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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2 : 21~33🍑말씀에서 벗어난 가짜 신앙의 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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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2 : 21~33🍑말씀에서 벗어난 가짜 신앙의 길

credo15229850 2024. 5. 3. 10:50

https://tripol.tistory.com/451

 

히브리어 열왕기상 12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예렠 레하브암 쉐켐 키 쉐켐 바 콜 이스라엘 레하멜리크 오토 개역개정,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새번역,1 온 이스

tripol.tistory.com

 

열왕기상 12: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 팔만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 -

베냐민 지파가 르호보암의 편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일견 이상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배출했던 베냐민 지파는 이후 줄곧 다윗 왕조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삼하 2:15;3:7 이하;16:5 이하;20:1,2). 혹자는 이 문제를 수도(首都) 예루살렘이 유다와 베냐민 경계선 위에 있었던 사실(수 18:28)에서 해결한다(Hammond). 즉 유다와 분리될 경우에 생길 예루살렘의 상실을 베냐민 지파가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공동의 이해 관계가 옛불화에도 불구하고 두 지파의 연합을 이루게 한 셈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상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 전체가 일치된 행동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벧엘, 길갈 등과 같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은 북왕국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29절).

싸워...돌리려 하더니 - 

이처럼 무력과 강경 일변도인 르호보암의 모습에서 '힘-지향적' 특성을 읽을 수 있다(14, 18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마야 -

'스마야'(*)란 이름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스마야(Shemaiah) 선지자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다음 세가지 뿐이다. 1) 본장에서 르호보암의 군사 행동을 중지시킨 일(23,24절). 2) 애굽 왕 시삭(Shishak)의 예루살렘 침입 때 유다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한 일(대하 12:5). 3) 역대기 저자가 르호보암의 기사를 종결하면서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을 인용한 사실(대하 12:15). 이로 미루어, 스마야는 르호보암 당시 남왕국 유다에서 활약한 선지자로서,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대하 12:5-8).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유다 왕 -

본절에서 처음으로 '유다 왕'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비록 본절의 시점이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재통일을 위해 북진을 준비하였을 때(21절)이지만 이미 왕국 분열은 기정 사실이었다(11:29-39). 따라서 반쪽만의 왕이기를 자존심 상해하는 르호보암에게 본서 저자는 냉정히 '유다 왕'으로 호칭하는 직절(直節)함을 보이고 있다. 이로 보아 본서 저자는 왕국 분열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있다(24절).

그 남은 백성 -

여기서는 북쪽 지파 사람들이면서 유다 성읍에 거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절 주석을 참조하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좇아 돌아갔더라

 형제 -

본절에서 '형제'(*, 아흐)는 공동 조상에게서 나온 광범위한 후손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북왕국 이스라엘도 남왕국 유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점에서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며 형제이다. 이와 같이 민족 공동체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경우 '형제'란 말은 보통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말과 병행되어 등장한다(레25:46-48;신 3:18;24:7 등).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

이스라엘 남북 분열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의 결과로 받아들임에 있어서 북부의 선지자 아히야나 남부의 선지자 스마야가 모두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11:31-33). 15절주석 참조.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세겜을 건축하고 -

새로이 수립된 북왕국의 체제 정비에 있어 여로보암이 첫번째로 한 일은 수도를 정하는 것이었다(Dentan). 그리하여 그 수도는 븍쪽 지파들의 정치.종교적 중심지인 세겜(Shechem)으로 결정되었다(1절). 본절은 이제 이와 관련 여로보암이 수도 세겜의 방비를 강화하는 등의 건설 작업을 수행하였음을 보여준다. 1절 주석 참조.

 부느엘 -

한글 개역 성경에 '브누엘'(Penuel, 삿 8:8)로도 번역되어 있는 '부느엘'은 '브니엘'(Peniel)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곳은 세겜 맞은 편, 그리고 요단 강 동편 얍복 강가에 위치하였는데 야곱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창 32:30). 아마도 여로보암은 수도인 셰겜의 동쪽 방어를 위해 이곳에 요새를 세웠을 것이다.




