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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16 : 1~9🍑위기 상황에서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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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6: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 칠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베가 십 칠 년에 -
몇몇 주석가들은 루시니아 중세 사본(Septuagint ; Lucianicrecension)을 근거로 해서 본절의 17년을 19년으로 수정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또 다른 주석가(McHugh)는 이것을 단 7년으로 계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전체 연대기에 맞추어 계산한 것으로 보여 흥미롭긴 하지만 역시 본문 기록의 당위성을 생각해 볼때 긍정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18:9 주석 참고). 한편 이러한 연대기적인 난제는 14장 주제 강해 '왕하 13-15장의 연대기'와 15장에서 다루어진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을 보다 참조하라.<15:32 주석 참조>.
아하스가 왕이 되니 -
'아하스'가 디글랏 빌레셀의 연대표에 보면 '야우하지'(Yauhazi)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아하스'라는 리브리어 이름을 앗수르 식으로 표현해서 그런 것 같다(Luckenbill). 한편 유다의 모든 왕들에 대한 사적을 소개할 때는 반드시 모친의 이름이 소개되는데 반해 본절의 아하스와 여호람(8:16, 17)만이 모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특이하게 보인다<12:1 주석 참고>.
2.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십 세라...십 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
단순히 본절을 이해할 때 아하스가 20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치리하였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36세가 된다. 그런데 18:2에 보면 그의 후계자 히스기야(B.C. 728-687)가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가 25세였다. 그렇다면 아하스는 11세에 자기 아들 히스기야를 낳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본절에 나타난 연대기적인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보는 견해가 있다.
(1) 아하스의 통치 연대를 B.C. 735년부터 716년까지 약 20년 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J. Bright, Albright). 이같이 보는 이유는 히스기야 14년인 B.C. 701년에 산헤드립이 유다를 쳐들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아하스는 B.C. 716년에 죽은 셈이 되고 그때 나이가 40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하스(B.C. 735-716)가 15세에 히스기야를 낳은 셈이 되어 어느 정도는 가능한 것이다.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단시 근동에서 유행했던 조혼(早婚)제도를 들 수 있다. 즉 당시의 동양에서는 남자가 12, 13세, 여자가 10, 11세에 결혼하는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유다 왕국에서는 전혀 그런 예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다(Keil & Delitzsch, Vol. III, P. 398-399).
(2) 아하스와 그의 아버지 요담이 섭정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Thiele, Gray, Meer, Hobbs). 즉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한 B.C. 733년부터 두 사람이 섭정을 했는데 이때의 나이가 20세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섭정이 4년정도 계속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아하스가 단독으로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24세였고 그때부터 16년간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러한 섭정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한편 70인역(LXX), 수리아역(Syrica), 아람역(Arab.) 등에서는 아하스의 나이를 20세 대신에 25세로 기록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위의 견해에 긍정함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
이와같이 왕의 사적을 다윗과 비교하는 것은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간에 그리 흔하지는 않는 일이다.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B.C. 913-910)은 부정적으로(왕상 11:4 ; 15:3), 아사와 요시야는 긍정적으로(왕상15:11 ; 왕하 22:1, 2) 다윗의 행적에 비교되었다. 그리고 아마샤는 (14:1-5) 다윗과 같지는 않았으나 그에 상당하는 칭찬을 받았다. 한편 열왕들의 사적을 다윗과 비교하는 것은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과 그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다(왕상 11:34). 물론 다윗도 이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 범죄한 적이 있었다(삼하 11:1-27 ; 24:1-9). 그러나 그는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회개를 함으로(삼하 12:13 ; 24:10 ; 시 51편) 하나님께 그 죄과를 용서받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성왕(聖王)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일 열왕들을 평가하는 기준 근거가 된 것이다.
3.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
이와 유사한 평을 받은 유다 왕은 여호람이다(8:18). 여기서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대하 28:2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라고 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그 뿐만 아니라 역대기에서는 '부어 만들고'라는 표현을 첨가시킴으로 인해 그들이 숭배한 우상이 금송아지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혹자는 이 우상이 바로 그들이 고안해 만든 '송아지 우상'이라고 밝힌다(Keil & Delitzsch). 그러나 혹자는 이를 송아지 숭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아하스가 아합과 아하시야와 같은 악한 행위를 했을 뿐이며 베니게인들의 우상을 재도입했다고 주장한다(Rawlinson, Bahi).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대 왕들 가운데서 이와 같이 이방 종교와 섞인 혼합주의(syncretism)를 처음으로 제창한 왕은 아합이다(왕상 16:30-33). 그런데 아하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이방의 우상 숭배법을 혼합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14, 18절).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하스가 행한 우상 숭배는 금송아지를 우상화한 것 뿐만 아니라 이방 종교를 영입한 듯하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우상 숭배 행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그곳에서 유행했던 풍습인 듯하다(M. Cogan).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본절은 분명히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한 것 중에서 그 한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열왕이 이방인의 이런 풍습을 따랐다는 기록을 없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아하스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자기 자식을 희생 번제물로 바쳤다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Antiquities of the Jews, Vol. IX,p. 243). 한편 성경에서는 몰록에게 자식을 바치는 일을 경고한 곳(레 18:21 ;20:1-5)이 있는데 이것은 인신제사가 우상 숭배의 행위에서 벌어지는 예식의 일부분뿐만 아니라 풍조이기 때문에 엄정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신 18:10에서 또 한번 이를 경고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엄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 있어 예식이 벌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알 수 있게 한다.
