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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2 : 1~12🍑다음 세대에 전할 유언, 말씀 순종과 정의 실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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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2 : 1~12🍑다음 세대에 전할 유언, 말씀 순종과 정의 실현

credo15229850 2024. 4. 5. 11:24

https://tripol.tistory.com/441

 

히브리어 열왕기상 2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이크레부 예메 다위드 라무트 와예차우 엩 쉐로모 베노 레모르 개역개정,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새번역,1 다윗은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서, 아

tripol.tistory.com

 

열왕기상 2: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임명한 때로부터 그에게 최종 유언을 하는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가 상당 기간이었을 것이다.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즉위 후 다윗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성전 예배의 새로운 규례 제정, 제물 봉헌, 그리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공포하는 의식을 성대히 행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대상 23장-29장).

명하여 가로되 -

다윗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남기는 명령은 대상 28-29장에서 볼 수 있다.

본절 이하의 내용은 다윗이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사적(私的) 유언의 형태로 은밀히 당부하는 말이다.

본서가 솔로몬 즉위 이후의 다윗의 활동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와 달리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나는 모든 땅에 속한 자들의 길로 가고 있노니"(I am going in the way of all the earth), 임종(臨終)이 가까왔음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이다.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서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 23:14)라고 말한바 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 

'너는 강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자가 되어라'

이러한 다윗의 권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수 1:6-4).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당시 솔로몬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즉위식 이후에도 다윗은 솔로몬을 '어리고 약한 아들'로 말하기도 한다(대상 29:1).

유대 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즉위시 솔로몬의 나이를 14세 정도로 보았다. 혹자는 12세로 보기도 한다(Eupolemus). 아무튼 20세가 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Hammond).

대장부가 되라는 다윗의 말이 결코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삼상 4:9).

여호와의 율법 준수의 임무를 행함에 있어 담대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eil, B hr).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담대한 것'과 '율법 준수'는 상호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수 1:7).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다.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 

'지키라'는 '파수꾼이 되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파수꾼이 되라는 말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 수행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레 8:35;18:30;민 1:53;3:7).

이스라엘의 왕도 이들처럼 신적(神的) 직무를 위임받은 여호와의 통치 대리자로서,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B hr).

그 길로 행하여 -

여기서 '길'(*, 데레크)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의 도(道)이다.

신 32:4에 의하면 하나님의 길은 공평(公平)의 길이다.

솔로몬은 통치할 때 '공평'을 기본 강령으로 삼아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도로 다스려야 했다.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

여기서 '법률'(*, 훅카)과 '계명'(*, 미츠와)과 '율례'(*, 미쉬파트)와 '증거'(*, 에두트)는 모세 율법 그 전체를 강조하여 제시하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이다(Keil).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처럼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어 나란히 등장하는 예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신 5:31;8:11;시 119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켜라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세운 법과 제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칫 소수의 집권층만을 위한 악법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므로(롬 7:12),

그 법대로 통치하는 자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생활을 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공의와 평강의 나라인 것이다(계 11:15).

형통할지라 -

사전적 의미에서의 형통(亨通)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됨'을 의미한다. '지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지혜롭게 되는 것이고

지혜로운 그가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B hr). 

'형통'(*, 사칼)이란 말 속에서 뜻한 바대로 잘되는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지혜'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일찍이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12-16)을

이제 죽음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만일 네 자손이...행하면 -

이 조건절은 원래 나단의 메시지 (삼하 7:8-16) 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이후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8:25;9:5 등).

이 내용은 신명기에 기록된 바(신 6: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위탁한 교육적 책임이다.

이스라엘의 왕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고 있지 않다(신 17:18-20).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신 6:5 주석 참조.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 -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며,

요압은 그녀의 맏아들이다(대상2:16).

 내게 행한 일 곧...네가 알거니와 -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을 참조하라.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군대 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다(삼하 3:6-39;20장).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다윗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B hr;삼하3:26;20:11)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지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14) 거칠었던 것 같다(삼하 3:27;18:14).

끼친 공(功) 못지 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

다윗은 아브넬과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려 했었다(삼하 3:21).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다(삼하 19:13;20장). 

다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다(삼하 3:29).

 전쟁의 피로...띠와...신에 묻혔으니 - 

'띠'와 '신'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갖추어야 할 것들로서,

주로 전쟁에 임하는 전사(戰士)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 도구였다(Keil, B hr).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피를 띠와 신에 묻혔다면,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다.

요압은 태평한 시대에, 

다윗이 탕평책을 쓰고 있는 즈음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없이 흘리게 했으니,

그것이 곧 요압의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네 지혜대로 행하여 -

요압은 그때까지도 군대 장관이었고(35절),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당대의 세도가였다.

그러한 인물을 명분없이 처단한다면 민심의 동요와 같은 어려움이 생길지도 몰랐다(Starke). 

나쁜 술수로 요압을 처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납득이 갈 만한 처벌의 정당성과 적절한시기를 가려 시행하도록 충고하는 말이다.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측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한다(19-25절,28-34절).

