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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5 : 9~24🍑혈육의 정에 매이지 않는 단호한 신앙 결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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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5 : 9~24🍑혈육의 정에 매이지 않는 단호한 신앙 결단

credo15229850 2024. 5. 10. 11:03

https://tripol.tistory.com/454

 

히브리어 열왕기상 15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우비쉬나트 쉐모네 에스레 람메렠 야로브암 벤 네바트 말라크 아비얌 알 예후다 개역개정,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새번역,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tripol.tistory.com

열왕기상 15: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 20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여로보암 제 이십 년에 아사가 유다왕이 되어 -

그러므로 북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은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남왕국 3대 왕(르호보암,아비얌,아사)을 상대한 셈이다. 그런데 대하 13:20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아비얌과의 전투 이후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사가 즉위할 무렵 여로보암은 패전의 후유증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여로보암은 아사의 통치에 별 위험이 되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아사가 비교적 안정된 정세 속에 눈을 내부로 돌려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11-15절).



 

 

 

 

 

10. 예루살렘에서 41년을 통치하였다. 그리고 그의 할머니는 아비살롬의 손녀 마아가였다.

 

 예루살렘에서 -

북왕국 왕들의 즉위기사가 단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25절)에서 통치하였음을 각별히 밝힌다(2절;14:21). 여기에는 열왕기 사가(史家)의 특수한 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즉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고 난 뒤에 다시금 국가 재건을 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 회복하여야 할 '국체(國體)의 요체가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 문제에서 '예루살렘'은 신앙적.정치적 구심체로서 국체의 요체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하에서 본서 기자가 과거 사실을 수집,정리할 때 '예루살렘'은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된다. 즉 국체의 연속성, 정통성의 요체로서 예루살렘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의의' 및 대상 11:4-9 강해, '예루살렘'을 보다 참조하라.

 

 사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

아사는 유다의 역대 왕들 중 세번째로 장기간동안 통치한 인물이다. 유다 왕들의 통치 연대를 살펴보면, 선한 왕들의 통치는 대체로 길고 악한 왕들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따라서 오래도록 왕위가 존속되었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였던 것같다(출 20:12). 한편 아사 통치 기간(B.C.910-869) 중 북이스라엘의 왕위는 무려 여섯 차례(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나 바뀌었다.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

마아가(Maachah)는 아사의 선왕인 아비얌의 모친이다(1,2절). 그런데 본절에선 마아가가 아사의 모친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제각기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1)여기서 '모친'(*, 엠)이란 말은 결코 '조모'의 뜻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사는 아비얌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였을 것이다(Mac Lean). (2) 아비얌은 자신의 모친을 아내로 삼은 것이다(Hammond, Lange, Ewald). 이상의 제 견해 중 두번째 주장은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대신 본절에서 '모친'이란 말은 태후로서 섭정을 한다든지 하는 지위와 기능의 명칭으로 이해한다면, 세번째 주장이 비교적 타당할 것이다(Keil등). 왜냐하면 마아가는 태후로서 아들인 아비얌이 죽고 난 뒤에 어린 손자 아사를 대신해 섭정을 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13절).



 

 

 

 

 

11. 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으며

 

 그 조상 다윗같이...정직하게 행하여 -

유다의 3대 왕 아사는 모처럼 긍정적 평가를 받은 왕이다. 그런데 그가 '다윗'이라는 열왕(列王)의 표준에 부합되는 까닭은 두말할 나위없이 종교 개혁 때문이다(12-15절). 사실 우상숭배를 공격하는 것은 곧 여호와 신앙에 전심전력하는 표현과 증거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열왕기는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면 흥하고 거역하면 망한다는 신명기적 역사관(2:3,4;3:14;11:38)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거역의 구체적 표현이 언제나 우상 숭배에 대한 태도는 곧 율법 순종 여부의 시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12. 그 땅에서 남창들을 모조리 추방하고 그의 선왕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제거하였다.