(1) 이것은 신명기적 입장에서 본 왕의 배교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는 견해가 있다(Hobbs). 그러나 미 6:7 ; 렘 7:31 ; 19:5 ; 32:35 등에서는 분명히 아들을 불 속에서 태우는 것을 언급하고 있어 그것이 단지 상징적이라는 견해는 타당치 못한 것 같다. 더욱이 미가 선지자(B.C. 735-716)를 전후로 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므로 그들의말은 당시에 이런 행위가 직접적으로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의 예레미야 선지자(B.C. 627-580)나 이스라엘 선지자(B.C. 593-570)도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해서 증언한 것이다(겔 16:21).
(2) 이것은 직접 아이를 죽여 불로 태웠음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 B hr, Eusebius, Wycliffe). 이 견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긍정하는 것으로 오늘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단지 불로만 통과케하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의식적인 해석은 부정케 된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측면에서이 사실을 보는 견해는 이 행위가 정결케 하는 불침례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본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이러한 인신 제사는 아하스 뿐만 아니라 므낫세(21:6)도 범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인신 제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것은 본장 주제 강해 '몰록 종교의 인신 제사'를 참조하라.
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
이런 표현은 신명기서와 본서 뿐만 아니라(신 12:2 ; 왕상 14:23) 예레미야서(렘 2:20 ; 3:6)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이렇게 근동의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예배 대상인 우상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산에서 종교 의식을 거행했다. 또한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의식에 엄숙함과 신비함을 부여하기 위해서 무성한 나무 숲 아래서 제사를드렸다(신 12:2). 아하스는 이러한 산당에서의 종교적 행위를 허용(왕상 3:2 ; 14:23; 15:14 등)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그 행위를 장려했다. 그래서 그는 통치 말기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을 폐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대하 28:24). 호 4:13에서는 이런 장소에서 행음(行淫)이 이루어졌다고 밝혀 당시의 사회상과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다. '산당'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것은 본장 주제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5. 이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니라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에 대해서는 사 7장과 대하 28장, 그리고 본서 15:37의 주석을 참조하라.
6. 당시에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
'엘랏'은 본서가 기록될 당시까지는 유다나 에돔의 소유였었다(왕상 9:26 ; 22:48 ; 왕하 14:22). 그러므로 한번도 소유한 적이 없는'엘랏'을 아람 왕 르신이 회복되었다는 말은 그 주장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져있다.
(1) '아람'을 '에돔'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Hobbs, Gray, Myers). 그리고 70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역에도 이를 '에돔'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위의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그렇다면 아람이 엘랏을 정복하여 '에돔'에게 돌려주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본절의 '회복'이란 용어는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2) '회복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헤쉬브'(*)를 단순히 '정복하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B hr). 그래서 카일(Keil)은 아람 왕 르신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이전에 먼저 엘랏지역을 '정복하였다'고 한다(Keil & Delitzsch, Vol. III, p. 401-405). 그러나 오늘날 밝혀진 고고학의 자료에 의하면 '엘랏'은 분명히 에돔의 소유였다(J.M.Myers,Albright Festschrift, p. 377-392 ; Y. Hoffmann, The Bible and Jewish History, p.76-89). 그리고 엘랏은 다메섹에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람의 르신이 이곳을 먼저 정복한 뒤에 예루살렘을 공격했다는 것은(Keil)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대하 28:17에서는 분명히 에돔인의 침략으로 유다 백성이 사로잡혀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아람을 에돔으로 고치는 것은 당연히 수정이다(Rawlinson). 그리고 엘랏을 회복하는 일에 아람 왕 르신의 공로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당시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엘랏 항구를 상실한 일은 유다에게 있어서 매우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하스는 앗시리아(앗수르)의 도움을 긴박하게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7절). 그리고 '엘랏'의 위치와 그 성읍의 기능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것은 14:22의 주석을 참조하라.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
본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엘랏은 분명히 에돔의 소유였다(Rawlinson).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선지자 이사야는 그때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진짜 적은 인근의 작은 나라들의 왕이 아니라 앗시아임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사 7:3-17). 이사야의 말은 앗시리아가 근동 전지역을 가공할 만한 전쟁이 상태로 몰아감으로써 사실로 드러났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다시 에돔과 블레셋을 통해 유다를 치도록 하셨다. 이에 이하스는 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앗시리아 왕의 군사 원조를 청하였다. 실로 아하스는 먼저 에돔과 블레셋의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도 가졌으나 동시에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자마 막으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사야의 권면을 듣지 않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취한 망령된 행동이다. 정녕 이사야가 이하스 왕에게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두려워 말라'(사 7:3-9 ; 8:5-8)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앗시리아를 의존한 것이다. 그의 이런 처사는 결국 남유다에 대한 앗시리아의 압제를 초래하고 말았다.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
아사야 선지자는 왕에게 앗수르왕과 동맹 맺는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었다(사 7:4). 왜냐하면 강대국 즉, 앗수와의 동맹은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남유다)의 종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때부터 유다는 정치적으로, 또 한 군사적으로 앗수르에 예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
