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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누가복음 22 : 1~13🍑탐심을 따르는 배반, 말씀대로 행하는 순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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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
이 구절은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는데
공관복음서 평행 구절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누가의 경우
21:38의 이야기와 무관한 듯하게
이야기를 출발시키면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동일(同一)한 절기로 묘사한다.
마태의 경우
앞장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유월절' 이틀 전임을 묘사한다.(마 26:2).
무교절에 대한 언급은 하고 있지 않아
시간적 정확성이
누가에 비해 두드러져 보인다.
마가의 경우도
누가와 같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고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앞절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유월절' 이틀 전임을 밝히고 있다.
다만 마가는 누가와는 달리
두 절기가 동일하다는 의미보다는
두 개의 절기가
같은 날에 있다는 듯 언급한다(막 14:1).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구분 문제,
둘째, 시간 표현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정확한 것인가이다.
첫째, 유월절과 무교절은 분명히 구분된다.
유월절;-
유대인이 조상들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해방절(출 12:1-14).
유대인들은
한 해의 첫 달이 되는 1월
곧 니산(아빕)월(태양력 4월) 10일에
어린 양을 식구 수대로 취하여
14일까지 양을 보관하였다가
1월 14일 저녁 해질 무렵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날 밤에 그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을 함께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날 밤에 애굽에 내렸던
장자의 재앙을 유대인들만은 피할 수 있었고
마침내 출애굽시 장정(長征)에 오르게 되었다.
유월절은 바로 출애굽에 있었던
이러한 일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유월절은 밤에 양고기와 무교병
그리고 쓴나물을 먹는
니산월 14일 밤을 가리킨다(출 12:8-11).
무교절;-
출 12:15-20에 근거한 것으로서
유월절 밤 즉 니산월 14일 밤
교병을 먹는 것으로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으로
식사하면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유대인들의 날자 계산법이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까닭으로
무교절은 15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된다.
유월절은
14일 저녁 식사와 함께 끝나고
무교절은
그 식사 때에 무교병을 먹음으로써
시작되는 셈이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시작은
서로 맞물려 있다.
그렇다면
마가의 '유월절과 무교절'이란 표현과
마태의 '유월절'이라는 표현은
서로 문제가 없고
다만 이틀이라는 시간상의 문제만 남게 된다.
그리고 '유월절이라는 무교절'이란 누가의 표현은
무교절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무교절이 시작되기 하루 전이고
또 유월절이 끝남과 동시에 무교절이 맞물려서 시작되므로
유월절은 곧 무교절의 시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마가의 시간과 누가의 시간 표현
마태의 경우;-
예수가 직접 이틀 후면 유월절이라고 하신 말씀을 언급하는데
이 날은 세 복음서 모두
예수를 죽일 음모가 있었던 날을 지시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마태와 마가의 표현대로라면
니산월 빕일이 되고
누가의 경우는 불명확하다.
아마도 누가는 그 음모가 있었던 날을
정확하게 규명(糾明)하기가 어려워
'가까우매'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리라 여겨진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
예수를 죽이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 자들은
19:47, 48 ; 20:19에서 보여진 인물과 동일하다.
예수에 대해 가장 큰 적개심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은
종교 그룹 가운데서 최고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서기관들이었다.
서기관들은
대부분 바리새파에 속한 인물들이었으므로
바리새파도 포함된다.
산해드린 의회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이었다는 점에서
예수 살해 음모는 종교적,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이들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부터
더욱 바짝 긴장하였고
한시바삐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본격적인 음모를 꾸미기에 이르며
이들의 음모가 결국은
구체적 실행 단계로 옮겨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된다.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
예수의 활동에 대한
민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19:37-40 ; 21:38)
염두에 둔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이 같은 묘사가 20:19에서도 나온다.
예수에 대한 민중들의 열광이
집권자들에게는 체제 도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섣불리 예수를 처형시켰다가는
많은 백성들로부터 거센 대항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서,
대적들은 온갖 허위 선전을 통해
군중들을 회유하고
선동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23:21),
그리고 한편으로는
유월절이 이르기 전에 예수를 체포하여
빌라도에게 넘기기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유월절이 다가오자 더욱 근심하였다.
