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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누가복음 23 : 33~43🍑십자가 위에서 선포하신 영원한 용서와 구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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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해골이라 하는 곳 -
예수께서 처형되신 사형 집행 장소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라 불리워지는 곳'
이 어투와 같이 이 장소가 어디를 말하는지 고증하기가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다른 사형수와 함께 처형한 점으로 보아 로마군의 공식적 처형 장소로 보이며
성 밖의 어느 곳에 있는 무덤 근처였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 지명은 해골(骸骨)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형이 해골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다(Bengel, Goldet, Plummer).
성문 밖이었다는 것이다(히 13:12).
부가타(Vulgate)역 성경에서는
'해골'이라는 말을
칼바리움(Calvarium)으로 번역하여
갈보리(Calvary)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마태와 마가는
히브리 말로 '골고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마 27:33; 막 15:22)
누가만은 헬라어로 번역하여
'해골'이라는 뜻을 지닌 '크라니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누가는
헬라 문화권에 속한 이방 나라들에 대한 배려를 엄두에 두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
누가는
예수의 양 쪽에 범법자 두명이 같이 못박혀 있음을 말하고
마태와 마가는
'강도'(*, 레스타이)들이 양 쪽에 못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마 27:38; 막 15:27).
마태와 마가는
예수의 좌우에 사랑하는 제자가 아닌(막 10:37 참조) 흉악한 강도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의 치욕스러움과 제자들의 비겁함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누가의 의도는
22:37의 예언 성취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가
'행악자'(*, 카쿠르구스)를 사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십자가에 못박고 -
마침내 예수가 가장 잔인한 처형의 방법에 따라 못박히는 모습이다.
누가는
못박았다는 단순한 묘사를하고 있지만
마태와 마가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마태는
못박힌 시각이 제 3시경이라고 밝히는데
(유월절(Passover) 다음날 오전 9시경)
마태와 마가는
십자가에 못박은 것과 동시에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씌어진 사실(마 27:37; 막 15:26)
누가는
이후에(38절) 언급한다.
마태와 마가는
조롱하기 위해 써붙인 명패를 강조하는 반면
누가는
나중에 조롱하는 장면과 함께 언급함으로써
그 효과를 다소 완화시킨 듯하다.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무리를 향해
측은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신다.
이 기도문은 누가만이 언급하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마 5:44)
친히 실천하고 증명해 보이셨다는 점
여기서 용서의 대상을 지칭한 '저희'는
사형 집행자인 로마 군인들만이 아니라
주범인 산헤드린(Sanhedrin) 대표와
그 음모에 가담했던 모든 죄인들을 가리키는 것
본 구절을 28-31절에 언급된 내용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고전 2:8의 증언대로
그들은 무지 가운데서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베드로의 설교 내용처럼
'생명의 주'를 죽였다(행 3:15).
예수는 그들의 무지를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고
그러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와 죄 사함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신 것이다.
이 말씀은 사복음서의 기록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첫번째에 해당한다.
가상칠언의 내용을 한마디씩으로 요악해보면
(1) 용(容, 본절)
(2) 낙(樂, 43절)
(3) 자(子, 요 19:26)
(4) 기(棄(버릴 기), 마 27:46; 막 15:34)
(5) 갈(渴, 요 19:28)
(6) 성(成, 요 19:30)
(7) 혼(魂, 46절) 등이다.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새 -
처형자들이 사형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눠갖는 것은
당시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본다(Blinzler).
시 22:18에서 언급된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다.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
누가는
십자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마치 백성들은 조롱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는 것처럼 묘사한다.
마태와 마가는
지니가는 사람도 예수를 모욕하며 조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에 대한 모욕 행위의 내용과 범위를
가능한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대신 지도자들의 모욕 장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구하다';-
예수의 활동 가운데 치유 기적을 가리키는 것(W. Foerster).
