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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21 : 1~9❄️죄악의 길로 이끈 악한 지도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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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1.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
므낫세 (Manasseh)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12세였다. 따라서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간의 생명을 연장받게 된 때로부터 제3년째에 태어난 셈이다(20:6).
오십 오 년을 치리하니라. -
본절에 기록된 므낫세의 통치 연수(B.C 697-642)는 연대기 계산에 큰 어려움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므낫세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까지 유다왕들의 총 통치 연수는 대략 110년 6개월인바 B.C. 697년부터 계산할 경우 약 20년정도가 더 초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딜리(Thiele)는 므낫세와 그의 부친 히스기야간에 공동 통치(섭정)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섭정 이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이 그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Leon Wood, Hobbs).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
'헵시바'(Hephzibah)라는 이름의 뜻은 '나는 그녀안에서 기쁨을 누린다' 또는 '나의 기쁨은 그녀에게 있다'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선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유대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선지자가 이사야의 딸이라고도 하나 분명치 않다.
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들의 석상과 우상 그리고 산당을 모두 훼파하라고 명령하셨다(7:5).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본받게 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했던 왕에 대해서 엄한 징계를 내리셨다(왕상 13:34;21:17-26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는 아하스와 같이(16:3) 이방인들의 각종 우상을 섬겼다(4-9절).이러한 므낫세의 행위는 통치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역사 의식과 주체 의식이 없었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위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비젼(Vision)을 제시해 줄 목자가 없었던 유다는, 결국 바벨론의 침략에 맥없이 무너져 버리고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평행기사인 대하 33장도 증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3.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산당을 다시 세우며 -
이처럼 므낫세가 과거 히스기야에 의해 척결되었던 산당을 다시 세우므로써 히스기야가 이루어놓은 종교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18:4). 그리고 예루살렘 중앙 성전으로 집중된 유다 백성들의 마음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한편 카일(Keil)은 당시 므낫세가 그토록 부패한 정책을 편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를 물리치자고 주장했던 히스기야 때의 거짓선지자들과 다른 불신앙의 세력들이(사 28:7, 14;30:9) 어리고 경험없는 므낫세의 배후에서 그에게 우상 숭배를 하도록 부추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막강한 통치력을 가졌던 히스기야와 당대의 신앙의 거성(巨星)이었던 선지자 이사야의 죽음이 백성들 사이에 신앙의 큰 공백을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
유다에서 바알(Baal)을 숭배한 것은 아달랴 이후로(11장) 아하스(대하 28:2)에 이어 므낫세가 세 번째이다. 그러나 므낫세는 실제로 아하스보다 더 공개적으로 바알 숭배를 허용한 듯하다. 왜냐하면 역대기 기자와는 달리 본서기자는 아하스가 바알 숭배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6:3,4). 한편 본서 기자는 므낫세의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아합의 소위를'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왕상 16:31-34). 그런데 본장에 의거할 때 므낫세는 오히려 아합보다 더 극심하게 바알 및 이방신들을 숭배했음이 분명하다.
일월 성신(日月 星辰)을 숭배하여 -
북왕국에서는 이러한 천체(天體) 숭배가 널리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17:16). 아마 그것은아합 때부터 시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에서 일윌 성신 숭배가 처음 소개된 것은 아하스 때이며(23:12)므낫세 때에 비로서 널리 유행되었던 것 같다. 한편 습 1:5과 렘 8:2 에세도 이러한 일윌 성신(日月星辰)숭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모세 율법은 일찍부터 이러한 일들을 분명히 금하였다(신 4:19;17:2-7).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16주석 및 본장 1-18절 강해, '자연신론의 제형태'를 각기 참조하라.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의 단들을 쌓고
여호와의 전의 단들을 쌓고 -
이것은 여호와의 전에 바알의 단들을 세운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는 여호와의 주권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배타적으로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신 5:7)에대한 반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택정하신 '예루살렘 성전'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를 참조하라.
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
왕상 6:36에 따르면 성전에는 안뜰 하나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반면에 겔 40:17-19에는 안뜰과 바깥뜰 둘 다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스미스 (Smith)의 성전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당시 성전에는 여인의 뜰, 남자의 뜰, 제사장의 뜰이 있었으며 신약 시대의 헤롯 성전에도 이세 뜰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두 마당이라고 한 것은 성전의 이 세 뜰 가운데 두 마당을 가리키는 것 같다(Hobbs).
6. 또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
이는 곧 몰록(Moloch)과 관계된 인신 제사(人身祭祀) 행위를 가리킨다. 이에 관해서는 16:3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세 율법은 이와 같은 제의(祭儀)에 관해서도(신 18:10) 분명히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신 18:14)고 금기의 말씀으로 못박고 있다.
점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넨'(*)은 '구름이 끼게 하다'라는 뜻의 '아난'(*)에서 변형된 것으로서 본래는 천체의 어떤 변화들을 가리킨다(창9:14).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천체의 변를 보고선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Rawlinson).
