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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누가복음 23 : 44~56🍑 의인이 이룬 완전한 속죄, 제자 됨의 용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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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누가복음 23 : 44~56🍑 의인이 이룬 완전한 속죄, 제자 됨의 용기

credo15229850 2024. 3. 29. 04:58

 

https://tripol.tistory.com/1117

 

헬라어 누가복음 23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카이 아나스탄 하판 토 플레도스 아우톤 에가곤 아우톤 에피 톤 필라톤 개역개정,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새번역,1 그들 온 무리가 일어나서, 예수를 빌라도 앞으로 끌

tripol.tistory.com

 

누가복음 23:44.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제 육세쯤 되어 - 

예수의 운명에 대한 묘사에 앞서 그 시각을 언급하면서

누가는

정확한 시각을 지시하지 않고

어림잡은 시각임을 나타내기 위해

'쯤'을 사용하고 있다

(3:23; 9:14,28; 22:41,59 비교).

마태는

'제 육시로부터'(마 27:45)

마가는

'제 육시가 되매'(막 15:33)

막 15:25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시각이 제 삼시였는데

예수는 못에 박힌 채 세 시간을 달려 있었다.

현대의 시간 구분에 따르면

오전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신 시각은 제 구시

 해가 빛을 잃고 -

세 복음서 모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고

공통되게 기록하며

누가만이 이 구절을 첨가하고 있다.

가장 밝은 때라고 할 수 있는

제 육시경부터 제구시까지 어두움이 임했던 사실로 볼 때

단순히 구름이 가려 어두워진 것은 아니다. 

이 어두움에 관해 혹자는 가견적(可見的)으로 임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이적으로 보는 견해(Luther, Calvin, Zahn),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

세 시간에 결쳐 어두움이 깔린 후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휘장'(*, 카나페타스마);-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기 위해 친 휘장인 것

(출 26:31-33).

성소에는

제사장이 매일 또는 안식일과 제사 때마다 들어갔으며

(출 27:21; 30:7; 레 4:7; 24:3,8),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다

(레 16:1,2; 히 9:7).

성소에는

제사장들의 제사 도구와 예물이 있으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레 16:2)

지성소의 거룩함을 보존하고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누가는 휘장이 찢어짐을 '찢어졌다'(*, 에스키스데)라는

수동태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 발생된 것임을 암시한다.

누가는 휘장의 '한가운데'(*, 메손)가 찢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마태와 마가는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고 언급하는데

이러한 세 복음의 표현은

휘장이 완전히 찢어졌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 사실은

예수의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상징한다(히 10:19-22).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 휘장을 예수의 육체와 동일시하였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적(中保的)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이제 예수께서 친히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히 3:1)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벧전 2:9).

이는 위선과 형식주의로 부패해진

유대교의 가증스로움에 대한 심판 경고라는 측면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아버지여...부탁하나이다 -

운명 직전에 부르짖으신 예수의 마지막 외침

누가의 표현은

마태나 마가와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1) 누가는

예수의 운명을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뒤에

일어난 것으로 묘사한 반면

마태와 마가는

예수가 죽은 후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 27:50,51; 막 15:37,38).

(2) 마태와 마가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두번 크게 소리지른 것으로 밝히면서

첫번째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밝혔지만

운명 직전에는 크게 소리만 질렀다고 언급한다

(마 27:46,50; 막 15:34,37).

(3) 마태와 마가는

또다시 어떤 사람들이 예수의 외침을 듣고

신포도주를 예수에게 준 사실과

희롱하는 장면을 언급하지만(마 27:47-49; 막 15:35,36)

누가의 경우

전혀 그러한 언급이 없다.

이 같은 차이는,

누가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차이는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 상징적 사건을

예수의 죽음 전에 기록함으로써

예수께서 구속 역사를 온전히 완수(完遂)하신 후

운명하셨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요 19:30에서 언급된 바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후

운명하신 사실과도 잘 어울린다.

