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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열왕기하 15 : 13~26🍑계속되는 반란과 악행, 어두운 미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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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5:13. 유다 왕 웃시야 삼십 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달을 치리하니라
살룸이...한 달을 치리하니라. -
이와 같이 살룸이 한 달 밖에 왕위에 있지 못한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정국이 얼마나 불안정했는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 즉,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통해 인간의 부질없는 권력욕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백성들의 의사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서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이러한 자리는 아침이면 사라질 안개와도 같은 권력인 것이다(약4:14).
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가디의 아들 므나헴. -
'므나헴'(*)이란 이름은 '슬퍼하다', '후회하다', '위로받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나함'(*)의 피엘형(Piel:강조형 능동) 분사 형태로서 '위로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장군', 혹은 '총사령관'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자인 듯하다(Josephus, Keil & Delitzsch), 그런데 그가 살룸에 대한 반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1)이스라엘 왕국은 '군사 군주제'(military monarchy)이다.
(2)살룸 또한 왕위 찬탈자이다.
(3)예후왕가가 멸망했기 때문에 왕위는 군대 장관에게로 돌아가야 한다(Wycliffe, p.354). 한편 '가디의 아들'이란 가디가 그의 출신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아버지의 이름이 '가디'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가디'라는 이름은 '가디야후'(Gaddiyahu)의 단축형으로서 주로 사마리아 지역에서 발견되던 인명(人名)이다(Gibson).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
요세푸스(Josephus)가 전하는 유대 전승에 의하면 므나헴은 스가랴의 군대를 이끌고 살룸에게 보복했다고 한다(Hobbs). 한편 이것은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그가 므낫세 지파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파 간의 전쟁이 치열했다는 논증의 좋은 증거가 된다.
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본절에서 살룸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록 그의 통치가 짧은 기간 동안이기는 하지만 그의 통치는 합법적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치세가 공식적으로 역대 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역대 지략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딥사. -
왕상4:24에 따르면 '딥사'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한 성읍이다(Keil &Delitzsch, Rawilnson). 그러나 일부의 학자들은 므나헴이 그곳까지 정복의 손길을 뻗쳤다고는 보지 않는다(B hr). 그래서 본절에 언급된 '딥사'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딥사(Thapsacus)가 아니라 '디르사 근처에 있는 딥사'라고 주장한다(Septuagint; Lucianicrecension)에도 '딥사'가 '타푸아'(Tappuah)로 수정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견해를 옳다고 본다(Hobbs). 그리고 수16:8에 보면 '타푸아'(답부아)는 북쪽 에브라임지경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이곳은 디르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여로보암 2세가 정복하여 되찾은 북방 경계선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14:25,28) 그 지역을 이스라엘 땅으로 수호하기 위하여 므나헴이 원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Ishida). 그러나 '성문을 열지 않았다'는 본절의 표현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므나헴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음을 보여 준다(B hr).
아이 벤 부녀를 갈랐더라. -
이와 같은 잔인한 행위는 고대 근동의 전쟁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의 승리자들은 그렇게 하는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한 것 같다. 한편 '갈랐더라'는 말은 히브리어 '빅케아'(*)인데 이는 '갈기갈기 찢다'란 뜻의 '바카'(*)에서 온 말이다. 즉 이것은 임신한 여인의 몸을 칼로 난도하는 모습을 회화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들의 잔인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잔인한 풍습에 관해서는 8:12과 사13:18; 호13:16; 암1:13을 참조하라.
17. 유다 왕 아사랴 삼십 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년을 치리하며
아사랴 삼십 구 년에. -
이 부분의 연대기 문제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를 참조하라.
1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므나헴(B.C.752-742)의 행적에 대한 본절과 같은 주석은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즉 이러한 방식의 기술과 표현은 북이스라엘의 말기에 와서 규칙적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
9절에 나타난 표현과 마찬가지로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일삼았음을 나타낸다. 특히 우상 숭배 중에서도 금송아지 숭배에 의한 죄악을 범했을 경우에 이렇게 표현했다(왕상12:28-30). 그리고 이러한 말은 북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으로부터 멸망의 전조가 나타나는 말기까지 대부분의 열왕들이 악한 왕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평생.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콜야마이우'(*)인데 그 뜻은 '그의 모든 날들 중에'란 의미이다. 그런데 BHS(Bibkis hebraica stuttgartensia)의 본문 비평에는 이것을 '베야마이우'(*)로 수정하여 18절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단어를 19절의 초두에 위치시키고 있다. BHS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19절에 접속사가 없기 때문에 문장 구성상 매우 어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본다면 19절은 '그의 때에 앗수르 왕 불이...'로 되어 자연스럽게 된다. 그러나 맛소라 본문의 이 단어는 특정한 사람의 생애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용어이므로 그러한 수정을 억지라고 볼 수 있다(Hobbs).
