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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2 : 9~21🍑신실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난 자의 비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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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2 : 9~21🍑신실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난 자의 비극

credo15229850 2024. 7. 18. 11:28

https://tripol.tistory.com/473

 

히브리어 열왕기하 12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비쉐나트 쉐바 레예후 말라크 예호아쉬 웨아르바임 솨나 말라크 비루솰라임 웨쉠 임모 치브야 밉베에르 솨바 개역개정,1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

tripol.tistory.com

열왕기하 12: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취하여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무릇 여호와의 전에 가져 오는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한 궤를 취하여. - 
이 궤의 용도에 대하여 본절에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아마 은을 거두어 들이는 데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은을 달아서 돈대신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궤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헌금궤'라고 할 수 있다. 이 헌금궤 규례는 예수의 시대까지도 존속되었다. 그런데 이 헌금궤를 지키는 책임은 성전문을 지키는 제사장이 졌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은 대신 동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포로시대 이후부터였다(스 2:69, H. Hamburger, "Money",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p.423-435).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 
여기서 말하는 '단'은 바로 '번제단'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히브리 원문을 직역해 보면 '성전에 들어갈 때에 오른 편에 있는 제단 가까이에 두매'가 된다. 그런데 대하 24:8에는 그 궤를 성전문 밖에 두었다고 했다. 즉 역대서에는 '밖'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후차'(*)를 사용함으로 본절과는 다른 장소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 궤가 처음에는 단옆에 놓였다가 나중에는 편의상 문 밖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Wycliffe). 그러나 이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이 헌금궤가 놓인 위치는 성전 안뜰 번제단 근처, 즉 성전의 현관 밖 오른 편이다(B hr,Rawilnson).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전에 있는대로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왕의 서기. - 
왕의 서기에 관해서는 22장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즉 서기는 왕을 도와 대리 임무를 수행하는 비서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18:18; 대상 27:32) 문서를 기록하거나 전리품을 셈하여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편 성전을 수리하기 위한 헌금을 계수하는 데에 왕의 서기가 등장한 것은 요아스 왕이 직접 성전수리 사역에 관여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의 서기에 대해 '민간인 사무원'이라고 하는 혹자의 주장(B hr)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을 하기가 힘들다.

 대제사장. - 
열왕기하에서는 '대제사장'이라는 명칭을 매우 드물게 사용했다(22:4,8; 23:4).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호야다를 가리켜 '대제사장'이란 호칭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본절의 언급은 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따라서 '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은 그 사람의 직업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인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Hobbs). 그래서 '가돌'(*)이라는 단어는 4:8에서와 같이 수넴 여인을 가리키는 '귀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대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라지고 그 이후로부터는 단순히 '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였는데 이것은 왕권의 강화로 제사장의 권세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사장의 권세가 다소 회복되었던 왕국시대 후기에서부터는 다시 '대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였다(Rawilnson).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 
'봉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로서 '속박하다', '포위하다', '동여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는 '자루에 넣어 묶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원문을 직역해 보면 이것은 '봉하여 계수하고'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때 순서가 바뀐 것처럼 생각된다. 즉 은을 계산할 때 먼저 자루를 봉하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먼저 은의 일정한 양을 자루에 넣은 뒤 그 무게를 저울에 달므로써 계산했었다(5:23). 그렇기 때문에 벌게이트(Vulgate)역의 해석을 보면 먼저 자루에 넣어 묶은 뒤에 계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은은 하나하나의 낱개로 계산하지 않고 그 무게로 값을 측정했기 대문이다(Keil). 따라서 '...은을 쏟아 내어 세었다'라고 번역한 공동 번역은 다소 부정확한 것이다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저희는 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 
여기서 '손'(*, 야드)은 '권력'이나 '책임'의 상징적 표현이다. 따라서 '맡은 자'란 곧 성전 수리 공사를 총괄하는 '감독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본절을 통해서 우리는 요아스 왕이 따로 궤를 만들게 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성전 수리를 위해 내는 돈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해 내는 의무적인 돈을 섞이지 않도록 구분짓기 위해서였다. 4절에 언급된 세 가지 세금 징수는 엄격히 말하면 제사장들을 위한 세금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전 수리 비용을 제사장들이 생계 비용으로 많이 사용해서 성전 수리는 등한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전 수리 만을 위해 그 궤 속에 있는 은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역대하 34:12에 의하면 이 감독은 레위인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전 퇴락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미장이. - 
문자적으로는 집을 지을 때 벽 따위에 흙이나 시멘트를 바르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지시에 의해서 실제적으로 작업하는 인부를 가리킨다(KJV, NIV, RSV, masons).

