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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QT🧊열왕기하 21 : 10~26❄️오래 참으심의 끝, 악행을 씻어 내는 심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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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10. 여호와께서 그 종 모든 선지자들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그 종 모든 선지자들 -
므낫세의 통치 기간(B.C. 697-642) 동안에 어떤 선지자가 활동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Hobbs).이사야와 선지자 미가는 히스기야가 죽기 이전에 예언 활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사역은 요시야(Josiah,B.C. 640-609)왕 때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므낫세의 통치 기간 55년 동안에 성경상으로 알려진 선지자들은 아무도 없는 셈이 된다. 그러나 본절부터 15절에 기록된 말씀들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또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선포되었음이 분명하다(대하 33:10).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므낫세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전승(傳承)되었음에도 분명하다. 렘 15:1-4에 기록된 말씀은 바로 그러한 점을 입증해 준다.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케 하였도다
본절 이후에 나타나는 말씀들 가운데 어떤 구절들(12,13절)은 예레미야서와 다른 성경에도 나타난다(렘 19:3;애 2:8;암 7:8). 하지만 그 말씀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선포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주어진 말씀들은 선지자적 전통에 따른 신명기적 요약의 말씀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아모리 사람 -
'아모리 사람'(Amorites)은 일반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가리킨다(창 15:16;신 7:1;삿 3:5). 그러나 선지자들에 의해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적은 흔치 않다. 아무튼 '아모리 사람' 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 가운데 헷 족속(Hittites)에 버금가는 중요한 민족으로서 우상 숭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대표적인 족속이다. 수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참조.
1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재앙을 내리리니 -
여기서 '내리리니'에 해당되는 동사 '메비'(*)는 주로임박한 미래의 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22:16;왕상 14:10). 예루살렘 멸망(B.C. 586)은 므낫세 사후 (B.C. 642년경) 약 60년 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단어가 사용된 것은 아마 하나님의 심판의 엄정성(嚴正性)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
이러한 표현은 삼상 3:11과 렘 19:3 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까지 들어본 일이 없는 무서운 심판이 될것이며 그러한 심판의 소식을 들을 때 공포와 전율로 인해 귀가 멍멍할 정도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B hr, Keil, Smith).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3:11 주석을 참조하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찌라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보던 추로 -
여기서 '줄'(*, 카우)은 건축할 때 땅을 측량하는 도구를 가리킨다(슥 1:16). 이 줄이 쳐진 지역은 새로운 건축을 위하여 땅을 파고 기존한 낡은 건물들을 제거하여 기초를 새로 놓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줄은 실상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다음으로 '추'(*, 미쉬콜레트)는 수평의 여부를 재는 도구이다. 건축자들은 이 추로 재어본 후 수평이 되지 않는 지역을 평평하게 하기 위하여 땅을 파거나 고르곤 한다. 따라서 여기서 줄과 추는 모두 인간의 행위를 계량(計量)하는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본절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을 것이라고 했다(사 28:17). 그런데 사34:11에 기록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는 법(法)이 없고 의(義)가 없는 혼란한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예루살렘에 베풀고 -
하나님께서 과거 사마리아와 아합을 재었던 것과 같은 동일한 표준으로써 예루살렘을 계량하실 터이니 결국 예루살렘 역시 사마리아처럼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뜻이다.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
이것은 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비위 버리고 깨끗이 씻어 엎어 놓은 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B hr). 이는 곧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그곳에 거하는 백성들을 완전히 멸해 버릴 것을 의미한다. 한편 영어의 격언에도 이와 유사하게 '슬레이트를 깨끗이 씻어 버리다'(wiping the slate clean)라는 표현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청산해 버리고 이제까지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저희가 모든 대적에게 노략과 겁탈이 되리니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
