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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로마서 5 : 6~11🍑십자가 죽음으로 확증된 하나님 사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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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
바울은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본절의 의미를 보충하며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
바울이
엡 2:3에서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진술하고 있듯이,
'연약할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점
'아스데논'(*)->'도움을 받을 수 없다', '소망이 없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자연인은 그 자신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힘이나 소망이 전혀 없다.
바울이 '우리가 아직 연약하다'는 사실을 말한 것;-
우리가 전혀 구원의 소망이나 그 길을 찾을 하등의 힘이 없었음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화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代贖)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과 가치가 전혀 없었음을 강조
기약대로 -
'정해진 시기에' '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세상 가운데에서 시행될
정확한 시점이 있음(요 2;4;4:23).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바이거니와(사 7:14;53:2)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때에는 만세전(萬歲前)에 예정하신 계획에 따라 행하신다.
'기약대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때가
'적절한 시기' 즉 '인류에게 가장 소망이 없던 때'
건이 이루어진 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의 중요성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께서 기약대로 이 땅에 오셨듯이,
재림도 기약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 24:42-44). '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당신의 영원하신 계획대로 인류와 유주의 역사를 다스리시며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다(민 23:19).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
경건치 않은 자;-
8절의 '죄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sinners, LB).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죄인이며 또한 경건치 않은 자.
'...를 위하여';-
그 외에도 '...대신에', '...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불경건한 자들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대속적인 사건이었음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혹 있거니와 -
의인(a righteous man)과 선인(a good man)이 대조되어 있다.
'선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는 특징을 지닌다'(Lenski).
문자적으로나 그 의미상 두 용어는 구분된다.
의인이 정의의 차원에 서 있는 사람
선인은 사랑과 덕을 베푸는 사람(Lightfoot, Murray).
바울이
히브리인들이 시문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평행 대구법(parallelism)을 이용하고 있으므로
본절은 평행된 두 구절이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서로의 의미를 보충해 주는 문장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의롭고 선한 사람을 위해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죽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미(Murray).
인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가끔 출현할 수 있다.
의롭거나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희생적 행위 자체도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견줄 수 없음
그리스도의 절대적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인간 세상의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사랑을 소개하는 형식의
비교법을 사용하고 있는 본절은
8절의 내용의 서론격
본절이 8절 내용에 대해 서론격이라함은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죽는 자는 혹시 있을 수 있으나,
죄인을 위해 죽는 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대적 우위성을 강조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는 가치와 자격이 없는
인간의 본질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인들'(*, 하마르톨론)을 위한 것
'죄인'은
도덕적으로 의롭거나 선하지 않은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시작된 인간의
전적 타락성과 부패성으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사람(J. Calvin).
9절에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는 대조적 표현이 나옴을 볼 때 분명하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대조적 표현은
희생된 생명의 무한한 가치와
그분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은
사람의 무가치성의 대조를 극명하게 해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렸으니'(갈 1:4),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고후 8:9),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엡 5:2),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딛 2:14)등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에 대하여
풍부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을 위하여'(*, 휘페르)라는 표현이 6-8절에서 네 번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함과 더불어
그밖의 다른 것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따라
남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
하나님께서...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과 세상과의 화목(고후 5:19)
영적으로 죽은자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요 15:12, 13)
등에 관하여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 자신의 사랑'
'자기 자신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참됨
인간의 사랑은 자기 자신의 사랑이 아니라
모범을 따르는 사랑이요 배운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은 그 근원이 그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있는 것(요일 4:10, 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확고하고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드러내셨으니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확증하셨느니라';-
'추천하다', '드러내다'
'나타내 보여 주다'(demonstrate)(NASB, NIV),
'보여 주다'(show)(RSV).
바울이 동사의 시제로 현재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라어의 현재 시제는
현재에 발생하는 단순한 사건을 기술하는 것 뿐 아니라
현재 진행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타내 보여주고 계시느니라'(is demonstrating)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은
과거의 단 일회적 사건으로 끝이 났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바울이 본 서신을 쓰는 당시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끊임없이 부어지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본절은 6절과 8절 내용의 연속이나
좀더 자세하고 진일보하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 -
'그런즉' '그러므로'(1절;4:9, 10, 16, 22).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대속(代贖)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이 칭의의 근거라는 진술이다.
'그 피를 인하여'라는 표현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의 피 안에서'
'디아'는
'....을 통하여'(throught)라는 방법, 수단의 의미를 지니나
'엔'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상태, 조건'을 나타내는 포괄적 의미
'그리스도 안에서'(*, 엔 크리스토),
'주 안에서'(*, 엔퀴리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엔 크리스토 예수)
'디아'의 사용은,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대속적 능력이 있어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근원이 될 뿐만 아니라
한번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을
계속 다스리시고 역사하시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와 능력의 작용을 받아
계속하여 성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1절에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음에 있어
인간 편의 책임과 의무로서의 믿음이 강조되었고
본절에서는 의인(義認)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대속적 피흘림이 강조된 것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진노하심에서의 구원이
칭의를 위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칭의'는
재판관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아 벌을 면하게 되는
법정적인 차원의 '의'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그리스도가 죄인된 인간과
진노하시는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 뜨리는
'화목 제물'(propitiation)이 되셨다.
'훨씬 더', '더욱더'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흘림이
칭의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
'우리가 연약할 때에'(6절),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8절)란 의미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 형성되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보다 명확하고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수'(*, 에크드로이)
두 가지 견해;-
'하나님을 향해 적개심을 갖고 있는 사람'(능동적 의미)(Lightfoot)
'하나님이 원수로 여기는 사람'( 수동적 의미)(Murray, Harrison).
