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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4 : 1~16🍑순종으로 승리하고 교만으로 패배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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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4:1.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이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요아스 이 년에. -
본절에서도 13:1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연대기 문제가 학자들 간에 빈번히 제기되고 있다. 즉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는 유다 왕 요아스의 37년에 왕위에 올랐다(13:10). 그렇다면 유다 왕 요아스가 40년간 통치하였으므로(12:1)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는 최소한 북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의제 4년 또는 5년 이후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이를 요아스 2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중복되는 2-3년 간은 유다의 요아스와 그의 아들 아마샤의 공동 섭경 기간이라는 것이다(Hobbs, Gray). 그러나 이것은 전체 문맥에 대한 설명에서는 용이하지만 분명한 성서적 근거, 혹은 역사적 기록이 없으므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2)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 기간은 실제로 만 39년이며 40년 초에 죽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요아스는 유다 왕 요아스의 37년 후반에 왕위에 즉위하였다. 즉 이것은 왕의 즉위가 니산월(가나안식 옛 이름은 아빕월, 종교적으로는 제 1월) 한 두 달 전에 있었고 볼 때 그 한 두 달을 1년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Keil &Delitzsch, Vol. 3, p. 379). 이렇게 본다면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른 것은 이스라엘의 요아스 제 2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후반기 연대가 이렇게 많은 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 전반기의 연대 계산법과는 후반기의 연대 계산법이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본다(E. R. Thile,Mysterious Number, p. 103-124).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여호앗단. -
요세푸스(Josephus)는 이를 '요다데'(Jodade)로 부르나 70인역(LXX)에서는 이보다 더욱 정확하게 '요다딤'(Joadim)으로 지칭한다(Rawilnson). 그런데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기쁨'이라는 의미이다.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대로 다 행하였어도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
역대기에는 이 부분을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대하 25:2)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아마샤 이전의 유다 왕들 가운데 '다윗과 같이'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였다는 칭찬을 받은 왕은 단지 3대 왕 '아사'뿐이었다(왕상 15:11). 한편 아마샤는 비록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지만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즉 그는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우상 숭배에 빠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앙 생활에서 '적당주의'는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계 3;15).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
아마샤와 그의 부친 요아스가 행한 행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둘 다 처음에는 여호와께 열심이었다.
2) 그러나 나중에는 우상을 숭배하였다(대하 24:18; 25:14).
3) 양자 모두 선지자들의 경책을 거부하였다(대하24:19; 25:16).
4) 그리고 두 사람 공히 모반자들에 의해 피살당했다(19절; 12:21).
5) 또한 둘 다 적군에게 성전의 많은 보물들을 내주었다(14절; 12:18).
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본절의 주석에 관해서는 12:3의 주석을 참고 하라.
5.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나라가 그 손에 곧게 서매. -
이 말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 왕상2:46에서 솔로몬의 번영기에 쓰였던 것처럼 정권이 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15:19;Rawilnson, Keil & Delitzsch). 아마샤는 집권 초기에 부친 요아스를 암살한 세력(12:20, 21)에 의해 여러가지로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해 정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아마샤의 통치권 확립과 더불어 국력이 신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유다는 아하시야(8:25-29;9:27, 28; 10:12-14)와 악녀 아달랴의 집권(11:1-3),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12:17,18; 대하 24:23, 24) 등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졌었다. 그러나 아마샤는 에돔과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 국력 신장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본절 전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1) 아마샤의 부친친 요아스가 죽은 후 어떠한 혼란기가 있었다(12:19-21)는 사실을 함축한다. 실로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정권의 교체가 이뤄질 때는 언제나 혼란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부왕(父王)이 살해되었기 때문에 그 혼란은 더욱 심각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서도 그러한 혼란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2) 요아스를 살해한 자들과 모반자들은 아마샤가 제거하기 이전까지도 여전히 어떤 주요 관직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즉 그 모반자들은 요아스의 행위에 대한 복수나 나라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모반을 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정권욕에 의한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비록 역대기 기자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요아스가 여호야단의 아들을 죽인 그 피로 인하여 암살을 당한 것이지만(대하24:25) 본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모반이 순수한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
본절은 신 24:16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 성경구절의 내용은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라는 말씀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수 7:1-26과 왕하 9:26에서와 같이 아비의 죄로 인하여 자식들이 죽임을 당한 경우와도 엄격히 상치(相馳)된다. 이것은 본서 기자가 신명기를 얼마나 존중했는가를 보여줌과 더불어 신명기 후기비평주의자들의 주장(Riehm)을 뒤집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본절의 기록은 요시야 왕이 신명기서를 발견하기 약 200년 전의 것이기에 신명기서가 요시야 왕에 의한 편집이거나 포로시대 이후의 편집이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Rawilnson). 한편 고대 동양의 전례에 의하면 반역자를 사형에 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까지도 죽였다(Wycliffe).