본절은 13절에서 언급한 "그릇을 씻어 엎음같이" 라는 표현에 대한 설명임과 동시에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시금 강조하는 말로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남은 자'는 멸망되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 북왕국 10지파(17장)에 대하여 아직 남아 있는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앞서 히스기야의 기도로 인해 유다의 구윈이 여호와로부터 보장되었다(19:20-34). 그러나 이제 므낫세와 그에게 미혹된 백성들의 죄악(9절)으로 인해 유다는 다시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운명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여호와 신앙 가운데 거하는 개인 존재로서의 '남은 자'는 구윈받았음이 분명하다. 19:30 주석 참조.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
이러한 표현들은 사사기에서 자주 쓰였다(1:2;2:14;6:1;13:1). 그러나 여기서는 그때와 같이 되풀이 될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국적인 심판을 나타낸다. 즉 이는 이제 여호와와 그의 백성간에 맺어진 특별한 언약 관계(출 19:5, 6)가 깨어지게 됨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 결과 여호와의 소유이던 유다가 대적들의 노략물이 되게된 것이다(렘 2:14-19).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나의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니라 하셨더라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
몰론 출애굽 시대부터 므낫세 시대까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적으로 범죄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렘 2:1-8에서 보듯이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여호와와그의 백성 간의 결혼 생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본절은 열왕기 기자가 평가한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 또는 타락의 역사이다. 즉 시 106편에 기록된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와 타락의 역사로 묘사될 수도 있고, 또 시 105편에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역사로 묘사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행7:39-43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는 본서 기자와 유사한 스데반의 사관(史觀)이라 하겠다.
16.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본절에서는 므낫세가 행한 우상 숭배 이외에 그가 범한 또 다른 죄악들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
므낫세가 유다의 백성들로 하여금 각종 우상들을 섬기게 한 죄악을 가리킨다. 9절 주석 참조.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
이러한 표현은 완전히 신명기적이다(신19:10, 13;22:8;27:25; 삼상 19:5; 렘 7:6;19:4;22:3, 17;26:15). 한편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므낫세는 당시 선지자들의 입을 봉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매일 그들 중 몇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한다.(Ginzberg, Josephus).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도 이때 톱에 켜이어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Matthew Henry, Keil, Rawlinson)>. 한편 율법에서 '무죄한 자'라는 것은 죽음의 심판에 해당되지 않는 자, 즉 사면(赦免)을 받을 수 있는 자를 가리키며 이런 사람들은 보호해 주도록 되어 있다(신 19:10). 따라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자'는 곧 살인자인 것이다(H.Christ). 그런데도 므낫세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정책에 대하여 비판한다고 하여 신실한 자들과 선지자들의 무고한 피를 흘렸던 것이다.
이 가에서 저 가까지 -
즉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한쪽 문에서 그 반대편 문까지라는 뜻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공평의 도시였으나 이제 므낫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포학한 도시로 변했고, 의로운 도시였으나 부르짖음이 가득한 도시로 변하고 말았다(사 5:7).
17.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무릇 그 행한바와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므낫세의 남은 사적 -
평행 구절인 대하 33:14에 따르면 므낫세의 다른 사적(事績)으로는 예루살렘 성읍을 요새한 일과 유다의 여러 성읍에 수비대를 두어 국방을 강화한 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밖에도 특기(特記)할 일로는 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구원을 얻은 사건(대하 33 :
10-13)이 있다. 그런데도 본서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생략되어 있는 까닭은 아마 기록 목적상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즉 유다 왕국 역사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역대기 기자와는 달리 본서 기자는분명 므낫세가 전임자인 히스기야와 완전히 상반된 인물임을 강조하려 하였을 것이다(3절).
범한 죄 -
므낫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극악한 죄를 범하므로써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23:26, 27; 24:3, 4). 물론 므낫세 자신은 비록 회개하여 구원받았을지라도 그의 죄악으로 인해 유다 왕국 전체가 멸망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롬 5 :12, 19). 한편 역대기에 따르면 므낫세는 앗수르에 의해 바벨론으로 잡혀 갔다가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대하 33:10-13). 그런데 앗수르가 므낫세를 자기 나라로 끌고 가지 아니 하고 바벨론으로 끌고 갔던 것은 당시 앗수르가 흔히 쓰던 정책이기도 하거니와(McKay) 본국이 반란자(사마스 숨 우킨, Shamash-shum-ukin)에 의해 소란스러웠기때문이다(Bright). 그리고 당시에 바벨론은 여전히 앗수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Josephus).