'원수'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범죄성의 측면에서만 이해한다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놓쳐버리게 되며,
'원수'를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하심에서만 이해한다면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원수하였을 때에';-
다만 어떤 상태나 조건을 나타낼 따름이라는 점에서도 분명해진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이 화목(和睦)될 수 있었던 근거는
'칭의'이다.
'칭의'가 없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은 있을 수 없다.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의 상태에 머무르는 자에게는 진노의 채찍을 내리시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리신다.
'화목' 자체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고후 5:18에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화목케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할 때에,
죄악된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는 제사장적 직분(벧전 2:9)
'하나님의 사랑을 선전하는 직책'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
그리스도의 부활과 화목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죽음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인된 인간의 구원과 화목에 있어
더욱 확실한 보증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그 이유는
(1) 그의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에게 부활을 확증시켜 주셨으며,
(2) 그의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조에)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공급되므로
성도는 그 생명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때문이다.
고전 15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 부활을 더욱 강조.
'화목된'과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1인칭 복수 수동태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과의 화목을 이루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원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심
칭의와 화목 그리고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업적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것(3:25-28).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화목을 얻게 하신';-
'칭의', '진노하심에서의 구원', '구원'
이러한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즐거워하다'(*, 카우코메노이);-
'자랑하면서 즐거워하다'(exalt, MB).
구체적으로 어떤 즐거움인가 ?
첫째는,
구속(救贖)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즐거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으며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로,
영원한 소망을 바라는 즐거움
2절에서 이 즐거움을 언급했으며
본서의 다른 구절과 고린도후서에서도
수차례 언급하고 있다.
8:18에서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24에서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고후 5:1에서는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셋째는,
참된 즐거움
현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은 일시적이요
가변적이며 또한 거짓되고 기만적이나
그 근원과 이유를 하나님께 둔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이요 보증이 있는 즐거움이기에 참되다.
칼빈(Calvin);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요
축복 그 자체이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
🟢
🟣
하나님의 성품/속성:
소망, 도움, 절대적(희생적/끊임없이
부어지는, 나타내 보여주고 계시는)
사랑과 덕, 구원, 만세전부터
예언(예정)하신, 역사,
(우주적)계획하시는, 영광,
주관자, 영원, 다스리시는,
성취, 약속의, 의롭고 선하신,
위대하신, 생명, 무한한 가치의, 은혜,
대속의, 참되신, 근원, 확증의, 칭의,
권세와 능력의, (화평)화목 제물,
거룩하신, 은혜, 측량할 수 없는,
부활의, 축복, 부족x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 주님의 사랑에 따라 남을 위하여
행동하는, 화목, 모범을 따르는, 성화의
삶, 책임과 믿음, 그분의 사랑을 선전하는,
구원에 대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
🔵
좋은 것,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세상의 가치관을 뛰어 넘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겠다.🩸✝️
🌱🌿🌳
이해할 수 없이 크신 사랑으로 죄로 인해 원수 된 우리를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대속하시고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사모함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ESa4QKNomA
(주님은 나의 최고봉)
3월 30일 하나님을 향한 거룩입니까 강퍅함입니까?
사 59:16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강퍅하여지는 이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감상적인 관심만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말은 듣기 좋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기도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알려 줍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누리며 우리 영혼이 높은 곳으로 들려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잘못된 기도의 개념에 놀라시는 것처럼 암시하고 있습니다.
경배하는 마음과 중보 기도는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있고 다른 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중보 기도란 우리 자신을 사로잡아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기도 응답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논리를 펴나갑니다. 당신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논쟁합니까? “하나님, 나는 주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시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뵙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강퍅하여지고 고집이 세어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간청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져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 분이 하셔야 한다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러한 기도 자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고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강퍅하여지면 다른 사람을 향하여도 강퍅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대상을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 그 마음을 갖고 싶어 주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메어 달립니까? 하나님과 거룩한 관계 가운데 살아갑니까? 아니면 마음이 굳고 고집을 부립니까?
“마땅한 중재자가 없음이라.” 당신 자신이 중재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과 거룩한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실제로 중보기도의 사역을 시작하십시오. 중보기도의 사역은 노동이며 당신의 모든 힘을 필요로 하는 사역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함정이 없는 사역입니다. 복음을 외칠 때는 (사람을 의식하거나 인기를 구하는 등의) 덫이 있을 수 있어도, 중보 기도에는 함정이 없습니다.
https://reformedkjy.tistory.com/9272
중보 기도할 때의 기도 자세를 말하는 내용인 것 같네용..!!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면 다윗과 욥처럼 때로는 탄식, 부르짖음, 애통 등으로 솔직한 마음을 드리며 기도드려요~
성경 말씀:
예수님은 "어머니,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2:4
아버지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릴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요한복음 4: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직접 너희에게 표적을 주실 것이다 :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이사야 7:14
그는 연한 순처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주 앞에서 자랐으니 그에게는 풍채나 위엄이 없고 우리의 시선을 끌 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없다.
이사야 53:2
42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어느 날에 너희 주님이 오실지 너희는 알지 못한다.
43그러나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라. 만일 집 주인이 밤에 도둑이 드는 시간을 알았다면 깨어 있다가 집에 도둑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44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지 않은 때에 내가 올 것이다.
마태복음 24:42-44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며 인간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지 않으시며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겠습니까?
민수기 23:19
18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기와 화해시키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직책을 주셨습니다.
19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시고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8, 19
12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내 계명이다.
13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12, 13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 아 주셨습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0, 19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으심으로 그냥 지나쳐왔던 과거의 모든 죄를
26오늘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셔서 자기도 의로우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의롭다고 인정하기 위해서입니다.
27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 율법이나 행위로 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28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로마서 3: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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