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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1 : 14~25🍑주님이 보호를 거두시면 괴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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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1 : 14~25🍑주님이 보호를 거두시면 괴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credo15229850 2024. 4. 29. 11:00

https://tripol.tistory.com/450

 

히브리어 열왕기상 11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웨함메렠 쉐로모 아합 나쉼 노케리요트 랍보트 웨엩 바트 파르오 모아비요트 암모니요트 아도미요트 체데니요트 히티요트 개역개정,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

tripol.tistory.com

 

열왕기상 11: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에돔 -

이스라엘 동남쪽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국가이다. 여기서 '에돔'(*)이란 '붉은 지역'이라는 뜻인데, 이 지역에 붉은 바위와 흙이 많았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이다. 한편, 에돔의 선조는 이스라앨의 조상 야곱의 형인 에서이다(창 36:1). 이는 두 국가가 민족적 혈통상 매우 밀접한 관련하에 있음을 암시해 준다(Cohen). 그러나 열왕기 시대에 에돔은 내내 남왕국 유다의 적(敵)이었다.

 하닷 - 

원문상 17절은 '아닷'(*)으로 표기되었지만,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하닷'(*, Hadad)은 '태양' 아니면 '호통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유 명사가 아니고, 에돔인들이 왕을 가리켜 단지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Hammond). 한편 시리아 지역의 왕들 이름 역시 벤하닷, 하닷에셀과 같이 '하닷'과 결부되어 등장하곤 한다. 솔로몬 당시 에돔 왕 하닷은 에돔의 왕족으로, 일찍이 요압과 아비새 휘하의 다윗 군대가 어떤 이유로 에돔 왕족과 군대를 진멸시키기 위한 학살 작전을 감행했을 때 애굽으로 도피하여 살아 남았던 유일한 생존자 였다(삼하 8:13, 14;대상 18:12, 13).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

에돔 사람 하닷 편에서 보면, 솔로몬에 대한 그의 적대는 일종의 독립운동이겠으나, 솔로몬에게 있어 하닷의 적대 행위는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이었다. 이렇듯 얼핏 인간들끼리의 사건처럼 보이는 역사의 모든 대소사의 배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의 선택과 자유 의지적 행위가 언제나 관련되고 전제되어 있다(Davison).






 

15. 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장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전에....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

본절이 말하고 있는 시기가 삼하 8:13, 14; 대상 18:12, 13의 시기 즉 염곡 전투 때인 것은 분명하나 상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전후 관계를 추론해 볼 때,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는 다윗 군대가 정복 전쟁차 에돔에 쳐들어 간 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에돔인을 쳐죽인 일의 지휘자가 요압 혹은 아비새(대상 18:12)로 달리 나오는 기록상의 차이는, 형제간인 이들이 같이 종군했으나 직책, 임무 등의 차이가 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Hammond). 마지막으로 본절에서 '죽임을 당한 자'란 당시 에돔과의 전투에서 생긴 이스라엘의 전사자들을 의미할 것이다(B hr).






 

16. 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이 하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달을 그곳에 유하였었더라

 에돔의 남자를 다 없이 하기까지 -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에돔인의 씨를 다 말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만약 그랬다면 이스라엘이 에돔을 지속적으로 복종시키기 위해 에돔 땅에 수비대를 주둔시켜야 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삼하 8:14; 대상 18:13).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다음 두 가지로 봄이 바람직하다. 1) 여기서의 '에돔의 모든 남자'란 전투가 가능한 남자들만을 가리킨다는 견해(hammond, Keil) 2)다윗의 군대는 실제로 대학살을 획책했을지도 모르나 성공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Kittel)). 아무튼 이러한 본절은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잘 증거해 준다. 그런데 그같은 적대감은 에서와 야곱 간의 관계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양국간의 뿌리 깊은 적대 관계는 왕정시대에 이르러 표면화되었는바, 마침내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고 말았던 것이다(삼하 8:13, 14). 분명 다윗의 이러한 정복 사업은 그 아들 솔로몬 왕국의 경제 성장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 왕국의 퇴락 조짐이 보이자 에돔 역시 여타의 속국(屬國)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며, 그 덕분에 이스라엘의 지배하에서 벗어난 적도 많았다. 그러나 표면상으로 에돔은 늘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었으니 곧 B.C.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였다.(왕하8:21; 대하20:1; 시137:7; 애4:21)

 여섯달을 그곳에 유하였었더라 - 

잔인한 성격의 요압(삼하3:27; 18:9-17; 20:8-21)이 이처럼 6개월간 에돔에 머물면서 가했을 살륙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닷의 끈질긴 복수심을 설명해 준다. 또한 하닷이 다윗과 요압에 대해 갖고 있던 공포심도 짐작케 해준다(21절).