 석수. - 
채석장(採石場)에서 돌을 캐내는 사람이 아니라 돌을 다듬고 깎는 일을 하는 기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KJV, hewers of stone; NIV, stonecutters; LivingBible, quarryman). 한편 역대서에서는 '철공장'과 '놋공장'도 더불어 언급함으로 인해 성전의 구석 구석을 수리해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대하 24:12).







13.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본절과 대하 24:14절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성전 수리를 목적으로 드려진 은으로 여호와의 전에 쓰이는 성기(聖器)를 마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역대기에서는 그 기구들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하 24:14절은 실제로 본장 16절 이후에 해당되는 기사로서 성전 수리를 다 마치고 난 이후에 전의 성기(聖器)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성전 수리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은을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성전에 쓰이는 기구들에 대한 자세한 목록은 왕상 7:50에 나타나 있다. 한편 당시에는 성전 건물 자체도 매우 퇴락했지만 그 안에 있는 각정 집기들도 많이 없어졌던 것 같다. 사실 성전의 각종 귀금속들은 약탈당하거나 강대국에 조공으로 바쳐지곤 했다(18절; 왕상 14:26; 15:18). 그러나 성전수리 중에는 이렇게 없어진 기명들을 만드는데에 관심을 우선적으로 성전 수리를 완수하는 데에만 모든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만큼 성전 수리 작업이 중요했음을 반증한다. 그렇지만 성전 수리 작업이 완수되자 남은 돈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기명들을 만들었다(대하 24:14). 그러므로 본장과 대하 24장의 내용 간에는 하등의 모순이 있을 수 없다.

 은대접. - 
이것은 예배시에 직접 사용했던 그릇이다(출 12:22).

 불집게 - 
이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제사용 도구로서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25:14; 렘 52:18).

 주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즈라코트'(*)는 '뿌리다'라는 뜻의 '자라크'(*)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이 도구는 불을 옮길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출 27:3).







 
14. 오직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군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회개치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11절), 즉 감독자는 거두어들인 모든 은을 일꾼들의 임금과 성전 수리비로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따로 회계할 필요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믿음과 신뢰를 그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도 이러한 상호 신뢰로 그 기반을 다질 때 정직한 사회,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사회가 된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의 한면을 보여준 듯하다(눅 17:20, 21). 한편 15절에 나타난 '회계하다'란 말은 히브리어 '하쉐브'(*)를 번역한 말인데 그 의미는 '생각하다', '고려하다', '평가하다', '계산하다', '찾아내다'이다. 이는 은의 쓰임, 용도에 대해 회계할 때 하나도 남김없이 세세하게 검토하는 것을 가리킨다.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 - 
이러한 본절의 기록을 보아 1차 성전 보수 때의 실패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해결한 듯하다. 즉 처음의 보수 때에는 제사장의 생활 문제에 대해 제도적으로 이를 뒷바침하지 않았으나 2차 때에는 이를 보완한 것 같다. 왜냐하면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오직 제사장에게 돌려져 그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건제에 관한 레 5:15-19의 기록을 보면 범죄한 자들이 '속건제'를 드릴 때 1)어떤 지정된 가치에 따라 제물을 드렸다. 즉, 여호와의 성물 또는 금령을 범한 자는 '흠 없는 수양 또는 은'을 드려야 했으며, 이웃에 대해 범죄한 자 또한 흠 없는 수양을 드려야 했다. 2) 범죄한 그 사람에 대하여 반드시 의무적으로 변상해 주어야 하며, 3) 제사장들에게 바칠 세금으로 배상 가격의 1/5을 바쳤다. 그런데 만일 당사자가 죽게 되면 그 친족들에게 보상하거나 제사장에게 하도록 되어 있다(민5:6-8). 한편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속죄제에 대한 속전(the atonement money)을 받게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속전이 1) 이미 속죄된 것과 유사한 실수를 범한 경우에 드리는 돈이며, 2) 희생물에 대한 세금이며, 3) 희생 대신에 드리는 보상이라고 설명한다(De Vaux Ancient Israel, Vol, 1, p. 429-430).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세금이 징수되었다는 기록은 성서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Hobbs), 많은 학자들은 제사장들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원하여 헌금을 바쳤을 것이라고 본다(Keil,B hr, Rawilnson). 그런데 속죄제는 고의성이 없이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으로 집단적인 것은 매절기 때마다 드렸고 (레 4:13, 14). 개인적인 것은 필요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레 4:27, 28, 31).