두번째 차이는,

마태와 마가의 표현에 나오는

고뇌에 찬 부르짖음을 생략하고

담대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시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순종하는 예수의 모습과 기독교인들이 갖추어야 할

죽음에 대한 자세를 부각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세번째 차이

희롱당하는 수치스런 예수의 모습을

가급적 말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운명하시다(*, 여세프뉴센) -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표현할 때만 사용된 단어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숨을 쉬다'(막 15:37 주석 참조)

마태는

 '영혼이 떠났다'(*, 아페켄 토프뉴마)라고 언급한다.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백부장이...정녕 의인이었도다 -

백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

예수의 의로움을 증언하는 내용으로서

앞서 41절에서 사형수가 고백했던

예수의 의로움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사형 집행 책임자로 보이는 백부장의 이같은 고백은

이제까지 당했던 예수의 수치스러움과

고난이 정당(正當)하지 못하였으며

예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옳았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선언하는 것

 백부장이 예수를 의인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된 일'(*, 토 게노메논)이란

세 시간에 걸쳐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둠이 덮인 사건과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말한다(44-46절). 

마태는

휘장이 찢어진 사건 외에

지진이 일어나고 무덤이 열려 부활하는 성도와

예수의 성도들이 부활하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마 27:51-53) 이같은 일을 보고

백부장외 예수를 지키던 사람까지

함께 고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백부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의 은총과 신적 능력의 나타남에 대한

누가의 독특한 반응이다

(2;20; 5:25; 7:16; 13:13; 17:15; 18:43).

평행본문 마 27:54; 막 15:39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반면

누가는

'의인'(*, 디카이오스)이라고 말하는 데

이방인을 주로 염두에 둔 누가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의인'이라는 법정 용어가 이

방인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구경하러 모인...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

백부장의 증언을 소개한데 이어 누가는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

'구경' '데오리아'(*);-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에만 나오며

극장의 쇼(show)를 구경하는 것

이 무리들 중 대부분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몰려들었지만,

참혹한 예수의 모습과 형 집행 과정에서 되어진

여러 사건들을 목격하고는 저마다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돌아갔던 것

아들이 예수께 대항하며 소리쳤던

전날의 과오(過誤)를 뉘추치며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양심이 심하게 아팠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장면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당시의 상황과

연결시켜볼 수 있다(행 2:22-24).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다'(행 2:23)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많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하며

회개의 길로 돌아섰던 것이다.

 


 

49.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 -

누가는

십자가 처형에 관한 이야기를

예수의 측근자와 고향 사람들을

목격자로 언급함으로써 마무리 짓고 있다. 

'아는 자들';-

예수와 가까이 지냈던 자들,

예수의 제자들까지 포함된 것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에 관해서는

마태와 마가는

몇몇 여인들의 신분을 밝히며

구체적으로 언급하나 (마 27:55,56; 막 15:40,41)

누가는

어떤 여인들인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미 8:2,3에서 여자의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에

더이상 밝히지 않은 듯하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

멀리서 바라본다는 것은

관망의 의미로 해석되거나

두려워하는 비겁함으로 비칠 수 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떠나갔지만

이들만큼은 떠날 수 없어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흠모했던 분의 시신을 바라보며

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삭이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예수의 처형대(處刑臺)로

쫓아가고 싶었으나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를

지키고 있어 또 주위의 일정한 공간을

경비하고 있었으므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 -

산헤드린에 속한 요셉을 언급하면서

예수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태나 마가와 달리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가는

안식일 전 날 저문 때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금요일 마지막 시간에 가까운 시각이(막 15:42).

누가는

장례가 끝났을 때를 '안식일이 거의 된'(54절)

시각이라 밝히고 있다.

예수의 장례는

안식일이 되기 전에 치러진 것으로 보이며

누가에 의하면

제 9시경부터 첫 시까지

(현재 시간 개념으로 오후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약 세 시간 동안인 듯하다.

누가는

요셉을 등장시키면서

유대 민중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으로서

산헤드린의 회원이라 소개했다.

3년 동안 예수께 훈련을 받고 많은 권능을 목격했던

열 두 제자들은 거의 다 도망해 버린 상황에서

예수 살해 음모의 주역이었던

산헤드린에 속한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장사 지내러 나타난 것 또한

의외의 사실이다.

그는 사회적 신분을 박탈당하고

온갖 수모를 당할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결연히 장사를 지원하고 나섰다.

 


 


51.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 -

요셉에 대한 첫번째 언급에서 소개된

'공회 의원'이라는 신분에 대해

해명(解明)하는 내용이다. 

'저희의 결의';-

공회에서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사살을 말한다(22:66-71).