 

 남색하는 자 -

단순한 동성 연애자(homesexual)가 아닌 음란한 이교 의식(異敎儀式)에 동원되는 남창(男娼)을 가리킨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24 주석을 참조하라.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고 -

이스라엘인들이 틈틈이 숭배해 오던 우상들에는 아세라(14:23), 아스다롯, 밀곰, 그모스(11:5-7), 바알(18:18) 등이 있다. 레 26:1-13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그런데 아사가 이처럼 우상 숭배를 공격한 것은 모든 종교 혼합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여호와 유일 신앙이라는 전통 노선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Dentan). 그리고 역대기에 의하면 그러한 종교 개혁은 오뎃의 아들 아사랴 같은 선지자의 격려를 힘입었다고 한다(대하 15:1-9). 그러므로 왕국 내에는 언제나 옛 국시(國是), 즉 소박 강건한 신정 국가의 이상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는 왔었음을 알 수 있다.

 

 

 

 

 

 

 

13. 그는 또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더러운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대왕 대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그 모친 마아가가...태후의 위를 폐하고 -

이 사실은 아사의 단호한 개혁 의지를 보여 준다. 즉 철두 철미한 우상 숭배 공격에 있어 태후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얽매이기 쉬운 사사로운 혈통상의 정분(情分)을 극복하고 오직 진리 수호만을 위한 가치를 높이 든 아사 왕의 태도는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모본이 아닐수 없다(마 10:37,38). 한편 본절은 마아가가 태후로서 국가의 정책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짐작케 해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아들 아비얌(1,2절) 때로부터 종교 혼합주의 세력의 주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비얌이 일찍 죽고 손자 아사가 아직 어린 동안 실권자로서 섭정을 실시하였을 것이다. 10절 주석 참조. 그러므로 아사가 마아가를 폐위한 것은 (1)신앙 개혁,(2)종교 혼합주의 노선의 거부, (3) 왕권의 회복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기드론 시냇가 -

기드론(Kidron)은 예루살렘 성과 감람 산 사이에 있는 길이 약 5Km의 골짜기 이름이다. 그런데 우기(雨期)에는 이곳에 물이 넘쳐 흐르니 곧 기드론 시내가 되는 것이다. 2:37주석 참조. 한편 기드론 시냇가의 인접 지역에는 솔로몬 말기 왕실의 우상 숭배신당이 몰려 있던 멸망 산이 있다(11:7;왕하 23:13). 그래서 이곳은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의 빈번한 투쟁 장소가 되었다(Barrois). 추측컨대 태후 마아가의 아세라 우상도 이 멸망 산의 어디엔가 세워졌을 것이다.

 

 

 

 

 

 

 

 

14. 아사는 비록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평생 동안 여호와께 성실하였으며

 

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 -

아사의 철저한 개혁 의지를 감안할 때 그가 이처럼 산당을 남긴 일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그러므로 아사의 눈에 이 산당은 심각한 우상숭배의 처소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추리할 수 밖에 없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658).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산당에서 여호와께 예배드린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12:31 주석참조.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사는 산당을 남기므로서 우상 숭배 부활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왜냐하면 본래 산당은 가나안인들이 자신들의 우상 신을 숭배하던 곳이었는바 언제든지 이교(異敎)의영향이 투영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러한 역사의 진행을 아는 열왕기 사가(史家)로서는 아사가 산당을 남겨 놓은 사실이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한편 이러한 산당에 대한 대대적 파괴 작업이 비로소 실시된 때는 훗날 요시야(Josiah,B.C. 640-609)왕에 이르러서이다(왕하 23:4-20).



 

 

 

 

 

 

15. 자기 아버지와 자신이 헌납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모두 여호와의 성전에 갖다 두었다.

 

 구별한 것 -

여기서 '구별한 것'(*, 카드쉐이)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이란 뜻이다. 즉 이는 보통의 물품 중에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따로 떼어 둠으로써 거하게 된 물품을 의미한다. 역대기 기록에 따르면 된 물품을 의미한다. 역대기 기록에 따르면 아사 왕은 그의 부친 아비얌이 여로보암과 싸워서 취한 전리품(대하13:8)과 자신이 구스인들과 싸워서 얻은 전리품(대하 14:15) 중에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모두 하나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다.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왕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다.

