 쓴 맛 때문에 독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 독을 마시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카일(Keil)은 콜로신드를 다량으로 섭취하게 되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사망의 독'은 히브리어 '마웨트'(*)의 번역이다. 이 말은 '죽다', '파괴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무트'(*)에서 파생한 용어로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쓴 맛과 죽음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전 7:26).
41.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본절에서 엘리사가 독을 제거하기 위해 솥에 넣은 가루는 그가 여리고의 물을 고치기 위해 샘에 넣은 소금과 같이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2:21, K.W.B hr). 그런데 이 가루는 유해한 것을 이로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매개물로써 사용된 것이다(Keil & Delitzsch).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독성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 주신 것이다.
42.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
'바알 살리사'(Baal Shalishah)의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세겜의 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크파르 틸트(Kfar Tilt) 또는 둘트(Thult)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 곳은 리다(Lydda, 현재의 Ludd) 또는 디오스폴레오스(Diospoleos)에서 북쪽으로 약 24km 가량 떨어진 곳으로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이 '벧 살리사' 즉 '세 계곡의 집'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또한 삼삼 9장에서 사울이 아버지의 나귀를 찾아 다닌 지역들 중의 하나가 바로 살리사라는 곳이었는데(삼상 9:4) 이 지역의 땅은 매우 기름진 곳이었다고 한다(T.R.Hobbs). 그리고 이곳은 길갈(Jiljiliya)과도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G.R.Rawlinson).
처음 익은 식물 -
모든 식물의 첫 소산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이 율법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데(레 23:9-14;출 34:26;신 26:3-10), 여호와께 바쳐진 이 첫 소산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나누어 먹었다(민 18:13;신 18:4). 그런데 당시에는 합법적인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없었기 때문에(왕상 12:13)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 첫 소산을 바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경건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Lange Commentary). 한편 이 같은 '첫열매'는 이스라엘의 지위(롬 11:16)와 부활하신 그리스도(고전 15:20,23),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약 1:18)을 상징한다.
곧 보리떡 이십과 -
레 2:14에 의하면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로 삼았으나 여기서는 떡을 만들어 선지자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보리떡한 개는 일반적으로 성인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한끼 분의 식사에 해당되므로(G.Rawlinson) 떡덩이 이십 개는 이십 명 밖에 먹을 수 없었다.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
여기서 '채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르멜'(*)은 39절에서 '채소'라고 번역된 '오로트'(*)와는 다르다. '오로트'는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푸른 풀'(K.W.B hr)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곧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채소'이다. 그리고 본절의 '카르멜'은 중동 아셀(Asher) 남쪽이나 사해의 서쪽 지역의 고산 지대에서 생산되는 곡물이다(Davidson;수 15:55;삼상 15:12;25:5).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 성경에서는 이를 '옥수수'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카일(Keil)은 곡식의 구운 이삭(레 2:14)이라고 번역하고 있다(Keil & Delitzsch, Vol. , p. 316). 한편 이처럼 곡물의 첫 이삭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 여호와의 제단에 바치는 것은 이스라엘의 유월절에 행하여지던 풍습이었다(레 23:10).
43.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갖고 일백 명이 먹기에는 대단히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온전히 성취되는 이적이 일어났다. 이러한 이적은 바로 그리스도가 행한 오병이어의 이적의 한 모형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마 14:13-21) 당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이 여로보암의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서 고안된 금송아지 숭배를 거부하고 선지자의 학교에서 올바른 예배를 드렸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Hengstenberg Beitrr, , p.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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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역사, 변화, 십자가 보혈,
그리스도, 부활, 이적,
말씀, 성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 첫 소산, 하나님의
사람(그리스도인), 합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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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학교처럼
올바른 예배와
말씀 공부를 통해
경건에 이르기를 힘써야
겠다. 본문의 이적은
오병이어의 모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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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이 부족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적을 경험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구약에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XtElomv1x4
하나님께 사로잡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2)
사역자가 되려고 절대로 스스로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일단 부르셨으면 당신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면 화가 있게 됩니다.(신 5:32) 우리는 우리가 그 일을 하겠다고 선택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셨기 때문에 그 일을 합니다. 절대로 “아, 나는 이 일에 부적격입니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무엇을 전파할 것인지는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 당신의 천성적 기질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영혼이 언제나 하나님께 꾸준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당신은 주님의 증인으로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라고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이 되어야 하지만,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당신을 아프도록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삶은 오직 한 가지, 이 말씀 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됩니다. 우리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이렇게 사로잡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희석하지 마십시오. 순수하고 엄중한 말씀 그대로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불굴의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당신의 동료를 대할 때는 당신도 하늘에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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