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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22 : 1~11❄️성전 수리 중에 말씀을 주신 하나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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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2: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
요시야(Josiah)의 부친 아몬은 24세에 죽었다.(21:19, 23). 그러므로 결국 요시야가 태어난 때는 아몬의 16세였던 셈이 된다. 한편 요시야는 유다 최후의 선왕(善王)으로서 31년간 (B.C. 640-609)을 통치하였다. 그는 다윗을 본받아 여호와 신앙에 전념하였는바 죄악으로 더럽혀진 나라를 정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유다를 구원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그 자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성급히 애굽과의 싸움에 참전하여 전사(戰死)하였으니(23:29, 30)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
'여디다'(*)는 솔로몬의 다른 이름인 '여디디야'(Je-didiah)의 여성형 이름이며 뜻은 '사랑하는 자'이다(삼하 12:24,25). 그러나 정작 '여디다'(Jedidah)에 관해서 알 수 있는 바는 달리 없다.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
수 15:39에 따르면 보스갓(Bozkath)은 라기스와 에글론 사이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그곳이 오늘날의 '텔 나길라'(TellNagila)일 것으로 보고 있으나(Hobbs) 정확하지는 않다. 한편 '아다야'(Adaiah)라는 이름은 '장신구'라는 뜻으로서 포로 시대 이후에 자주 쓰인 이름이다(스 10:29, 39;느 11: 4, 5).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본절에서는 요시야의 통치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
그의 경건에 대한 평가는 여호사밧(대하 17 :3) 및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와 동등하다(18:3). 때문에 후대 사가 (史家)들은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이세 사람을 가리켜 유다의 3대 성군(聖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
이는 곧 요시야가 모든 인간 삶의 유일한 정도(正道)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각하며 판단했다는 뜻이다(신 5:32;28:14).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이 점에 있어서도 서로 일치한다(18:6).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의 선한 행위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돌이키지 못했다는 사실(23:26, 27)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요시야왕 십 팔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가로되
요시야 왕 십 팔 년에 -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의 초기 개혁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다. 즉, 대하 34:3-7에 따르면 요시야는 이미 그의 통치 12년에 한 차례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모든 우상들을 파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유다 역사상 가장 철저하고도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6세 되던 해인 바로 이 통치 18년째의 일이다. 한편 요시야 왕 18년은 B.C. 621년경이다. 이때는 앗술바니팔 왕의 죽음(B.C.626년)으로 인해 앗수르 제국이 이미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대외적인 면에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대내적으로 오로지 종교 개혁에 정신을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서기관 사반 -
'사반'(*)이라는 이름의 뜻은 '오소리'이다. 당시 이러한 이름(겔 8:11)은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Hobbs). 한편 렘 26:24에 보면 사반(Shaphan)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호하였다고 하며, 또 사반의 아들 그마랴도 여호야김 왕 시대에 상당한 귀족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렘 36 :12,25). 그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이었다(렘 40:5 - 41:10).그러므로 사반의 가문(家門)은 비교적 명문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당시 서기관은 여호와의 전에 바치는 세금들을 관리할 정도로 대단한 중책의 위치에 있었으니(4절 ; 12:10) 그 가세(家勢)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평행 구절인 대하 34:8에 따르면 당시 사반 이외에도 부윤 마아세야와 다른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가 함께 활동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4.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대제사장 힐기야 -
여기에 언급되 힐기야(Hilkiah)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학자들간에 견해가 다양하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힐기야'란 이름이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 에스라의 족보에 나오는 살룸의 아들 힐기야(스 7:1, 2)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대상 6:13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의 명단에도 동일하게 살룸의 아들로 나온다(Rawlinson). 2 다음으로 베냐민 땅 아나돗(대상 6:60) 출신의 선지자 에레미야의 아버지 역시 힐기야이다(렘 1:1). 3 그밖에도 레위 족속 암시의 아들 힐기야(대상 6: 45, 46), 스룹바벨과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 힐기야(느 12:1, 7)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본절에 등장하는 힐기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직접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렘 24장을 보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대제사장 힐기야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아버지라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Hobbs).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본절의 힐기야가 살룸의 아들 힐기야인 것으로 추정한다(Rawlinson).