 

아사와...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

'일생'(*, 칼 예메헴)은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이는 앞서 14:30의 '항상'과 15:6의 '사는 날 동안'이나 마찬가지의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 왕국 초기부터 남북간에 전쟁이 있더니 각각 3대 왕에 이르도록 전쟁이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역대기는 아사즉위 후 십년 동안 평화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대하 14:1). 즉 여로보암의 말기 2년, 나답의 2년, 바아사의 6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은 전쟁이 없었던 것이다. 본서 서론, '12. 열왕기서의 참조 도표'참조. 그 이유는 스마라임 전투에서 아비얌에게 패전한 이후(대하 13:1-22) 미처 세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정권이 교체되는 등 불안정한 북왕국내부의 정정(政情) 때문이다. 그러나 바아사는 어느 정도 정국이 수습되자 다시 남왕국고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분열 왕국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끝없는전쟁의 악순환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시대의 한 표징으로서 열왕기는 이 점을 자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14:30;15:6).



 

 

 

 

 

 

 

17. 이스라엘의 바아사왕이 유다를 침략하여 아사왕이 거주하는 예루살렘의 출입로를 차단하려고 라마를 요새화하기 시작하였다.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한지라 -

본절에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 침공 원인이 밝혀져 있다. 라마는 원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수 18:25) 예루살렘 북방 약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바아사는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같다. (1) 백성들의 남하(南下) 제지: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유다 왕국이 평화를 누린다고 하는 소문은 북 이스라엘 곳곳에까지 전해졌고, 그 소문을 들은 자들 중 대거 월남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대하 15:9). 그러자 포악한 바아사왕은 여로보암과 동일한 염려(12:27)에 사로잡힌 나머니 라마를 기반으로 하여 남하 무리들을 강제 저지시키고자 하였다. (2) 유다 정복을 위한 전초 기지 확보:라마는 유다의 정치,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였으므로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따라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유다의 아사왕은 황급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비책을 마련하였던 것이다(18-22절). 한편, 바아사의 침공 연대를 역대기는 아사 왕 36년이라고 말한다(대하 16:1). 그런데 열왕기는 바아사가 죽고아들 엘라가 즉위한 때가 아사왕 26년이라고 한다(16:8). 따라서 이러한 연대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비교적 유력한 견해는 '아사 왕 36년'이란 '왕국분열 이후 36년'으로 보는 견해이다(Liley,Pulpit Commentary).

 

 라마 -

'라마'(*)는 '높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엘람'(er-Ram)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남북 왕국 국경의 주요 분쟁 지역에 속한다. 그런데 바아사는 이곳에 요새를 건축하여 남왕국을 압박하였다. 이로 보아 바아사는 이전에 에브라임 북방 여사나까지 밀렸던 영토를 거의 회복한 듯하다. 7절 주석 참조.

 

 

 

 

 

 

 

 

 

 

18. 그래서 아사왕은 성전의 창고와 궁전에 있는 은과 금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다브림몬의 아들이며 헤시온의 손자인 시리아의 벤-하닷왕에게 갖다 주라고 자기 신하들을 다마스커스로 보내며 이런 전갈을 보냈다.

 

 남은 은금을...벤하닷에게 보내며 가로되 -

당시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는 르호보암 당시 애굽의 시삭(Shishak)에게 약탈당하고 남은 것들 이외도(14:26) 아비얌이 여로보암과의 싸움에서 탈취한 보물들과(대하 13:18) 아사가 구스를 물리치고 탈취한 물건 등(대하 14:15)이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 지속되었던 평화 시기 동안 유다 왕궁에는 많은 은금 보화들이 축적되었을 걸로 짐작된다. 따라서 아사가 이많은 보물들을 '몰수히' 벤하닷에게 바치고 구원병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은, 바아사의 침공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가를 잘 대변해 준다. 하지만 그가 일찍이 체험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더라면 그렇듯 심각한 공포와 낭패감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시 50:15).

 

손에 붙여 -

이는 곧 어떤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다메섹 -

 '동방의 진주'라고 별명을 가진 다메섹(Damascus)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팔레스틴 북방 두로 동편에 위치한 아람족의 국가이다. 한편 과거 다윗은 이다메섹을 포함하여 많은 아람 부족 국가들을 이스라엘에 합병시켰었다(삼하 8:5,6).그러나 르손의 독립 운동(11:24,25)과 이스라엘의 왕국 분열(12장)등이 아람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을 무산시켰다. 그러므로 아람은 다메섹을 중심으로 점차 세력을 키워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바아사의 유다 공격 당시 북왕국과 다메섹은 서로 동맹을 체결한 상태이다(19절). 그래서 바아사는 배후를 염려하지 않고 마음놓고 유다를 공격할 수 있었다.