 그 백발로 평안히...내력지 못하게 하라 -

그 무렵 요압도 고령기에 접어들었던 것같다.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B hr).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가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창 4:10),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다(수 2:19;마 27:24,25).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5,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이다.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못했다고 보기도 한다(Leon Wood).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솔로몬을 거스려 아도니야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요압을 솔로몬이 처리하도록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국의 강화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 실현 차원에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압의 처리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 같다(R. Patterson, J. Hammond).

음부(*, 쉐올) -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 또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

창 37:35;민 16:30;신 32:22;삼상 2:6;삼하 22:6 주석 참조.







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바실래 -

바실래 및 그가 다윗에게 베푼 선행에 대해서는 삼하 17:27-29;19:31-39부분의 주석을 참고하라.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

이 일은 원래 다윗이 한때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어려음에 처한 자신에게 음식물로 공궤한(삼하 17:27-29) 바실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해왔던 것인데, 이제 솔로몬에게도 그 선행 보답을 계속하도록 부탁하고있는 것이다(삼하 19:33, 37).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다윗이 정처없는 피난 길에 나서는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 때,

바실래는 여러 가지 식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선행을 베풀었었다(삼하 17:27-29).

후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금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바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다(삼하 19:31-39).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바실래의 선행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바실래와 맺은 약속을 솔로몬 역시 계속 지켜 나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바후림 -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Bahurim)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고을로,

베냐민 지역에 속한다(삼하 16:5).

게라의 아들 -

'게라'(Gera)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다.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의 아들'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J.H-ammond).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

'너와 함께 있나니'(*, 임메카) 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Keil, B hr). 

이 말은 혹자(Starke)의 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므이'(Shimei)에 대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

'그는 지독한 저주로써 나를 저주하였다'란 의미인데,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다.

학자들은 여기서 '독한 말'(*, 켈랄라 니므레체트)을 '강렬한 말'(Gesenius),

'거친 말'(Keil), '악한 말'(Thenius) 등으로 번역한다.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정도로

시므이의 독한 말(저주)은 다윗에게 깊이 원통함을 심어준 말이었다(삼하16:12).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환영단 일천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삼하 19:16-2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내가...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기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하 19:21,23 주석 참조.





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찌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찌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

압살롬의 반란 때 시므이는 피난가는 다윗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으나,

후에 다윗은 그를 용서한 바 있다(삼하 16:5-13;19:19-23). 

시므이가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유지였고,

그 무렵은 압살롬 내란 이후 회합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삼하 19:23). 

아들 솔로몬에게는 그러한 맹세의 책임이 없는 것이다.

원문은 '무죄'를 '벌하지 않은 상태'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는 원문상 '그리고 지금'이란 뜻이다.

이 말은 이제까지 벌하지 않은 상태로 보류해 온 시므이에 대한 처벌을

지금 집행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J. Hammond).

그 백발의 피를 흘려...내려가게 하라 -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民心)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할 존재로 작정했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Richard D.Patterson). 

시므이를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떠나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한다(Keil, Hammond).






 
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장사되니 -

'열조와 함께 누워 자다'란 표현은 '열조에게 돌아가다'(창 25:8;35:29;49:33)란 표현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적 표현이다.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聖君)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2절) 가고 말았다.

다윗은 자신의 남은 마지막 재임 기간을 새 왕 솔로몬과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로 보냈다(대상 22:6-19;28:1-21;29:1-22).

 다윗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하에서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대상 29:28)

죽어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이요 의로운 왕이었다.

 다윗이 세운 도시 예루살렘은 '다윗 성'으로 간주되었다(3:1;8:1;느 3:15).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의(義)의 척도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가증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다윗을 생각해기 때문이었다(왕하 8:19).

다윗은 장차 그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그 뚜렷한 의의를 지닌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지칭했으며(마 1:1),

백성들 역시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다윗을 기렸던 것이다(마 21:9).

다윗 성 -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성채로

시온 산성과 동일시 된다(8:1;삼하 5:7;대 5:2).

시온 산(Mt, Zion)은 두로포이온 계곡과 기드론 계곡 사이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종종 예루살렘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Wycliffe).

유대 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IDB). 

역대 유다 왕들의 무덤은 시온 산 곧 다윗 성에 있었다(11:43;14:31;15:8).

다윗의 묘는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느 3:15, 16) 후일 사도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행 2:29).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십년이라 헤브론에서 칠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을 치리하였더라

다윗이...치리하였더라 -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 경에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라 그의 나이 70세 때인 B.C. 970년경까지

40년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한 후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그의 통치를 마감하였다.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

다윗의 헤브론 7년 통치는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서 통치한 기간이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국을 통합하여 명실 공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33년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에 대해 역대기는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7년으로 나타내고 있지만(대상 29:27),

사무엘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7년 6개월로 나온다(삼하 5:5).

 



12.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

 1:46과 중첩되나 본절은 다윗이 죽고 이제 본격적인 솔로몬의 통치기가 시작됨을 나타낸다.