백성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여 하나님께 바치거나 아니면 율법의 규정(출 30:13, 14 ;레 27:2-8; 민 18:15, 16)에 따라 바쳤던 헌금을 가리킨다. 한편 선왕(先王) 요아스는 이러한 헌금을 모아 성전을 수리하는 데에 사용하였다(12:4-16). 본장에서의 요시야의 행위(3-7절) 역시 앞서 요아스의 그 같은 정책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수납한 은을 계수하여 -
여기서 '계수하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템'(*)은 '마치다'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새로운 용도에 지불할 목적으로 돈을 정리한 것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 477). 70인역 (LXX)에는 이 단어를 '스프라기손'(*)으로번역하고 있는데 '인봉하다'(seal) 라는 뜻이다. 탈굼역(The Targums)이나 New English Bible도 동일한 뜻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돈을 자루에 넣어 묶는다는 뜻이다(12:10).
5.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본절에 언급된 성전 수축(修築)작업 과정은 앞서 요아스 당시의 작업 과정과 거의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이에 관해서는 12:11, 12 주석을 참조하라.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
12:6에 보면 "요아스 왕 이십 삼 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는 언급이 나온다. 이는 그동안 유다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관심, 열정이 식었던 결과이다. 그러나 요아스에 이어 이제 요시야 때에 이르러 성전 수축이 재개된 이후로 얼마 동안은 매년 성전 수리 작업이 시행되었을 것이다.
7. 그러나 저희 손에 붙인 은을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
대하 34:12에 따르면 성전 일을 맡은 감독자들은 모두 레위인으로서 전적으로 신뢰받는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12 :15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실되게 일하였음 터이니 요시야로부터 전적으로 신뢰받을 수있었을 것이다.
이는 그 행하는 것이 진실함이었더라 -
감독자들의 이 같은 진실됨에는 분명 요시야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고(自古)로 공의를 행하는 통치자 밑에서 정직한 신하가 배출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실상 다윗 왕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여 공의를 행할 때(삼하 8:15) 정직하고 충성된 신하가 배출되었으며(삼하15 :19-23) 백성들은 태평 성대를 누리었다(삼하7:1). 그러므로 가정이나 교회, 국가가 평강 가운데 번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 교회 지도자, 통치자들이 각각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히 행하는 일에 솔선 수범해야 할 것이다.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
힐기야가 발견한 이 율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양하다. 1 신명기서 뿐이라는 견해(Ewald).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문서 비평가들이 많은데 이것을 근거로하여 신명기 후기 저작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자기 신학적 틀을 정한뒤 그 틀 속에서 모든 결론을 유추해 내고 있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2 모세의 계명과 규례집의 한 부분이라는 견해(Thenius). 3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라는 견해(Bertheau). 4 그러나 본절에서 '율법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페르 하토라'(*)는 대개 모세 오경 전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신 17:18;수 1:8;8:31;24: 26; 느 8:1 등). 따라서 일반적으로 요세푸스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듯이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모세 오경 전부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Keil, De Wette). 한편 이 율법책은 신 31:26에서 보듯이 언약궤 옆에 비치해 두었던 성전용 율법서로서 제사장들에 의해 수시로 읽혀지던 것이다(신 31:12, 26). 그런데 므낫세 당시의 극심한 배교(背敎) 현상(212:1-9)에 불안을 느낀 누군가가 이 율법서를 보존하기 위하여 성전 모퉁이에 감추어 두었던 것 같다(Matthew Henry).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복명하여 가로되 왕의 신복들이 전에 있던 돈을 쏟아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였나이다 하고
서기관 사반이...복명하여 가로되 -
본절은 당시 서기관 사반에게 성전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왕 사이에서 연락하는 매개자(煤介者)의 임무도 있었음을 보여 준다. 3절 주석 참조.
