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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5 : 1~12❄️교만한 지도자에게 임하는 징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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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5: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 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여로보암 이십 칠 년에. -
연대기 문제에 있어서 본절은 14:23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여로보암이 아마샤 15년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14:23) 아사랴는 그의 아버지 아마샤가 29년간 통치한 후인 여로보암 14년이나 15년에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27년으로 나와 있으니 무려 12-13년 정도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본절의 '27년'을 '15년'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절 뿐만 아니라 8, 13, 23, 27절도 함께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awilnson, Keil& Delitzsch). 그러나 이렇게 고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장 강해, '왕하 13-15장의 연대기'를 참조 하라. 한편 이 14장 강해에 의하면 '여로보암 27년'이란 표현은 그의 아버지 요아스(B.C.798-782)와 함께 통치하기 시작한 때부터 산출한 기간임을 알 수 있다.
아사랴가 왕이 되니. -
아사랴는 웃시야(B.C.791-739)라고도 불려 지는데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14:22 주석을 참조하라.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륙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오십 이 년을 치리하니라. -
아사랴는 B.C.791-767까지 약 24년간 그의 부친 아마샤와 섭정을 했다(Thiele, Mysterious Numbers). 그러므로 그가 정식으로 등극한 해는 아마샤가 죽은 해인 B.C.767년이며 그가 단독으로 통치한 기간은 약 28년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16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처음 섭정하기 시작한때의 나이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요세푸스(Josephus)도 그가 16세에 등극하여 52년간 다스린 후 68세에 사망했다고 기록했는데, 이것 역시 그가 16세에 섭정을 시작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사랴가 24년간이란 장기간 동안 부친 아마샤와 함께 섭정을 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 단지 학자들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B.C.798-782)와 싸울 때에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부친 아마샤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감 때문에 섭정했으리라 추정된다(14:1-20).
여골리야라. -
대하26:3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왕의 부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모친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능하시다', 혹은 '여호와께서 정복하신다'로 주의 전능하심과 공의로움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그녀를 '아기알라'로 칭하고 있다.
3.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아사랴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그의 부친 아마샤에 대한 평가(14:3)와 유사하다. 그런데 본서에서 유다 왕들의 치적을 평할 떼 그 기준은 항상 다윗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에 비길만한 칭찬을 들은 왕은 히스기야와(18:3) 요시야(22:2) 뿐이다. 한편 역대기기자는 아사랴, 즉 웃시야가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께 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대하26:5). 이는 그가 우상 숭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교만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임을 반영한 것이다(5절; B hr).
4.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
유다 열왕들의 치적을 평가함에 있어서 여호와 신앙에 대한 배교적인 행위를 일삼던 장소인 산당을 제하지 않는 것은 왕의 선악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왕상15:14; 22:43; 왕하12:3; 15:35). 한편 산당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1-9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절)라는 표현 뒤에 본절과 같은 말이 나옴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기의 저자는 왜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즉 대하 26장을 보면 아사랴(웃시야)가 이방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해 많은 영토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대하26:2-7) 그의 권세가 널리 알려져 그는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부왕 아마샤와 같이 자신의 능력과 힘에 돌리는 교만을 나타냈던 것이다(대하26:16).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대하26:16-18).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교만은 영적 타락을 가져와(호7:9,10) 하나님을 부인하고(시10:4) 자기 도취에 빠지게 되어(렘43:2) 결국은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잠16:18).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
아사랴가 문둥병에 걸린 것은 그의 통치 말년이기 때문에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아사랴가 문둥병자가 된 후 별궁에 거하고 있는 동안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의 일을 돌보았는데 이 때 요담은 적어도 15세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담은 왕위에 오른 때의 나이가 25세이므로(33절) 아사랴(B.C.791-739)가 문둥병에 걸렸던 기간은 10년 이하일 것이다.