'하나님의 택하신 자';-
십자가 처형을 바라보며 군중들이 예수를 조롱하여 내뱉은 말이지만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자'
누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분으로서
세상 구원을 위한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고 계셨던 사실을 기록하고자 했던 것
이 같은 조롱 행위는
시 22:6-8에서 이미 예언된 바의 성취라고 볼 수 있다.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신 포도주를 주며 -
군병들이 예수께 신 포도주를 준 사실에 대한 해석;-
(1) 군병들이 희롱하면서 신 포도주를 주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희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어서 먹기 힘든 포도주를 준 것
사실이 그러하다면,
하루 전날 밤부터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하신 예수님을
조롱하는 그들의 잔인성은 지독하였다 할 것이다.
(2) 요 19:28에 나와 있듯이
예수께서 '목 마르다'(I am thirsty, NIV)고 하신 사실을 고려하건대
목을 축이기 위해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3) 사형 집행자가 관례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의무적으로 주었다는 주장(Zahn, Farrar)
마취 효과를 내는 쓸개를 포도주에 탔다고하
는 마태의 기록이나(마 27:34),
시간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마시게끔 했다는
다른 두 공관복음서상의 기록 등에 의해 뒷받침 받는다.
시 69:21의 성취로 본다면
조롱하려는 목적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주어서
고통을 가중시키고 수치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
로마 군병이 언급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정치적 의미에서 예수를 희롱했다고 생각되며
그 이상의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것이고
다만 십자가 상에 붙어있는 죄명을 보고(38절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자칭 왕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하던 사람 쯤으로 생각해서
왕이면 자신을 사형(capital punishment)으로부터
면죄(amnesty)받게 하여 다시 살려보라는 투로 조롱한 듯하다.
마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함께 조롱하면서
종교적인 문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지 보자면서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증명되는지 보자고 하며
희롱한 것으로 묘사한다(마 27:42-44).
마태는
유대인을 의식하여 문제 곧 종교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누가는
이방인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문제에다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마태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언급하여
이방인에게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 -
이 명패는 희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붙여진 것
요 19:20에 의하면
명패는 3개국어로 씌어져 있었다.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
빌라도가 직접 적은 것으로 언급된다(요 19:19).
이 명패는 역설적(oaradoxical)으로
예수의 참된 신원(identity)을 밝혀주고 있는 바,
조롱하기 위해 붙여준 이름이
결국에는 부활을 통해 예수의 우주적 왕권을 확증하는 이름이 된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영웅적인 왕들이 일세를 풍미하다가는 다 사라져 갔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신 사랑으로써
오고 오는 모든 세대 모든 성도들을 통치하시는 위대한 왕이신 것이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
예수의 좌우에서 못박힌 두 죄수 중 한명이
예수를 비방하고 있는데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죄수는 유대인으로서 종교적인 의미로 모욕하고 있다.
두 죄수에 대한 누가의 언급은
이미 32절에서 언급된 바처럼
마태나 마가와는 달리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시(注視)될 필요가 있다.
엘리스(Ellis)는
두 죄인의 이야기가 예수의 처형 이야기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까지 주장한다.
마태와 마가는
두 죄인이 같이 예수를 욕했다는 사실만 언급한다(마 27:44; 막 15:32).
범죄자가 예수를 비방했다는 사실이
예수께서 당하신 치욕의 정도를 한층 더해 주고 있는데
이 범죄자가 왜 비방했는지 알 수 없으나
당시 사형을 당할 정도의 죄인이라면
셀롯당(Zealot)에 속한 무력 독립 투쟁가 중의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이 죄인은
예수에게서 기대했던 혁명적 변혁이
좌절된 것에 대한 실망에서
욕을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ngstorf).
41절에서 다른 한 명의 죄수가
정당한 벌을 받고 있다고 진술한 것을 보면
이들 두 명의 죄수는 독립 투쟁가는 아니었을 듯하다.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
예수를 가운데 두고
두 죄인의 논쟁 속에서 예수의 본성이 규명된다.
