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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3 : 11~24🍑하나님 명령을 끝까지 지키지 않은 결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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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3: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저에게 고하고 또 그가 왕에게 고한 말씀도 저희가 그 아비에게 고한지라
늙은 선지자 -
이 선지자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대개 부정적이다. (1) 자신의 아들들로 하여금 여로보암이 세운 절기 행사(12:32,33)에 참여하도록 허용했다는 점. (2) 여로보암 치하에서 '마음을 오로지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대하 11:16)이 대거 남왕국의 예루살렘으로 남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선지자는 벧엘에 남아 있었다는 점. (3) 받지도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거짓말한 점(18절). 이로 보아 아마 이 늙은 선지자는 이념적으로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에 동의하고 있던 인물일 것이다.
이날에 ... 고한 말씀도 ... 아비에게 고한지라 -
이처럼 늙은 선지자의 아들들은 아비에게 그날의 사건을 낱낱이 고하였다. 즉 하나님의 사람의 저주의 내용과 예조(2-5절) 및 하나님의 사람이 취해야할 행동 지침(8,9절)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늙은 선지자가 들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취한 다음 행동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즉 그는 아들들의 얘기를 듣고서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보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을 것이다(13,14절).
12. 그 아비가 저희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
이러한 물음은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 속박되는 금기 사항(9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미 그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사람을 꾀일 요량(料量)이 서 있었던 것이다(15-19절).
13. 저가 그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저가 타고
나귀에 안장(鞍裝)을 지우라 -
도보로 귀로에 오른 하나님의 사람(10절)을 신속히 쫓아가 만나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늙은 선지자의 이러한 신속함과 단호함은 본문의 앞 부분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의 태도는 본문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어딘가 느슨하고 풀어진 인상을 준다(14,19절). 한편 늙은 선지자가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보겠다는 열의를 보인 이유에 대하여선 다음 서너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1) 자신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말미암은 자책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책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보기 위해서. (2) 자신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호소하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3)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이적을 행한 선지자를 만나보고자 하는 순수한 열의에서. 한편 '나귀'는 고대 근둥 지방에 있어서 보편적인 승용(乘用) 동물이었다(삿 1:14; 10:4; 12:4; 삼상 25:20; 삼하 17:23; 왕하 4:24).
14.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 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
상수리나무 -
원문에는 '하엘라'(*), 즉 ' 그 상수리나무'로 되어있다. 따라서 이 상수리나무는 어느 특정 장소의 잘알려진 나무였거나 아니면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커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것이었을 걸로 추측된다(Hammond). 한편 상수리나무(oak)는 크고 단단한 재질을 가진, 높이 20-25m가량의 나무이다. 성경에서 이 나무는 종종 '힘', '위엄', '장수' 따위를 상징하였다.
앉은 것을 보고 -
커다란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다리를 쉰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잘 알려진 장소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가 가진 사명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 석연찮다. 저주와 혐오의 장소인 벧엘에서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 것 역시 그의 사명에 포함된 것이다(8,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서의 성공에 방심한 탓일까 유혹의 가능성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것은 경고의 냉혹성을 보여 주어야 할 그의 사명에 아무래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대답하되 그러하다 -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그 솔직함과 순진함에서 늙은 예언자의 노회(老獪)함(8절)과 비교된다. 즉 그는 타인이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5.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
이것은 가히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즉 벧엘의 노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지켜야 할 금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항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피곤한 중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이 앞서 보인 직절(直節)을 쉽게 포기할 리는 없다(16,17절). 따라서 늙은 선지자는 다음 단계의 회유를 준비해야 했다.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 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곳에서 -
이로 미루어 하나님의 사람은 아직 벧엘 경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누구와든 교제를 나누지 못하게 한 이유는, 혐오스런 금송아지 숭배가 행해지는 장소(12:32,33)에 대한 경고를 나타내기 위함이다(1-5절). 그런데 아직까지 그가 벧엘 경내를 벗어나지 않고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14절)은 어딘가 부주의와 방심의 인상을 준다. 그래서 여러 주석가들은 이 장면에서 이미 잘못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B hr 등).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라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끝까지 준행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첫 믿음을 지키는 문제, 거기에 따라 신앙을 흐트러뜨리는 나태함의 유혹만큼 끈질긴 것은 없다. 본절의 선지자가 받았던 유혹,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자들이 당면한 밥(물질)의 문제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유혹을 물리친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마 4:3,4) 이겨낼 수 있다.
