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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6 : 1~13🍑성전 건축보다 중요한 말씀 순종의 삶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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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 -
보통 출애굽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B.C. 1,440년 경으로 보는 주장이고('전기 연대설' 또는 '15세기설'), 다른 하나는 B.C. 1,200년 경으로 보는 주장이다('후기 연대설' 또는 '13세기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애굽기 서론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틸레(Thiele)의 계산을 따라 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 4년 시브웰(유대 종교력 2월;오늘날 태양력 4, 5월)을 B.C. 966년 경으로 볼 때, 본문대로라면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 경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절의 '사백 팔십 년'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많은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근거하에서 480년이란 이 연대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곧 (1) 70인역(LXX)은 480년 대신 440으로 보았다. (2) 요세푸스(Josephus)는 480년 대신 592년으로 잡는다. (3) 혹자들은 본문의 480년을 일종의 상징적인 세대수(世代數)로 본다. 즉 벌도우(Bertheau), 뵈쳐(Bottcher) 같은 학자들은 여기 480년을 '40년+12세대=480년'으로 보고, 실제적인 12세대는 250년~280년 가량이므로, 약 200년 가량 단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주장은 입증할만한 뚜렷한 근거없이이 추측의 선에서 머물고 만다. 반면 카일(Keil)과 메튜 헨리(Matthew Henry) 같은 주석가들 및 우드(L. Wood)와 아쳐(G. A. Archer) 같은 보수주의 구약 학자들은 본문 그대로 480년의 정확성을 뚜렷이 주장한다. 사실 본절이 왕의 통치 년, 월까지 상세히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은 높다. 그리고 이 480년은 부분적인 이견(異見)이 있긴 하지만, 대략 (1) 광야 생활 40년 (2) 가나안 정복기 및 평정기 32년 (3) 사사 시대 331년 (4) 사울의 통치기 33년 (5) 다윗의 통치기 40년 (6) 솔로몬의 즉위 후 4년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편, 본서 저자가 성전 건축 시기를 특별히 출애굽을 기준으로 해서 기술한 까닭은, 성전 건축은 곧 약속의 땅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임시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소유를 표징(表徵)하는 신기원(新紀元)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Keil).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년 -
솔로몬은 즉위 초부터 히람과 협정을 체결하여(5:1-12), 대략 3년 동안 목재, 돌, 역군 등 건축에 필요한 제반 준비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5:13-18).
시브월 -
37절 주석 참조.
전(殿)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
역대하 3:1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이다(창 22:2). 그곳은 인구 조사의 죄를 범한 다윗에게 천사가 하나님을 위해 번제단을 쌓도록 지시한 장소(삼하 24:16-25), 곧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대상 21:15-27).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쳐 드리던 중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나타난 역사적인 장소이다(창22:2, 14).
2.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전은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삼십 규빗이며
전(殿) -
여기서 '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 본당을 가리킨다.
장(長)이 육십 규빗이요 광(廣)이 이십 규빗이요 고(高)가 삼십 규빗이며 -
일반적으로 '규빗'(Cybit)은 어른의 팔꿈치에서 중지(中指)까지의 길이로 대략 45.6cm, 혹은 그 안팎이다(Siloam Inxdriptoin;창 6:16;출 37:1;신 3:11). 왕실에서는 좀더 긴 규빗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1규빗이 대략 52~54cm 가량이다(Stinespring). 한편, 대하3:3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에는 '옛적 재는 법', 곧 모세의 측량법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1규빗을 대략 45.6cm 가량으로 잡고 전의 규모를 환산해 보면, 대략 길이가 27.36m, 너비가 9.12m, 높이가 13.68m 가량이다. 그런데 이 규모는 당시의 대건축물에 비하며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이유인즉 아마 이곳은 일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거처하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오직 제사장들만이 드나드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Dentan, Hammond).
3. 전의 성소 앞 낭실의 장은 전의 광과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광은 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낭실(廊室) -
'낭실'(*, 울람)은 '앞서가다', '인도하다'란 뜻을 갖고 있는 '울'(*)에서 파생된 말이다. KJV는 이 말을 '현관'(porch)으로 번역하였다.낭실은 성전 입구가 있는 동쪽에 위치한 부속 건물로 일종의 대기실 역할을 하였다. 문에 대한 언급이 예외적으로 없는 것으로 미루어(31, 33절) 아마 이 낭실은 터널같은 구조가 아니었을까 추측되기도 한다(B hr). 한편, 낭실의 길이는 20규빗(9.12m)이며 너비는 10규빗(4.56m)이었다. 그리고 본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대하 3:4의 기록에 의하면 낭실의 높이는 120규빗(약 55m)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건축상의 비육이나 건축물의 모양상 이런 낭실의 높이는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역대기의 기록에 필사상의 오류가 개재된 것으로 보고, 낭실의 높이는 성전 본관의 건물 및 낭실의 길이와 너비에 어울리게 20규빗 내지는 30규빗 정도로 추측한다(Keil, Thenius, Hammond, Furgusson, Bertheau, B hr).