유월절이 되면 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기 때문에
군중들의 전폭적(全幅的)인 지지를 받던
예수가 붙잡히게 되면
백성들이 순례자들과 합세해
크나큰 폭동을 일으킬까 염려했던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기 전에
예수를 조용히 잡아 죽이려고 계획했다.
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에 대한 묘사는
공관 복음서가 공통되게 다루고 있지만
배반하는 주체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는
누가가 독특하다.
마태와 마가는
유다가 스스로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팔아 넘긴 것으로 묘사하지만
누가는
12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감으로써
유다의 배반이 시작되는 것으로 표현한다.
누가의 진술에 의하면
사단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게 만든 장본인이 된다.
요 13:2에서는
'마귀가 벌써...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아마도 누가와 요한은
유다의 배반이 유다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사단의 짓임을 말함으로써
예수의 대적은 궁극적으로 사단임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같다.
이 사단은
첫 사람 아담 부처를 유혹하고
죄악에 빠뜨린 것을 비롯하여(창 3:1-13)
인류 역사를 통털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離間)시켜 왔으며
할 수만 있다면 믿는 사람들마저
멸망에 빠지게 하려고 안감힘을 다 쓰고 있다(벧전 5:8).
인류 구속의 대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야말로
사단의 눈에는 가장 무서운 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단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시종일관 예수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마침내 십자가 처형에로 몰고 갔다.
이는 일시적인 승리였을 뿐
예수는 부활을 통해
피와 죽음과 세상을 정복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깨뜨렸을 것이다(창 3:15).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군관들 -
'군관들'(*, 스트라테고이스);-
성전 수위대장
단수로 사용되었을 때는
제사장 다음가는 직책인
성전 지배인을 가리킨다(행 4:1 ; 5:24, 26).
여기서는 복수로서
수위 대장을 가리키며
무력적 힘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자
마태와 마가는
대제사장만 언급하고 있는데
예수를 체포한다는 생각에서 볼 때
누가의 진술이 훨씬 자연스럽게 보인다.
방책(方策)을 의논하매 -
마태의 경우를 보면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테니
얼마의 돈을 주겠느냐고 흥정했다(마 26:15).
방책이란 돈에 대한 흥정,
6절의 표현처럼
민중들이 없을 때 체포할 것
혹은 48절의 언급처럼
입맞춤을 신호로 체포할 것
등에 대한 의논을 포함할 것이다.
가룟 유다의 확연한 배신으로 인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일 호기를 만났고
예수님의 공생애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게 된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 지라 -
의논 대상자들의 기뻐하는 모습이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표현은
마가와 동일하다(막 14:11).
그러나 마태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은 30을 달아서 유다에게 직접 주었다고 언급한다(마 26:15).
여기서 은 삼십은
구약의 예언(슥 11:12)을 성취시키는 것으로
예수께서 비천한 자들의 죄과를 담당하셨다는
메시야적 사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은 삼십, 즉 은화 30세겔(shekel)은
노예 한 사람의 몸값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제사장과 성전 수비대장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 대한 그들의 사악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마태의 표현을 보면
유다가 먼저 돈을 요구하며
예수를 넘겨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나타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급박(急迫)하게 진행시켰던 상황과
유다의 배신이 시기적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져
이 가운데 사단이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무리가 없을 때 -
이러한 방법은
대제사장들과 의논하여 나왔을 공산이 크다.
2절에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그들이 가장 무서워한 것은 민중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체포할 수 있는 기회나
민중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가롯 유다의 배신이 궁극적으로는
사단의 개입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유다 개인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자연스러운 귀결로 이해될 수 있다.