 

17. 그 때에 하닷은 작은 아이라 그 아비의 신복 중 두어 에돔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애굽으로 가려 하여

 작은 아이 -

'작은 아이'(*, 나아르)는 3:7에서 솔로몬이 자신을 가리켜 사용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문맥상의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3:7에서 이 말은 정신적 또는 연령적으로 성숙치 못한 자를 가리켰으나 본절에서는 단지 연령적으로 어린 소년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 하닷은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요압 군대의 학살을 모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왕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압의 군대는 특히 왕족을 멸절시키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그같은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하닷의 신하들은 하닷을 수행(隨行)하여 애굽으로 도망친 것이다.

애굽으로 가려 하여 -

 18절로 미루어 보건대, 하닷은 이스라엘 영토를 우회하여 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를 통해 애굽으로 입국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경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취했던 경로의 역(逆)이다(민 10:12; 12:16; 13:3, 26).






 

18. 미디안에서 발행하여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저에게 집을 주고 먹을 양식을 정하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미디안 -

미디안(Midian)은 아카바만 동쪽에 있는 북서 아라비아의 넓은 땅이다(Landes).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동남쪽이며, 에돔의 남쪽에 해당된다. 따라서 하닷처럼 애굽으로 가려는 에돔인은 이스라엘 영토를 경과하지 않는 한 먼저 미디안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미디안은 일찍이 모세가 도망했던 땅이다(출 2:15).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15 주석을 참조하라.

 바란 -

 '바란'(Paran)은 '빛나는 땅'이란 뜻이다. 이곳은 미디안과 애굽 사이에 위치한 시나이 반도 중앙의 넓은 사막 지역으로 가데스(Kadesh)와 신 광야(the wilderness of Zin)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그 기복이 심한 지형으로 인해 도피처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Houston). 한편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역을 횡단하였고, 이곳에서 팔레스틴으로 정찰병을 보내기도 하였다(민 10:12; 12:16; 13:3).

바로가 저에게....또 토지를 주었더라 -

여기서의 바로(Pharaoh)는 솔로몬의 장인(丈人)인 바로(3:1)와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닷의 망명은 다윗 시대의 일이었으며 또한 이스라엘의 적에게 은혜를 베푼 자와 솔로몬이 장인.사위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22절). 한편 망명한 하닷에 대한 바로의 환대는 왕자에 대한 동양적 예우,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바로가 왜 그토록 에돔 사람 하닷을 친절히 맞이하였는지는 확실히 알려진바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애굽이 남쪽의 테베(Thebe) 왕조와 븍쪽의 타니스(Tanis) 왕조로 분열되어 국력이 약화되어 있던 점으로 보아, 이는 아마도 대외 융화 정책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19. 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로 저의 아내를 삼으매

은총 -

'은총'(*, 헨)은 '호의', '친절'이란 뜻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게된 호의적(好意的) 감정을 말한다. 이런 경우 호의를 받게 되는 원인은 보통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격적 매력에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망명객이란 불우한 처지에 있던 하닷이 바로의 호의를 입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하닷이 바로의 보호를 받게된 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섭리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창 39:21; 출 3:21; 11:3; 12:36). 즉 하나님께선 솔로몬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하닷을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14절 주석 참조.

왕비 - 

본절에서 '왕비'로 번역된 '학비라'(*)는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왕의 많은 아내들 중에서도 으뜸인 지위에 있는 여성에게 붙이는 칭호이다(Hammond,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174).

 다브네스 -

이러한 형태의 이름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매우 보기 힘든 이름이다. 그래서 '다브네스'(Tahpenes)가 어디서 유래된 어떠한 뜻의 이름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두어 가지로 추측하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애굽 여신의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견해(Rosellini, Rawlinson). '바로'의 경우가 그렇듯이, '왕의 아내'를 가리키는 애굽의 공식 명칭이 그대로 고유 명사화된 것라는 견해(Wilson). 출 1:11 주석 참조.






 

20. 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

 그누밧을....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

이는 하닷의 아들 그누밧(genubath)이 다브네스의 양자로 입양되었음을 의미한다(Guthrie, Keil, Montgpmery). 한편 고대 근동 사회에서 아기가 젖을 떼는 시기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점으로 간주되었다(창21:8; 삼상 1:21-24; 시 131자:2; 사 28:9). 즉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는 이유기(離乳基)가 대개 3살경이었는 바 이 때에야 비로소 그 아이는 완전한 생명체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이 때에는 고유한 종교 의식과 더불어 큰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창 21:8 주석 참조.