예수를 비방하는 죄인을 향해 반박한 본절 내용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로 미루어 보건대
이 죄수는
여호와 신앙의 전통에 익숙한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여기서는 징벌에 대한 공포의 차원에서 언급되었으나,
하나님의 인격적 존재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경외심을 지칭하기도 한다.
동일한 정죄를 받았다는 말은
41절의 내용으로 보아
로마 총족으로부터 받은 재판정의 판결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
예수의 의로움에 대해 말하기 전
이 죄인은
신들의 형벌에 대해 마땅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문맥상 예수에 대한 언급을 대비적으로 강조한다.
이 죄인은
예수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인 듯하다.
자신있게 예수의 언행(言行)에 있어서
옳지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로 확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긍정하고
예수를 정당하게 인정하는 것을
회개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Bormhauser, E. Lahse),
여기서의 초점은
죄인의 회개에 있지 않고
죄인에 의해서 예수의 의로움이 증언되었다는 점
예수의 처형은 잘못된 것으로서
대적들의 음모와 모함에 의한 것
'아토포스'(*)-> '옳지않은', '본래 제 자리가 아닌'(out of place)
처형대는 예수님이 계실 곳이 아니었다.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
죽음을 앞둔 죄수의 고백은
매우 종교적이고 종말적인 성격을 띤다.
이 죄수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이와같이 소망적인 고백을 하였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시사한다.
당시 대다수 유대인들은
지상적(地上的)이고 정치적인 메시야(Messiah)를 기다렸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통해 그러한 기대가 무산되고 말았지만,
이 죄수는
죽음 너머에 영존할 어떤 것으로서의 메시야 왕국을 바라보았던 것
'당신의 나라에' '...안으로'(into) 혹은 '...와 관련하여'
이 죄수는
예수 안에서 신적인 메시야상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초월적인 메시야 왕국의 도래와 '관련하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았던 것이다.
'밈네스코'(*);-
'좋은 것을 기억하라'
너그럽게 보아 주기를 요청하는 말
매우 겸허하고 소박한 요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같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같은 큰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예수의 왕권적 권위도 강조하지만
죄인의 믿음이 빛나듯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놀라운 믿음의 통찰이야말로
43절에서 언급되는 예수님의 약속의 근거가 되었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자신에게 깊은 신뢰감과 믿음을 갖고 있는 죄수에게
예수는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과 함께 낙원(樂園)에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선언한다.
'낙원'(*, 파라데이소스);-
'공원' '정원'
칠십인역(LXX)에서는 에덴 동산을 표현 할 때 사용된 단어(창 2:8).
여기서 언급된 낙원은
사 51:3에 나오는 미래적 에덴 동산으로서
기쁨과 즐거움이 약속된 곳(I. H. Marshall).
낙원이 의로운 사람이 사후에 잠시 안식을 취하는
중간적인 장소로 이해되기도 한다(J. Jeremias).
16:22-31과 고후 12;1-4은
죽은 의인들이 이미 낙원에서 주와 함께 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계 2:7의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은
부활 이후에 누리게 될 축복과 연관된다고 생각된다.