별궁에 거하고. -
이방에서는 나아만의 경우처럼 문둥병에 걸렸어도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5:4).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에서의 문둥병자는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레13:46; 민5:2,3; 12:10,14,15). 그런데 아사랴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풍습 뿐만 아니라 그 병의 정도가 아주 심하여 그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격리 수용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편 '별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트 하하프쉬트'(*)에 관하여 학자들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한다(W.Rudolph, Zeitschrift fiu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p.418). 이에 대한 몇가지 해석을 살펴보면, (1)어떤 신분상의 '욕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과, (2)'장소적으로 어떤 격리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을 달리하게된 이유는 히브리어 '하프쉬트'(*)의 해석 때문이다. 즉 이 단어는 (1)'신분적 예속이나 책무 등으로부터의 자유'(출21:2,5,26,27; 신15:12,13,18; 삼상17:25)라는 뜻과, (2)'공간적인 분리'(KJV, RSV, NIV)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로니(Aharoni, Biblical Archaeologist, p.116-117)는 아사랴 왕이 예루살렘에서 약5km정도 떨어진 라맛 라헬(Ramat Rachel)에 있는 굴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를 긍정적으로 볼 때 '별궁'의 의미는 (1)과 (2) 둘 다 동시에 수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둥병자들은 성 밖에 따로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레13:46). 그리고 왕이 격리된 상황 내면에는 왕에 대한 '욕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왕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성 밖으로 추방되지 않고 그를 위한 특별한 장소가 마련되었을 것이다(B hr). 한편 아사랴의 이런 저주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죄 가운데서 고독하게 사는 인생들에게도 적용된다. 왕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지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 가운데서 살았던 아사랴와 같은 인생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육체적으로 안락하다 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롬2:9). 왜냐하면 죄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눅16:19-31).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
섭정 왕 요담은 명목상으로 왕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사(國事) 전반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리고 요담은 이때 섭정을 시작해서 웃시야(아사랴)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왕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모든 행한 일. -
앗수르 왕 다글랏 빌레셀의 원정 기사에 보면 그의 통치 3년(B.C.743년, 혹은 742년)에 앗수르 군주가 '야우다아사랴우(Azaryau of Iauda)'로부터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Luckenbill). 어떤 학자들은 여기에 나타난 이 인물을 아사랴 왕과 동일인으로 생각한다(Montgomery), 그러나 성경에서는 유다 왕이 그의 오랜통치 기간 동안에 앗수르의 속국으로서의 예를 행했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아사랴가 원정을 갔던 곳은 앗수르와 접한 북쪽을 제외한 유다의 남서방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대하26:6-15). 더욱이 오늘날 아사랴우가 북쪽 아랍에 있는 야유다(Iauda)의 아사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공물을 바친 인물이 아사랴가 아님을 더욱 확증해 준다(Herrmann, History, p.246).
7. 아사랴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
이사야서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를 선지자 이사야가 부름 받은 해와 일치시켜 기록하고 있다(사6:1). 한편 역대기 기자는 본절의 언급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웃시야가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대하26:23) 그가 문둥병에 걸린 채로 죽었음을 나타내 준다. 즉 그는 문둥병자였기 때문에 열조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열조들의 무덤곁에 묻힌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Josephus)도 아사랴가 단순히 자신의 땅에 홀로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역대서의 기록과 본절의 기록은 모순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 2성전에 있는 아람어 비문을 보면 아사랴(웃시야) 왕의 뼈들을 후에 왕의 묘실로 이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두 기록의 모순점을 해결해 준다(Y.Yadin, Jerusalem Revealed).
요담이...왕이 되니라. -
여기서 사용된 동사 '이믈로크'(*)는 5절에서 '다스리며...치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페트'(*)와는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이는 히브리어 '마라크'(*)에서 온 말인데 그 의미는 '다스리다', '보좌에 오르다', '참으로 왕이 되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절에서는요담의 섭정을 지칭하는 것임에 반해 본절에서는 그가 실제적인 왕이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본서의 연대기 문제를 해결할 때는 이러한 동사의 사용에 주의해야할 것이다(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195).
8. 유다 왕 아사랴의 삼십 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여섯달을 치리하며
이사랴의 삼십 팔 년에. -
여기서 말하는 '아사랴의 38년'이란 그의 부친, 즉 아마샤(B.C.796-667)와 함께 섭정한 24년을 합하여 계산한 것이다. 이러한 연대기 문제에 대해서는 14:23-29 강해, '왕하13-15장의 연대기'를 참조하라.
스가랴가...왕이 되어. -
여기에 나오는 북왕국의 왕 스가랴(B.C.753-752와 대하26:5에 나오는 스가랴 선지자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스가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경건한 뜻을 가지고 있으나 6개월 동안의 그의 치적을 살펴보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결코 떠나지 않았음을 알 수있다(9절).
