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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6 : 24~7:2🍑절망 상황에 주신 소망의 메시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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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6 : 24~7:2🍑절망 상황에 주신 소망의 메시지

credo15229850 2024. 7. 3. 11:34

https://tripol.tistory.com/467

 

히브리어 열왕기하 6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요메루 베네이 한네비임 엘 엘리솨 힌네 나 함마콤 아쉘 아나흐누 요쉐빔 솸 레파네카 찰 밈멘누 개역개정,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

tripol.tistory.com

https://tripol.tistory.com/468

 

히브리어 열왕기하 7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요멜 엘리솨 쉬메우 데발 아도나이 코 아마르 아도나이 카에트 마하르 세아 소레트 베쉐켈 웨사타임 세오림 베쉐켈 베솨알 쇼메론 개역개정,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tripol.tistory.com

열왕기하 6: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이후에 -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단순 접속사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앞의 사건과 연속되는 사건을 소개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 사용된 접속사에 불과하다(삼하 8:1;10:1;13:1;대상 18:1;19:1). 따라서 본절 이후는 본절 앞의 사건과 연관이 있는 연대기적 서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

여기서 벤하닷 왕은 아합을 공격했던 바로 그 왕(Benhadad II)이다(8:7;왕상 20:1). 이것은 요세푸스의 주장에 근거한 것인데 다른 신학자들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K.W.B hr, T. R. Hobbs, Wycliffe). 따라서 23절 이전의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간 때(K.W.B hr), 그러니까 엘리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앞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잊었을즈음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G.Rawlinson). 그러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재차 침입한 것(6:24-7:20)은 앞에 언급된 8-23절의 사건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31절에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즉, 앞사건에서 아람 군대를 놓아준 것 때문일 것이다.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성중이 크게 주려서 -

사마리아 성이 당한 고통은 두 가지였다. 즉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므로 성 내외(內外)의 교통이 두절되어 물자의 반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또 사마리아에 닥친 기근으로 인해 성 안에서도 먹을 식량이 극히 부족했던것이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

레 11:4에 의하면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머리는 다른 모든 부위보다도 먹기에 제일 나쁜 부분이라서 가장 값이 싼 고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나귀의 머리가 은 80세겔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기근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짐작할수 있게 한다. 한편 은 1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이기 때문에(출30:24;삼하 24:24) 은 80세겔은 영국 화폐로 5파운드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G.Rawlinson) 일반 노동자의 320일, 즉 거의 1년치의 품삯에 해당되는 값어치이다.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

여기서 합분태는 히브리어로 '히르이요님'(*)으로서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과 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Berleb), 혹은 '작은 곡식'(Wycliffe)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브'(*)의 정확한 용량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요세푸스는 이것을 '제스테'(*), 즉 라틴어로 6분의1(sextarius)로 번역했다. 그리고 그의 '유대 고대사' 8장에 57페이지에 보면 보다 정확한 용량을 제시하고 있는데 2/7제스테는 1밧(Bath)과 같고, 1밧은 6/30리터라고 한다. 따라서 1 제스테는 1/2리터 정도이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이와 같이 성이 포위되고 기근이 극에 달했을 때는 동물이나 사람의 배설물까지 먹었다고 더불어서 전한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은 세계 제 2차 대전 말기에도 있었는데 독일이 유럽을 포위하자 유럽 사람들은 먹을 식량이 없어서 개와 고양이, 심지어 해충까지도 잡아먹었다는 것이다(T. R. Hobbs). 이러한 곤경과 환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셔서 이같은 고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레 26:23-26).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성 위로 통과할 때에 -

대부분의 고대성들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사륜 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폭이 넓었다(G.Rawlinson). 또한 그곳은 매우 높아서 적의 이동을 관찰하기가 매우 용이했다. 그리고 그곳은 보초의 경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고관들이 자주 왕래하던 곳이다(Lange Commentary, Pulpit Commintary).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

성 안에 있는 집들 중에는 성벽에 붙어 있는 집들도 있었기 때문에(수 2:15;삼상 19:12) 성이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을 때는 여자도 성을 방어하는 일에 동참했다(삿 9:53). 그래서 왕이 성벽 위를 통과하는 동안 여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27.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

여기서 왕이 말한 여호와의 이름은 마음 중심에서 나온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31-33절) 왕 자신의 탄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5:20).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왕의 표현은 사마리아성 안에 기근이 심하여서 누구든지, 심지어는 왕조차도 백성을 도울 수 없다는 당시의 한계 상황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타작 마당...포도주 틀 -

