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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20:12-21❄️경솔과 자만을항상 경계하십시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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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0: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닥발 라단이 -
앗수르 비문에는 부로닥발라단(Berodach-Baladan)이 '발라단의 아들'이 아니라 '야긴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야긴'(Yakin)은 그의 조부 이름이거나 왕조의 명칭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의 바벨론 왕국은 종종 '비트-야긴'(Bit-Yakin)으로 언급되곤 했다(Hobbs). 한편 이사야서는 이 왕의 이름을 '므로닥발라단'(Merodach-Baladan)이라고 표기하고있다. 그의 이름의 바벨론식 표기가 '말둑-아팔-이디나'(Marduk-apal-iddina)인 것으로 보아 이사야의 표기가 더 정확한 것 같다. 한편 이 이름의 첫 부분인 '므로닥'은 본래 바벨론의 신 이름이다(렘50:2). 이 므로닥 신은 별들의 왕으로서 최고의 재판관으로 나타나는데당시 근동의 사람들은 이와같이 신의 이름을 본따 왕명을 지었다(B hr). 한편 바벨론왕 므로닥 발라단은 B.C. 722년 사르곤(Sargon) 원년에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켜 B.C.710년까지 약 12년간 바벨론을 통치하다가 다시 사르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B.C. 705년에 사르곤이 죽고 난 뒤 다시 6개월 동안 통치하였는데(Eusebius) 후에 산헤립에 의해서 국외로 추방되었다(Rawlinson). 그리고 그 이후 B.C.702년경부터 그는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의 엘람(Elam)에 거처를 정하고 계속해서 앗수르에 대항해 왔는데 그가 히스기야에게 사절단을 보낸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 아닌가 추측된다(Leonwood). 따라서 여기서도 히스기야의 발병 시기를 알 수 있는데 아마 므로닥발라단은 산헤립을 믈리친 히스기야의 명성을 듣고 사절단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병 완쾌를 축하한다는 구실로 유다에 사절단을 보내어 유다와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했을 것이다.
병들었다 함을 듣고...보낸지라 -
여기서 '병 들었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할라'(*)는 과거 완료형으로서 그것은 이미 병이 나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466). 한편 대하 32:31에 의하면 바벨론 사절단의 방문 목적은 히스기야의 병회복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이적에 관해서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세푸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외에도 거기에는 히스기야가 죽기 전에 그로부터 자기 나라의 독립을 얻기 위해 군사적 도움을 구하기 위한 목적이 개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실 비록 산헤립이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인하여 원정(遠征)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지만(19:36) 그때에도 앗수르는 여전히 바벨론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로닥발라단은 앗수르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히스기야와 둥맹을 맺어 자국의 독립을 꾀하려고 했던 것이다(Von Gerlach).
13.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
대하 32:27에 따르면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롑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대하 32:23)고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 바벨론 사절단의 방문은 여러 이방사절단의 방문들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서 철수,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 이러한 영광을 획득하게 되었음도 알 수 있다(대하 32:22). 한편 당시 국력이 신장(伸張)하고 있던 바벨론의 사절단이 히스기야를 방문한 것은 히스기야에게 특별한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바벨론과 동맹을 맺는다면 앞으로 앗수르의 침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게 신망(信望)을 얻기 위하여 자기 보물고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B hr).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 -
여기서 '보물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베트 네코트)의 문자적인 뜻은 '향료의 집'이다. 이것은 주로 향료를 보관하기 위해지은 창고로서 간혹 금과 은을 보관해 두기도 했다(Keil).
보배로운 기름 -
'기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세멘'(*)으로서 '감람유'(olive oil)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값진 감람유'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들 감람유가 아닌 왕궁에서 쓰는 향료용 기름(balsam oil)인 듯하다.
내탕고 -
이는 곧 왕이 자신의 사사로운 재물을 모아 두는 곳집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다 사지에게 보였는데 -
본절은 겉으로 보기에는 18:15,16에서 히스기야가 금은을 모두 앗수왕에게 주었다는 진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에게 금은을 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보물들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었던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모든 보물을 다 주지 않았다. 즉 그는 은 삼백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만을 주었을 뿐이다(18:14). 그리고 그가 성전 문에 입힌 금박까지 벗겨서 다 주었던 것은 산헤립에게 더 이상 줄것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위장 술책이었다(Keil). (2)히스기야는 선조 때부터 물려 내려오던 많은 보물들을 감추었을 뿐만 아니라(17절) 그 동안 다른 이방 나라의 사절단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대하 32:23).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선지자 이사야가...나아와서 -
이사야는 이방 나라와 동맹을 맺어 의지하려는 마음이 히스기야에게 있음을 간파하고 비록 왕의 청함이 없었지만 그를 징책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히스기야에게 나아갔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께만 도움을 구하고 이방을 신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왔었다(사30:1-7;31:1-7). 그러기에 이제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심증을 캐묻기 위하여 또는 히스기야가 바벨론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토록 하기 위하여(B hr, Mattew Henry) 그에게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
이러한 히스기야의 대답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1)자신의 명성이 바벨론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음을 의미한다. (2)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들과 동맹맺는 것을 경계한 율법의 말씀들(신29:22;수9:6,9)을 생각하고 자신이 범죄하였음을 인정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Hobbs).
