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2 : 12~20🍑예언된 심판의 성취, 분열 왕국의 시작 본문
https://tripol.tistory.com/451
열왕기상 12:12. 삼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모든 백성 -
1절의 '온 이스라엘'과 동일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1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는 왕이 명하...하였음이라 -
백성들이 아직까지 왕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재차 특기(特記)하고 있는 구절이다. 5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때까지 백성들은 다윗 왕조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후에 벌어진 파국은 르호보암의 불찰에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13-20절). 그런데 르호보암의 잘못이 갖는 성격은 우둔한 강압책이라는 표면적인 것보다 율법 정신에 투철치 못한데서 찾아야 한다(7절).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니 이스라엘 남북 분열과 대립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임이 분명해진다(21-24절).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포학(暴虐)한 말 -
원문에는 단지 '포학하게'(harshly)로 되어 있다. 그런데 '포학하게'는 '난폭하다', '고집이 세다'는 뜻을 지닌 '카솨'(*)에서 온 말이다. 이 '카솨'는 본래 무거운 멍에에 짓눌린 소를 참기 어려운 정도로 혹사하는 농경의 한장면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그러므로 '카솨'는 그 행위의 주체에는 완고함이, 그 행위의 객체에는 참기 어려움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과거 애굽의 노예생활시 바로가 히브리 노예에 대해 그러했다(출1:14; 6:9; 신 26:6). 또한 훗날 이스라엘인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 역시 '카솨'로 인해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사14:3). 결국 '카솨'란 단어에서 발견되는 르호보암의 마음가짐은 애굽의 바로가 그랬드이 고집세고 강퍅한 바로 그것이다(출 7:3;13:15).
노인의 교도 -
6,7절 주석을 참조하라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내 부친은...징치하리라 -
본절은 르호보암이 앞서 소년들의 충고 내용을 그대로 읊고 있는 장면이다(11절). 본절은 그 수사학적 표현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용상의 우둔함과 무자비성이 가리워지지 않는다. 대신 표현상의 뛰어난 기교는 도리어 르호보암의 악함을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르호보암의 강경한 대답은 3일 동안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백성들(5절)의 마음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하였다.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
인간 만사(萬事)를 주장하시는 분은 정녕 만유(萬有)의 주재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구절이다(시103:19;단 4:34,35). 아무튼 본절이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바는 바로 백성들의 요청에 대한 르호보암의 거부 사실이다(12-14절). 다시 말해 본절은 남북 분열의 파국으로 가는 전환점이 바로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빚어졌음을 지적해 준다. 한편 여기서 '이 일'에 해당하는 '십바'(*)는 '사태. 운명의 전환'(a turn about offate)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르호보암의 운명을 전환시키셨음을 증거해 주는 셈이다(Montgo-mery).
실로 사람 아히야 -
솔로몬 때부터 르호보암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활약했던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선지자이다. 11:29 주석 참조.
응하게 -
'응하게'에 해당하는 '쿰'(*)은 어떤 결정이 유효한 것으로 확정,확립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이 말은 르호보암이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는 그 순간(12-14절)이 곧 하나님의 심판 판결(11:35,36)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온 이스라엘 -
1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북쪽 지파에 한해 사용된 대표적 구절 중 하나이다(삼하2:9,17;3:10;19:41:20:1). 왜냐하면 '온 이스라엘'(all Israel)이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는 17절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과는 뚜렷하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한편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이스라엘'이란 용어가 남왕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사 5:7;미 3:1).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
북쪽지파가 결정적으로 다윗 왕조와 결별을 결심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순간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대답하여 -
이에 해당하는 원문(*, 야쉬부...다바르)은 '말을 보내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아마도 북쪽 지파들은 자신들의 대표자를 왕에게 보내 자신들의 결의 사항을 전달한 듯하다.