본절에는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이 나란히 언급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수한 표현의 구문에 대하여 해석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1)이것은 생산의 원천인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을 언급한 것이다(민 18:27,30;신 14:14;16:13). 왕이 이와 같은 단순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당시에 굶주린 백성들의 아사(餓死)를 막을 수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래서 호 9:1,2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심판의 표시라고 보고 있다. 한편 당시 사마리아의 타작 마당은 성문 앞에 있었는데(왕상 22:10) 아람 군이 이곳을 포위하여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2)이것은 후기 예언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이 타작마당을 심판의 장소로 언급한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호 13:3;미 4:12;렘 51:33). 3)이것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막막한 상태를 나타내는 숙어적 표현이다. 즉 왕은 여인의 간절한 외침을 듣고 그 여인의 어려움 또한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왕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대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Word BlblicalCommentary, Vol. 13, p.79-80).

 

 

 

 

 

 

 

28.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

문자적으로 '너의 불평거리는 무엇이냐'라는 의미이다. 27절에서 왕이 여인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 대답을 하자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인은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보충의 설명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혹자의 해석처럼 여인은 아마 자신이 왕에게 음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어떤 판결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K.W.B hr). 그렇기 때문에 왕은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다시 질문한 것이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본절의 사건은 이미 성경에서 예언 하였던 바 그대로 성취되었다(레 26:29;신28:56,57).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그 당시 사마리아 성이 당한 기근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말해준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이 같은 예언의 성취를 다른 곳에서도 볼 수있는데 예루살렘이 1)느부갓네살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애 4:10)와, 2)디도(Titus)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Josephus)였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 대해서 전혀 비애하지 않고 그 시신(屍身)을 먹는 본절의 기사를 통해 한계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죄악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극도에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음부에 있는 부자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 16:31)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왕이...자기 옷을 찢으니 -

이처럼 여호람 왕이 자기 옷을 찢는 몸짓을 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5:7). 그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의 참혹한 상황에 경악하여 백성의 지도자로서 느끼는 비통을 외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왕의 이러한 분노는 자기 백성의 참상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시키는 심히 악한 격분이었다.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

'굵은 베'는 회개,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거친 옷이다(19:1;창 37:34;삼하 3:31;대상 21:16;에 4:1;욥 16:15;사 15:3;단 9:3;욘 3:8;마 11:21;계11:3).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공식적인 왕복(王服)속에 이 굵은 베옷을 걸쳐 입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성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회개하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겸손해진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의 원인을 엘리사에게로 돌리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31절). 그리고 혹자가 말한 것처럼 왕은 이런 형식적인 옷차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B hr). 그러나 진실된 회개의 신앙이 없이 슬픔과 회개의 표시로만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외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딤전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회개하지 않아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律)에 처해짐 같이(막 7:1-27), 여호람왕도 결국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외식하는 자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모든 자에게도 해당된다(마5:20).



 

 

 

 

 

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찌로다 하니라

 

여기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은 8-23절의 사건과 24절에서 벤하닷이 재 침입한 서건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할 때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카일(Keil)이나기타 다른 신학자들(B hr,Rawlinson)은 이 두 기사를 서로 연관시키지 않고 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억지스런 추측을 했다. 즉 그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항복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을 묵시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왕이 엘리사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하닷은 엘리사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못해서 사마리아를 다시 공격했고 이스라엘 왕은 그때 아람 군대를 죽이지 않고(22절) 놓아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T.R. Hobbs). 그래서 여호람 왕은 엘리사를 저주한 것이다. 또한 왕이 엘리사에게 저주를 한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여호와의 도움을 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8-23절의 사건과 24절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이 엘리사의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은 율법의 어느 곳에도 그러한 행위를 용납한 곳은 없으나(Pulpit Commentary) 애굽과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이방에서는 흔히 행하던 참형(斬刑)이다.



 

 

 

 

 

 

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

엘리사의 거처에 대해서는 여러 곳이 언급되었지만 여기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본래의 집으로 추측된다.

 

 장로들이 -

이들은 성의 관리들(Lange Commentary)이라기 보다는 사마리아 성에 있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다. 한편 그레이(Gray)처럼 여기에 언급된 모임을 정규적인 또는 습관적인 모임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사마리아 성이 직면해 있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백성의 대표자들과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obbs).