'행사'(*, 프랖시스);-

예수에 대한 사형 집행을 성사시키게 했던

공회 의원들의 모든 음모와 실행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셉이 공회의원이기는 하지만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할 때

가담하지 않았음을 밝힘으로써

예수에 대한 사형 결정에 반대한

공회 의원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태는

요셉이 부자이며 예수의 제자라고만

언급하고 공회의원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는데(마 27:57) 

마태는 산헤드린 전체가 이의 없이

예수를 죽이는 일에 가담한 사실을

말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26:59).

 아라마대(*) -

요셉의 출신지인 듯한 이 지명은

유대 땅에 속한 곳으로서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지금의

렌티스(Rentis)로 추정되며

삼상 1:1에 언급되는

사무엘의 출생지 '라마다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

요셉의 신앙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이 구절은

마가의 표현과 동일하다(막 15:43).

마태는 이 말 대신

'예수의 제자'라고 언급하는데

세 복음서 모두가

요셉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였음을

공통되게 언급한다.

그는 2:25,38에 언급된 시므온과 안나처럼

메시야와 메시야 왕국에 대한 소망을 굳게 확신하였기에,

모든 사람이 절망과 비탄 가운데 빠져드는 순간에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52.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빌라도에게...시체를 달라 하여 - 

세 복음서가 공통되게 언급하고 있는 이 구절은

사형 집행 후 시체 처리에 관한 권한이

로마군 통독에게 있음을

53절에서 '내린다'(*, 카다이레오);-

아직 시신이 십자가 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마가복음에서도 역시

십자가 위에 달려있는 상태로 묘사되었다(막 15:44-46).

마가는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요구한 사실에 대해 매우 용기있는 행동임을

'당돌하게'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예수의 추종자라고 밝혀진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2:50-62에서의 베드로의 부인(否認) 참조)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터였다.

마가에 따르면

발라도가 요셉의 요구에 대해 보인 첫 반능은

'벌써 죽었을까?'하는 것이었다(막 15:44). 

요셉의 요구는 상식보다 빨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예수의 주검을 공중에 방치되도록

버려둘 수 없다는 애타는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

십자가 위에 달려있던 예수의 주검을

요셉이 직접 내려받고

유대식으로 장례를 치르기 시작했다.

세마포로 시체를 감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시체 처리 방법이다

(요 11:44; 19:40) 세

마포로 싸기 전 시체를

깨끗이 씻었을 것으로 보인다(행 9:37).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시체를

대개 매장하지 않은 채 버려두어

개들과 새들의 밥이 되게했다.

유대법상으로는

죽을 죄를 지어 사형당한 죄인을

나무에 매단 후 당일에

반드시 장사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신 21;23).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 -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한번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과 함께

매우 고급스럽고 정결한 무덤임

요셉은 이 무덤을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을 위한 무덤으로 조성해 놓았던 것 같다.

요 19:41에서는

예수를 장사 지낸 무덤이

십자가에 못박혔던 곳에 있는 동산에

위치하였음을 밝히는데

당시의 부유층만이 가질 수 있는 동산 무덤

 

 



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

예수의 장례가 매우 촉박하게 끝났음을

시간적 묘사를 통해 언급하고 있다.

안식일이 박두함으로 인해

더이상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

시체에 향유를 바르지 못한 것은

시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금요일 오후 6시경이 된다.

요 19:39-42에 따르면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沈香) 섞은 것을

백근쯤 갖고와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고

유대법에 따라 여유있게 장례를 치른 것

누가는

예수의 죽음과 함께

장례도 매우 긴장속에 치러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시간의 촉박성과 장례 과정에

중요한 향료와 향품을 준비하지 못한 것처럼

묘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를 장사지낸 일에

니고데모가 협력한 사실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몰약과 침향만 가지고 왔던 사실 및

요셉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공의회 의원이었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이들 두 사람이

사전에 예수의 시신을 장사지내기 위해

서로 의논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 - 

장자지낸 무덤에서

예수의 시체를 확인한 증인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예수를 잘 알고 가까이 지냈던 여자들이었음

이 여자들은

49절에서 언급된 인물들인 것으로 추정되며

24:5,10절에 언급된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과

동일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마가는

무덤을 확인했던 여자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동일한 인물들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나

갈릴리 여인들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은

예수의 얼굴을 잘 안다는 점에서

예수의 시체를 잘 알고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무덤을 잘못 보았다는

말이 있을 수 없게 만든다.

부활 후 빈 무덤에 대한 증언도

확실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보증(保證)하게 된다. 

