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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6 : 15~28👼계속되는 내분과 갈등, 하나님 없는 위험한 권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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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상 16 : 15~28👼계속되는 내분과 갈등, 하나님 없는 위험한 권력

credo15229850 2024. 5. 13. 10:19

https://tripol.tistory.com/455

 

히브리어 열왕기상 16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예히 데발 아도나이 엘 예후 벤 하나니 알 바사 레모르 개역개정,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이르시되 새번역,1 주님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

tripol.tistory.com

열왕기상 16:15.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

본문 후반을 참고하면, 시므리가 1주일 동안이라도 재위(在位)할 수 있었던 것은 기실 깁브돈 출정군이 디르사로 회군(回軍)하는 데 1주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군한 군대는 마침내 시므리의 왕 행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시므리의 7일 천하는 3일 천하로 끝난 과거 우리나라의 갑신 정면(1884년)을 생각게 해주다. 그런데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이처럼 단명(短命)한 것은 백성들이 그의 반란에 동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16-18절).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시므리가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그 까닭은 시므리가 매우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11절).

 

 때에 백성들이.... 있더니 -

수도 디르사의 왕궁에서 왕관 뺏기 게임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 이처럼 백성이 전쟁터에 있는 동안 향연을 벌인 엘라의 모습이 무책임하고 경박한 왕권을 상징하듯(9절), 백성 부재의 현장에서 벌어진 왕위 쟁탈전은 백성과 무관한, 백성을 소외시킨 정통성 결여의 권력 다툼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

이스라엘은 일찍이 나답 왕 때에도 깁브돈을 공격한 바 있는데 그때 나답은 바아사에 의해 살해 되었다(15:27). 그런데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또다시 깁브돈을 공략 중이며 이 기간 동안 시므리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18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느끼게 된다. (1) 동일한 범죄에 대한 동일한 심판이 동일한 장소와 관련하여 일어났다는 것(13절 ; 15:25-30)은 하나님의 심판의 오의(奧義)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2) 그리고 이스라엘의 내란은 불레셋에게 유익을 주었다는 점이다. 한편 솔로몬 당시, 블레셋 지경(地境)은 이스라엘의 판도 내에 있었다(4:21). 그러나 솔로몬 사후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이탈하였다. 그러기에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실지(失地)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블레셋 공략을 위한 전초 기지인 깁브돈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16.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매

 

 진중(陣中) 백성들 -

이는 본절 하반부와 다음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무리"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 진중 백성들이란 깁브돈 출정군을 가리키니 "이스라엘 무리"라는 호칭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이들을 "이스라엘 무리"로 호칭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까닭이 있을 것이다. (1) 오므리가 비교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범위한 추종을 얻은 인물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실제로 이스라엘의 차기 주권자가 된 인물 역시 오므리임(23절)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ontgomery).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시므리의 왕위 찬탈 소식에 접한 백성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엘라가 통치 기간 중 민심(民心)을 샀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시므리 및 그의 즉위 과정이 백성의 수긍을 받지 못하였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이는 시므리의 왕위 찬탈 자체가 대역무도한 불법이었을 뿐 아니라 엘라 가문과 그 친척, 친구들에 대한 시므리의 난폭하고 잔혹한 살해 행위(11절) 또한 백성들의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진에서... 왕을 삼으매 -

오므리(Omri)는 로마사에서 자주 보듯 전쟁터에서 군대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Mattew Henry). 따라서 그가 명실 공히 북왕국 전체의 왕으로 군림하기까지는 좀더 많은 세월이 필요 하였다. 즉 오므리는 시므리를 제거하고 난 뒤에도(17,18절) 디브니(Tibni)라는 경쟁자와 약 5년(B.C. 885-881년)간의 내전을 치뤄야 했던 것이다(21-23절).