 

 사람들 보내었더니 -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신하 중 한 사람(왕상 10:8;단 1:4,5)을 여호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살인한 자의 자식 -

이것은 물론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의 나쁜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래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람이야말로 혈통적으로나 기질면에서나 광폭한 살인자 아합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상 21:19). 그러나 본문의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말은 족보상의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살인자와 같은 인간', '포악한 인간'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삼상 20:30). 비근한 예로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그들에 대하여 '마귀' 즉,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다(요 8:44).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낸 성급한 행위를 후회하고 즉시 사자를 뒤따라 왔다고본다(G.Rawlinson, Keil & Delitzsch, Wycliffe).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게 하고 왕이 도착할 때까지 사자들을 들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33절에 기록된 말을 왕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한글 개역 성경도 왕의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학자는 이것을 왕이 뒤따라 온 것이 아니라 왕이 보낸 사자의 발소리라고 한다(T.R.Hobbs).

 

 

 

 

 

33.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왕이 가로되 -

원문에는 '와요메르'(*)로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왕의 사자가 말한 것(T.R.Hobbs)이 아니라 '왕 자신'이 와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역 성경 RSV와 NEB는 말하는 주어를 왕으로 간주해서 번역한 것이다. 한편 KJV는 그 주체를 왕의 사자로 번역해서 그 뜻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어찌 더...기다리리요 -

이 모든 재앙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여호람 왕은 이제 여호와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가 왜 이처럼 갑자기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왕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바른 길로 돌아왔던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p.329-330; Wycliffe). 한편 7장 1절부터는 여호와의 재앙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열왕기하 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혹자는 본절 이후의 사건을 앞장의 기사와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려 한다(T.R.Hobbs). 왜냐하면 6:33에는 등장 인물이 '사자'인데 반해 2절에서는 그 등장 인물이 '한 장관'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상으로 보거나, 사건의 연결상으로 볼때에 앞장의 사건과 본절에는 긴밀한 연결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7:1, 2절은 앞 사건의 한 구성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 기사의 절정이기 때문이다(G.Rawlinson).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예언을 선포할 때 사용되는 고전적인 서론 형식을 엘리사가 이처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서론 형식은 공공의 집회에서 백성들의 주의를 환기 시키기 위하여 흔히 사용되던 것이다(Pulpit Commentary;렘2:4;10:1;미 3:1;암 7:16,17). 그리고 '들을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마'(*)는 단수 형태로 사용되기도 하고(렘 2:4) 혹은 복수 형태로 사용되기도 하는데(미3:9) 일반적으로는 복수 형태로 사용되는 것이 정상이다(Hobbs). 그러나 이 단어가 단수로 사용될 때는 '듣는 무리를 하나로 취급할 때'나 '무리 속에 있는 개개인을 하나하나로 간주해 그 설교의 대상으로 삼을 때'이다(렘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이러한 표현은 사마리아 성이 아람으로부터 구원받게 되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가라사대'란 말은 히브리어 '아마르'(*)의 번역으로서 '대답하다', '확인하다', '명하다'란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여호와의 확신적 선언임을알 수 있다.

 

 내일 이맘때에 -

여기서 '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카에트'(*)는 명사 '에트'(*) 앞에 전치사 '카'(*)가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가 구약에서는 아주 드문 예로서(민 23:23;수 11:6;삼상 4:20;왕하 4:16), 이것은 어떤 특별한 시점(時點)을 가리킨다. 즉, 바울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말한 바로 그 '때'(*,카이로스)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마리아 성문에서 -

고대의 성들에는 큰 성문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넓은 뜰이 함께 있어 그 지역 사회의 공적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즉, 공적인 연설의 장소(창34:20), 공무 집행소(왕상 22:10), 재판이 열리는 곳(신 17:5;행 7:58), 사열하는 곳(삼하 18:4) 뿐만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렘 17:19,20)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성문이 곡물을 파는 시장으로 사용된 듯하다(17,18절).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

여기에 언급된 한 '스아'는 한 '에바'의 약1/3에 해당되는 부피로서 약 7.33l 정도이다. 한편 이것이 평상시보다는 고가에 해당되지만 당시의 형편으로 볼 때는(6:25) 엄청난 가격 절하이다. 즉, 고운 가루 한 스아의 값이 당시에 거래되던 합분태 사분 일 갑(*,kab)에 해당하는 가격의 1/5밖에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갑'(약 1.3l)은 한 '스아'의 약 1/6에 해당되므로 이것을 통해서 고운 가루의 가격 절하 정도가 얼마만한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따라서 이 예언이 기근으로 허덕이던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선포로 들렸을 것이다. 한편 '한 세겔'이 금인지, 혹은 은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나, 금 한 세겔은 은 한 세겔의 15배에 해당되고(대상 21:25) 은 한 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에 해당하는 품삯이다(출 30:24;삼하 24:24).