17.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고로


 때에. - 
이것은 16절과 17절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역대의 기록을 보면 본장에 기록된 사건 이외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죽음과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사망 이후 아세라 숭배를 허락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대하 24:15-18).그리고 또 여호야다에 이어 제사장이 된 스가랴를 요아스왕이 돌로 쳐서 죽이게 한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대하 24:20-22). 따라서 본절에 기록된 아람왕 하사엘의 침입은 요아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대하 24:24).

 하사엘이 올라와서. - 
유다와 아람은 최근에 들어 서로 침략하고 공격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이 유다와 아람의 세력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Rawilnson). 그러나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한 것은 아람의 영토 확장 정책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할 때에는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B.C. 859-824)가 다메섹을 두 번째 공격하고 난 이후(B.C. 840-837)인 것이다. 그리고 이 침공은 10:32, 33에 기록된대로 북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과는 직접 관련된 사건이다. 즉 하사엘은 자기 나라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서진(西進) 정책을 폈으며 이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유다는 다함께 심각한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군사적 위기에 처하게된 것이다. 한편 대하 24:23에 따르면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한 시기가 요아스 왕이 성전 수리를 기념하는 1주년 후였음을 알 수 있다.

 가드를 쳐서 취하고. - 
가드(Gath)는 현재 '텔에스-사피'(Tell es-Safi)나 또는 '텔쉐이크-엘 아레이니'(Tell Sheikh el Areini)에 해당되는 곳으로서(R. A. S.Macalister, B. Mazar)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3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의 '가드'는 본래 불레셋의 주요한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였으며(삼상 6:17) 초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Stinespring, Interpreter'sDictionary of the Bible, Vol. 2, p.355-356). 그 뿐만 아니라 이 성읍은 기름진 해안 평야(블레셋 평야)의 일부로서 르호보암 시대에 유다를 방비하는 성읍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요새이기도 했다(대하 11:8).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 고로. -
 아람의 변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남방에 있는 가드(Gath)를 하사엘이 먼저 침략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러나 하사엘의 편에서 볼 때 물질적인 소득과는 별개의 문제로 가드의 후방에서 예루살렘을 제거하는 것은 전략상 상당히 유익한 것이다. 한편 가드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적어도 약 64km 이상 떨어진 먼 곳이었기 때문에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치러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18. 유다 왕 요아스가 그 열조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대하 24:24에는 아람의 적은 구대에 의해 유다의 많은 숫자가 대패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큰 패전 때문에 요아스는 자기 조상 때부터 성물(聖物)로 여호와의 전에 바쳤던 모든 보물을 하사엘에게 내어 주게 된 것이다. 본문의 17절과 18절을 얼핏보기에는 가드를 빼앗김으로 인해 요아스가 싸움도 하지 않고 보물을 다 내어준 것처럼 보이나 대하 24:24에서는 큰 참패 이후에 그렇게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대하 24:23).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본문의 내용과 역대하 24장과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 두 기사가 서로 다른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두 기사는 조화될수 있다. 왜냐하면 역대하의 기록은 단지 좀 더 자세히 기록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역대기에서는 하사엘의 침략을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사후에 바알을 숭배하고 심지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데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했다(대하 24:23, 24). 그러나 본문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던 잘못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기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요시야의 사역을 설명하기 앞서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단서를 붙였다(2절). 어쨌든 요아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왕실과 성전의 재정이 거의 바닥날 지경에까지 처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는 자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앞으로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한다(왕상14:1-20). 한편 이 싸움에서 요아스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반영해 준다(대하 24:25).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 
이 왕들은 바알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철폐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백성들과 권위있는 제사장들과의 공개적인 충돌을 피하였던 것이다(B hr). 그 뿐만 아니라 종교를 혼합적인 것으로 만들어 여호와의 성전에까지 예물을 드리는 일도 했던 것이다(Rawilnson).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 
요아스는 유다의 3대 왕인 아사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조공을 주어 전쟁을 피한 일(왕상 15:18),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뇌물을 주고 항복한 일(16:8),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산헤립에게 보물을 주고 전쟁을 협상한 사건(18:15)과 같은 방법으로 전쟁을 끝마친다.

 보내었더니.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쉐라흐'(*)는 '보내 버리다', '포기하고 내주다'란 의미이다. 이는 곧 요아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왕궁의 보물을 준 사건이 기쁨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내어 주었음을 반영한 용어이다.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 
본문에서는 요아스의 신복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단지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4:24-27에는 요아스의 신복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 기록은 신학적인 이유로서의 설명은 될 수 있으나 반란의 정치적인 동기는 제공해 주지 않는다.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 - 
어떤 주석가들도 여기에 언급된 '실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라'라는 용어가 지명인지, 혹은 거리를 나타내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대부분의 고대 역자들이 이 단어를 단순히 특수한 명사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B hr).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한편 또다른 혹자는 이를 '거리'라고 추측하고(Grotius, Thenius), 다른 학자들은 '경사지'라고 판단하나(Ewald) 이를 뒷바침할 만한 근거는 미약하다.