15.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내 궁에 있는 것을...다 보았나니 -
본절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이 바벨론 사절단에게 행한 일들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있다. 즉, 왕을 경책하기 위해 온 선지자에게 히스기야는 마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들을 고백하듯이 분명하게 토로하고 있는것이다. 바로 여기에 다윗에 버금가는 히스기야의 위대한 신앙이 있다 할 것이니(삼하12:13) 사실 잘못을 지적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여간 쉽지않은 법이다.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날이 이르리니 -
이러한 구절은 일반적으로 대개 어떤 미래적인 사건을 선포할 때 쓰인다(렘31:31;눅23:29). 사실 본절에 기록된 사건 역시 실제로 25:13 이하에서 비로소 성취되고 있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 -
여기에 언급된 보물들 가운데 금은의 상당 부분은 앗수르에게 넘어 갔지만(18:15,16) 기타 다른 보물들은 여전히 히스기야가 보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3절 주석 참조.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
이처럼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절단에게 국고(國庫)를 열어 보인 것(13절)은 그만 도둑에게 자신의 보물을 자랑한 꼴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본절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곧 B.C.586년 예루살렘 멸망 때이다.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
히스기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비록 후대에는 형벌이 있을 것이나(17,18절)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은 형벌을 받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안심이 되어서 하는 말(Rawlinson)은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이기주의자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히스기야가 본절과 같이 말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복의 표시로서 왕의 편에서 공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이다(B hr, Keil,Hobbs). 즉 히스기야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서 엄청난 징책을 선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
'태평'과 '진실'은 상호 관련성을 지닌 것으로(렘33:6) 미천한 자에게 평화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제 이와같은 축복이 히스기야에게 주어지고 있음은 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히스기야가 진실과 진심으로 행하고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본절에서 그 같은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 -
대하 32:27-33에 보면 히스기야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번영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번영들은 대부분 B.C.701년 앗수르의 침략 이후에 획득한 것이니 그가 병에서 완쾌된 후 15년 동안은 실로 태평 성대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못과 수도를 만들어 -
대하 32:2-8에 따르면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 밑으로 수로(水路)를 뚫어 만든 못과 수도는 앗수르의 침략을 대비하여 만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증거하는 바에 따르면 이때 만든 지하 수로의 길이는 약540m 가량된다고 한다(Gibson).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8:17주석을 참조하라.
유다 왕 역대지략 -
역대 유다왕들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한 일종의 왕실 일지(王室日誌)이다. 왕상 15:23 주석 참조.
21.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 열조와 함께 자고 -
대하 32:33에는 히스기야의 죽음과 관련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움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유대인의 전승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다윗과 솔로몬 다음 자리에 장사되었다고 한다(Ginzberg). 한편 레이몬드 웨일(Raymond Weil)이 다윗 성에서 왕들의 묘실을 발견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묘들이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누구 묘인지 구별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묘들 가운데 하나가 히스기야의 묘임은 분명하다(Hobbs).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므낫세'(Manasseh)란 이름의 뜻은 '망각케 하는 자'이다. 유다 제 14대 왕(B.C.697-642)으로 등극한 그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비 히스기야의 선행(善行)을 잊어버리고서 악정(惡政)을 일삼았다. 그러한 므낫세의 통치는 다음 장에 언급되니 자세한 내용은 21장을 보라.
https://www.youtube.com/watch?v=qOi4DJWKNCg
큐티라고 하기에는 주석만 읽어서.. 또 해야될 일들이 많기에..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네요.. 지금은 아직 여건이 안되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또 상처 받지 않고 잘 다닐 수 있을지 고민되네요..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주님 안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예배와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에서의 기도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35)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썩어질 몸 안에서 태어나신다면, 주님의 거룩하신 순전하심과 단순하심과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됨이 내 안에 드러날 기회가 되겠습니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처녀 마리아에게 가능한 일이었다면 그 사건은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하여 내 안에 태어나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의 권세를 행사하게 되고 나의 아버지를 얼굴과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이때 나는 계속 의아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내 상식적인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왜 너는 여기서 나를 좌절시키려고 하느냐? 내가 나의 아버지의 일로 내 마음이 사로잡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느냐?”(눅 2:49)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거룩하고 순결하신 영원한 아들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이처럼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주의 놀라우신 일들을 맘껏 행하시도록 당신의 마음을 비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을 만큼 내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빚어지고 있습니까?(갈 4:19) 아니면 조심스럽게 주님을 한쪽으로 밀쳐내고 있습니까? 오, 최근의 이 모든 난리들! 모든 사람이 큰 소란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소란을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 위해 난리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계실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조용하고 거룩한 교제를 나눌 공간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기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가 그분께 지시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 사역하셨던 것처럼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Passion)을 지나십니까? 가장 성숙한 성도들의 내면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목적인지 더 잘 보게 됩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골 1:24) 그리고 그 ‘채운다’는 뜻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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