 

 헤시온의 손자...벤하닷 -

헤시온(Hezion),B.C.940-915)은 솔로몬의 통치에서 벗어나 다메섹에서 아람왕이 된 르손(Rezon)과 동일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분명치는 않다. 한편 본절에서 가리키는 벤하닷(Benhadad)은 벤하닷1세(B.C.900-860)를 말한다. 그는 그의 아들인 벤하닷 2세(B.C.860-841)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그런데 벤하닷 1세에서 벤하닷 2세에 이르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이들의 정책은 서진(西進)정책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1) 남동쪽의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도 (2)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도 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펼쳤다(Bow-ling).



 

 

 

 

 

 

19.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가 동맹을 맺었듯이 당신과 나 사이에도 동맹을 맺읍시다. 내가 보내는 이 은과 금은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제 당신은 이스라엘의 바아사왕과 맺은 동맹을 끊고 그가 우리 영토에서 철수하게 해 주십시오.

 

 나와...당신의 부친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

이로 보아 벤하닷 1세는 정책상 이스라엘 남북 왕국 모두와 동맹을 체결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 동맹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그때그때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파기와 재동맹이 거듭되었음이 분명하다(20:1-24;22:34-36).

 

 깨뜨려서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파라르'(*)는 '깨다','취소하다','무효로하다'란 뜻으로 인간 사이에 맺어진 약조의 배반, 즉 동맹의 일방적 파기를 의미한다.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

바아사의 북왕국 군대는 잘 준비된 강병(强兵)이었다. 이들의 공격에 수세로 몰린 아사는 벤하닷을 매수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한 것이다. 즉 전선(戰線)이 남쪽 라마로 치우친 동안(17절) 아사는 무방비로 노출된 후방을 공격하여 이스라엘군을 당황케 하려 한 것이다. 물론 이 작전은 주효했다. 그러나 아사는 이로 말미암아 선격자 하나니(Hanani)의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아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벤하닷)을 의지했기 때문이다(대하 16:7-10).



 

 

 

 

 

 

20. 벤-하닷은 아사왕의 요구를 승낙하고 자기 군 지휘관들에게 지시하여 이스라엘 성들을 치게 하였는데 그들은 이욘, 단, 아벨-벧-마아가, 긴네렛 일대, 그리고 납달리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벤하닷이...듣고 -

벤하닷으로서는 아사의 제안에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제안은 (1) 막대한 금품 수수가 따르는 것이기도 하려니와(18절) (2) 그 내용자체가 무방비 상태의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영토 확장 및 무역로 확보를 꾀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의미했기 때문이다(19절).

 

이욘과...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

본절에 열거된 지명들은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에 해당한다. 벤하닷에게 이 지역은 다메섹에서 갈릴리를 경유하여 지중해에 이를 수있는 대상로(caravan route)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의 확보는 다메섹으로서는 두로와의 교역 뿐 아니라 지중해 무역이 보장되는 의미를 띤 것이다(Bowman).

 

 이욘 -

아벧 벧마아가에서 북쪽으로 약 14Km 지점, 훌레(Huleh) 골짜기에 위치한 납달리 지파의 성읍이다. 오늘날의 '텔 디빈'(Tell Dibbin)으로 알려져 있는데 벤하닷에게 침략당한 후 또다시 앗수르에게 점령당하였다(왕하 15:29).

 

단 -

본래 지명은 라이스(Laish)였던 이스라엘 최북단의 단지파의 성읍이다. 삿18:29 주석 참조.

 

 아벧벧마아가 -

북부 갈릴리 위쪽의 훌레 계곡에 위치했던 납달리 지파의 성읍이다. 이욘(Ijon)에서 남쪽으로 약 14Km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본래 아벧(Abel)과 벧마아가(Beth-Maachah)는 서로 인접한 두 마을이다. 그런데 두 지명을 하나로 합쳐 '아벧벧마아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삼하 20:14 주석 참조.