18. 므낫세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웃사의 동산 -
'웃사'(Uzza)는 유대인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다(삼하 6:8; 대상8:7; 스 2:49; 느 7:51). 그러므로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사의 동산'을 웃사가 만든 동산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Gray, McKay)은 이것을 므낫세가 가나안의 성신(星神)인 아타르멜렉(Attarmelek)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동산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요시야가 종교 개혁할 때(23장) 이 동산을 제거했다는 언급이 분명히 나올법한데 그러한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이 동산의 위치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다윗 성이 있는 언덕(Ophel) 남쪽 끝에 있었다고도 하며 (Hobbs, Thenius) 또 시온 산 위에 있었다고도 한다(Robinson). 그리고 카일(Keil) 같은 학자는 그 동안이 므낫세가 거하던 별궁 안에 있었다고도 한다.
그 아들 아몬 -
유대인의 이름 가운데 이러한 형태의 이름은 흔치 않다(스 2 :57; 느 7:59). 여기서 '아몬'(*)은 '귀여운 것',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하나 애굽의 우상의 명칭이기도 하다(렘 46:25). 그리고 이 이름은 왕상 22:26에서 사마리아의 한 통치자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므낫세는 사랑하는 자기 아들의 이름을 우상의 이름에서 본 따 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awlinson). 한편 므낫세에 이어 유다 제 15대 왕으로 등극한 아몬(Amon, B.C.642-640) 역시 그 아비를 본받아 악정(惡政)을 일삼은 것으로 나타난다(20-22절). 이는 곧 아비의 영향이 자식에게까지 미친 일례에 다름 아니다.
19. 아몬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이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므술레멧이라 욧바 하루스의 딸이더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을 치리하니라 -
흑자는 아몬이 2년이 아닌 12년을 통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Ebrard).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1절의 주석에서 이미 설명한 바대로 예루살렘 멸망 연대가 10년 이상미루어져 B.C. 586년 에서 B.C. 576으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멸망 연대는 역사가 증거하는 부동(不動)의 사실이기 때문에 아몬의 12년 통치설은 불가능하다(Thenius).
그 모친의 이름은 므술레멧이라 -
여기서 '므술레멧'(*)은 '보상하다'라는 뜻의 동사 '솰람'(*)에서 파생된 '솔로몬'(*,쉘로모)의 여성형이다. 히브리 이름 가운데 이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이름에는 살롬(15:10), 므술람(22: 3), 압살롬(삼하 3:3), 솔로몬(삼하 12:24) 등이 있다. 그러나 므술레멧(Meshulle-meth)에 관해 달리 알 수 있는 바는 없다.
욧바 하루스의 딸이더라 -
하루스(*, 하루츠)라는 이름은 '금'(gold)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이다(시 68:13의 히브리 원문 참조). 이와 유사한 이름이 시내 산에서 발견된 아라비아어 비문에도 나타나는바 따라서 아몬의 모친 므술레멧은 남방계 사람인 것으로 추측된다(Hobbs). 한편 이처럼 하루스라는 이름에서 므술레멧이 남방계 출신임을 추측할 수 있긴 하지만 욧바(Jotbah)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홍해 부근, 엘랏(Elath)의 북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하나 그것도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갈릴리 건너편에 있는 요데파트(Yodefat)로도 알려지고 있는데(Grid) 그렇다면 이것은 아몬왕이 비유다계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Hobbs). 그리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므낫세가 아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며 아몬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20.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21. 그 부친의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부친의 섬기던 우상을 섬겨 경배하고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같이...행하여 -
본절에 아몬의 행적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통치 방법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를 그대로 본딴 것이었다. 아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요시야가 행한 종교 개혁을 보면 당시 아몬이 얼마나 우상 숭배에 광분(狂奔)했었던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23:4-24). 한편 이러한 사실은 앞서 므낫세가 회개했던 것(대하 33:11-13)이 결국은 그 아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22.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치 아니하더니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
비록 선왕(先王) 아하스 역시 우상 숭배에 몰두했긴 하나 그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전적으로 폐하지는 않았다(16:10-15). 그러나 므낫세와 아몬의 경우에는 이처럼 거의 완전히 여호와에게서 돌아섰으니 그 패역함과 완악함의 정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한편 습 1:1- 12을 보면 아몬의 죄악상을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으니 참조하라.
