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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QT👼열왕기상 15 : 1~8🍑다윗의 등불을 지키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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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왕 제 십팔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여로보암 왕 제 십 팔 년에 -
여로보암의 즉위 연대는 B.C. 930년경이다. 그러므로이 해는 B.C. 930년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유다나 이스라엘 왕의 즉위 연대를 이렇게 이스라엘이나 유다 왕의 연대에 비교해서 밝히는 상관 방법은 열왕기의 특징이다(9,25,28,33 절). 당시에는 이외에 달리 객관적 연대 표시 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S-zikszai).
아비얌 -
아비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유다의 제 2대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14:31주석 참조. 그런데 대하 11:21,22에 의하면 아비얌은 원래 장자(長子)가 아닌, 단지 르호보암이 장자로 '삼은'(후계자 지명을 의미) 아들로 나타난다. 이는 아비얌의 모친 마아가(Maachah,2절)가 르호보암이 총애하는 왕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르호보암의 행위는 조부 다윗의 행위와 흡사하다. 왜냐하면 과거 다윗도 장자를 제껴 놓고 총애하는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으로 후계자를 삼았기 때문이다(1:5-40). 그러나 다윗의 경우와 달리 르호보암은 일찌감치 아비얌을 왕위 계승자로 선포함으로써 사전에 왕비를 둘러싼 경쟁 가능성을 봉쇄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2. 예루살렘에서 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삼 년을 치리하니라 -
여기서 3년은 여로보암 재위 제 18년에서 20년 사이(B.C.913-911년경), 즉 햇수로 3년을 가리킨다(9절). 그러므로 아비얌의 실제 재위 기간은 무척 짧았던 셈이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이 침묵하므로 적절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마아가 -
이처럼 왕의 즉위시 모친의 이름이 밝혀지는 것은 열왕기가 유다 왕들을 취급하는 기록상의 특징이다. 14:21 주석 참조. 한편 마아가는 아비살롬(Abishalom), 즉 압살롬(Absalom)의 딸이다. 그러나 역대기에 의하면 아비얌의 모친은 '우리엘'(Ur-iel)의 딸(대하 13:2)로 나타나 있는데 이 같은 문제는 마아가를 압살롬의 딸 다말(삼하 14:27)이 우리엘에게 출가하여 낳은 딸, 즉 압살롬의 손녀로 봄으로써 해소된다(K-eil&Delitzsch Commentary, Vol.III,p.217). 그러므로 르호보암은 자기 사촌 혹은 조카와 결혼한 셈이다. 물론 이러한 근친 결혼은 고대 사회에서 흔한 것이지만(창20:12;24:48; 29:15-30) 왕가 내의 근친 결혼에는 특히 정치적 목적이 왕가 내의 근친결혼에는 특히 정치적 목적이 강했을 것이다. 즉 왕권 강화를 위해 각 지파의 유력자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다윗(삼하 3:2-5;5:13-16)의 경우 가족내의 분란을 많이 치뤄야 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혼인 관계로 왕가를 다시 얽어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여하튼 미남자 압살롬의 딸(정확히 말하자면 손녀) 마아가는 르호보암의 총애를 받았다. 1절 주석 참조. 한편 대하 13:2의 '미가야'(*)는 '마아가'(*)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추측된다(Dahlberg).
3.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 -
즉 르호보암이 유다 통치 기간 중 전국에 우상숭배를 만연시킨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14:21-24). 그런데 아비얌의 통치 역시 이 점에 관한한 르호보암과 달라진 바가 없었다. 그래서 열왕기는 르호보암에게 그러했듯 아비얌에게도 냉정한 힐난(詰難)의 논조를 견지한다. 한편 이와 달리 역대기는 아비얌의 신앙적 색채 짙은 연설과 여로보암에게 거둔 전쟁의 승리를 서술하고 있다(대하13:2-18). 그러나 그런 점들조차 우상 숭배를 허용한 아비얌에 대해 열왕기 기자의 냉정한 평가가 달라지도록 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 마음이...온전치 못하였으나 -
역대기 기록에 나타나는 아비얌의 경건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그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그의 우상 숭배행위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다윗의 마음'이란 '하나님을 향해 전심 전력함'이라는 특성으로 요약된다(8:25;9:4). 그런데 이와 달리 우상 숭배란 부정한 배우자(配偶者)의 소행처럼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이다(14:22). 그러므로 다른 그 무엇으로도 으뜸가는 이 범죄를 메꿀 수는 없는 것이다(출 20:1-6;신 4:15-24).