솔로몬의 즉위(1:46) 이후에도 다윗은 죽을 때까지 얼마동안

일종의 섭정 자격으로 통치를 계속했던 것 같다.

솔로몬의 즉위 연대는 대략 B.C. 970년 경으로 추정된다.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

대체로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져 나올 내용의 요약으로 보고 있다(Keil, B hr, Hammond).

여기에 상응하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대상 29:23-25 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일찍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삼하 7:12).

 

 

 


성경 말씀: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를 가져라. 너는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을 얻게 할 지도자이다.
여호수아 1:6-4

 

그러자다윗대답하였다. "나를 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이름으로 내가맹세한다.
사무엘상 4:9

 

너는 굳세어라. 용기를 내어라. 나의 종모세가 너에게 준 모든율법을 하나도 소홀히 하지 말고 정성껏 지켜라. 그러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 1:7

 

그러므로율법계명은 다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로마서 7:12

 

일곱째천사나팔을 불자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하나님과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이 길이길이 다스리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1:15

 

12네가 죽어도 나는 네 아들 하나를 왕으로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

13바로 그가 나를 위해 성전을 건축할 자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게 할 것이다.

14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범죄하면 나는 사람을 막대기와 채찍으로 사용하여 그를 벌하겠다.

15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에게서 내 자비를 거둔 것처럼 그에게서는 내 자비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16그리고 네 집안과 네 왕조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사무엘하 7:1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내아버지에게 이런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일 네 자손들이 너를 본받아 내대로 살면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네 집안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열왕기상 8:25

 

내가 너의 아버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 집안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 그 약속을 내가 지킬 것이다.

열왕기상 9:5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령하신 법과 규정입니다. 여러분은 들어가 살 땅에서 이것들을 지키십시오.

2이것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이 평생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법과 규정을 지킴으로 여러분이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3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잘 듣고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복을 받아 여러분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대로 기름지고 비옥한 땅에서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4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단 한 분밖에 없는 여호와이십니다.

5여러분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오.

6그리고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 말씀을 언제나 잊지 말고

7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십시오. 여러분은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나 이것에 대하여 항상 이야기하십시오.

8또 여러분은 그것을 손에 매어 달고 이마에 붙여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9그리고 여러분의 집 문기둥과 문에 그 말씀을 기록하십시오."

신명기 6:1-9

 

18누구든지 왕위에 오르는 사람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보관하고 있는 율법서를 베껴서

19그 사본을 자기 곁에 두고 평생 동안 읽으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법을 배우고 거기에 기록된 모든 법과 규정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20그러면 그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게 되고 어떤 경우에도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와 그 후손이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7:18-20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다윗에게 그 후손들이 계속 나라를 다스리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었다.
열왕기하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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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성품/속성:
통치, 왕, 힘, 권면하시는,
말씀/계명/율법, 공평과 도, 
거룩, 선과 의, 하나님의 나라,
평강과 공의, 지혜, 형통, 
약속의, 태평, 은총, 용서의,
징계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 봉헌, 그분의 말씀을
힘써 지키는, 담대함, 말씀의
파수꾼(하나님의 통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과
자신(사람)의 뜻을 일치시키는
지혜, 말씀으로 교육할 
책임/의무, 충성, 받은 선행 
보답하기, 
🔵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지혜
로운 자가 되면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된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다윗이 사울을
대한 것처럼 존중해야 겠다.🩸✝️
🌱🌿🌳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순종하기에 힘썼던 다윗처럼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올바른 행동과 말을 지혜롭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

 

4월 5일 주님의 고통과 우리의 친교

 

마 26:36, 3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우리는 겟세마네의 고통을 결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 고통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고통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신-인이신 주님께서 겪는 고통입니다. 우리의 개인적 체험으로는 겟세마네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겟세마네와 갈보리는 아주 유일한 것을 상징하는데 바로 우리가 영생에 이르는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두려워하신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셨습니다. 주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말씀은 자신은 죽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주께서 두려워하신 것은 “인자(Son of Man)”로서의 사명을 다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로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공격은 “인자”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구세주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기록을 사탄의 유혹의 배경 속에서 읽어 보십시오. 주님의 공생애의 처음 시험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 사탄은 겟세마네에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또 패배하였습니다. 사탄은 겟세마네에서 “인자”로서의 우리 주님을 마지막으로 공격한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고통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기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주께서 어떠한 대가를 치루셔야 하는지 그 비밀이 다 드러났습니다. 주님의 고통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반석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자”로서의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주께서 승리하셨다는 표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승리하셨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자”께서 고통을 겪으시므로 인하여 누구든지 지금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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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의 고통과 우리의 교제(His Agony and Our Access)" by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 4월 5일 주님의 고통과 우리의 친교 마 26:36, 3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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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EzMe6YNkB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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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도망할지 모르는 불안한 🐻 잠수탈 것인가~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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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 조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급하게 했다가는 큰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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