 

 

 

 

 

 

 

17.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이에...에워쌌더라-

16절과 본절에 의거할 때 우리는 시므리의 7일간 재위 기간(15절) 동안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즉 (1) 시므리의 모반 소식이 깁브돈 출정군에게 전달됨, (2) 진중에서 백성들이 오므리로 왕을 삼은 후 디르사로 회군함. (3) 오므리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궁에서 농성하는 시므리군을 격파함 등이다. 이상에서 보듯 오므리의 행동은 매우 민첩하고 신속했다. 그리하여 시므리는 미처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들이닥친 오므리군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이로보아 오므리는 군사적으로 유능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비록 열왕기 본문은 그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 나타나 있듯 실상 오므리는 재위 기간 중 모압을 정복하는 등 많은 군사적 성공을 거둔 것이다(Maclean).

 

 

 

 

 

 

18. 시므리가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왕궁 위소 -

"위소"는 "높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이는 왕궁 내에서도 특별히 높은 곳에 있는, 최후의 요새와 같은 처소일 것으로 보인다.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

수리아역(Peshitta)은 본절과 관련, 오므리군이 공격차 왕궁 위소에 불을 놓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은 명백히 시므리의 자살을 말하는 것이다. 즉 디르사 성이 함락되자 시므리는 최후의 도피처인 왕궁 위소로 도피했으나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오므리 군대를 목도하고서는 절망 끝에 그만 불을 놓아 자살하고 만 것이다. 사실 시므리는 자신이 잔혹한 유혈극을 벌였던 인물이었으니(9-11절) 왕권 쟁탈전에서의 자비란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자살로 최후를 마친 시므리에게서 우리는 철두철미 자의성(恣意性)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를 본다. 즉 그가 추구한 왕권은 스스로의 권력욕에서 기인했을 뿐 하나님께로부터 봉사의 직분을 받았다는 자각의 흔적이 전혀 없다. 15절 주석 참조. 따라서 신정 정치의 이상을 품은 열왕기 사가(史家)가 그런 시므리에게 조금치의 정통성도 인정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시므리와 오십 보 백 보의 인물들이 들락날락 했던 북왕국 왕권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19.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

혹자는 본절을 시므리가 7일 천하(15절) 동안 우상 숭배를 행했음을 비난하는 절이라 단정한다(Bahr). 그러나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범주에는 우상 숭배와 함께 주인을 배반한 죄가 포함된다(12:19). 그러므로 본절에서 시므리에게 적용된 "여로보암의 길"은 하극상(下剋上)의 범죄에 보다 강조가 있다 하겠다. 훗날 이세벨도 요람 왕을 죽인 예후에게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는 말을 하고 있다(왕ㅇ하 9:31). 이처럼 당시 시므리는 "주인을 죽인 자"라는 고착된 이미지로 보통 명사화될 정도였다. 그러므로 본절 역시 시므리의 그런 범죄를 지적한 경우로 보는 것이 옳다.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 모반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시므리의 남은 행위......기록되지 아니 하였느냐 -

본절은 이스라엘 열왕의 결말 공식(5,6,14,27,28절 ; 14:19, 20 ; 15:31)에 맞추어 시므리의 결국을 마무리하려 애쓴 흔적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는 "남은 사적", "무릇 행한 일", "열조와 함께 자매" 등의 상투적 어구가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재신에 "그 모반한 일"이란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이미 19절에서 언급하였듯 시므리의 행적이 모반자로 규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왕조 실록은 이러한 시므리의 역모(逆謀)나 7일 천하의 행적에 대하여 본서보다 더 상세히 기록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로 왕을 삼으려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기낫의 아들 디브니 -

본문을 제외 하고는 디브니(Tibni)에 대한 성경상의 기록이 없다. 그런데 깁브돈 출정군을 이끌고 돌아와 시므리를 격파한 오므리(15-18절)와 경쟁하는 일은 어는 정도 군사력에 자신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개 디브니를 당시 엘라(8,9절)의 세 군대 장관(시므리, 오므리, 디브니)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Ward). 한편 디브니의 경우 생략되어 있다(16,17,22,23절). 이 점에 착안하여 디브니는 이스라엘 명문가의 후손이나 오므리는 정통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는 자도 있다(Maclean).