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앗수르 왕 불이 와서...치려하매. -
앗수르 왕 '불'(Pul)의 정체에 대해서는 바벨론 열왕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를 보면 '불'왕은 바로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III세; B.C.745-727)과 동일 인물로서 그는 바벨론을 2년간 지배했었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바벨론식으로 붙여진 이름이 '불'인 것이다. 또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을 보면 앗수르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으로부터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를 더욱 뒷받침해 준다(Luckenbill). 그리고 북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앗수르에 공물을 바친 때는 B.C.743년 쯤으로 디글랏 빌레셀 제 3년에 해당하는 것 같다(Thiele). 한편 앗수르의 불 왕이 사마리아에 온 것이 침략인지 아니면 므낫세의 초청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견해가 다양하다. 그런데 이렇게 견해를 달리하게 된 것은 '와서...치려하매'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의 해석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을 (1)침략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쓰일 수 없다고 보는 반면에(Hobbs), (2)다른 사람들은 이 단어가 침략을 표현하는 경우로 쓰인 예가 있다고 보아(창34:25) 이를 침략을 나타내는 행위로 본다(B hr). 그러나 본서 기자는 침략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주로 '알라'(*)를 썼으며(6:25; 12:17; 17:3,5), 본절에 나타난 것과 같은 '바'(*)를 쓰지는 않았다. 따라서 불 왕이 온 것을 '침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므나헴의 초청에 의한 것인지(Thenius) 므나헴을 정당한 왕으로 인정해 그를 왕위에 앉히기 위한 것인지(Ewald)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한편 성경에서는 본절에서 최초로 앗수르 제국에 대한 언급을 함으로 인해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팽창하는 과정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Wycliffe).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앗수르 왕 불 왕위를 찬탈하여 제국을 새롭게 부흥시킨 자였다. B.C.743년이거나 B.C.738년에 일으킨 디글랏 빌레셀의 전쟁은 북이스라엘에게까지 파급되어 므나헴에게서 공세를 내게 했다. 앗시리아 왕에게 공세를 바침으로써 므나헴은 앗시리아 통치자의 신복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디글랏 빌레셀이 바벨론 왕이 되었을 때 므나헴은 '불루'라는 이름을 얻었다(바벨론 왕 명부에도 그렇게 기록되었음).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므나헴'보다도 그의 바벨론식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은 일천 달란트. -
드라크마(Drachma)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눅15:8)이라고 할 때 은 한 달란트(Talent)는 약 6,000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돈이다(출38:27; 마18:24). 그렇기 때문에 은 일천 달란트라고 하면 6백만 드라크마이다. 노동자 하루 품삯을 약 2만원으로 계산할 때 이는 약 1,200억원에 해당된다. 이처럼 많은 돈을 주고 므나헴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시켰던 것이다.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하여. -
므나헴이 앗수르 왕에게 많은 공물을 바친 것은 요단 동편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해 주도록 부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공은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25절). 한편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조공을 주어 자신의 불안정한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의 행위는 성전의 은과 금으로 전쟁에서 벗어나려했던 남유다의 아사(왕사15:18), 아하스(16:8), 히스기야(18:15)에 버금가는 악행이었다.
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토색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체'(*)는 '나가다'라는 뜻의 동사 '야차'(*)의 히필형(Hiphil:사역형 능동)이다. 그래서 '세금을 징수하다'라는 뜻의 동사 '에리크'(*)와(23:35)는 다르다. 그리고 이 단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나오게 하다'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므나헴이 어마 어마한 돈을 세금으로 징수한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동원하여 부자들에게서 돈을 빼앗은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자기 동족 중 딥사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를 정도로 잔인했던 므나헴은(16절) 바닥난 재정을 메우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부자들에게 토색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매우 심각했음을 의미한다. 사회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악한 통치자와 관원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지만 선한 통치자와 관원은 자기 것을 희생해서라도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한편 므나헴은당시 정치와 경제의 지주였던 부자들에게서 토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바, 공의를 행하기 보다는 자신의 배만 채우고자하는 불한당같은 지도자에 불과했다. 어느 나라든지 지도자들이 이런 상태에 빠져 있으면 결코 부흥될 수 없다. 성도들은 이 같은 지도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입각하여 통치를 하도록 권면하여야 한다.
은 오십 세겔. -
은 한 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에 해당된다(출30:24; 삼하24:24). 그렇기 때문에 은 오십 세겔은 200일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품삯이다. 만약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2만원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400만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런데 은 오십 세겔로 은 일천 달란트를 만들려면 3만명 정도의 사람에게 강제로 거출해야 했을 것이다.