유다의 마음에는 돈을 사랑하는 탐욕이 있었으며(요 12:4-6)
더욱이 그가 예수를 따른 동기는
다분히 지상적(地上的)이고
정치적인 메시야 왕국을 기대한 데 있었기 때문이다.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
마태는 '무교절 첫날'이라고 언급하고(마 26:17)
마가는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라고 묘사한다(막 14:12).
유월절의 끝남과 무교절의 시작은
시간적으로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가의 진술이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1절 주석 참고).
니산월(4월) 14일 해질 무렵에 양을 잡았으므로(출 12:6)
해가 지면 유대인의 계산법에 의해
15일이 시작되어 무교절의 첫날이 된다.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예수께서...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서 지시하는 이 구절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없다.
이러한 묘사는 19:29에서도 나타나듯이
누가의 독특한 의도를 암시한다.
예수의 주도로 일이 이루어지며
제자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가서' 유월절을 '예비'하라고 명하시는데
10절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아
가라고 한 장소는 예루살렘성 안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해야 할 것은
식사를 할 장소와 잡아야 할 양
그리고 무교병과 쓴나물
및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도구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출 12:8).
9.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이 질문을 한 자는
예수의 지시를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마가는 제자 중 두 명이라고 언급하였다(막 14:13).
제자들이 질문한 것은
유월절 식사를 할 장소에 대해서였다.
유대에서 유월절 행사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고
유월절 음식 역시
예루살렘 성 안에서만 먹어야 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때만 되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모여들었다.
유월절 때
예루살렘 성 안에서 유월절을 먹으며
거할 장소를 얻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예루살렘의 여관(旅館)은 모두 꽉 찼을 것이고
집집마다 사람으로 만원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방을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
성 안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로 보아
현재 머무는 장소가
성 밖 어느 곳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 진다.
예루살렘 성 외각 지대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감람산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왜냐하면 21:37을 보면
예수께서 밤이면 성에서 나오셔서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셨다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혹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감람산 기슭의 베다니 마을에
머물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Meyer).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
예수는 제자들에게 정확한 시간과
성안 어느 지점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넓은 성 안에 들어가서
물 한 동이를 들고 가는
한 남자를 만날 것이라고 언급하셨다.
제자들이 왜 비밀스럽게
그 사람과 만나야 했는지이다.
성 안에서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만큼
분위기가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미 유다가 배신을 한 상황에서
그리고 적대자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행동에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 식사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혼잡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조용하고 엄숙하게 지내기 위해
비밀리에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매사의 앞을 내다보실 수 있는
예수의 신적 전지성(全知性)을 엿보게 한다.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 집 주인에게 -
주인과 물동이를 들고
집으로 제자들을 인도한 남자와
어떤 관계인지
또는 그 두 사람이 동일인인지도 알 수 없다.
선생님이 -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나귀 새끼를 구하러 보내면서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지시한 장면과 비슷하다(19:31).
직접화법으로 인용되는 문장이므로
'선생님'은 예수 자신으로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지시할 때
가상의 인물을 가리켜 칭하면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신생님이라고 호칭했다면
또는 가상의 인물을 가리켜 선생이라고 호칭했다면
아마도 유월절 식사를 비밀리에 하기 의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10절 주석 참조).
객실이 어디있느뇨 -
마치 암호(暗號)를 전달하는 듯한 이 어투는
실상은 손님이 묵을 수 있는 방이 있느냐고
정중하게 묻는 말이다(I.H. Marshall).
이 집이 여관업을 하는 집인지
아니면 민박하는 집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
'객실';-
여관이나 여인숙의 방보다는
개인 주택의 객실을 의미한다(2:7).
12.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
집주인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하는 이 묘사는
이미 유월절을 위한 준비가 갖춰졌음을 보여준다.
집주인이 자리를 베풀었다는 말;-
본래 자리를 펴거나 까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완료 분사 수동형으로
이미 융단을 깔고
식탁과 의자까지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묘사한다.
미리 부탁을 받고 식사준비를 해두었거나
아니면 언제든지 손님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했을 가능성
자리를 펴고 예비된 큰 다락방이 있다는 말은
단순히 방만 예비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거기서 예비하라'라는 지시로 볼 때
음식까지 준비된 것이 아니라
방만 준비된 것으로 이해함이 적절할 것이다.