사술을 행하며 -
여기서 사술(邪術)이란 각양 각색의 마술 뿐 아니라 사람을 미혹시키는 모든 미신적 행위를 다 일컫는 말이다. 17:17 주석 참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
먼저 '신접자'란 접신술(接神術)을 하는 사람, 곧 죽은 자와 교통한다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박수' 란 남자 무당을 가리킨다. 모세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러한 자들을 용납치 말라고 하였다(신 18:11-14). 그런데도 므낫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저들을 가까이 한 것이다. 신 18:11 주석 및 삼상 28:3주석 참조.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찌라
아세라 목상 -
우가릿(Ugarit) 문서에 따르면 아세라(Asherah)는 바다의 여신이며 엘(El)신의 배우자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여신은 바알을 포함한 몇몇 다른 신을 낳은 신으로 묘사되었는데 성경에는 종종 바알과 함께 언급되었다(삿 3:7;6:26-30);왕상 18:19등). 또한 아세라는 분향 제단(사 17:8),단(렘 17:2) 산당(대하 17:6), 다른 우상 (대하 34:3)과도 관련되어 언급되었다. 한편 아세라는 '통나무'나 '기둥', 그리고 조각된 상(像)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각 번역본들에서는 다양하게 번역되었다(출34:13;신7:5;12:3;사17:8렘17:2;미5:14 등). 이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땅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윈히 둘지라 -
솔로몬이나 다른 열왕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에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우상을 들여오는 일은 없었다. 단지 그들은 예루살렘 앞 맞은편 언덕에 그 우상들을 세우곤 했다(왕상11:7). 그러나 므낫세와 그의 조부 아하스(16:11-14)는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4절)에까지 우상을 들여와 섬기는 불경을 범했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선 므낫세에 대해 어떠한 징벌이 가해졌다는 기록은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의한 것이었을 뿐(말 3:1-6) 므낫세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짓이었다(롬 2:4,5). 그러므로 후에 므낫세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징계를 받은 것도 이러한 죄의 축적에 의한 결과로 볼 수있다(대하 33:11).
8.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않게 하리라 -
이것은 삼하7:10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나 본절의 전반부에 기록된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이라는 조건문은 이 약속이 율법에의 순종에 근거해 있음을 보여 준다(신3:20;12:10;수 21:44). 이와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이나 계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그 같은 언약이나 계명을 저버릴 경우에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파기(破棄)되곤 하였던 것이다(12-15절).
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
여기서 '꾀임을 받고'에 해당되는 히브리어'이트엠'(*)은 '방황하다', '길을 잘못 가다'라는 뜻의 동사 '타아'(*)의 히필형(Hihpil:사역형 능동)이다. 이는 곧 '므낫세가 길을 잘못 가도록 만들었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므낫세가 우상 숭배의 주동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의 죄악을 강요하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11절).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악한 행위를 그들 앞에서 멸망당한 열방들의 행위와 비교하는 이러한 어법은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도 자주 나타난다. 즉 선지자들은 흔히 이스라엘의 행위를 '신 아닌 것'을 섬기는 자들의 행위보다 더악하다고 표현하고 있다(암 9:7; 렘 2:9-13). 또 예수께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고라신과 벳새다 백성들을 책망하신 적이 있다(마 11:21). 아무튼 본장에서 므낫세의 행위는 그의 부친 히스기야의 행위와 완전히 정반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히스기야를 다윗에 비긴다면(18:3)므낫세는 아합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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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성전, 주권, 권위, 말씀,
오래 참으심, 심판, 진노하시는,
징계의, 약속(언약), 율법,
계명, 책망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
주님만 섬기기,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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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쁨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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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순종과 섬김을 드리고 주님만을 바라며 의지하는 한마음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으로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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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들으시는 기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한복음 11:41)
하나님의 아들이 기도하실 때 그분은 오직 한 가지만 의식하셨는데 바로 하나님 아버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아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내 속에 계신다면(갈 4:19) 아버지는 언제나 나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유한한 육신을 통해 나타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너희 몸은 ..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즉 우리의 몸은 하나님 아들의 ‘베들레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실 기회를 얻고 있습니까? 역사 속에서 나타나셨던 하나님 아들의 그 분명하고 진실한 삶이 현재 나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습니까? 일상 속에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평범한 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시도록 합니까?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요 16:26) 그날은 언제입니까? 바로 성령이 내게 오셔서 나를 실제로 주님과 하나가 되도록 하는 날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을 통해 충분히 흡족해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당신은 영적인 ‘거만’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상식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아들을 곁으로 밀어내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상식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지만 그분의 아들이 주신 선물은 아닙니다. 그분의 아들이 주신 선물은 초자연적인 지각입니다. 따라서 결코 상식을 왕좌에 앉혀서는 안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만, 상식은 아버지를 결코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주하셔서 승화되지 않는 한 결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유한한 몸이 주님께 완전히 굴복하는지, 주님께서 이 몸을 통하여 순간마다 역사하시는지 살펴야 합니다. 당신은 주님의 생명이 순간마다 드러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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