18.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
앞서의 정면 도전(15절)이 저항을 받자 늙은 선지자가 취한 다음 단계는 하나님의 사람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같은 선지자의 부류에 속함을 밝힌다. 사실 누구든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 의식을 낮추고 동료 의식을 갖기 쉽다. 그런데 늙은 선지자의 자기 신분 표명은 무엇보다도 다음에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즉 '선지자'(*, 나비)란 말에 담긴 뜻 그대로 그는 자신이 '대변인',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선 그것만이 하나님의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이었다.
천사가...내게 이르기를 -
여기서 '천사'(*, 말라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언(傳言)하는 사자(使者)를 가리킨다(창 22:11,15; 31:11; 민 22:32; 삿 13:3,16등).그런데 혹자는 천사가 통보해 주는 말씀의 권위가 개개인의 마음에 확신시켜 주는 하나님의 주관적 말씀보다 더 높은 것일 거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람이 선뜻 벧엘 선지자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앞서 받은 계시와 벧엘 선지자의 말 간에 상충되는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서는 심사 숙고하여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야 했으나 그러하지 아니하였으니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속임이라 -
'속임이라'에 해당하는 '키헤쉬'(*)는 '가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한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대표적 형태이다. 한편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에도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시험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바 있다(마 4:1-11).
19.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이에 -
즉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하는 바람에'라는 뜻이다. 비록 하나님의 사람이 얼른 벧엘 경내를 벗어나지 않고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휴식한 것은 실수라 하더라도, 실상 그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본문은 순진 무구한 유다의 선지자와 거짓말하는 벧엘의 선지자를 뚜렷이 대비시켜 준다.
20.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저희가 상(床) 앞에 앉았을 때에 -
본장이 전해 주는 이야기의 특징은 언제나 어떤 사건의 진행 중에 이에 대한 부정(No!)의 말씀이 들려 온다는 점이다. 4절 주석 참조. 본절 역시 이러한 특징을 보여 준다. 즉 벧엘의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이 식사를 채 끝마치기도 전(곧 금지된 교제 행위를 완료하기 전)에 이에 대한 심판의 선고가 들려 오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선지지에게 임하니 -
본장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극적 요소는 반전(反轉)에 있다. 즉 앞서 여로보암에게 징계를 선포했던 자(2절)가 지금은 도리어 징계를 선포받게 된다(21,22절). 그것도 자기를 대접하겠다고 초대한 거짓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21.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외쳐 가로되 -
'외쳐'에 해당하는 '카라'(*)는 그 자체로 이미 어떠한 메시지의 선포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메시지를 받는 자의 어떤 응답을 '불러내는'(call out)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카라'는 앞서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 대해 했던 행위이다(2절).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카라'를 받는다.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음 사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의 일꾼들은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히 3:14; 계 2:10). 솔로몬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그는 전무 후무한 지혜를 소유하였으나 훗날 영적 방만상태에 빠져 귀중한 은사를 간수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호된 진노를 받았다(11:3-13). 반면에 사도 바울은 구원에의 확신 가운데서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좇아가노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빌 3:13,14). (2)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게끔 하는 것은 자신의 능(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이다(고전 15:10). 따라서 주의 일꾼된 자들은 스스로 교만해질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순종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향다. (3) 하나님의 공의는 지극히 엄정하다. 즉 하나님은 한 때의 업적을 핑계삼아 방만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결코 허용치 않으시는 것이다.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墓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열조의 묘실, 즉 가족의 무덤에 묻히지 못함은 곧 객사(客死)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우리말로 하면 '고향의 선산(先山)에 묻히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에게도 고향과 친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객사한다는 것은 큰 비극이었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금기 사항(8,9절)을 어긴 결과 노선지자의 예언대로 객사하여 타관 사람의 묘실에 장사되고 만다(30절).
묘실 -
'묘실'(*, 케베르)은 '매장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우리말에서 '무덤'이 '묻다'에서 온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의 묘지는 대개 천연 동굴이나 인공 동굴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시체에 닿으면 부정하다는 믿음 때문에 묘지는 보통 성읍이나 마을 바깥에 위치하였다(레 21:1; 민 6:6; 19:13). 그런데 동굴을 묘지로 사용하는 관습은 이스라엘인들의 가나안 정착 이후 가나안인들에게서 배운 것이라 한다(Reed).