'오늘'이라는 말은
구원의 즉각성과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며(2:11; 4:21; 5:26 참고),
죄인이 죽어가는 순간에 누리고 있는 믿음의 기쁨을 강조하고
그 기쁨이 죽음 이후에도 단절됨 없이
소유할 수 있는 것임을 확신시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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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약속의)예언을 성취하시는,
(우주적/위대한) 왕권(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통치하시는)을
확증하는 능력의 이름,
영광, 생명, 가르치시는,
(원수도)사랑하시는, 용서,
긍휼, 낙원, 영,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사람을 잘 아시고
공감하실 수 있는(인격적),
택하시는, (세상을)
(즉각적,현재적)구원,
의로우신, 희망/소망, 영존,
초월적, 안식, 축복,
(믿음의)기쁨, 확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 사역, 경외(두려워함),
믿음의 통찰력,
🔵
에스겔 33장의 말씀처럼
과거의 선행/의로움이 현재의
범죄를 덮어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 의의 주인이신
예수님 안에 삶의 마지막까지
탈선하지 않고 머물러야 겠다.🩸✝️
🌱🌿🌳
예수님의 원수까지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은혜,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죄인인 저의 죄를 사하신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따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분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신 성품을 닮아가는 일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함으로 순종의 길을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에스겔 33장)
(주님은 나의 최고봉)
3월 28일 주님을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요 11:7-8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순종할 경우 혹시 예수님께 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정말로 주께 불명예를 가져 오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주님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하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따르기 보다 이렇게 하면 주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라는 나의 생각을 따르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생각이 주님께서 공적으로 부끄럽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그러한 소원에서 나온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제안이 올 때를 압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제안은 매우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제안에 대하여 내가 찬성과 반대 의견을 가지고 내 속에서 따지면 의심과 다툼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그러한 요소들을 끌어들이게 되면서 결국 그 제안이 마땅한 것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짧은 생각에 충성합니다. 과연 주님께 충성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주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님만을 믿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의 지능을 신앙의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적인 이해가 아닙니다. 믿음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오직 주님만을 마음을 다하여 의지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발걸음을 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뭔가를 분명히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마음 속에서 논쟁합니까? 아무 미련 없이 기쁨으로 주님께 순종하십시오. 만일 주님께서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당신이 따진다는 것은 주님께 순종하기 보다는무엇이 주님께 영예가 되는지 아닌지를 내가 결정하면서 내 생각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 자체가 주님께는 불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말씀에 충성합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당신 나름대로의 예수님에 대한 엉터리 생각에 빠져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하라.”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342?listURI=%2Fmercyreformedchurch%2FULF8
성경 말씀:
"우리를 주님의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님의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마가복음 10:37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그들이 내 겉옷을 서로 나누고 속옷은 제비를 뽑습니다.
시편 22:18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선 것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그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요한복음 19:26
오후 3시쯤에 예수님은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7:46
오후 3시에 예수님은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하고 크게 외치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었다.
마가복음 15:34
예수님은 이제 모든 일이 다 완성된 것을 아시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9:28
예수님은 신 포도주를 받으신 다음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요한복음 19:30
그리고 예수님은 큰 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누가복음 23:46
6그러나 이제 나는 사람이 아닌 벌레에 불과하며 내 백성에게까지 멸시를 당하고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7나를 보는 자마다 비웃고 모욕하며 머리를 흔들고,
8너는 여호와를 신뢰하던 자가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그가 너를 구해 주지 않느냐? 만일 여호와가 너를 좋아하신다면 어째서 너를 돕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시편 22:6-8
그들이 음식 대신에 나에게 쓸개를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초를 주었습니다.
시편 69:21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다시 축복하여 그 황폐한 땅을 에덴처럼 만들고 그 사막을 내 동산처럼 만들 것이니 이 땅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감사와 찬송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 51:3
22어느 날 거지가 죽어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도 죽어 땅에 묻혔다.
23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중에 쳐다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나사로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24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 손가락 끝으로 물을 찍어다가 내 혀를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부르짖었다.
25"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생각해 보아라. 너는 살아 있을 때 좋은 것을 마음껏 누렸고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만 겪었다. 하지만 지금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거기서 고통을 받고 있다.
26이뿐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 싶은 사람도 건너갈 수 없고 거기서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도록 되어 있다."
27그러자 부자는 "제발 부탁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 주십시오.
28내 형제가 다섯인데 나사로를 보내 그들에게 경고하여 내 형제들만이라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29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30그때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31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누가복음 16:22-31
1자랑해서 이로울 것은 없으나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는 내가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나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습니다.
3그때 실제로 내 몸이 올라간 것인지 아니면 내 영이 몸을 떠나 올라간 것인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4나는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또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4
오늘 밤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그분이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누가복음 2:11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 읽은 성경 말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4:21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두렵다는 듯이 "오늘 우리가 본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다!" 하고 감탄하였다.
누가복음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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