 

 긴네렛 온 땅 -

성경에서 긴네렛(Chinnereh)은 대개 다음 3가지 용례로 쓰이는데 곧 (1)갈릴리 바다의 옛 지명(민 34:11), (2)납달리 자손의 한 성읍(수 19:35), (3)갈릴리 호수 일대의 게네사렛 땅(마 14:34)등이다. 여기서는 3번째 경우를 가리킨다.



 

 

 

 

 

21. 바아사왕은 이 소식을 듣고 라마의 요새화 작업을 중단하고 디르사로 돌아왔다.

 

바아사가 듣고...디르사에 거하니라 -

당시 바아사의 전투 병력은 거개가 라마 부근으로 집중 투입되어 있었다(17절). 그런데 벤하닷 군대는 오히려 후방을 공략,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이 납달리 지명을 허물어 뜨리고(20절) 그 기세를 몰아 디르사(T-irah)를 향해 계속 직진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바아사는 수도(首都)방위를 위해 급히라마에서부터의 퇴군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디르사 -

디르사는 북방 전략에 치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여로보암이 세겜에서부터 천도한 도시이다(14:17). 요단 강 동편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특히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데 오므리가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기 전까지는(16:23,24) 계속 북왕국의 수도였다.

 

 

 

 

 

 

 

 

22. 그때 아사왕은 유다 전역에 명령을 내려 바아사가 라마를 요새화하는 데 사용하던 돌과 목재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베냐민 땅의 게바와 미스바를 요새화하였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

이는 아사가 전국에 부역 총동원령을 내렸음을 말한다. 특히 '모면하지'에 해당하는 '나키'(*)는 '깨끗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자유롭다'는 뜻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아사가 내린 동원령은 자유스럽지 못한, 속박된 강제동원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역대기는 아사의 통치 일면에 포학스러움이 없지 않았음을 암시한다(대하 16:10).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 -

바아사는 다메섹 침공의 급보에 접하자 뒷수습도 제대로 못한 채 황급히 철군하였다(21절). 그래서 라마에 건축 자재들을 아사가 탈취해 오히려 자신의 국경 성읍들을 요새화한 것이다.

 

게바 -

'게바'(*)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라마의 동쪽 그리고 예루살렘 북동쪽 9.6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로서의 유다 왕국의 전통적인 북쪽 경계로 간주된다(왕하 23:8;슥 14:10;느 11:31). 또한 이곳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을 띤 곳이기도 한다(삼상 13:3,16;14:5;삼하 5:25;따항 14:16). 한편 간혹 게바(Geba)는 기브아(Gibea)와 혼동되곤 한다. 그러나 기브아는 게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성읍(수 18:24)이다(Mortn).

 

 미스바 -

'미스바'(*, 미치파)는 '바라보다','정탐하다'는 뜻에서 유래한지명이다. 이름이 암시하듯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8Km지점에 위치한 고지대이다. 그런데 이곳은 게바와 마찬가지로 북왕국과의 경계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또한 이러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또한 이러한 군사적 중요성 외에도 미스바는 예로부터 종교적 처소이기도 한다(Muilenburg,삿20:1;21:1,8;삼상 7:5-11;10:17-27). 한편 라마에 남겨 놓은 건축 자재로 도리어 국경을 강화한 아사는 이로써 바아사의 남진(南進)을 좌절시켰다. 즉 예루살렘 북쪽 6Km지점인 라마까지 깊숙이 남하하여 유다를 압박하려던 바아사의 의도(17절)는 무산될것이다. 그러나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을 치게 한 아사의 전략은 선지자 하나니의 비난거리였다. 즉 아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국 군대를 의지한 탓에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것이다(대하 16:7,8).

 

 

 

 

 

 

 

23. 그 밖에 아사가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과 그가 성을 건축한 일은 유다 왕들의 역사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늙었을 때에는 발에 병이 들었다.