 

 

 

 

 

 

 

 

22.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

본절이 강조하는 바는 이제 북왕국이 약육강식의 무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즉 이제 누구든지 힘만 있으면 왕이 되는 판국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정 정치의 이상으로써 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제사장적 승인, 국민의 동의(1:38,39) 등이 일절 무시되고 대신에 무력에 의한 힘- 제일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과거 여로보암이 형식적이긴 해도 자신의 왕권을 여호와 종교와 접목시키려 한 것(12:25-33)에 비하면, 이러한 현상은 불법의 노골화로써 일종의 위헌(違憲)적 현상이다. 한편 깁브돈에서 선포한 오므리의 왕권(16절)은 횃수로 5년(아사 27년-아사 31년)간의 내전을 거친 뒤에야 비로서 확정되었다(23절).



 

 

 

 

 

 

 

23.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본절의 연대 문제는 얼핏 매우 혼란스럽다. 자체내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째문이다. 즉 본절은 오므리의 즉위 연대를 아사 31년(B.C. 880년경)으로 말하면서도 재위 기간은 12년(아사 27년0아사 38년)으로 말한다. 이것은 오므리의 공식 즉위 연대를 그가 디브니를 격파한 시점부터 잡은 반면(22절) 재위 기간은 깁브돈에서의 옹립 시점(16절)부터 잡은 탓이다. 여하튼 깁브돈을 기점으로 오므리 왕조가 출범하였는데 오므리에서 여호람에 이르기까지 오므리 왕조의 총 통치 기간은 44년간(B.c. 885-841)이다.



 

 

 

 

 

 

24.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은 두 달란트로...사마리아 산을 사고 -

1 달란트(Talent)를 대략 34kg으로 봄으로 은 두 달란트는 68kg 정도이다. 그런데 당시 은의 주가가 아무리 높았다 하더라도 금보다는 낮았을 터이니 오므리가 사마리아 산을 구입함에 있어 비싼 가격을 치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점은 오므리가 이 산을 매입한 것이 율법에 위반되는 행위였다는 점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인 동시에 각 백성즐이 영원한 기업으로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정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은 토지를 영구적으로 매매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였다(레 25:23-28). 물론 다윗이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을 산 경우가 있기는 하나(삼하 24:21), 오므리의 rluddn와는 그 성경이 달랐다. 즉 아리우나는 이방 족속인 여부스 사람이었으며, 그의 타작 마당을 다윗이 구입한 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종교적 목적에서 그리하였다. 한편 오므리의 불법적 토지 매입은 드의 아들 아합에게도 영향을 준듯하다. 아합은 기업으로 물려 받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취하였다(21:1-16).

 

 사마리아 -

사마리아(Samaria)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67km. 지중해 동쪽으로 약 40km 가량 떨어진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의 한 언덕에 위치한 성읍이다(Beek). 이곳은 북왕국의 전(前) 수도였던 세겜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그 산위에 성을 건축하고 -

당시는 오므리가 디브니를 물리치고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른지 2년 째 되던 해엿다. 그때에는 정국(政局)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으므로 오므리는 새로운 왕궁 건축과 수도 정비 사럽에 온 신경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마리아성 건축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1) 여로보암에 의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은 시므리에 의해 불타 버렸고(18절), 수도 디르사 또한 그 동안의 극렬한 전투로 말미암아 형편없이 파괴되었을 것이기 때눈(17,22), (2) 새로운 왕조에 걸맞는 새 도읍을 정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3) 사마리아의 지형학적 우수성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대에 북왕국을 공격한 여러 나라의 군대가 끝내 사마리아는 점령하지 못했고, 강대국 앗수르조차도 장기적인 포위 공격 끝에야 함락시킬 수 있었던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20:1-30 ; 왕하 6:24 ; 18:9,10).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26절로 미루어 보아 오므리의 죄악은 무엇보다도 여로보암의 경우와 같이 우상 숭배의 죄악인듯하다(12:28-30). 그런데 본절에서 보듯 오므리는 이전 누구보다 더욱 악하게 행했다고 고발당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합이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고 우상 숭배에 열을 올린 것(29-33)을 보면, 이미 오므리 시대에 이방과의 교류 및 우상 숭배의 정책적 장려가 있었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다.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헛된 것 -

13절 주석 참조.