21.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 므나헴이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3. 유다 왕 아사랴 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치리하며
브가히야. -
'브가히야'(*)라는 이름은 '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파카흐'(*)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눈을) 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B.C.742-740) 역시 2년 밖에 통치하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북왕국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한편 그의 2년 동안의 통치는 아사랴(B.C.791-739)의 마지막 2년과 부합된다(Thiele, MysteriousNumbers, p.73-74)는 혹자의 주장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그 장관.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리쇼'(*)는 '그의 장관'이란 뜻으로 23절의 브가히야와 연결되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은 '브가히야의 장관'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사람을 '천부장'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사람을 '전속 부관'이라고 한다(Keil & Delitzsch).
베가. -
이 이름도 '브가히야'와 같은 어근인 '파카흐'(*)에서 파생하였다. 그런데 하조르(Hazor)에서 발견된 그의 비문에는 그의 이름이 '페가 삼다르'(*)로 기록되어 있다(Y. Yadin). 한편 본절에서 '르마랴의 아들 베가'라고 표현한 것으 베가 보다도 그의 아버지 르말랴가 당시에는 더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사7:4; 8:6)인 듯하다(Rawilnson). 그리고 호위대의 대장이었던 베가가 왕을 반역하였다는 것은 그 군대의 기강이나 충성심이 얼마나 해이(解弛)해졌는지를 잘 나타내 준다(Wycliffe).
왕궁 호위소에서. -
이것은 왕궁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요새' 또는 '높은 망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반대로 이곳에서 왕궁을 공격하기는 매우 용이했을 것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브가히야 왕은 베가에 의해 살해되기 전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아르곱과 아리에를. -
여기서 대부분의 역본들은 이 구절을 생략하거나 29절에 삽입시킨다. 왜냐하면 아르곱은 신3:4,13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요단 동편 상부에 위치한 지역의 지명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이것이 불확실하게 나타나 있어서 아르곱과 아리에가 인명(人名)인지 지명(地名)인지 의문을 남겨준다. 만약 두 이름이 인명(人名)이라면, 이들은 베가와 함께 공모한 사람들이었는지 또는 브가히야와 함께 살해된 사람들이었는지 결론지을 수 없다. 1886년 쉬타데(Stade)는 맛소라 사본의 아르곱과 아리에라는 어구가 25절과 가까운 29절에 대한 주석이었다고 시사한 바 있다. 이는 '길르앗'이 두 절에 나오기 때문에 필사자가 실수하여 이 두 지명의 주석을 29절 대신에 25절에 포함시킨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아르곱은 '60개의 성읍'을 포함하는 옥의 나라 바산에 있었던 지방이지만(신3:4,113,14;왕상4:13), 길르앗(왕상4:13; 민32:40; 삿10:4; 대상2:22)에 속해 있는 '야일의 고을들'(하봇)과는 구별된다. 아르곱의 위치는 신3:4,13,14에 의해 정해져 있는데 그 서쪽 변경에는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영토(즉, 오늘날의 골란 고원)가 있다. 한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를 인명(人名)으로 간주하고 이 사람들을 왕의 친구들로 추측한다(Rawilnson). 그 뿐만 아니라 권위있는 일부 학자들도 이를 인명으로 보고 이 사람들을 '고관'으로 생각한다(B hr, Keil & Delitzsch, Vol.III, p.393).
길르앗 사람 오십 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
길르앗 사람들은 건장했기 때문에(대상26:31; 수17:1) 왕의 호위를 맡아서 담당했다. 특히 그들은 베가의 명령을 받는 전속부관, 즉 장관의 명령을 받는 직속 부하였다. 한편 혹자는 본절의 표현을 부정하고, 대신 길르앗 50명이 베가를 도운 것으로 이해한다(Keil & Delitzsch, Vol.III,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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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뜻, 공의, 정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통치자/지도자,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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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회개하지도 않자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과
백성들을 착취하는 어려운
일이 계속 생겨났다.🩸✝️
🌱🌿🌳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과 사람에 의존하다 보면 사망의 길에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말씀의 순종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희생과 정의를 위해 서로를 권면하는 용기와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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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Disposition)과 행동(Deeds)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주님 제자의 특징은 어떤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라면 무엇을 하던 동기가 선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에 의하여 선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을 능가하는 유일한 것은 선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삶의 주권을 주께 맡기는 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하는 새로운 유전형질(heredity)을 넣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가 나의 제자라면 너의 삶이 의로워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마음의 동기도, 소망도,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들도 의로워야 한다.” 당신의 마음속 동기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순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히 누가 하나님의 영원한 빛 앞에 설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지적할 만한 것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구속을 통해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성향을 넣어주실 수 있으며, 그를 갓난아기같이 순결하고 단순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만일 주 안에서 재창조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결한 상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분의 구속을 통해 착수하신 일입니다.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례와 규칙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진리들은 오직 주님이 우리 안에 새로운 성향을 넣어주실 때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가장 놀라운 경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전형질을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성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성의 근원을 바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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