 

아사의...모든 권세 -

'권세'(*, 게부라)는 특별히 왕권을 가리키는 말로써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신 3:24;대상 29:11;욥 12:13 등).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의 강력한 왕권 행사를 가리키고 있다. 즉 이는 아사가 강력한 왕권을 지녔었음을 지시하는 말이다. 이후에도 우리는 오므리, 여호사밧 등에게 이 단어가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16:5,27;22:45;왕하 10:34 등).

 

 발에 병이 있었더라 -

아사는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왕이긴 하지만(11-15절) 그렇다고 전혀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벤하닷을 끌어들여 북왕국을 공격하게 한 일외에도(18-21절) 그가 이처럼 발에 병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고 역대기는 서술한다(대하 16:12). 이는 곧 아사가 처음과 달리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여호와에게서 멀어져 갔음을 의미하는 한 증거이다(H.J.Austel,Keil&Delitzsch).한편 본절의 '병'에 해당하는 단어(*, 하라)는 '문질러 없애다'란 뜻에서 온 말이다. 이로 보아 아사의 발에 난 병은 가려움증이 아주 심한 피부병이었던 듯하다.



 

 

 

 

 

24. 아사는 죽어 다윗성에 있는 왕들의 묘에 장사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 열조와 함께...장사되고 -

아사의 장례(葬禮)장면을 언급하는 본절은 좀 특이하다. 즉 본절에는 '열조와 함께'라는 문구가 거듭되고 있다. 그리고 장사지(葬事地)도 그저 다윗 성이 아닌 '그 조상 다윗의 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1) 잦은 정변으로 왕조 교체가 빈번했던 북왕국에 비해 다윗 왕조가 일관되게 통치했던 남왕국의 연속성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본서 서론, '12.열왕기서의 참조 도표'참조. 그런데 이 점은 곧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즉 이는 다윗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위를 잇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삼하 7:11-16)이 실제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2) '조상 다윗'이란 표현은 특히 정통성의 소재 문제에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다윗은 신정 국가의 이상적 군왕으로 제시된 인물이다(11:34). 그러므로 다윗과 연결되는 것은 단순한 혈연적 계속이 아니라 가치 판단에서의 계승성 문제이다. 이 점은 북왕국의 왕들에게도 다윗이라는 표준과 척도가 적용되는 데서도 알수 있다(14:8). 그러므로 아사가 '조상 다윗'의 성에 장사되었다는 각별한 표현은 신앙적 가치 판단으로서의 정통성이 그에게 있었음을 의미한다. 11절 주석 참조.

 

 

 

 

성경 말씀:

 

 

4그런 다음 왕은 대제사장 힐기야와 그 밑에 있는 다른 제사장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바알과 아세라 여신과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는 데 사용된 모든 기구를 성전에서 끄집어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왕은 그 모든 것을 예루살렘성 밖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에서 불태우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였다.

5그는 또 유다 왕들이 유다 전역과 예루살렘 일대에 지어 놓은 산당에서 분향하도록 세운 제사장들을 제거하고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들에게 분향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

6그리고 그는 아세라 여신상을 끌어내어 기드론 골짜기로 가지고 가 거기서 불태우고 그것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그 재를 공동 묘지에 뿌렸다.

7그는 또 성전 안에 있는 남창들의 숙소를 헐어 버렸는데 이 곳은 여자들이 아세라 여신을 위해 휘장을 짜는 곳이기도 하였다.

8그리고 그는 유다의 여러 성에 사는 모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더럽혔으며 예루살렘의 성주 여호수아가 성문 왼편에 지어 놓은 산당들을 헐어 버렸다.

9그러나 이 산당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은 할 수가 없었고 단지 동료 제사장들과 함께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10요시야왕은 또 힌놈 골짜기에 있는 도벳을 더럽혀 아무도 자기 자녀를 불에 태워 몰렉 신에게 제물로 바치지 못하게 하였으며

11유다 왕들이 태양 숭배를 위해 바친 말들을 제거하고 여기에 사용된 전차들을 불태워 버렸는데 이것들은 왕의 신하 나단-멜렉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전 문 곁의 뜰에 있던 것이었다.

12그리고 그는 유다 왕들이 아하스왕의 숙소 옥상에 지어 놓은 단들과 므낫세왕이 성전의 두 뜰에 세운 단들을 헐고 그것을 빻아 그 가루를 기드론 골짜기에 뿌렸다.