4. 전을 위하여 붙박이 교창을 내고
붙박이 교창(交窓) -
공동 번역은 '붙박이 교창'을 '우묵 들어간 틀에 끼운 창문'으로 번역하였다(windows with recessed frames, RSV). 즉 안쪽보다 바깥 쪽이 더 좁게 생긴 구조이다(Aquila). 그런데 창문의 이러한 구조는 햇빛과 공기가 잘 들어오고 연기는 잘 빠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Keil). 한편, 지성소에는 이러한 창문이 없었으므로 완전한 암흑이었다.
5. 또 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
전의 벽...다락들을 건축하되 -
솔로몬은 성전(성소와 지성소) 바깥 벽에 잇대어서 많은 '골방들'로 나뉘어지는 3층 구조의 건물을 지었다.
골방들(*, 첼라오트) -
이 골방들의 숫자는 30개이다(겔 41:6). 그리고 이 골방의 용도는 겔 42:13, 14에 의하면 (1) 제사장들이 제물을 먹는 장소. (2) 제물을 보관하는 장소. (3) 제사장들이 옷을 갈아 입는 장소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 (4)그리고 성전에는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거처 장소이기도 했다(시 134:1). 한편, 이처럼 솔로몬 성전의 구조와 용도를 밝히는 데 에스겔의 미래의 성전은 곧 솔로몬의 성전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Quellette).
6. 하층 다락의 광은 다섯 규빗이요 중층 다락의 광은 여섯 규빗이요 제 삼층 다락의 광은 일곱 규빗이라 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으며
하층...중층...삼층 다락 -
다락(*, 야추아)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밑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1규빗씩 넓게 고안되었다. 그 까닭은 윗층 바닥이 아랫층의 양 벽에 좌우로 반 규빗씩 걸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각 층은 나사 모양의 사다리로 연결되어 오르내리도록 되었다(8절).
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으며 -
'턱을 내어'(*, 미그라오트)라는 말은 '벽의 두께를 줄인다'는 뜻이다(Keil). 예를 들면, 각층 골방의 들보를 지탱하는 선반(턱)을 만즐기 위해서 윗층벽의 두께를 1규빗씩 축소하는 식이다. 한편, 왜 들보들로 전(殿)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고 굳이 턱을 내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성전 벽면의 돌들이 크고 값진 것이므로 구멍을 내기 싫었을 것으로, 아니면 성소와 지성소의 신성함을 손상치 않으려는 것으로 추측해 볼 따름이다(B hr).
7.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
이 구절은 채석장(採石場) 현지에서 이미 치수에 맞춰 돌을 다듬었으므로 정작 건축 장소 내에서는 연장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을 말한다(Keil, Thenius, B hr). 따라서 다듬을 필요조차 없이 건축물의 치수에 꼭 들어맞는 돌들을 미리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라는 견해(Theodoret)는 무리이다. 물론 그러한 견해는 신 27:5, 6의 정신에 맞추려는 관심에서 주장된 것이다. 그리고 본절이 제시하고 있는 공법(工法)이 어느 정도 그 같은 율법 정신을 반영함도 사실이다(Hammond). 그러나 본절의 문맥상, 그리고 5:18절을 고려할 때 본절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건축현장에 운반되기 전에 채석장 현지에서 미리 치수에 맞도록 돌을 다듬었음을의미한다. 한편, 레바논 외에도 솔로몬은 예루살렘 근처에 소위 '솔로몬의 채석장' 도는 '왕궁의 동굴들'로 일컫는 채석장들을 갖고 있었다 한다(Hammond, Gates, Wood,Josephus).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일차적으로 '철기를 대지 않는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출 20:25; 신 27:5의 옛 율법 정신을 형식에서라도 가능한한 접근하려는 노력이다(Gray). 그리고 치석(治石)을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레바논 채석장이나 '왕궁의 동굴들'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건축 현장에서는 철 연장 소리 없이도 작업이 가능했음을 이해할만 하다. 한편, 이처럼 '피를 흘리게 하는' 철 연장 소리 없이 정숙히 성전 건축 작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암시하는 영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 등을 상징하는 거룩과 평화의 장소로서 성전은 그 성격에 부합되도록 건축 과정에서도 평화로움과 정숙함과 거룩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Patterson, M. Henry).