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원문 초두에는 '그러나'(*, 키)가 있다. 그리고 본절은 '다윗 계약'(삼하 7:8-16)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말한다. 따라서 3절에 지적된 바와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비얌의 남왕국이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윗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총때문이라는 것이다.
등불 -
뒤이어 나오는 '후사'(後嗣)와 동의어로 곧 '자손'을 상징하는 말이다(삼하21:17;욥 18:5,6;시 132:17).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36 주석을 참조하라.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
여기서 '세워'(*, 쿰)는 약속이 확립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는 곧 우상 숭배를 허용한 아비얌(3절)이 자기 아들에게 대를 물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확립하셨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북왕국의 우상 숭배자들이 자주 대(代)가 끊기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은 것에 비해 남왕국 왕들은 비교적 무사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14:10;16:2;왕하 10:11). 한편 북왕국은 약 250년동안의 존속 기간 동안 무려 아홉 왕조의 교체를 겪었으나 반면 남왕국은 약 400년 동안 다윗왕조의 통치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Hammond). 본서 서론, '12.열왕기서의 참조 도표'참조.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헷 사람 우리아의 일 -
이는 다윗이 음모를 꾸며 부하 장수 우리아(Uriah)를 죽게하고 그의 처 밧세바를 빼앗은 사건을 말한다(삼하 11:2-27). 한편 법치주의(法治主義) 국가에서는 어떤 권력자도 법의 제한에서 제외될 수 없듯, 신정 국가(神政國家) 이스라엘의 왕 역시 하나님의 법에 의해 제한당하고 비판당하여야 했다. 그러나 실제 열왕의 역사는 그러한 이상이 자주 무시당했음을 보여준다. 즉 왕들은 자신의 권력이 무엇으로든 제한되거나 비판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는 대개 무시당했고 도리어 예언자 자신이 위협을 받곤 하였다(22:13-28).이러한 열왕들의 횡포와 부당성이 이스라엘 역사를 그릇되게 족쇄채웠음을 아는 열왕기 사가(史家)는 바로 그 점에서 다윗의 탁월함을 또 하나 발견한다. 즉 다윗은 우리아의 일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비난했을 때 그를 벌하기는 커녕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시인하고 통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삼하 12:1-23).
어기지 -
이에 해당하는 '수르'(*)는 '빗나가다','돌이키다'는 뜻이다. 즉 이는 마치 임무를 띤 군인이 그 임무에서 임의로 이탈하듯 자신의 본분에서 이탈하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이미 14:30에서 언급된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는 구절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14:30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사는 날 동안 -
14:30의 '항상'(*, 콜 하야밈)은 문자적으로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사는 날 동안'(*, 칼 예메 하야요)은 '생명의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즉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도 본절에서는 좀더 강조된 부사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조 효과는 다음 7절과 연계될 때 보다 적절히 발휘된다. 즉 이는 '선대에도 줄곧 전쟁이 있더니 후대에도 그러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
본절과 달리 대하 13장은 이 두 왕이 벌인 큰 전투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아비얌이 이끄는 남왕국 유다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즉 이때 유다군은 북왕국 군대의 협공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으나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마침내 승리를 거둘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투를 계기로 그때까지의 균형은 허물어지고 남왕국의 경계는 벧엘 훨씬 북쪽의 여사나(Jeshanah)지역까지 북상하게 된다(대하 13:19). 한편 결과적으로 이 승리는 아비얌의 다음 왕인 아사 시대의 10년 평화에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대하 14:1). 왜냐하면 북왕국이 이 전투에서 꺾인 세력을 회복하는 데 그만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R.D.Patterson).
유다 왕 역대 지략 -
14:19,29 주석 참조.
8. 아비얌이 그 열조와 함께 자니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사 -
혹자는 '아사'(*)란 이름의 뜻이 '치료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ese-nius). 그러나 분명치는 않다. 한편 유다의 제 3대 왕인 아사(Asa)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 업적(11-15절;대하 14:1-5) 때문에 열왕기가 높이 평가하는 왕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부친 아비얌이 불과 3년 밖에 재위 하지 못한 사실을 그보다 훌륭한 아들 아사의 길을 빨리 열어 놓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이도 있다(Mattew Henry).
성경 말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내 아버지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일 네 자손들이 너를 본받아 내 뜻대로 살면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네 집안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왕상 8:25
만일 네가 너의 아버지 다윗처럼 내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며 나의 모든 법과 명령을 지키면
왕상 9:4
그러므로 너는 내 종 다윗에게 전능한 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내가 들에서 양을 치던 너를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고
9또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앞에서 너의 모든 대적을 파멸시켰다. 앞으로 나는 네 이름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이름처럼 높여 주겠다.