 

 격발케 하였더라 -

또는 "격동시키다"로도 번역되는 원어 "카아스"는 특히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 분노와 흥분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5:30 주석을 참조하라.



 

 

 

 

27. 오므리의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오므리의....그 베푼 권세-

비록 열왕기는 오므리를 종교적 관점에서 악한 왕으로 간단히 치부하지만(25,26절) 오므리는 실로 강력하고 유능한 통치자였다. 즉 (1) 오므리가 모압을 정복했다고 기록된 모압 비문(Moabite stone)의 발굴, (2) 앗수르 왕 살만에셀 2세(Sharmaneser Ⅱ)의 기록에 이스라엘을 언제나 오므리의 집으로 칭한 사실, (3) 이 시기에 유다와의 효과적인 외교로 내전이 없었다는 점 등에서 오므리의 진면목은 충분히 발견된다(Maclean 등). 그런 까닭에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생략되어도 "오므리의 ...베푼 군세"라는 어구가 첨가되고 있는 것이다.

 

 

 

 

 

 

28. 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

왕들이 수도(首都)에 자기 묘실이 있어 죽고난 후 그곳에 매장되는 것은 관례이다(Hammond). 그러나 앞서 유혈 쿠테타와 내전 등으로 인해 빈번히 정권이 교체된 북왕국의 험난한 역사를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평안한 죽음이다. 한편 여기서 "장사되고"는 "묻다", "매장하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오므리의 매장은 굴이 아닌, 땅에 묻는 형태로 이루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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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속성:
통치, 주권자, 거룩하신, 
능력의, 평안, 주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선을 행하는 것
🔵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백성들로
죄를 짓게 하는 여러가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주님의
노를 격발하게 하였다.🩸✝️
🌱🌿🌳
전쟁이 잦았던 혼돈의 시대에 비하면 작지만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크고 작은 힘을 얻기 위해 분쟁하고 악을 행하는 일이 많이 있다. 끝없는 배신과 거짓과 속임으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친절히 대하고 주의 뜻에 순종하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ra2DacsUuI

 

 

 

선한 양심을 지니는 습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도행전 24:16)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아들의 생명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 인간의 속성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형성됩니다.(갈 4:19) 주의 명령은 어렵지만, 우리가 즉시 순종하면 그 명령들은 영적인 차원에서 쉬운 것이 됩니다. 

 

양심은 내가 아는 최상의 것에 내 마음의 중점을 두는 기능으로서 그 최상의 것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즉 양심은 영혼의 눈으로써 하나님을 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최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향합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꾸준하게 하나님을 뵙는 습관을 지닌다면 내 양심은 항상 하나님의 완전하신 율법을 소개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어기지 않고 잘 지내려면 나의 양심이 예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된 상태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상황 가운데서 당신 마음의 영은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롬 12:2, 엡 4:2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당신의 귀는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만큼 예민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 주님은 천둥 같은 음성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주의 음성은 너무나 세미해서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주님께로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하려면 내면의 세계를 언제나 하나님께 끊임없이 열어두는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만일 내면의 세계에 시비가 있으면 당장 그 일을 멈추십시오. “내가 왜 이것을 하면 안 되는 것이지?”라는 의문이 생기면 당신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말할 때는 절대로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헛된 모험을 걸고 하나라도 허락하면 양심을 어긴 일로 인해 당장 하나님과의 내적 교제가 불투명하게 됩니다. 양심에 꺼려지는 것은 무엇이든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면세계의 시력이 맑게 유지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https://reformedkjy.tistory.com/9542

 

5월 13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선한 양심의 습관(The Habit of Keeping a Clear Conscience)" by 오스왈드 챔버

선한 양심을 지니는 습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도행전 24:16)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아들의 생명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reformedkjy.tistory.com

 

 

 

https://i.pinimg.com/564x/65/76/32/657632b93119b6de0decb12a5094de1d.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