왕에게 돌아가서 -
여기서 '돌아가서' 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야쉐브'(*)는 히필형(Hiphil:사역형 능동)으로서 사반이 중대한 일이나 불가피한 요인 또는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서 왕에게 보내졌음을 가리킨다.
돈을 쏟아 -
'쏟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티쿠'(*)는 '쏟아붓다','녹이다'라는 뜻의 동사 '나타크'(*)에서 파생된 것으로 자주 금속을 녹이는 것과 연관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아마 '분배하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Hobbs).
10.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내게 책을 주더이다 -
본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무엇보다 '책'(*, 세페르)이라는 단어가 문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성전 수리 일보다 힐기야가 준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라 하겠다.
왕의 앞에서 읽으매 -
이처럼 서기관 사반이 율법책을 '읽었다'는 말은 이미 8절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이때 사반이 읽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길이 없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왕에게 충격을 주는 중요한 부분 몇 군데를 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자신의 옷을 찢으며 통회하였기 때문이다(11절). 또 23:2과 비교해 볼 때도 이때 만큼은 사반이 책 전체를 읽은 것 같지는 않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왕이...그 옷을 찢으니라 -
사반이 읽어 준 율법책의 내용은 아마도 이전에 읽은 어떤 책이나 교훈보다도 요시야의 마음에 더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13절에 비추어 볼 때 사반이 읽은 내용 중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멀리 할 경우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리라는 말씀(신 28:15-68)도 있었던 것같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음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옷을 찢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금 돌이켜 마음을 찢고 회개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19:1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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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정화, 구원, 뜻, 말씀,
심판, 성전, 징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호와 신앙, 전념하는,
성군(聖君), 정직, 선행,
공의, 경외,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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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보시기에(앞에서)
정직히 행하기.
모든 인간 삶의 유일한
정도(正道)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각하며
판단하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관심, 열정이 언제나
불타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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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의 선한 행위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돌이키지 못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어두운 시대 속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았던 요시야왕 처럼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가는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j9cHYPA14
이 체험은 반드시 겪어야 합니다.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열왕기 하 2:12)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엘리야’를 허락하시는 한, 그를 의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떠나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엘리야가 더 이상 당신의 인도자와 지도자가 될 수 없을 때 당신은 말합니다. “나는 엘리야 없이는 갈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단에서 홀로 서 있음.(14절) 요단은 당신과 사귀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한 당신 대신에 책임을 질 사람도 없는 그러한 고독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이 엘리야와 있었을 때 배운 것을 시험해야 합니다. 당신은 엘리야와 함께 여러 번 요단을 지나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홀로 요단을 건너야 합니다. 당신이 건널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시험은 다가왔으며 당신은 건너야만 합니다. 만일 당신이 믿어왔던 그 하나님이 정말로 당신의 하나님인지 알기 원한다면 홀로 당신의 요단강을 건너십시오.
여리고에서 홀로 서 있음.(15절) 여리고는 당신의 ‘엘리야’가 위대한 일을 행하였던 것을 당신이 목격했던 장소입니다. 이제 당신 혼자 여리고에 왔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앞서나갈 의향이 거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에 그 자리에 서서 책임지길 원합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엘리야’와 함께 있을 때 배운 것에 충실하다면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벧엘에서 홀로 서 있음.(23절) ‘벧엘’에 도착하니 당신의 재주가 끝나는 데서 하나님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궁지에 몰리면 당황하게 되고 정신을 잃기 쉽지만 정신을 차리십시오. 하나님께 진실하게 서면 주님께서는 주의 진리로 당신의 삶을 붙들어 주셔서 거룩한 산 제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엘리야’에게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가 남긴 겉옷과 기도를 사용하십시오.(왕하 2:13-14)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굳게 결단하고 더 이상 ‘엘리야’를 찾지 마십시오.
https://m.cafe.daum.net/mercyreformedchurch/ULF8/1483?listURI=%2Fmercyreformedchurch%2FULF8
https://i.pinimg.com/564x/13/9c/15/139c15cb6b28f976ac450d00619289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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