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3:14-25🍑언약에 기초한 긍휼, 은혜로 사는 백성 본문
https://tripol.tistory.com/474
열왕기하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이 부분에서는 요아스 시대에 있었던 엘리사의 말년(末年) 행적을 말한다.
17.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18.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20.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 섰더라
22. 여호아하스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여기서는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두 성읍을 아람으로부터 탈환한 사건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23절) -
곧,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창 12:1-2,17:7-8, 26:3-4, 28:13-14)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을 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원수에게 내어주시지 않고) 아끼신 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사실이 강조된다.
세 번 쳐서 파하고(25절 하반) -
이것은 요아스가 엘리사의 부탁대로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친 회수(왕하 13:18)와 같이 된 것이다. 전에 엘리사가 요아스더러 "땅을 치라"고 한 것은 일종의 행동 예언이었고 마술이 아니었다. 몽고메리(J.A. Montgomery)는,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땅을 치라'고 명한 것은 마술적 예조(Magical omens)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예언자의 사역 성격이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학설이다(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he Book of Kings, 1951, pp434-435). 마술적 예조(魔術的豫兆)란 것은 여호와의 대언자들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다.
오늘은 주석이 별로 없네요~
🟠🔴
🟢
🟣
하나님의 속성/성품:
아끼시는, 언약, 보응하시는,
예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회개,
🔵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고
오래 참고 다시
주님께 돌아갈 기회를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자.🩸✝️
🌱🌿🌳
두 마음을 품는 우상숭배를 내려놓고 한마음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Q3Xc5t0i4U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하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
걷는 데에는 스릴이 없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건강하고 안정한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는 가장 높은 차원의 힘을 소유한 것입니다. “걷는다”는 단어는 성경에서 인격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요한이 예수님께서 걷고 계시는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6) 성경에는 추상적인 것이 절대로 없습니다. 언제나 분명하며 실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되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앞에서 걸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창 17:1)
우리는 언제나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때 스릴을 원합니다. 스릴을 향한 이러한 소원은 육체적으로 성령을 흉내 내려 할 것입니다. 감정적인 영역에서 스릴을 원할 경우는 부적절한 애착을 갖게 되면서 도덕적 파산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영적인 영역에서도 날개 치며 올라가는 스릴만을 계속 추구한다면 결국 믿음을 잃고 영적 파멸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장소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우리 앞에 언제나 모시겠다는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의 임재의 실체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기를 거절한다는 점입니다. 시편 기자의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46:1-2)라는 체험 고백은 우리가 주님의 실체에 서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실체에 서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단을 통해 당신의 삶을 그 위에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주님의 임재의 실체 위에 당신의 삶을 세운다면 하나님은 실제로 언제나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당신은 결코 두려움에 빠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오 주님, 저를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 물론 주님은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일상적인 결정이 주의 뜻에 어긋난다면 주님은 그 결정을 억제하시며 막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때는 잠잠히 주님의 임재를 바라는 가운데 주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https://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461
https://i.pinimg.com/564x/20/62/c3/2062c3b6b88a30f60bc8db948196c526.jpg
https://i.pinimg.com/564x/f1/a0/8e/f1a08e3e3bd34d6acb4bd99f26b309db.jpg
https://i.pinimg.com/564x/8c/60/a8/8c60a8e853fb91d1dc559f006f754cde.jpg
https://i.pinimg.com/564x/6b/61/b2/6b61b2d3704655f1a33a9c13a8795e5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