다윗과...이새의 아들에게서 업(業)이 없도다 -
이 말은 반복을 피하기 위한 시적인 대귀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그 의미상 같은 내용이 각기 다른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다윗 왕조에 대한 반감을 보다 효과적으로 증폭(增幅)시켜 준다. 다시말해 본절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이 '이새의 아들'로, '관계'(*, 할라크-원래 '영지','영토'란 뜻이다)가 '업'(*, 나할라 - 원래 '유산', '상속'이란 뜻이다)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으로 1) 반복의 강조 효과를 내용상 거두면서도 2) 반복이 가져 올 단조로움은 표현의 변주(變奏)를 통해 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 다윗 왕조로부터 아무 혜택받을 게 없는데 무엇 때문에 충성을 하겠느냐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호는 다윗 가문에 대적한 반란 때마다 외쳐져 왔었던바(삼하 20:1) 이스라엘의 뿌리깊은 지파 의식의 발로이다. 어쨌든 본절에는 모인 무리들의 타락한 신앙 상태가 잘 암시되어있다. 그들이 다윗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말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다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시적 고충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파 감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마저 거스리는 모습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
'돌아가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 첨가어(添加語)이다. 그러나 단지 '너희의 장막으로'(To your tents!)라는 말만으로도 '집으로 돌아가라'(Go home!)는 뜻이 된다(Montgomery). 한편 여기서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옥'이란 말대신 '장막'(*, 오헬)이 사용된 것은 옛 유목 생활에서 발생하여 굳어진 관습적 표현이다. :66 주석 참조.
네 집이나 돌아보라 -
'집'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족속'으로도 번역할수 있다(수 17:17;삿 1:22;10:9;삼하 19:20등). 그러므로 본절은 다윗 가문은 자기의 속한 지파, 즉 유다 지파나 통치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달리 말해 다른 지파에 대해서는 왕노릇하여 참견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북쪽 지파들은 더 이상 다윗 왕조의 왕권을 인정치 않겠다는 전갈을 한 것이다.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 -
단순히 유다 지파라 하지 않고 좀더 포괄적으로 '유다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기록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즉 이는 유다 지파가 아니면서도 르호보암에 동조하여 유다 지경(地境)에 머무른 사람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들이 누군가 하는 문제는 이들이 유다의 '성읍'(cities)에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기록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앞서 솔로몬이 벌인 활발한 국제무역(10장)은 이스라엘 사회상에 많은 변모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도시 문화의 발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는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한지파 의식을 약화시키고, 도시의 재력(財力)과 경제 활동을 중심으로 한 도시 주민들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이 도시 주민 중에는 비록 북쪽 지파 출신이지만, 농경 중심의 북왕국이 갈라져 나가는데 동조하기 싫어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Morgenstern).
18. 르호보암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역군(役軍)의 감독 아도니람 -
개역성경 및 영어 성경에 아도니람(Adoniram) 또는 하도람(Hadoram, eogk 10:18)으로 번역되어 있는 이 '역군의 감독'아름은 실상 원문에 '아도람'(*)으로 나와있다. 그리고 이 아도니람은 본래 선왕(先王) 솔로몬의 주요 관원 중 한 명이다(4:6). 그런데 그가 다윗 시대의 '아도람'과 동일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삼하29:24). 어쨌든 본절의 아도니람은 강제 노동의 감독관으로 상당히 이골이 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동 때문에 10지파가 이탈하겠노라고 선언한 판국에(16절) 르호보암이 아도니람을 그들에게 파견한 것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강압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표시였다. 따라서 10지파는 아도니람을 돌로 쳐죽일 뿐아니라 르호보암의 신변마저 위협할 정도로 분노하고 말았다.
급히 -
'급히'에 해당하는 '아메츠'(*)는 '힘있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르호보암이 달아나는 일에 힘을 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오늘날까지 -
이 말은 남북 왕국의 대치 상태를 전제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열왕기의 최종 기록 연대는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고 난 뒤의 시기(B.C. 561~537년)이다. 본서 서론, '기록 연대' 참조. 아마도 이러한 사태는 본서 저자가 왕국시대 당시의 어떤 사본 내용을 그대로 차용(借用)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본은 유다 왕국의 실록과 같은 문서일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본절의 기록 내용이 상당히 다윗 왕조에 우호적인 성격(북왕국의 행동을 '배반'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
이는 세겜에서 르호보암과 북쪽 지파가 대면하는 데 줄곧 여로보암이 동행했다는 앞서의 기록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3, 12절). 그러나 본절의 '온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의 온 백성으로 이해하고, 앞서 세겜에 갔던 '온 이스라엘'은 북쪽 지파의 대표자들만을 지칭했던 걸로 이해하면 별로 무리가 없다(B hr,Hammond).