예수와 제자들은 대부분이 갈릴리 사람들인 까닭에
예루살렘에 집이 없었으므로
잘 아는 사람의 다락방을 빌리려고 한 것이다.
이 다락방의 주인은
필시 예수를 잘 아는 사람이 분명하며
예수에게 매우 호의적(好意的)이었을 것이다.
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예수께서 일러준대로
모든 일이 실현되었음을 증언한다.
이 같은 묘사들을 종합하여 생각할 때
단순한 유월절 식사가 아니라
신비적 힘이 작용하여
더욱 그 엄숙함과 신비성이 고조된
최후의 만찬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같은 모든 일에
신적인 섭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성경 말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15
🟠🔴
🟢
🟣
하나님의 성품/속성:
구속, 복음, 부활, 정복,
예비/준비하시는,
전지하신(매사의 앞을
내다보실 수 있는), 섭리,
엄숙함과 신비한 힘을
가지신, 말씀대로 실현
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 믿음과 순종
🔵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워
인생의 주인을 주님이 아닌
나를 세우는 오류에 대해
되돌아보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겠다..!🩸✝️
🌱🌿🌳
그 당시 성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잘못을 너무도 쉽게 그리고 치밀하게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죄를 깨닫는 분별력도 필요하고 죄에 대한 자각이 있으면 바로바로 회개하는 온전한 순종과 삶의 개혁이 있어야 함을 보게 된다..
저에게도 그들과 같이 죄로 인해 무뎌진 양심이 있다면 다시 선한 양심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온전한 회개를 하나님께 드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 안에서 구별된, 주님을 닮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제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http://www.abrahampark.com/kor/edu_data/10155
5. 제 6계명의 구속사적 교훈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제 6계명을 범하는 것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라 남편도 먹게 하여 남편을 죽게 만들었습니다(창 3:6下).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인데, 그 아담이 행위 언약을 어겼으므로 온 인류에게 사망이 찾아왔습니다(롬 5:12, 14, 6:23).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37에서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곧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요 7:19). 예수님의 말씀대로 결국, 살인자 마귀의 조종을 받은 종교 지도자들은(요 8:44)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살인자들을 위해서도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 23:34).
오늘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남을 미워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남을 죽이는 일이 됩니다(요일 3:15).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므로,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잠 18:20-21, 약 3:8). 진실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남을 판단하여 정죄하며 그것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것은 심각한 죄악입니다(마 12:36-37, 롬 2:1).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벧전 3:10).💖🤍
https://www.youtube.com/watch?v=iF4qzOionpQ
3월 25일 이 땅에서 가장 미묘한 사명
요 3:29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선함과 순결은 절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그 자체로 인도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석과 같아야 합니다. 만일 나의 거룩함이 사람들의 관심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거룩은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에 비정상적인 애착을 유발시켜 그 영혼들로 하여금 곁길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멋진 성도가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그를 위하여 하신 일을 통해 자신만 드러낸다면 그는 예수님께 방해거리일 뿐입니다. 그는 이러한 인상만 남길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멋진 인격을 가졌어.” 이러한 사람은 신랑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이들 마음 속에는 “나는 언제나 계속 흥하여 하고 예수님은 쇠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랑 예수님을 향한 우정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그 어떤 다른 것 보다도, 심지어 순종할 것을 찾는 것보다도, 주님과 함께 자발적이고 살아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가끔 특별하게 순종할 만한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주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고 계속 주님과의 활기찬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종 순종해야 하면 순종하면 됩니다.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대부분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인 순종보다 주님과의 관계 유지입니다. – 신랑 예수님과의 친구 관계를 언제나 누리는 것입니다. 종종 기독교 사역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주님께 우리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신랑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대신에 우리는 주의 일을 한답시고 주님의 무기들을 사용하면서 도리어 주님께 대항하여 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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