 

 


21. 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잔 것과 군대장관 요압의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고하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본절은 다윗과 요압이 에돔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를 잘나타내 준다. 즉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하닷은 귀국할 엄두를 내고있는 것이다. 한편 다윗이 죽은 해는 B.C. 970년경이며 요압 또한 같은 해에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2:34). 그리고 하닷의 독립 투쟁은 B.C. 940년경으로 추론된다(14절). 따라서 하닷은 에돔으로 돌아간 이래 근 30년 간에 걸쳐 설욕전을 위한 준비를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22. 바로가 저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기에 네 고국으로 가기를 구하느뇨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를 보내옵소서 하였더라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게에 -

뚜렷한 이유없이 함께 있기를 마다하는 것을 홀대(忽待)에 대한 인간적 서운함의 표시로 해석하는 동앙적 사고(思考)가 담긴 표현이다. 한편 바로가 이처럼 하닷을 매우 총애했음으로 미루어 보건대(18, 19절), 바로가 하닷에게 베푼 은총을 장차 이스라엘을 견제할 세력 양성의 의도로 해석하는 것(Ewald)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없나이다 그러나....나를 보내옵소서 -

애굽이 제공하는 모든 특권과 안락함으로도 붙잡을 수 없으리만치 하닷의 복수심이 깊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토록 강렬한 하닷의 복수심은 솔로몬의 통치에 얼마만큼 우환이 되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25절a). 한편 본장에는 하닷의 간청을 바로가 승락했는지의 여부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여하튼 하닷이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의 적수가 된 것은 분명하다(14, 25절).

 



 

23.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그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르손 -

'르손'(*)은 '족장'이라는 뜻이다.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라는 사실 외에는 그의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바 없다. 물론 르손(Rezon)의 부친 엘리아다(Eliadah)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르손은 15:18에 나오는 '아람 왕 헤시온(Hezion)'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Corney). 만일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름이 바뀐 까닭은 '족장'이라는 뜻의 이름이 왕으로서는 적당치 않았기 때문일것이다(25절).

 소바 -

아람족에 속한 한 나라로서 레바논과 안티레바논 사이에 위치하였다(Haldar).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왕국을 형성했던 적이 없으며 시리아와 북부 팔레스틴 지방에 여러개의 조그마한 도시 국가를 이루었을 뿐이다. 삼상 14:47 주석 참조. 그런데 소바(Zobah)는 적어도 사울 왕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다(삼상 14:47). 다윗은 아람 소바(시 60편), 아람 나하라임(시 60편), 벧르홉(삼하 10:6) 등의 아람 왕국들과 싸운 바 있다. 한편 이러한 아람의 여러 소왕국들 중 가장 큰세력으로 성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도시는 다메섹(Damascus)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0:6 주석을 참조하라.






 

24.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 떼의 괴수가 되며 다메섹으로 가서 웅거하고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다윗이 소바사암을 죽일때에 -

과거 소바 왕 하닷에셀(Hadadzer)이 세력을 회복하려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진군하는 것을 다윗이 기습하여 대패시킨 것을 가리킨다(삼하 8:3, 4). 이후 다윗은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아람의 연합군도 패퇴시킴으로써 아람을 속국으로 만들었다(삼하 8:5, 6)

르손이...그 떼의 괴수(魁首)가 되며 -

다윗이 하닷에셀과 아람 연합군을 격파할 때(삼하 8:3-6)에 르손은 하닷에셀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불한당과 산적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력을 키웠다. 그런뒤 솔로몬의 통치 기간 중 다메섹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르손은 이를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다메섹은 르손의 세력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된 아람 국가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Corney).

 



 

25.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의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일평생에 -

'일평생에'(*, 콜이메)는 문자대로는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솔로몬의 통치 말년에 있어서의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 즉 하닷이 솔로몬에게 반기를 든 이래(B.C. 940년경) 하닷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솔로몬의 두통거리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21절 주석 참조.

 환난 - 

'환난'(*, 라으)은 '걱정', '고민' 등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즉 이는 곧 하닷이 솔로몬의 골칫거리였다는 말이다. 추측컨대 하닷은 애굽에서 귀국한 후 일종의 게릴라 전투를 통해 독립을 꾀하였던 듯하다. 따라서 쉽사리 진압되지 않는 하닷의 활동은 솔로몬에게 눈의 가시와도 같았을 것이다(Gates).