이렇게 유다의 아하스는 자신을 굴욕적으로 비하(卑下)하면서까지 앗수르를 의지하여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잘못된 동기, 즉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들어 유다를 벌하시려는 것을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막아 보려는데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재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최근의 역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자국의 생존을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정책은 결코 이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8.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본절에 나타난 아하스의 이런 행위는 15:20에 기록된 므나헴의 악한 행위와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뇌물받는 것을 엄금하고 있으며 사무엘의 아들들이 바로 뇌물때문에 책망을 받은 장본인이다(삼상 8:3). 또한 신명기서의 기자는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한다'고 함으로 뇌물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주는것까지도 엄중히 경고하였다(신 10:17 ; 27:25). 이런 의미에서 볼때 아하스가 앗수르왕에게 뇌물을 바치는 행위는 결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여호와의 전'에 있던 보물로 뇌물을 삼은 행위(12:18 ; 18:15 ; 왕상 15:18)는 극심한 배교행위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1)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은금은 (가) 왕들이주변 국가를 정복한 후 승전의 기념으로 하나님께 바쳤던 헌물과(삼하 8:11, 12) (나)백성들이 낸 헌물이었기 때문이다(12:4).
(2)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은 주로 백성들의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하스는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과 백성의 세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에 사용했다. 이러한 행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잘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아하스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데에 돈을 사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본절에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을 친 것이 마치 앗수르가 유다의 구원 요청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도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앗수르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Hobbs). 이에 대한 보충 자료로서 대하 28:20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오히려 유다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에 앗수르는 이미 서방으로의 진출 정책을 실현하고 있던 중이라 유다의 요청을 구실로 삼아 쉽게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연대는 정확치 않지만 대개 사마리아를 공격하기 한 해 전인 B.C. 733년에 닷무르(Tadmor)를 선두로 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Cogan). 그 뿐만 아니라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원군 요청을 할 때 이미 디글랏 빌레셀은 게셀(Gezer)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 가까이에까지 와 있었다(W. hallo). 그러니까 앗수르는 이때 2차 원정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접근은 다메섹 정복과 함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도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앗수르의 1차 원정은 15:29, 30에서 이미 다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3차 원정은 17:3-5(호세아 5년)에 나타난다.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
앗수르의 편에서 볼 때 사마리아보다도 다메섹이 가깝기 때문에 이곳을 먼저 침공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경제적으로 부요했고, 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도 사마리아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먼저 침략을 당한 것 같다(Rawlinson). 한편 본절에서 언급된 '쳐서 취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 '이트페세하'(*)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손으로 다루다', '압도하다', '장악하다'란 의미의'타파스'(*)에서 온 용어이기 때문에 '완전히 정복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수리아(아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역사 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B.C.732).
길로 옮기고 -
길(kir)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레이(Gray)는 암 1:5을 근거로 들면서 '길'(*, 키르)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도시'라는 뜻의 일반 명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니드웨'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그 어떤 분명한 증거도 없다. 한편 암 9:7에는 '길'(kir)이 아람인들의 본래 고향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카일(Keil)은 본절의 '길'을 쿠르(kur) 강가의 한 지방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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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은혜, 명령, 법도, 경고,
말씀, 섭리,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왕(聖王), 회개, 용서,
진실함, 순종,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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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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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상황과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일을 멈추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의지하여 온전한 순종을 드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uwEQBb8O-g
청결에 대하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태복음 15:18-20)
우리는 우리의 무지를 신뢰하면서 이를 ‘순진’이라고 부르고, 순진을 신뢰하면서 이를 ‘청결’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혹독한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움츠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 끔찍한 것 중 하나라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내신 악한 것에 대하여 반감을 갖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마음에 관하여 최고 권위자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그분 말씀에는 조금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기든지, 둘 중 하나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의 꿰뚫는 말씀을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의 순진한 무지를 더 신뢰하겠습니까? 자신을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그 의식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테스트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떨게 될 것입니다. 내 안의 악과 허물의 가능성을 보며 놀라게 될 것입니다. 내가 ‘순진’이라는 피난처 아래에 머무는 동안 나는 어리석은 자의 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아직 자신이 악당이라는 사실을 체험해 보지 못했다면, 이는 당신이 겁이 많은 소심한 사람이거나 혹은 교양이라는 것 때문에 당신의 악함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서게 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향하여 내리신 진단이 옳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나 자신을 주님께 맡기면 내 마음속에 있는 끔찍한 죄악의 가능성을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청결은 나 스스로 이루기에는 너무나 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셨던 그 영이 내 생명의 중심부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곧 성령님만이 더러움이 전혀 없으신 청결한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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