 
 
 

 

 

 

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한 장관 -

여기서 '장관'을 뜻하는 히브리어 '솰리쉬'(*)는 '셋'을 의미하는 '솰라쉬'(*)에서 파생된 것으로 BDB(F.Brown, S.R.Driver, and C.A.Briggs,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에서는 '병거에 탄 세번째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혹자는 이를 '셋째 관리'로 번역하기도 한다(Thiele, Mysterious Numbers, p.114). 한편, 거니(Gurney)에 따르면 헷족(Hittite)의 전차는 세 사람이 몰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전시에 가능한한 빨리 많은 사람들을 수송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암세스 2세와 가데스에서 전쟁할 때 헷족(Hittite)은 바로 이러한 삼륜 전차를 이용했다(Yadin, Art of Warfare 1:104-105),그러나 구약 성경에서는 '솰리쉬'(*)라는 단어가 군대와 관련해서 번역된 적은 전혀 없다(T.R. Hobbs). 오히려 출 15:4에서는 '택한 장관'(RSV)으로, 겔 23:23에서는 '귀인'으로 번역되어 왕의 측근에서 왕을 보필하는 자를 나타낸다(PulpitCommentary, Keil & Celitzsch).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

왕의 전속 부관(the kings aide - de - camp, Keil &Delitzsch, Vol. , p.330), 즉 나아만과 같은 직급에 속한 이 사람은 이스라엘 왕이 신임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

이것은 창 7:11에 기록된 홍수 사건을 의식한 말로서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의 진실성을 의심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선지자를 심하게 조롱한 것이다(K.W.B hr). 따라서 그는 정죄를 받아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20절).

 

 

 

🟠🔴
🟢

 

🟣
하나님의 속성/성품:
징벌, 예언, 성취하시는, 
심판, 공의, 재앙, 은혜, 의지,
바른 길, 확신, 선언, 구원,
능력, 진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 경건의 능력, 
🔵 
회개의 마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다른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먼저 자신을 
들여다봐야 겠다.🩸✝️
🌱🌿🌳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의심하는 일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범죄한 일에 대해서도 징계하시는 
공의와 바른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더욱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하기를 힘쓰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nkz9DiN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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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죄에 대한 집중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이사야 6:5)

 

하나님의 존전에 서게 되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 속에서 어떤 특별한 죄성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쉽게 이렇게 말합니다. – “그래  내가 죄인이지.” 그러나 하나님의 존전에 서게 되면 이러한 막연한 말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죄성에 대한 지적이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이 하나님 존전에 서게 될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막연한 죄의식이 아니라 자신의 특별한 죄에 집중하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고정된 죄성을 드러내십니다. 이때 만일 우리가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에 항복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깊은 죄성을 다루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임재를 의식할 때마다 언제나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이처럼 어떠한 자신의 죄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깨닫게 되는 경험은 위대한 성자에게나 가장 작은 성자에게나 또는 무서운 죄인에게나 가벼운 죄인에게나 한결같은 것입니다. 이 경험의 첫째 단계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서 잘못된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어떤 정확한 죄를 지적하실 것입니다. 이사야의 경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뵌 후에 자신의 ‘부정한 입’이 죄성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 죄가 집중되는 곳에 정결하게 하는 불을 대야 합니다.

 

https://reformedkjy.tistory.com/9684

 

7월 3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개인적 죄에 대한 집중(The Concentration Of Personal Sin)" by 오스왈드 챔버

개인적 죄에 대한 집중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이사야 6:5) 하나님의 존전에 서게 되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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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짐왕국 왕자님의 눈처럼 하얀 눈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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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쟁이 깐깐크로우새를 조련하기 매우 매우 어렵다는데 똑똑한 곰님은 까마귀어도 배워서 대화도 나누고 가위바위보하면서 든든한 크로우친구와 함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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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와 크로와상을 냠냠하는 알파카님의 든든한 일용할 양식 아름다움을 공급해주는뎅 알파카님 한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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