수리아 -

원문에는 그냥 '아람'(*)으로 되어 있다. 원래 '수리아'(Suria) 혹은 '시리아'(Syria)는 70인역(LXX)과 일부 영역본이 아람(Aram)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 용어이다(IDB). 한편 아람인들은 대대로 통일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고, 대신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하곤 하였다(10:29). 이 중 본절의 수리아는 아람 소바, 아람 나하라임 등의 아람 소왕국들과 구별되는 다메섹의 아람 왕국이다. 23절 주석 참조.

미워하였더라 -

'미워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쿠츠'(*)는 어떤 대상에 대한 거부감 이상으로 그 대상이 파멸하기를 바라는 감정을 말한다. 따라서 이같은 감정은 실제로 대상을 파멸시키려는 행동을 낳기 마련이다.

 

성경 말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를 축복하셔서 간수장의 사랑을 받게 하셨다.

창 39:21

 

"내가 이집트 사람들이 내 백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하여 너희가 떠날 때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하겠다.

출 3:21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하셨다. 그리고 바로의 신하들과 그의 백성들은 모세를 아주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였다.

출 11:3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하셔서 그들이 요구한 대로 주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물건을 거의 빼앗다시피 하였다.

출 12:36

 

아이가 자라 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창 21:8

 

21엘가나와 그의 가족이 매년 드리는 제사와 서약을 지키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갈 때가 되었다.

22그러나 한나는 올라가지 않고 자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이가 젖을 떼면 내가 직접 그를 여호와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여호와께 바친 다음 평생 동안 그 곳에 있도록 하겠습니다."

23그러자 엘가나는 "당신 생각에 좋을 대로 하시오.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소" 하고 승낙하였다. 그래서 한나는 아기가 젖떼기까지 그를 양육하며 집에서 기다렸다.

24아이가 젖을 떼자 부모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빈손으로 가지 않고 제물로 3년 된 수소 한 마리와 밀가루 22리터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갔다.

삼상 1:21-24

 

오히려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니  뗀 아기가 자기 어머니 품에 고요히 누워 있는 것 같습니다.

시 131:2

 

그들은 나에 대해서 불평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는가? 우리가 이제 막 뗀 아이인가?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렇게 가르치는가?

사 28:9

 

 

🟠🔴
🟢

 


여호와께서..대적이..요압이..
에돔의..다 없이..하닷은..
아이라..바로가..주었더라..
은총을..아내를..아들..떼게..
가운데..잔..고국으로..
부족함이..없나이다..
하나님이..도망한..괴수가..
왕이..이스라엘을 대적하고..
🟣
하나님의 성품/속성:
섭리, 빛나는, 은혜/은총,
보호, 징계, 완전한, 회복,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친절, 
🔵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사방에 대적들로 휩싸인
환난이 찾아왔다.🩸✝️
🌱🌿🌳
반역자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르손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에 으뜸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겠다. 
죄로 부터 도망하고 삶의 중심과 마음의 주인이자 왕을 예수님으로 모셔서 온전한 순종을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이행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징계에 대한 말씀이네요 늘 깨어서 죄로부터 멀리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

오면서 집에 커피가루가 떨어져서~커피 사느라 늦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4gxFD5vNDmA

💖🎶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9일 불확실성의 은혜

 

요일 3:2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자연적으로, 우리는 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살아왔기에 불확실한 것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삶의 속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의 속성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신을 누리는 것이며 이 땅 어디에서도 보금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은 말합니다. – “그래,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안전할텐데…” 그러나 우리가 결코 처해져 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가정해 볼 수 없습니다. 확실성은 상식적인 생활의 표지입니다. 은혜로운 불확실성은 영적인 삶의 표지입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은 보통 슬픔의 한숨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실은 벅찬 기대로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단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주께 우리 자신을 다 내려 놓고 주께서 맡기신 가장 가까운 의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깜짝 놀랄 일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특별한 관념을 주장하고 옹호하려고 할 때 우리 안의 믿음은 죽어갑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영적인 삶은 어린아이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다음에 무엇을 하실 지에 대하여 불확실할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믿음만을 확신할 경우 자신만 고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는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됩니다. 자신의 관점만이 완전하다는 고정 관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되면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하여 오히려 저절로 넘치는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지 “나에 관한 너의 신념을 믿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어떻게 오실 지 알 수 없는 것이 영광스러운 불확실성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주님께 충성을 다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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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불확실함의 은혜 Gracious Uncertainty" by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9일 불확실성의 은혜 요일 3:2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자연적으로, 우리는 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살아왔기에 불확실한 것을 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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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오지만 숲의 잔잔한 바람이 비처럼 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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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고양이 보다 ~ ㄱㅣㅇㅇㅇㅇ여운 우이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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