예수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였던 까닭에

안식 후 첫날 예수의 무덤을 찾았을 때

빈 무덤을 보고 근심하였으며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24:1-7).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

갈릴리 여자들이 무덤으로부터 떠나

그들의 숙소로 돌아가

시체에 바르지 못한 향유와 향품을

준비해 두었다고 언급하면서

그 시각이 안식일 전이었던 것처럼 암시한다.

막 16:1에서는

안식일이 지난 뒤 향품을 샀다고 언급되고 있다.

당시 상황이 매우 촉박(促迫)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마가의 증언이 더 사실적인 것

시간이 거의 안식일이 다 되었다는 점(54절)과

무덤이 성 밖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 향품을 산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던 당시 사람들과

유월절과 무교절을 낀 안식일이었다는 점에서

안식일은 더우 엄격하게 지켜졌을 터이므로

향품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으리라 본다.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

마태, 마가, 요한 모두

안식일을 건너 뛰어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누가는

계명을 따라 하루 쉬었음을 말함으로써

하루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누가의 언급은

당시의 철저한 율법 준수를 보여주고

예수의 죽음과 장사에 대한 이야기의 진행이

긴장되고 급박했던 반면

부활을 앞둔 하루의 공간이

침묵과 적막감에 휩싸인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하루는 죽음을 넘어서고

부활을 앞둔 새로운 긴장의 공간이 되고 있다.

 

 

 

 

성경 말씀:

 

 

19형제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떳떳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인 휘장을 찢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21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22우리가 이미 마음에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이 깨끗해졌고 우리의 몸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제부터는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히브리서 10:19-22

 

그러므로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히브리서 3:1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
🟢

🟣
하나님의 성품/속성:
초자연적인 이적(기적)을 행하시는,
새롭고 산 길, 대제사장, 거룩하신,
대속의, 보존하시는, 복음의, 완성의,
(옳고)의로우신, 영광, 은총, 안식,
능력(권능)의, 부활의, 약속의, 소망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히 자신을 의탁하는, 순종, 회개,
양심의 가책, 위험을 무릅쓰고 
(가르침을) 따르는 담대함(용기),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애타는)마음, 
믿음(확신)을 잃지 않는, 준비된, 
그분을 가까이 하는,
🔵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필요한
다가오는 위험에 개의치 않는
용기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신뢰로 준비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야겠다.🩸✝️
🌱🌿🌳
진정한 회개와 함께 예수님 안에서 준비된 믿음의 제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S4DAMFG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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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3월 29일

예고 없는 주님의 방문(Our Lord’s Surprise Visits)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0).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체험과 상관없이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와 어려움과 여러 상황들과 맞서는 대신 일에 너무 몰두해 주님을 만나뵐 준비를 하지 못하는 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믿음, 신조, 유용성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만나뵙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대할 때 오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을 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볼 때 그분이 오실 시기가 전혀 아닌 때 오십니다. 따라서 주님을 향해 언제나 충성스러운 사역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언제나 주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예비한다는 것은 특별한 봉사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실제로 주님을 집중적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자세는 우리 인생을 어린아이 같은 기대로 가득 차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세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려면 고상한 문화로 여겨지는 '종교 생활'을 버리고 영적으로 실제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유행을 따르는 종교의 부름을 피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당신의 마음을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는데 두고 그분을 따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비현실적이요 꿈만 꾸는 자라고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주하고 바쁜 어느 날 주님이 나타나실 때 당신만이 준비되어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심지어 이 땅에서 존재했던 아주 고상한 성인마저, 만일 그가 당신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면 그를 무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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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예고 없는 주님의 방문(Our Lord’s Surprise Visits)" by 오스왈드 챔버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0).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체험과 상관없이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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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날갯짓 한번으로 대폭발(불꽃폭죽같옹)이 일어난당 폭죽은 0.000001%의 확률로 볼 수 있당 (원래는 자주 보여야 되는데 빛이 너무 강해서 일부러 안보이게끔 하지만..?) 아무튼 누군가의 마음버블에 갇힌 🐻을 구출하는  🐻인뎅 갇혀있는 자가 갇혀있는  🐻을 구출한 의미는.......? 제가 쓰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용ㅋㅎㅋㅎ😝💖💖러시아 전통 인형처럼 상자 속의 상자 속에 있는 상자를 열었는데 계속 상자가 나오는 끝없는 멋짐을 소유한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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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1%의 확률로 타오르는 🐻의 날개 빛👼을 바라보는 🐻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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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