8. 중층 골방의 문은 전 오른편에 있는데 나사모양 사닥다리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제 삼층에 오르게 하였더라
중층 골방의 문 -
'중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핫티코나'(*)는 '중간'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구절을 '하층 골방 중간의 문'이라는 의미로 수정한다(B hr, Ewald, Keil 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문 성경들도 '맨 아래층'(the bottom floor, Living Bible'the lowest story, RSV)이란 의미로 본절을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지상 3층 건물의 입구가 2층에서시작될 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상과 같이 해석될 경우, 본절의 '골방'(*, 하첼라)은 에스겔 41:5, 9, 11에서처럼 한 층에 속한 골방 전체를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 된다(B hr, Keil).
문은 전 오른편에 있는데 -
이처럼 제사장들을 위한 골방에 이르는 문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 보속 건물과 성소 및 지성소, 즉 성전 본 건물 사이에 아무런 연결 통로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골방들이 있는 부속 건물에서 성전(성소와 지성소)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었으리라는 테니우스(Thenius)의 가정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것은 성전의 거룩성에도 어긋나는 추측이 아닐 수 없다(Hammond, Keil). 한편, 여기서 '전(殿) 오른편'은 7:39에 의하면 동남쪽 편이다. 그런데 이 때의 '오른편'은 밖에서 성전 입구를 바라보았을 때가 아니라,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밖을 바라보았을 때의 오른편이다.
나사 모양 사닥다리 -
'사닥다리'(*, 룰림)란 단어는 여기와 70인역(LXX), 벌겟역(Vulgate) 등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창 28:12의 '사닥다리'는 본절과달리 '술람'(*)의 번역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룰림'이 '나선형 계단'(winding stairs)이라면, '술람'은 문자 그대로 '사닥다리'(ladder)를 뜻하는 단어이다. 한편, 과연 고대에 나선형 사닥다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가능했는지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으나(Stade, Moffatt), 고고학자의 발전이 이를 입증해 줌으로써 반박되었다(Montgomery). 즉 B.C. 18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나선형 사닥다리 유적이 아카나(Achana)의 한 궁전에서 발견되었다(Patterson).
9. 전의 건축이 마치니라 그 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전의 건축이 마치니라 -
본절은 일단 돌을 사용하는 건축은 끝났음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 들여진다. 물론 내장(內粧)과 지붕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10, 15절), 최종적인 의미에서의 완성은 38절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그러나 석조 건축, 즉성전의 외형(外形)공사는 일단 완료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본절이 보조문으로 삽입된 것이다(Montogomery).
그 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
'덮었고' 에 해당하는 '이세폰'(*)은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사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신33:19;렘 22:14). 그러므로 본절의 작업은 15절의 내장 공사와는 달리 지붕을 덮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지붕의 모양에 대해서는 (1) 둥근 아아치 형(Thenius), (2) 人자 모양의 박공(博供, gable) 형(Fergusson), (3) 평평한 형(B hr, Keil) 등이 주장된다. 이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런나 당시 근동의 건축물의 대다수가 그렇듯, 일반적으로는 평평한 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J.Hammond).
10. 또 온 전으로 돌아가며 고가 다섯 규빗 되는 다락방을 건축하되 백향목 들보로 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또 온 전으로 돌아가며 -
성전 본관 전면(全面), 즉 낭실이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의 둘레를 가리킨다(3, 5절).
고가 다섯 규빗되는 다락방 -
이 '다락방'(*, 야추아)은 6절의 다락들과이에 딸린 골방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속 건물은 3층 건물로서 각 층의 높이가 5규빗(약 2.3m)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층 건물 전체의 높이는 15규빗(6.84m)이지만, 약간의 여유있는 간격을 염두에 둔다면 대략 18~20규빗(약 8~9m) 정도일 것이다(Hammond). 그런데 이 높이는 성전 본관의 높이(2절)와는 10규빗(4.5m) 이상의 차이가 나므로 이 간격에 창문을 설치했으리라 본다(Keil).