13그는 또 솔로몬왕이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의 신 밀곰을 숭배하기 위해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세운 산당을 더럽히고

14또 돌기둥의 우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여신상을 찍고 그 우상들이 있던 곳에 사람의 해골을 채웠다.

15그리고 요시야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헐고 그것을 빻아 가루로 만들며 아세라 여신상을 불태워 버렸다.

16그런 다음 그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산당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그 해골을 끄집어내어 단 위에서 불살라 그 단을 더럽혔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오래 전에 그의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17그러고서 왕은 "저기 보이는 저 무덤이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벧엘 사람들은 "유다에서 온 예언자의 무덤입니다. 그는 조금 전에 왕이 이 단에 행하신 바로 그 일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8그때 왕이 "저 무덤은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아라" 하자 사람들은 그 예언자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예언자의 뼈는 옮기기 않고 그대로 두었다.

19그는 또 이스라엘 왕들이 모든 이스라엘 성에 세워 여호와를 노하게 한 산당을 헐고 그 단들도 벧엘에서 했던 것처럼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20그리고 그는 산당 제사장들을 그들의 단에서 모두 죽이고 그 뼈를 단 위에서 불태운 다음 예루살렘 으로 돌아왔다.

왕하 23:4-20

 

주 여호와여, 주께서는 주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주의 종에게 보여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주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 3:24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은 다 주께 속하였으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여호와여,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이 주께 있습니다.

대상 29:11

 

그러나 참된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의 것이며 예지와 통찰력도 그의 것이다.

욥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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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성품/속성:
통치, 회복, 진리, 거룩,
평화, 축복, 크신 능력,
은혜, 구원, 자유, 
책망하시는, 권세, 왕,
약속,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호와 신앙에
 전심전력하는, 격려,
구별하는(하나님께 
드리는), 책임, 하나님
의지하기, 
🔵
아사 왕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해야 겠다. 삶의 자리에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산당과
같은 것은 무엇인지 
분별하여 평생을 하나님께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하는 미혹 속에서 정에 휘둘리지 않고 도우시는 성령의 뜻을 따라 온전한 순종을 실천하기를 소망합니다.🙏

 

 

 

 

 

😇대박~~✨💖🎶

 

 

 

https://www.youtube.com/watch?v=tAGeVYIuv3U

이런 음악의 찬양은 재즈인가요 발라드 인가요 뭔가요 ~💖🎶

"스스로 첫걸음을(Take the Initiative)"

 

“너희 믿음에 덕을…. 더하라” (베드로 후서 1:5-7)

“더하라”는 뜻은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습관이나 성품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걷도록 무력을 행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이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Work in) 구원을 우리도 이루어 내야(Work out) 하는 것입니다.(빌 2:12) “더하라”는 뜻은 뭔가를 하는 습관에 빠지라는 뜻입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어렵습니다. 첫 발걸음을 떼라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명령하여 당신이 가야 하는 길로 가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 그 길을 의심하는 습성을 경계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음을 강하게 먹고 그 말씀하신 대로 당장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당신의 결단을 절대로 재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 머뭇거리면 이는 은혜로 서 있는 당신의 발판을 위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도적으로 나아가십시오. 의지적으로 발걸음을 당장 떼십시오. 뒤로 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십시오. 지나온 다리를 태워 버리십시오. “나는 그 편지를 당장 쓰겠다.” “그 빚을 당장 갚겠다.” 주께서 말씀하신 일을 불가피한 일로 만드십시오.

우리는 만사에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찾으려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위기가 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는 그러한 습관이 만들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첫 발걸음을 떼십시오.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387?listURI=%2Fmercyreformedchurch%2FULF8

 

5월 10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너희 믿음에 덕을…. 더하라” (베드로 후서 1:5-7) “더하라”는 뜻은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m.cafe.daum.net

 

여왕님께서 간식을 숨겼어옹🫠💖

 

 

 

 

 

 

 

 

 

 

 

 

 

 

 

길냥이 실버~🤍

 

 

 

🐰된 날~양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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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부자라 1일 1자동차 해서 기부중이야~ 1일 1tea대신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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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앉은 나비가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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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