공회(公會) -
'공회'(*, 에다)는 '지정하다'에서 온 말이다. 이는 대개 약속된 모임과 무리(congregation)를 동시에 지칭한다. 한편 본절에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10지파가 자발적으로 구성한 '공회'에 초빙되어 왕으로 추대되고 있다.
왕을 삼았으니 -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즉위하는 장면이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12-19절)은 이처럼 북쪽 10지파로 하여금 다윗 가문으로부터 분리해나가는 당위성을 제공해 주고 말았다. 그런데 망명자 여로보암의 초빙(2, 3절)과 그에 따른 왕위 등극은 북쪽 지파의 민의에 따라 공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다윗-솔로몬 치하시 자신들의 의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하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맺어진 계약 관계를 생각할 때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 즉 자신의 이익과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이기주의적 산물이라 하겠다. 한편 본서 저자는 이후 열왕의 즉위를 기록함에 있어 남과 북에 차이를 둔다. 즉 남왕국 왕들의 즉위시에는 르호보암의 예에서 보듯, 1) 즉위시의 연령, 2) 통치기간, 3) 모친의 이름 등이 공식처럼 언급된다(14:21;15:1, 2, 9, 10;22:41, 42). 그러나 북왕국의 왕들의 경우에는 즉위 연령, 모친의 이름이 생략된다(15:25, 33;16:8). 아마도 이러한 구성의 특징은 본서 기자가 여러 자료를 참조하는 가운데 자기 격식에 맞춰 본서를 기록했던 데서 생긴 특징일 것이다(Szikszai).
🟠🔴
🟢
🟣
하나님의 성품/속성:
명령/율법, 자비, 인간 만사를
주장하시는, 만유의 주재자,
운명을 주관하시는, 주권적,
심판/판결, 영원한,
언약/계약, 통치, 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대, 순종,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는 것
🔵
안고함과 고집 내려놓기.
이웃을 혹사시키지 말자.
모인 이스라엘 무리들의
다윗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말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다는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거스르는 타락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보이는 행동이지만, 하나님과의 사이에 맺어진 계약 관계를 파기하는 행위이다.
세상이 옳고 좋다고 여기는 사상이나 주장들이 정말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올바른 것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꾸준하고 균형잡힌 신앙생활(말씀,기도,예배,찬양..등(?))하나님과의 동행의 삶을 이어감으로 세상의 여러 소리에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성령께서 주시는 분별력 가운데 참 진리를 깨닫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92MjPKS0dA&list=OLAK5uy_nsAuEZE31zD53irM0YARyQcI2HobvdmtU
5월 2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인내의 열정(The Patience To Wait for the Vision)"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 2:3)
인내는 무관심이 아닙니다. 인내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는 어마어마한 강한 바위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이 인내의 근원입니다. 그 이유는 주를 볼 때 영적 순종의 영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인내하였습니다. 의무감이나 어떤 이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습니다.(히 11:27)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어떤 명분이나 특별 관심사에 헌신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주님을 바라보는 때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를 볼 때마다 영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에 의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큰 의미와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광야의 시험을 주신 것처럼 만일 우리에게도 영적 시험을 주시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면 인내하십시오. 당신은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내의 능력이 있게 될 것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나아가게 됩니다. 영적으로 안일함에 빠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시인은 “내가 주를 위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 내가 더욱 구원의 잔을 마시리라”고 말하였습니다.(시 116:12-13) 우리는 자신에게서 만족을 찾길 원합니다. “이제 다 되었군. 충분하군. 나는 지금 온전하게 거룩하여졌어. 나는 잘 인내할 수 있어.” 그러나 영적 자만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멸망의 길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의 한계를 초월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또한 온전함도 아니라.”(빌 3:12) 체험한 것만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영감을 얻으십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얻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379?listURI=%2Fmercyreformedchurch%2FULF8
https://i.pinimg.com/564x/3e/41/eb/3e41ebb34f06304ffd09f58e610b9023.jpg
https://i.pinimg.com/564x/d9/1e/ac/d91eace79aa45ae575c54c7b21aaf7eb.jpg
https://i.pinimg.com/564x/6f/17/02/6f170298ce9d0bafd54530c6d1d972e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