23.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
한글 개역 성경의 이러한 번역은 좀 애매한 표현이다. 만일 이 말대로 이해한다면 본절은 '자기(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데리고 온 선지자(하나님의 사람)'를 가리키는 셈이 된다. 그러나 본장은 일관되게 '선지자'라는 용어를 오직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만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만이 예외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여러학자들의 문법적 분석과 그 결론도 본절이 20,26절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B hr 등). 그렇다면 이 말은 개역 성경과는 달리 '그(하나님의 사람)를 데려온 선지자(벧엘의 늙은 선지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지금까지 줄곧 도보로 다녔었다(1,10절). 그런 그에게 이제 나귀 한 마리가 주어졌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이유야 여하튼, 앞서 왕의 선물을 거절한 그가 벧엘에서 결국 선물 하나를 받은 셈이다(7절). (2)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귀를 내준 것은 친절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자기로 인해 지체된 데 대한 보상 행위일 수도 있다. 즉 이러한 행위에는 시간의 지연으로 인해 생긴 저주(22절)를 시간의 단축으로 해독(解毒)해 보려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이러한 인위적인 제재(除災) 경향은 이 노(老) 종교가의 특징인 것 같다.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사자 -
사자는 성경 시대의 팔레스틴에 흔한 맹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벧엘의 산간 지대와 요단 계곡의 숲은 사자의 서식처였다(왕하 2:24; 렘 49:19; 슥 11:3). 하지만 이처럼 번성했던 사자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13세기경 므깃도(Megiddo) 부근의 레드자(Ledja)에서 죽임당한 후 팔레스틴에서는 멸종하고 말았다.
만나 -
'만나'에 해당하는 '마차'(*)는 '발견하다'는 뜻이다. 이는 '우연히 맞닥뜨리다'보다는 좀더 능동적으로 '구하다가 마침내 따라잡다' 또는 '찾다가 끝내 발견하다'는 의미를 지닌다(신 4:29; 잠 1:28; 사 55:6; 렘 29:13 등). 14,28절에서의 늙은 선지자의 행동이 바로 이 '찾아가 발견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의 사자 역시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가' 덮친 것이다.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
이 사건에 담긴 초자연성은 본장면이 지닌 예외성(例外性)에서 드러난다. 보통, 사자라는 맹수는 주리지 않는 한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드문 동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한 사자는 그를 죽여만 놓고 그 시체를 먹거나 어디로 물어가지 않았다. 더구나 희한한 것은 나귀조차 달아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사자 역시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는 점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러한 요소들이 이 사건에 담긴 초자연적 목적에 생각이 미치게끔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I, p. 205).
성경 말씀:
3. 이때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빵이 되게 하라."
4.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쓰여 있다."
마 4:3,4
14.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지키면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히 3:14
10. 너는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마귀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잡아 가둘 것이며 너희는 10일 동안 고난을 받을 것이다.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계 2:10
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빌 3:13,14
10. 그러나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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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부터..길을..
나귀에 안장을..상수리나무..
앉은..집으로..함께..
못하겠고..여호와의 말씀이..
데리고..속임이라..돌아가서..
임하니..향하여..어기며..
열조의 묘실에..그를 위하여..
곁에 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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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힘/위엄, 정직, 권위, 참,
지혜, 순결, 말씀, 징계의,
은사, 공의, 초자연적(24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말씀)을 끝까지
감당(준행/충성)하기, 첫
믿음 지키기, 경계 의식,
(구원의)확신, 겸허한,
🔵
유혹의 가능성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기->유혹에
정면승부를 거는 것보다
일단 피해야 된다.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야 이겨낼 수 있다.🩸✝️
🌱🌿🌳
하나님의 사람이 '설마 나랑 같은 선지자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거짓말하고 속일리가(거짓 선지자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에도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시험했다. 예수님은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없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예기치 않는 유혹의 시험들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정말 깨어 조심해야 겠다.
사람의 중심을 보고 아무리 화려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먼저 주님께 기도로 물어봐야 여러 미혹케 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때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매순간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능력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Y2jm-62AAM
심판과 하나님의 사랑(Judgment and the Love of God)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베드로 전서 4:17)
주님의 사역자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생각이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측량될 수 없는 깊은 심연과 같습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이지 사람의 체험이 아닙니다. 체험은 단지 구원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일 뿐입니다. 절대로 체험을 선포하지 마십시오.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을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선포해야 할 것은 사람이 어떻게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도덕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심판의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사실 하나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힘들어하는 영혼들에게 공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보여주실 것입니다. 설교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험은 그 설교가 모든 사람을 심판 가운데로 이끌고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성령이 각 사람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고 또한 그 계명을 지킬 힘을 주지 못하신다면 주님은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이유로서 우리의 불가능성을 탓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고려치 못하셨다고 하나님을 탓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 자신을 의지하려는 모든 요소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죽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완전한 연약함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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