 밀로 궁에서 저를 죽였고. - 
요아스가 어디서 죽임을 당하였는지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대하 24:25). 본절에서 '밀로'(*)는 '채우다'라는 뜻의 '말라'(*)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이것은 기드론 골짜기를 끼고 있는 구릉지, 즉 오벧의 경사지에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K. Kenyon, B. Mazar). 2) 이것은 다윗(삼하 5:9)과 솔로몬(왕상 9:15, 24)이 지은 요새로서 오벧의 북서쪽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G.A. Barrois,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p. 382-383). 한편 본절에서는 밀로 궁이 실라로 내려가는 길가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라'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데니우스(Thenius)와 같은 학자들은 '실라'가 현재의 다윗로에 해당하는 길이기 때문에 욥바문에서 하람 지역을 연결하는 경사진 곳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밀로'의 2) 번 해석과의 어떤 연관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21.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저는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여호사바드. -
대하 24:26에는 두 모반자를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절과 역대서 사이에 나타난 기록의 차이점은 본절이 부친의 계보를 딴 이름인 반면에 역대기는 모친의 출신지에 따른 이름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Hobbs). 그리고 '앗'(-ath)이라는 이름의 어미는 앗수르나 아랍인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부쳐지던 것이다. 또한'시므릿'(대하 24:26)은 히브리어 '소멜'의 여성형인데 (Rawilnson), 이것은 당시의유 대사회에 국제적인 결혼이 성행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결혼 풍습은 요아스가 우상숭배를 허용하였기 때문에 더욱 성행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절의 병행구절인 대하 24:26에서 시므앗의 아들을 '사밧'이라고 한것은 히브리어 '자칼'(*)을 '자바'(*)으로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Wycliffe). 그리고 '사갈'은 '여호사갈'의 축약형이다.

 저는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 
대하 24:25에 의하면 요아스가 다윗성에 장사되긴 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라는 본절이 역대기의 기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Thenius). 그러나 이것을 기록자의 관점 차이로 이해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역대기는 보다 신학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평소보다 빨리 했다용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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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믿음, 속죄하시는, 심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세한 검토,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정직한 사회, 
하나님을 의지하기, 회개,
🔵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때 그저 벌하시는 것을 즐거워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비를 베푸시는 은혜임을 믿고 주님께 속히 돌아오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9TIf2Kd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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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신비

 

주여 뉘시오니이까” (행 9:5)

 

강퍅하고 고집 센 바리새인이었던 다소의 사울이 구속의 기적에 의하여 순식간에 변하여 겸손하고 충성된 예수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우리가 그것을 조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일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순종은 부자연스럽습니다. 불순종이 반드시 죄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령하는 자의 우월한 권위가 인정된 것이 아니라면 그를 순종하는 것은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순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이것을 하라”고 명령한다면 이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옳지 않은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식함이 없이 아무에게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노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많은 영혼이 종교에서 벗어날 때야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이제 그 사람의 마음에는 오직 한 주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주인은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만나 보았을 때 “주께 순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내게 화가 있습니다.(사 6:5, :1) 주님은 내가 순종해야 한다고 절대 주장하지 않지만 만일 순종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영혼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망 확인서에 사인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얼굴을 맞대고 섰을 때 “순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주께서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구속의 재창조 능력으로부터 이탈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무관심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만일 내가 빛에 나아가게 된다면 얼마나 참담한 자가 되겠습니까! 만일 내가 빛을 거부하면 내게 화가 임할 것입니다 (요 3:19-21).

 

https://reformedkjy.tistory.com/9719

 

7월 18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신앙의 신비(The Mystery Of Believing)" by 오스왈드 챔버스

신앙의 신비 “주여 뉘시오니이까” (행 9:5) 강퍅하고 고집 센 바리새인이었던 다소의 사울이 구속의 기적에 의하여 순식간에 변하여 겸손하고 충성된 예수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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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의 발레리노 백조의 호수 같은 아름다움이 어디 있을까요 곰님이 호수에 빠지면 호수가 아름다운 백조로 변하여 밤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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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곰님의 세계로 여행하려면 1억만년의 세월을 보내도 다 끝내지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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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님은 왜 멋진가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공부할 양이 넘 많아서 두 눈은 파카님의 하늘로 가게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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