10-11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정착지를 마련해 주었으므로 그들이 다시는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부터 그들은 악한 민족들의 침략으로 많은 괴로움을 받아왔으나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너는 전쟁이 없는 태평 세월을 누리고 네 자손들은 계속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12네가 죽어도 나는 네 아들 하나를 왕으로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
13바로 그가 나를 위해 성전을 건축할 자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게 할 것이다.
14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범죄하면 나는 사람을 막대기와 채찍으로 사용하여 그를 벌하겠다.
15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에게서 내 자비를 거둔 것처럼 그에게서는 내 자비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16그리고 네 집안과 네 왕조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삼하 7:8-16
1-2그때 예언자 나단이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고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진 부자였고
3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암양은 온 가족의 애완 동물이 되어 식구들과 함께 같은 상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은 마치 자기 딸처럼 그 양을 부둥켜안고 귀여워했습니다.
4그런데 최근에 그 부잣집에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양과 소는 아까워서 잡지 못하고 한 마리밖에 없는 그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다가 그것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5이때 다윗은 크게 격분하며 말하였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지만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6그는 그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4배를 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7바로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출해 내었으며
8사울의 궁전과 그의 처들을 너에게 주었고 또 이스라엘과 유다를 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을 것이다.
9그런데 어째서 너는 나 여호와의 법을 무시하고 이런 끔찍한 일을 하였느냐? 너는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10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내가 너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네 집안에서 너에게 미칠 화를 불러일으키고 또 네가 보는 앞에 서 네 처들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겠다. 그가 밝은 대낮에 네 처들을 욕보일 것이다.
12너는 그 일을 몰래 해치웠으나 나는 이 일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낮에 행할 것이다."
13그러자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하고 나단에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나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왕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14그러나 왕이 원수들에게 여호와를 경멸하고 모독할 기회를 주었으므로 왕의 아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15나단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여호와께서는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서 낳은 아이를 심한 병에 걸리게 하셨다.
16그러자 다윗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그 아이를 살려 달라고 여호와께 빌며 금식하고 밤새도록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17그때 나이 많은 신하들이 그에게 가서 일어나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18그러던 중 7일 만에 아이가 죽었다.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은 그 사실을 그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렇게 수군거렸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도 왕이 우리 말을 듣지 않고 그처럼 상심해 있었는데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우리가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19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서 아이가 죽은 것을 눈치채고 "아이가 죽었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그제서야 다윗은 일어나 목욕을 하고 머리를 빗은 다음 옷을 갈아 입었다. 그러고서 그는 성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먹었다.
21그러자 그의 신하들이 물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는 울고 금식하시더니 아이가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찌된 일이십니까?"
22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이가 살았을 때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혹시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23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살릴 수 있겠소? 언젠가 나는 그에게로 가겠지만 그는 나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
24그러고서 다윗은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지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사랑하셔서
삼하 1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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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성품/속성:
총애, 승리, 진노하시는,
계약/약속의, 충실하신,
은총, 통치하시는, 생명,
회복의, 치료, 섭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윗의 마음)하나님을
향해 전심 전력하는,
정직, 온전한 회개, 주께
부르짖기,
🔵
우상숭배x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비난했을 때
다른 후대 열왕들처럼
예언자들을 무시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시인하고 통회하는
온전한 회개의 모습을
보였다.🩸✝️
🌱🌿🌳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해 어두워진 이스라엘 가운데 용서와 긍휼의 빛으로 다윗을 위해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셔서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우리 가운데 크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실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실히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의 길로 나아갔던 다윗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명하신 말씀의 순종을 이루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44j2ual6M
이상과 묵시(Reaching Beyond Our Grasp)
“묵시(비전)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잠언 29:18)
이상과 비전(묵시)은 다릅니다. 이상은 영적인 영감이 없지만 비전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이상에 빠진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면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도록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욘 4:2) 우리도 하나님에 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그 개념으로 나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근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있는 곳에는 올바른 삶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전은 순종하고자 하는 도덕적 영적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져서 당신에게 이상만 있는지 아니면 비전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하늘이 무엇을 위하여 있겠는가!”
“묵시(비전)가 없으면” 우리가 일단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 우리는 무절제해지고 제멋대로 행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던져 버리고, 작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뵙는 것도 거부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우리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살아간다면 이는 영적으로 내리막 길을 가고 있는 것이며 비전을 잃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자세는 하나님의 비전으로 인한 것입니까? 주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하실 것을 기대합니까? 우리의 영적 안목에 신선함과 활력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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