 

 


 

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나라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

비록 세겜을 정치적 구심점으로 삼았지만 여로보암의 마음을 불안케하는 것이 하나있었다. 그것은 다윗 이래로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기능 때문이었다(27절;삼하 6장).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 참조. 그러므로 여로보암에게는 남왕국과의 철저한 분리를 위해서도 어떤 종교적 구심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 우상 숭배(28-33절)의 발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정책은 경건한 신앙인들에게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왔으니 그들 중 상당수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대탈출을 시도하였다(대하 11:13-16).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올라가면 -

북이스라엘 지역에서 볼때 예루살렘이 실지로는 아랫쪽 남방임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다'(*, 알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변두리가 중심 지역에 대해 갖는 관계성 때문일 것이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의 예루살렘의 지위와 중요성을 암시해 준다. 다시 말해 솔로몬의 성전건축 이후 예루살렘은 북쪽지파들에게도 명실상부한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6-8장).

 그 주 르호보암 -

문자대로라면, 여로보암도 르호보암이 정통성을 지닌 왕임을 내심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Wordsworth). 왜냐하면 르호보암의 앞에 '주'(*, 아돈)라는 호칭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를 옹호하는 본서 저자가 여로보암의 행동 동기를 설명하는 가운데 사용한 호칭임을 잊지말아야 한다(Hammond).따라서 본절의 표현 그대로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을 정통 왕으로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이에 계획하고 -

여기서 '이에'는 26, 27절의 음습(陰濕)한 동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26, 27절은 28-33절의 원인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계획하고'(*, 이와아츠)는 '의논하다'는 뜻이다. 즉 여로보암은 그가 염려하는 문제를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의논한 것이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

이처럼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의도는 물론 북왕국 백성들을 차단하여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단순히 본절의 금송아지를 이방의 우상 숭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사실 성전 순례를 원하는 백성들은 그야말로 여호와 신앙에 투철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만일 여로보암이 우상 숭배를 강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멸의 길이다. 이렇게 볼때 금송아지는 적어도 시초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과 관련된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는 여호와의 발등상으로서의 상징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Gray).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이러한 판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1) 소의 형상은 여호와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전통적 상징이었다는 점(Dentan). 2) 비록 중심적인 지위는 갖지 못했어도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소의 형상은 발견된다는 점(7:25). 3) 예후, 엘리야 등이 바알 제의를 공격할 때에도 금송아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Cobern).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 형상은 과거 모세 당시처럼 우상으로 사용될 위험성을 충분히 안고 있다(출20:4-6). 그러기에 이스라엘 역사상 금송아지 형상은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우상화된 적이 종종 있다(호8:5이하;12:11;13:2). 본절에서의 여로보암의 행위 역시 결과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어지럽히는 이방 종교와의 혼합을 낳았다. 더구나 본문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참된 제사의 동기를 갖지 않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인물로 낙인 찍히고 만 것이다(15:30,34;16:2,19,26).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

이는 출 32:4에서 언급된 말로서,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언약 자체를 거부케 하려는 의도가 은연 중에 표현되어 있다. 즉 과거 시내 산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로서의 모세를 인정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나타내신 여호와의 언약도 거부하였다(출32:1-6). 그런데도 본절에서 여로보암은 모세 당시의 패역했던 상황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솔로몬 말기의 부패상과 르호보암의 폭정 등을 경험하였던 백성들 중 대다수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더 이상 쓸모 없는 것이라 주장한 여로보암의 궤사(詭詐)한 말이 그럴듯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전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마저 팔아버리는 행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마 26:14-16; 27:3-10).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벧엘에 두고...단에 둔지라 -

이처럼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예배 중심지로서 특별히 벧엘(Beth-el)과 단(Dan)을 택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이 두 장소는 전통적으로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즉 벧엘은 과거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은 곳이며(창 12:8;13:3, 4; 28:11-19;31:13;35:1) 사사 시대에는 언약궤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삿 20:26). 그리고 단은 그 자체의 신당과 제사장을 소유했던 곳으로서 그 제사장직이 모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었다(삿 18:30, 31). 2)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지역에(수 18:13), 단은 북방 경계 지역에 위치하였는바(수19:47) 북이스라엘의 전백성들에게 거리상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실로(Shiloh)대신 단이 선정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즉 실로는 여러 면에서 단보다 더 예배 중심지로 적합하였으나(수 18:1;삿 21:19;삼상 1:11) 벧엘과 마찬가지로 남방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피택되지 않은 것이다.