9. 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은 백성의 종교심을 묶어 놓기 위해 우상 정책을 쓴 장본인이다(왕상12:25-33).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징벌로 말미암아 재위 22년에 죽고 그 아들 나답도 재위 2년 만에 죽고 만다(왕상14:13-20; 15:25-28). 특히 그가 만든 금송아지 우상은 매우 가증스러운 것이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왕상12:28-33). 그래서 그후부터 그는 금송아지 우상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편 스가랴도 단(Dan)과 벧엘(Bethel)에서 송아지 숭배를 했기때문에(Wycliffe, Keil & Delitzsch)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저를 모반하여 백성 앞에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야베스의 아들 살룸. -
여기서 아베스는 인명이 아니라 지명(地名)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살룸이 요단 동편의 야베스-길르앗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Hobbs). 그리고 이쉬다(Ishida)의 논문(Royal Dynasties, p.173-176)을 보면 그 당시 요단 동편 지역(Transjordan)과 서편 지역(Thiele). 따라서 살룸이 스가랴를 모반한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에 의하면 살룸이 스가랴의 친구였으나 왕위 계승 문제로 스가랴를 죽였다고 한다(Rawilnson, B hr). 그리고 본절에 언급된 지명 야베스는 오늘날의 '야습'(Yasuf)에 해당되는 곳이다(Gray).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
본절의 '백성 앞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발 암'(*)의 해석에 대하여 학자들에 따라 그 견해가 아주 다양하다. (1)대다수의 중세 맛소라 사본에는 그냥 한 단어로 '카발암'(*)으로 쓰여 있으며 70인역 바티칸 사본(Septuagint; G MS, Codex Vaticanus)에도 '케블라암'(*)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2)맛소라 사본(Masoretic Text)과 다른 헬라어 역본에는 '백성들 앞에서'(*, 카테난티 투 라우)로 기록하고 있으며 KJV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3)루시니안 헬라어 역본(Septuagint;Lucianic recension)에는 '엔 이블라암'(*)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것을 옳게 보고 있다(T.R. Hobbs, Word BiblicalCommentary, Vol. 13, p.195-196). 그리고 학자들이 그렇게 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히브리어 '카발암'이라는 명사에 대해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2)이것이 '백성들 앞에서'라는 뜻의 '카발 암'(*)이라면 '백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거나 아니면 이 단어가 부사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부사로 볼 때 문맥상 잘 어울리지 않는다. (3)따라서 '카발암'은 9:27에 나오는 '이블르암'에 대한 오기(誤記)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블르암'은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의 칼을 피해 도망하다가 시해된 곳이다(9:27). 그래서 스가랴는 아하시야가 죽은 그곳에서 처형당했다고 본다. 한편 본절의 표현을 (2)의 경우와 같이 보는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사형시켰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Vol. III, p.389; Wycliffe). 그런데 스가랴를 공개 처형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동요하거나 복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죄악성과(Wycliffe) 스가랴의 행악을 잘나타내 준다.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대까지 이르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본절은 10:28-31에 기록된 예언에 대한 성취 부분이다. 이와같이 예언의 성취를 언급함으로써 본서 기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각시키고 있다.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 대까지 이르리라. -
북쪽 이스라엘 건국 이래 가장 강력한 종교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예후다(10:15-27). 그러나 그도 다른 이스라엘 열왕과 같이 여로보암이 범한 금송아지 숭배의 길에서는 떠나지 않았다(10:29).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예후 왕가가 지속되지 못하고 예후 이후 4대째만에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였다(10:30).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적인 예언은 스가랴가 즉위한지 6개월만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적인 사실은 예후가 하나님 앞에서 어느 정도 신실하게 행하였으므로, 4대(代) 8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후 한 사람의 적은 선행을 기억하시고(갈6:7-10; 히10:24) 그의 자손들에게 복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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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전능, 공의, 정복, 심판,
기억하시는, 예언, 복 주시는,
주권, 역사, 주관하시는,
예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겸손, 하나님과의 교제,
경건, 선행, 신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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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신앙에 대한 배교적인
행위를 일삼던 장소인 산당을
제하지 않는 것은 왕의 선악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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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킨다.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인가 스스로를 점검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선한 양심을 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날마다 기도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경건을 통해 정결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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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 (2)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린도 전서 1:30)
살려야 하는 쪽: 거룩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이 내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거룩은 점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거룩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깨닫는 순간에 즉시 되는 것입니다. 성화는 예수님의 거룩이 나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의 경이로운 비밀은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함이 나의 부패한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골 1:27) 즉 주님의 놀라운 생명이 내게 부여된 사실이 거룩이요, 이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선물로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신 속에서 거룩이 실제가 되도록 하나님의 역사를 허락하시겠습니까?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qualities)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내, 주님의 사랑, 주님의 거룩, 주님의 믿음, 주님의 순결, 주님의 경건… 이 모든 주님의 품성들이 정결하게 된 영혼의 내면 안에 부여되어 그 영혼을 통하여 외부로 드러납니다. 거룩이란 주님께로부터 거룩하게 될 수 있는 능력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나타났던 거룩을 주님께로부터 받아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룩은 부여(impartation)받는 것이지 모방(imitation)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방은 거룩과는 전혀 다른 선상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합니다. 거룩의 신비는 예수님의 모든 완전하심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디지만 확실하게 “하나님의 지키시는 능력에 의해” 질서 있고 건전하고 거룩한 신령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벧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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