23. 그 신복들이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
성경에서는 아몬의 신복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이유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말라마트(A. Malamat)는 이 시해(試害) 사건이 애굽의 충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본절에서는 아몬이 우상숭배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은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와같은 정치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즉 말라마트에 의하면 아몬은 친 앗수르 정책을 폈기 때문에 애굽의 사주를 받아 시행된 것이라고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몬 역시 그의 부친 므낫세처럼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 탓에(16절) 보복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Hobbs).
24. 그 국민이 아몬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 아들 요시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그 국민이...왕을 삼았더라 -
여기서 '그 국민'이란 사회적으로 부유하고 세도가 있는 특권층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회복을 갈망 하는 모든 유다 백성을 지칭한다. 이백성들은 외세의 영향을 빌어 정권을 잡으려는 반역배(反逆輩)들을(23절) 죽이고 8세밖에 안된 요시야(22:1)를 왕위에 앉혔다. 이러한 사실은 유다 백성들이 비록 우상숭배로 하나님 앞에 심히 패역했지만 그래도 다윗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역사 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러한 역사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친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을 8세의 요시야를 왕으로 세움으로써 배교적(背敎的)인 부친의 유물들을 모두 배격하고 의로운 왕이 될 것을 바랐던 것이다. 한편 본서에 의하면 이러한 백성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칭찬받는 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23:25).
25. 아몬의 행한바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몬의...남은 사적 -
본문의 기록 이외에 아몬의 행적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혹자는 그가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친 것으로 추정, 앗수르에게 순순히 조공을 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Rawlinson).
26. 아몬이 웃시야의 동산 자기 묘실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웃시야의 동산 자기 묘실 -
여기서 '웃시야'는 히브리 원문에 실상 '웃사'로 나온다. 그러므로 모든 영역본(KJV, RSV, NIV,Li-ving Bible)과 공동 번역으로 '웃사'로 바로 명기하고 있다. 한편 '웃사의 동산'에 관해서는 18절 주석을 참조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GlOm8dAj_2I
성도의 희생 제물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베드로 전서 4:19)
스스로 고난을 선택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난을 의미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다면 이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건강한 성도라도 결코 고난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어떤 선택이 하나님이 뜻이라면 그것이 고난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길을 선택합니다. 다른 성도가 고난의 훈련을 받을 때 참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성도는 다른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강하고 성숙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들은 우리를 동정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동정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오직 주님께 가장 가까운 성도들 외에는 다른 성도들을 연단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성도들의 동정을 받아들인다면 그로 인해 드는 감정은, ‘이런,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거칠게 다루시는구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연민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 16:23). 하나님의 인식에 대해 마음을 넓히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신원하지 않으시고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깎아내리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생애 가운데 사람들의 동정이 필요하신 적이 없으셨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예수님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셨기에(마 16:23) 사람으로부터의 동정을 거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긍휼과 자비를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로부터 도움을 얻을 뿐이었습니다.(눅 15:10)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헛되게 만드신다는 점을 주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에 성도들을 두십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이곳에서 내가 너무나 필요하기에 주께서 나를 여기에 두셨구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삶을 유용성에 따라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이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곳에 성도들을 두십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이든지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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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성품:
말씀, 평가, 심판, 율법,
교훈, 공평, 의, 구원,
언약, 은혜, 역사, 보호,
사면, 회복,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 기도,
여호와 신앙, 회개,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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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행위를 계량하는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
혼란과 공허에 공평과
의를 채우시는 은혜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일깨워 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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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개인의 믿음이나 회개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에서 신앙에 대해 늘 깨어 있고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순종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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