 벧엘 -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창 12:8).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0km 가량 떨어진, 현재의 베이틴(Beitin)이다. 본래 지명은 루스(Luz)로서(창 28:19)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선상이면서 동시에 남북 왕국의 경계선상이기도 한 능선에 위치하였다. 이곳에는 좋은 샘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B.C 3500년경?) 성읍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오랜 예배 중심지이기도 하다(Jamieson).

 단 - 

'단'(*)은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팔레스틴 최북단의 도시로서 두로와 다메섹을 잇는 무역로를 굽어 보며 서있다. 이러한 단이 벧엘과 더불어 제2의 성소로 선정된 이유는 북왕국에서도 북쪽에 거주하는 백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Hammond).그런데 바알 숭배의 본산지인 두로와 잦은 교류를 하는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 형상은 아무래도 위험했다(White).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

'이 일'이 지칭하는 바는 여로로암이 금송아지 형상을 벧엘과 단에 둔 일이다(29절). 그런데 이 일이 죄로 판단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이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이다(출 20:4). 2) 이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소(예루살렘)를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신 12:5). 3) 그 결과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이는 백성들이...숭배함이더라 -

본절의 해석에 대하여선 학자들마다 제각기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1) "백성들이 '하나같이' 숭배했다"로 보는 입장(Ewald). 2) "백성들이 '한 무리는 벧엘로 한 무리는 단으로' 숭배하러 갔다"로 보는 입장(Rawlinson 등). 한편 이와 유사한 설명으로"백성들이 두 곳으로 갔는데, 그 먼 단에까지 숭배하러 갔다"는 해석도 있다(B hr). 3) 초기에는 백성들이 단으로만 숭배하러 갔다고 보는 입장(Hammond). 이상의 세 견해 중 비교적 타당한 것은 두번째 견해인데 이와 관련하여 카일(Keil)은 "단에까지 이르는 전백성이 숭배하였다"는 신축성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31.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신당을 짓고 -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훼방하기 위해 여로보암이 취한 조처 중 하나이다. 즉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주로 산당에서 예배하였는바(3:2;삼상 9:12) 이제 여로보암은 다시금 백성들로 하여금 그같은 산당에서 예배하도록 회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산당들은 성전과 달리 언약의 법궤도 임재의 보증도 없는 곳이다(Keil). 이러한 산당에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 의식과 결합할 가능성 및 유혹이 늘상 있어 왔다. 이에 관하여선 삼상 9:12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보통 백성 -

우리말에서 '보통'이 갖는 순한 어감(語感)과 달리 원문의 '미크초트'(*)는 '황폐하다'는 뜻으로 좀 냉소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통'이란 말은 '아무나 마구 되는 대로' 정도의 비웃음 띤 표현이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레위인들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출 28:1-4). 그런데도 여로보암이 레위 사람들 대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은 결과 레위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대거 남왕국으로 남하하고 말았다(대하 11:13-17). 이러한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율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의 고유 사명이 여로보암에 의해 훼손된 점이다(Hanke). 민 35:1-8 주석 참조. 따라서 이는 여로보암의 불법성을 두드러지게 증거해 준다.