백향목 들보로 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
이 들보들은 성전 벽 바깥 둘레에 이 용도를 위해 일부러 만든 턱(선반)에 걸쳐졌다(6절). 따라서 성전 본관 자체에는 어떤 손상을 주지 않고도 이 건물은 성전에 든든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Keil). 한편, 이 다락들은 분명 물건을 저장할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이다(Patterson).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
이 말씀은 분명 선지자를 통해 솔로몬에게 전하여졌을 것이다(Keil, B hr, Patterson). 그렇지 않다면 9:2의 기록과 모순이 생긴다. 왜냐하면 9:2에서 이루어지는 솔로몬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은 바로 두번째임을 11:9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첫번째 직접적인 교통은 일천번제 이후 기브온 산당에서 나타났다(3:5). 그리고 두번째 교통은 성전 뿐만 아니라 왕궁 및 모든 건축이 마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따라서 본절의 말씀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해준 인물은 어쩌면 나단 선지자일 수도 있다. 만일 나단이 그때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최초의 언약(삼하 7:12)을 전해줬던 그가 다시금 그 언약을 새롭게 했음직도 하기 때문이다(Hammond).
12.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
영역본 RSV는 이 구절을 "네가 짓고 있는 이 집에 관해서"(concerning this house which you are building)로 번역하였고 다은 영역본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서 내용이 조금 잘린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원문이 조금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네가 짓는 이 집 말인데..."로 옮김으로써 이런 사실을 비교적 잘 드러내주고 있다.
법도 -
'법도'(*, 훅카)는 원래 '새기다', '조각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즉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신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일반적인 법률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에서 나온 법, 곧 율법으로서 이해해야 한다(신4:5, 14;6:20). 따라서 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 된다(Wharton).
지켜 그대로 행하면...이룰 것이요 -
성전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성전에 임재하시도록 붙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언제나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전제로 해서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성전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순종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Dentan). 한편, 이 조건적 언약의 내용은 2:3;3:14의 반복이다.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 -
구체적으로는 '네 아비 다윗과 맺은 너에 관한 언약'이란 뜻으로(NASB, JB), 삼하 7:12-16의 언약을 가리킨다.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
원래 성막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는 것이었다(출 25:8; 레 26:11). 이제 모세 성막을 대신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짐에 따라 이 약속은 솔로몬 성전에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본절은 율법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이 지어진 솔로몬 성전을 자신의 임재의 보증으로 삼으시겠다는 언약인 것이다.
버리지 아니하리라 -
'버리다'(*, 아자브)에는 '배반하다'하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본절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결코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암시해 준다.
성경 말씀:
5-6. 그리고 여러분은 거기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철 연장을 사용하지 말고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쌓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신명기 27:5, 6
너희가 나를 위해 돌로 단을 쌓으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아라. 연장을 사용하게 되면 그 단이 더럽혀진다.
출애굽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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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성전, 은혜, 역사, 인도,
앞서 가시는, 임재, 영적인,
거룩, 평화, 정숙함,
말씀/언약/계약/법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
봉사,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 그분의 말씀/법도에
복종/지키기/순종,
🔵
12,1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주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거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난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15-21절이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는 연약함을
주님께서 아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고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은혜에 감사하다. 🩸✝️
🌱🌿🌳
예수님의 모형인 성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더 커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GuAZrij128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14일 난공불락의 영감
마 11:19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우리의 불평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요!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음하며 말합니다. “오 주님,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해 주소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멍에의 한쪽 끝을 잡으라고 하십니다. “나의 멍에는 쉬우니 나와 함께 이 멍에를 메자.” 당신은 이와 같이 주 예수님과 일치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주님의 도우시는 손을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오셔서 감상에 빠진 우리를 건져내시고 우리의 불평을 찬송의 시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주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성도들이 어디에서 기쁨을 얻습니까? 만일 우리가 성도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 그 분은 멍에가 없이 편하게 살았답니다.” 베일을 걷어 올리십시오. 하나님의 평안과 빛과 기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멍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워주시는 멍에는 포도송이를 짓이기게 되며 그 결과로 포도주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에로 인하여 만들어진) 포도주만 봅니다. 이 세상 및 지옥의 그 어떤 세력도 인간의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은 정복될 수 없는 우리 안의 내적 힘입니다.
만일 당신 속에 불평이 있다면, 가차없이 발로 차 버리십시오. 불평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약하여지는 적극적인 범죄입니다.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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