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염곡에서. -
염곡은 '소금 골짜기'란 뜻인데 그 위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 견해가 있다.
1) 오늘날의 '나할 말타'(Nahel Malhata)로서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아랏(Arad)의 남쪽 지역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아마샤 왕이 에돔 사람을 격퇴시켰다는 것이다(Y. Aharoni,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2) 남아라비의 사해 바다 남쪽 지역으로서 페드라 서쪽 약 30km 지점에 있는 '아일 밀흐'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이 오늘날의 '에스 삽카'(Es Sabkah)일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런데 이 두 견해 중에서 후자에 언급된 '에스 삽카'는 '카슴 우스툼'(Khasm Usdum)이라는 소금으로 된 능선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염곡'이라는 히브리어 명칭이 썩 잘 어울린다(Rawilnson).그러나 역시 '염곡'이라는 명칭에 정관사가 없어서 그 위치는 불분명하기만 하다. 한편 다윗은 바로 이곳에서 에돔과 싸운 적이 있는데(삼하 8:13) 그 싸움 이후로 에돔은 이 곳에 요새를 만들었다(Hobbs).
셀라를 쳐서. -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셀라'(*) 앞에 관사가 붙어 있는것으로 보아 이곳이 에돔의 수도를 가리키는 별칭인 것같다(Keil, Rawilnson). 그런데 70인역(LXX)에서는 이곳을 오늘날의 '페트라'(Patra) 또는 '움바야라'(umm-Bayyara)로 보고 있다(S. Cohen,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4 p. 262-263).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셀라'는 '부세일'(Buseir)의 북서쪽에 위치한 오늘날의'에스 셀라'(es-Sela)인 것으로 밝혀졌다(A. F. Rainey). 그리고 이 곳은 '바위'라는 의미의 지명(地名)으로 아라바 광야에서 에돔의 서쪽으로 통하는 좋은 길목이 된다. 한편 본구절과 평행 구절인 대하 25:11, 12에서는 아마샤의 군대가 포로 10,000명을 이 바위 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
이 지명(地名)은 '하나님에 의해 정복되다'란 의미로 일찍이 수 15:38에서 언급되었으나 여기서 언급한 지명의 위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왜냐햐면 '셀라'는 여전히 이사야(사 16:1), 오바댜(옵 3절), 예레미야(렘 49:16) 등의 선지자에 의해서 셀라로 나오는 반면 수 15:38의 '욕드엘'은 라가스 근처로 유다 족속의땅이기 때문이다. 한편 에돔은 에서가 그 조상으로서(창 36:9) 다윗의 지배를 받던 나라이다(삼하 8:13, 14). 그런데 이 에돔은 이스라엘의 요람 왕 때 유다로부터 독립하였다(8:20-22). 아마 에돔은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를 괴롭히는 틈을 타(12:7, 18) 유다의 남쪽 변방 지역을 조금씩 차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다의 아마샤는 이 지역으로부터 에돔을 몰아내고 아라바 지역으로 부터의 접근을 막았던 것이다(Hobbs,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 179-180).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
이 말은 본서의 저자가 기록할 당시까지 그러한 상황을 계속적으로 유지했다는 뜻이다. 즉 이 표현은 본서의 저자가 참고한 원사료(原史料)에 나타나 있던 것이 아니라 저자가 본서를 기록하면서 첨가한 말이다(B hr, Rawilnson).
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아마샤가...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
대하25:13을 보면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러한 도전장을 보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그 이유는 에돔과의 전쟁 때 고용되었다가 돌려보내진 이스라엘 군사들의 적대적인 행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고(Keil & Delitzsch) 내적 이유는 아마야가 교만해졌기 때문이다(Wycliffe). 이러한 사실은 아합 이후 이스라엘보다 군사력에 있어서 열세에 있던 유다가 에돔과의 승리로 인하여 아마샤가 교만해졌음을 암시하고 있는(10절) 본문을 통해서 더욱 증명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대변하자. -
문자적으로는 '낯과 낯을 마주 대하자'라는 의미로 선전 포고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아합 이후 유다는 계속해서 북이스라엘의 기세에 눌려 지냈는데 이제 아마샤는 요아스에게 정식으로 같은 지위에서 지내자고 도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마샤는 단순히 정치적인 담화를 원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군사적인 충돌을 피할려고 했던 것 같다(대하25:17).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그것을 정식 선전 포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Hobbs).