 

 

 

 

 

 

 


 

32.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팔 월 곧 그 달 십 오 일로 절기를 정하여 -

솔로몬 성전의 절기는 7월15일(유대력)이었다(8:2). 창세기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이 절기는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로서 한 해의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의 절기이다(8:2, 65;9:25).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참조. 그런데 여로보암이 이 절기의 날짜를 8월 15일로 잡은 것은 자의(恣意)대로 한 것이 아니고 북쪽 전통의 복원(復元)이다. 즉 북쪽은 원래 남쪽에 비해 수확이 한달 가량 늦어졌던 것이다(B hr,Keil). 그러나 여로보암의 진정한 목적은 절기의 자연성을 회복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는 백성들이 7월의 장막절에 예루살렘을 방문치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여로보암은 이로써 체제 경쟁에 있어 나름의 종교적 정통성을 구색(具色) 갖추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기를 7월로 통일되게 지키도록 한 율법과 상반되는 것이다(레23:34). 따라서 이 역시 죄악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와같은 절기의 분열은 곧 통일 왕국의 정치적 분열에 이어 종교적 분열도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그와 같이 행하여 - 

이는 곧 남왕국 유다에서 행하는 것과 비슷하게 제사 의식을 흉내냈음을 말한다. 즉 절기 때의 제의(祭儀)는 단지 한 장소(벧엘)에서, 왕이 친히 집전(執典)한 것이다(Hammond, 8:62-66;9:25).





 

 

 

 

 


 

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자기 마음대로 정한 -

원문은 "그의 마음(*, 레브)에서 궁리해 낸(*, 바다)"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바다'는 나쁜 의미에서 무엇을 궁리한다는 부정적 어감이 실린 단어이다.

 분향(焚香)하였더라 -

원래 '분향하다'에 해당하는 '카타르'(*)는 분향 뿐 아니라 모든 번제를 지칭할 수 있는 전문적 용어이다. 그러나 그 문맥상 부정적인 이교 제사와 연결되는 경우에는 대개 '분향하다'로 번역되고 있다(대하 25:14;28:4;렘1:16;18:15;44:17;호 2:13등). 그대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주로 '불사르다'로 번역된다(출 29:18;레 1:15;3:16;4:19등). 그런데 본절에서 여로보암의 제사는 그 부정적 의미가 채택되어 '분향하다'로 번역되었다. 여로보암에 대한 열왕기의 부정적 시각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15:30, 34;16:2등).

 

 

 

역대하 11:13-16

13-14이때 이스라엘 땅에 있던 모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왔다. 이것은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파면하여 여호와의 제사장 일을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15또 여로보암은 자기가 만든 숫염소와 송아지 우상에게 제사하고 산당에서 섬길 제사장들을 제멋대로 임명하였다.

16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심으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자유로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으며

 

 

 

🟠🔴
🟢


🟣
하나님의 성품/속성:
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왕,
심판,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언약의, 신성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신앙의 자유를 위한 목숨을
건 대탈출..!, 예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해서
보기 좋다. 하나님의 역사와
 뜻 안에서 왕이 된 여로보암이
주님을 대적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길로
빠지게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과 더불어 의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올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사건은 하나님을 망각한 행동으로 보인다.
저도 여로보암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가 있는지 점검하고 매순간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죄로 부터 멀리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길을 따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u_Cq2o1gD4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에베소서 6:18)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다 보면, (우리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그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위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서서히 이끌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를 불쌍히 여겨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일치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는 사라지고 대신 그들을 향한 동정심과 배려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꾸짖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능력 있는 중보기도는 불가능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신뢰의 관계를 가장 많이 파괴하는 것은 (사람들을 향한) 개인적 동정심과 편견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중보 기도의 열쇠입니다. 주님과 일치되기를 거절하는 때를 보면 죄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도 죄보다는 동정심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향한 동정심과 다른 사람을 향한 동정심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그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게 합니다. 그 즉시 우리는 하나님과 생생한 관계를 상실하게 됩니다.

생동하는 중보기도는 자기 연민과 거리가 멉니다. 중보 기도자는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중보기도에는 자신을 고려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하여 당신은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치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하여 분별력을 주신 이유는 중보기도를 하라고 주신 것이지 남의 결점을 찾아 비판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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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에베소서 6:18)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다 보면, (우리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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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의 동료가 되라! 그럼요=🐻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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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님은 열일중~똑똑항구 정보의 날개~멋징구🤍💖

 

출처는 몰라요~

 

가족단톡방에서 받은 사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