9.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본절에 나오는 우화는 과거 요담이 세겜 사람들에게 말한 우화와 아주 비슷하다(삿9:7-15).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유나 우화는 일상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를 취하여 교훈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문학의 한 표현 형태이다. 한편 여기서 가시나무는 유다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갑자기 교만해져서 백향목에게 딸을 달라고 하는 요구는 당시 동등한 신분간이라야 성사될 수 있었던 결혼 풍습에 비추어 볼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는 비천한 신분, 불신앙(사32:13-15), 심판(호2:6), 고난(잠26:9)을, '백향목'은 의인의 번영(시92:12), 아름다움(아1:17)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왕상5:9-11). 그리고 우연히 지나가던 레바논의 들짐승들에게 이 가시나무가 짓밟히고 말았는데 이것은 가시나무인 유다가 백향목인 북이스라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 멸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러한 요아스의 비유가 유다의 아마샤의 비위를 매우 상하게 했을 것이다.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본절은 유다가 가시나무와 같이 교만하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마샤의 도전을 순전히 그의 교만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군사들이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3천명의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노략한 것(대하25:13)에 대한 일언 반구(一言半句)의 사과도 없는 요아스의 태도에 대해 아마샤는 더욱 분개하였음이 틀림없다. 한편 본절에게 '마음이 교만하였으니'라는 말은 '네 마음이 너를 치켜 올렸다'라는 의미로 교만케 된 아마샤의 심적 태도를 잘 나타내준다.
스스로 영광을 삼아. -
문자적으로는 '영광을 받아라', 혹은 '그 영광으로 만족하라'는 의미이다. 이는 '네가 에돔으로부터 얻은 명성으로 만족하라'(Keil & Delitzsc-h), 또는 '네가 얻은 것으로 자랑을 하고 다른 것으로 위험을 부르지 말라(Rawilnson)는 것이다.
화를 자취하여. -
문자적으로는 '당신은 어찌하여 불행을 초래하려고 하는가!', 혹은 '고통이나 전쟁에 끼어들려고 하는가!'이다.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
화해적인 의미가 아니라 도발적인 의도를 내포한 듯한, 그리고 아마샤를 우롱하는 듯한 소식을 들은 아마샤가 요아스의 경고를 들었을리가 만무하다.
요아스가 올라와서. -
아마샤의 선전 포고를 들은 북왕국의 요아스는 아마샤가 공격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B hr) 오히려 남왕국으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그곳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한편 본절에서 '올라갔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어근 '아라'(*)를 번역한 것으로 '오르다','출발하다','깨어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요아스의 군사가 행군한 지리적 상황을 반영함과 동시에 요아스가 먼저 진영을 갖춰 출발했음을 반영한 말이다.
벧세메스. -
수19:38에 의하면 벧세메스는 유다 땅으로 '태양의 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땅은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헤브론에서 욥바로 가는 도로상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오늘날의 '아인 셈스'(Ain Shems)와 동일한 곳이다. 한편 요아스가 이 곳으로 올라간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유리한 장소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공격하기에 매우 험난하고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벧세메스의 고지와 부근에 있는 소렉(Sorek)계곡은 유다의 중심부를 치는데 매우 유리한 위치가 되기 때문이다(Hobbs). 한편, 이곳은 납달리 자손들에게 할당된 성읍이다(수19:38).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유다가...패하여. -
대하25:20에 의하면 아마샤가 패한 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다.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
문자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그 장막으로 도망했다'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군대가 패배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역사서의 전형적인 표현이다(삼상4:10; 삼하18:17; 왕하8:21).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이후(B.C.931;왕상11:43-12:20) 처음으로 발생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간의 전쟁이었다. 한편 베가와 아하스 시대에도 또 한번 이러한 전쟁을 치루었는데(대하28:6-8), 그 때에는 유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참패했었다.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아마샤를 사로잡고. -
북왕국의 공격에 의해 아마샤의 군대가 모두 도망감으로 인해 아마샤는 요아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후에 아마샤가 모반자들의 공격을 받게되는 중요한 한 요소가 된다(Hobbs).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
'에브라임 문'은 다른 말로 '베냐민 문'이라고 불리웠는데(렘37:13; 38:7; 슥14:10), 이 문은 예루살렘 성읍 북쪽에 위치해서 베냐민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으로 통하는 통로가 되었다. 또한 '성 모퉁이 문'은 옛 성벽의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하였는데(렘31:38; 슥14:10) '다마스커스 문'의 서쪽이 이에 해당된다(B hr, Rawilnson). 그 뿐만 아니라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해 언급된 '탑'이 놓여 있는 자리가 곧 '모퉁이 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 모퉁이 문은 후에 아사랴(웃시야)에 의해 더욱 견고하게 되었는데(대하26:9) 느12:38-43에서 언급된 성벽 보수 공사에서는 이상하게 이러한 사실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 또한 느헤미야서에서 보면 성벽에는 약 13개의 문이 있었으며(느3:1-31; 12:31-39; 슥14:10) 이쪽 문에서 저쪽의 다른 문까지는 보통180m-270m 정도였다고 한다(Rawilnson). 이것을 당시 수치로 표현하면 약400규빗이 된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성벽은 후일 히스기야 왕에 의해 기존 성벽보다 조금 북쪽에 다시 건립되었다(대하32:5). 그래서 새로 건립된 성벽이 '제 2성벽'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이 벽은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하여 다시 좀더 북쪽에 건립되었는데 이것을 '제 3성벽'이라고 칭한다(G. A. Smith). 한편 유다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마샤가 요아스에게 포위당함으로 인해서 유다 군대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루살렘 성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에 의하여 이같이 비참한 약탈과 파괴를 당했다고 한다. 한편 요아스가 성을 헌 것은 성을 점령했다는 외형적인 표시로서 나타낸 것이다(B hr).
14.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본서의 기자는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 왕 요아스 시대에 성전 보물을 뇌물로 받아갔던 일(12:18)과 함께 북왕국 요아스가 성전 약탈을 한 사실을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볼모로 잡아가지고. -
'볼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네 하타아르보트'(*)는 '교환하다', '담보로 주다'라는 뜻의 어근 '아라브'(*)에서 파생한 말로 문자적으로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아들'(Vulgate, obsides)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파생형 단어는 본절에서와 병행구인 대하25:24에서만 나타난다. 한편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에는 포로된 왕을 놓아 주어 자유를 주는 대신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에는 아마샤 왕을 놓아주지 않고 그를 볼모로 잡아갔다(13절). 그래서 아마샤는 여호아스(요아스)가 죽은 후 15년간 생존했고, 유다에 돌아와서 그 15년 동안을 다시 다스린 것이다(17절).
15.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권력과 또 유다 왕 아마샤와 서로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 구절들은 13:12,13절과 그 내용 뿐 아니라 서술 방법이 거의 일치한다. 한편 요아스의 죽음과 사적에 대한 기록이 두번씩 반복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와 유다의 아마샤와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한것(17절)으로 보인다(B hr). 왜냐하면 17절에서 요아스의 죽음 후에 아마샤가 15년을 더 생존한 사실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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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기쁨, 심판, 아름다움,
영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심, 의인의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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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자. 다윗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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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뜩 최근에 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어떤 일을 했다는 마음이 계속 든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저의 마음에도 평안을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다.
다윗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옳은 말씀의 길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령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J2HDAHocig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3)
주님을 선생으로 먼저 생각하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에 불과하시다면 그분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기준을 세워 놓고 약을 올리는 것입니다. 내가 도무지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르는 것이 훨씬 행복할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마 5:8), 내 의무보다 더하는 것, 하나님께 완벽하게 헌신하는 것 등, 우리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주시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주님의 가르침이 내게 진정한 의미가 있으려면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상수훈은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 이상밖에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기만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내가 주께서 가르치신 대로 될 수 있도록 나를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구속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을 주관했던 그 심성을 누구에게나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삶의 기준들은 이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로 주어진 것입니다.
산상 수훈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좌절을 가져다줍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바입니다. 우리가 교만에 빠져 자기-의(Self-righteous)에 속아서 주님의 가르침을 수행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난관을 만나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자신이 영적 거지임을 깨닫게 되면서 주께 나아가 손을 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첫째 원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가난이지 풍요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결정에 의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의식하며 자신이 완벽한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마 5:11) 이것이 바로 왕국의 입구입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난함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영적 전선으로 이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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